2026년 7월 21일 화요일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6-50 그때에 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48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49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
처음에 논어를 공부할 때에 그 깊은 의미를 한참을 씨름해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논어의 구절을 완전하게 깨달은 것이 아니라 정말 수박겉핥기 식으로 알아들은 것입니다. 그것은 말하는 사람들의 진의를 파악하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것을 알아듣게 된 것입니다. 그 때에 고민하고 숙고한 것이 지금 복음을 묵상하고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오늘 복음을 대할 때마다 예수님께서 참으로 냉정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대하기도 하고, 어머니를 아주 홀대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쩌면 그렇게 사람들 앞에서 어머니를 무시하였다고 섭섭해 하기도 한답니다. 또한 어머니 마리아를 그렇게 대하였으니 마리아를 공경하는 사람은 바보들이고, 천주교회는 바보들의 교회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내가 대전에서 가두 선교를 할 때인데 개신교 청년이 내게 와서 바로 오늘의 복음을 예로 들면서 예수님이 당신의 어머니가 아니라고 정면으로 부정하였다고 천주교회에서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말하면서 ‘천주교회는 마리아 교회’라고 몰아붙였습니다. 그날 나는 이렇게 그들에게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이고, 형제들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이 예수님의 어머니인가? 제자들이 예수님의 형제들이고 누이인가?”
또 ‘예수님의 형제들이 왔다고 했으니 마리아는 많은 아이들을 낳아서 예수님의 동생들이 있다는 말이고, 요셉의 아들들이 있어서 예수님의 형제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말인데 그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내가 무슨 신학자나 되는 듯이 질문 공세를 끊임없이 퍼부으면서 내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궤변일 뿐이라고 하면서 설득하지 말고 자신의 말을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형제자매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고, 성경의 그 말씀은 그 말 그대로 믿으라고 하는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아주 자상하게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당신의 어머니이고, 형제들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아무 소용이 없이 그 문장만 가지고 따지려고 드는 그 청년이 많이 괘씸했습니다. 그래서 언제 조용히 만나 얘기를 하면 좋겠다고 정식으로 초청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에 몇 시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근사하게 딱지를 맞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 청년이 내게 다가와 조목조목 따지고 들어도 나는 할 말이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아는 것이 있어 주님의 뜻이나 성모님의 마음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내 의견을 말할 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 의견이 주님의 의견이며, 성모님의 의견이라고’ 단언할 수 없으며, 그렇게 부족한 나 자신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만용(蠻勇)이었을 것입니다. 다만 오늘은 내가 묵상한 것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내 의견이 신학과 교리에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양지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눕니다.
논어의 이인편에 공자와 증자의 대화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왈; 삼호! 오도일이관지, 증자왈; 유. 자출, 문인문왈; 하위야? 증자왈; 부자지도, 충서이이의 子曰; 參乎! 吾道一以貫之, 曾子曰; 唯. 子出, 門人問曰; 何謂也?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 관통되어 있다.” 증자는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공자께서 나가시자 제자들이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증자가 말하였다. “선생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따름입니다.”>
충(忠)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자신의 성의를 다하는 성실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서(恕)는 자신의 처지로 미루어 남의 처지를 이해해 주는 이웃 사랑입니다. 그래서 충서(忠恕)의 삶은 곧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며,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충서(忠恕)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곧 예수님의 어머니요, 형제며, 누이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도(道)의 기본이며, 인(仁)의 바탕인 것입니다. 곧 하느님 사랑과 사람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고, 하느님 중심의 생활인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공적인 위치에서 하느님 중심의 삶을 강조하신 것이고, 사생활에 매달려 있지 않고, 또한 육친의 연결고리에 연연하지 않고 하느님 중심의 삶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절대로 성모님을 무시하지 않으셨으며, 당신의 어머니이심을 정면으로 부정하신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하는 소문을 듣고 걱정이 되어서 찾아오신 어머니를 만나지 않으려고 하신 말씀도 아닐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시고, 어머니와 당신을 사랑하고 좋아서 찾아온 당신의 추종자들을 만나서 다정하게 식사도 하시고,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 주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절대로 그렇게 모지락스러운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말씀하실 때에는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이야기를 하다가 엉뚱하게 다른 길로 빠지면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고 말합니다. 길의 중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곁가지에서 맴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은 하느님께서 우리 삶의 중심에서 우리와 같이 사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주변을 맴도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언제나 처음에는 잘 나가다가도 아주 크게 뚫린 길이 부산으로 가는 길인 줄 알고 달려 나가면 삼천포로 빠지는 것처럼 삼천포로 가려면 목적지를 삼천포로 잡아야지 그리고 부산이면 부산으로 가는 도로 표지판을 보거나 네비게이션을 보고 길을 잘 찾아야 한답니다. 그래서 삼천포 사람들을 기분 나쁘게 해서는 안 된답니다. 그 주변을 말끔히 정리하지 않으면 정말 큰 혼란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 미카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7,14-15.18-20 주님, 14 과수원 한가운데 숲속에 홀로 살아가는 당신 백성을, 당신 소유의 양 떼를 당신의 지팡이로 보살펴 주십시오. 옛날처럼 바산과 길앗에서 그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15 당신께서 이집트 땅에서 나오실 때처럼 저희에게 놀라운 일들을 보여 주십시오. 18 당신의 소유인 남은 자들,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는 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은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19 그분께서는 다시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들을 모르는 체해 주시리라. 당신께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20 먼 옛날 당신께서 저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을 성실히 대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자애를 베풀어 주십시오.
