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브닉..
이번 여행은 두브로브닉 때문에 오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브로브닉은 그 날도 눈부셨다" 라는 책에서 본 기묘한 울림을 가진 묘한 느낌의 도시이름,
그리고 바다로 돌출된 크지 않지만 육중한 성벽이 빨간 지붕들을 품고 있는 모습..
도저히 자연스럽게 역사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그 도시의 사진을 보는 순간
이곳에 꼭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첫 번째 유럽여행이 시오노 나나미의 책들을 읽고 베니치아, 로마, 피렌체에 가보고 싶어서..
가는 김에 다른 곳도 가보자는 생각으로 만든 계획이었다면..
이번 여행은 두브로브닉에 "가는 김에" 동유럽 나라들을 들르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행을 떠나는 계기란,
그 목적지가 정해지는 방법이란,
이렇듯 대체로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다.
그만큼 기대를 많이 가졌던 곳이기에,
오히려 더 실망하지는 않을지 불안하기도 했다.
머릿속으로 기대하는 것만큼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이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두브로브닉에 가까워질수록 끝없이 커져가는 나의 기대감은 한켠에 커져가는 불안감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스스로 그 기대감을 억누르고, 기대보다는 실망스러울 것이라는 도망갈 구멍을 파게 되었다.
그 기대와 그에 대한 불안감은 마치 FeedBack 관계 같아서
기대가 너무 커지려하면 불안과 걱정이 나타나 그것을 억제한다.
결론은
걱정한 것만큼 실망스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간의 기대에 비하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는 감상이긴 하지만
점점 더 커져만 가는 기대를 억제하려는 노력의 결과였다..
숙소에서 구시가지 성벽아래까지 걸어와서
두꺼운 성문아래의 어둠을 지나 이 플라카거리의 눈부심에 눈을 찌푸렸을 때
나는 휴.. 하고 다행스런 한숨을 내쉬었다.
두브로브닉.
특이한 이름조차 너무도 매력적인 이도