축일7월 21일 성 라우렌시오 (Lawrence)
신분 : 신부, 교회학자 활동 지역 : 브린디시(Brindisi) 활동 연도 : 1559-1619년 같은 이름 : 라우렌시우스, 라우렌티오, 라우렌티우스, 로렌스, 로렌조
성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또는 라우렌시오)는 1559년 7월 22일 나폴리(Napoli) 왕국의 브린디시에서 상인 부모의 아들로 태어나 율리오 체사레 루소(Giulio Cesare Russo)라는 이름을 얻었다. 신앙심 깊은 부모가 일찍 돌아가자 그는 교육을 위해 베네치아(Venezia)의 삼촌 집으로 갔다. 그리고 1575년에 그곳에 있는 카푸친회에 입회하여 라우렌티우스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파도바(Padova) 대학에서 교회 학문을 공부한 그는 언어에 대한 특별한 재능을 보여, 히브리어 · 그리스어 · 독일어 · 스페인어 · 프랑스어에 대한 상당한 실력을 지니게 되었다. 1582년 사제품을 받는 그는 북이탈리아 지방과 알프스 너머까지 순회하며 복음을 선포하는 설교가로 활동했다. 그는 강론 중에 성경 말씀을 효과적으로 이용했는데, 그의 강연과 강론을 주로 담은 “전집”(Opera Omnia)을 보면 성경에 대한 그의 해박한 식견과 다양한 언어에 대한 탁월한 지식을 알 수 있다.
그는 또한 카푸친회의 여러 고위직을 맡아 봉사했는데, 히브리어에 능통했기에 유대인의 개종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많은 랍비들의 개종을 이끌기도 했다. 그리고 1599~1613년 사이에는 보헤미아, 오스트리아, 독일로 파견되어 그곳의 호전적인 프로테스탄트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며 선교 활동을 전개했다. 이들 나라의 주요 도시에 카푸친회 수도원을 설립한 그는 많은 개신교 신자들을 가톨릭으로 돌아오도록 했고, 그가 설립한 수도원들은 후일 각기 관구 수도원으로 발전하였다. 1601년에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Rudolf II)의 요청으로 수석 군종신부로 임명되어 고전 중이던 터키인과의 전투에 직접 말을 타고 십자가를 높이 들고 나가 독일 군사들을 격려해 승리로 이끌었다. 1602년 카푸친회의 총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한 그는 1605년 이후 교황과 황제의 특사 등을 활동하며 노련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 1610년에 가톨릭 연맹을 결성했다. 그리고 1614년에는 에스파냐와 사보이아(Savoia) 왕가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고, 총독의 학정에 시달리던 나폴리 사람들을 대표해 에스파냐의 펠리페 3세(Felipe III)를 만나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1619년 7월 22일 포르투갈의 리스본(Lisbon)에서 설교를 마치고 배를 타기 위해 이동하다가 선종했다. 그 후 그의 시신은 에스파냐 북부 아스토르가(Astorga) 교구의 비야프랑카(Villafranca)에 있는 클라라회의 성당 묘지에 안장되었다.
성 라우렌티우스는 언제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교회에 헌신했다. 또한 그는 저술가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는데, 특별히 성경 주석가로서 그의 능력은 강론과 강연, 성경 주해서(창세기와 에제키엘서), 프로테스탄트 신학자와의 논쟁 등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그는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반종교 개혁 과정에서 교회가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이었다. 그는 1783년 5월 23일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881년 12월 8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교황 성 요한 23세(Joannes XXIII)는 1959년 3월 19일에 그의 열렬한 활동과 폭넓고 조화로운 학식을 인정해 그를 ‘사도적 교회학자’(Doctor Apostolicus)로 선포하였다.♧
오늘 축일을 맞은 라우렌시오 (Lawrence)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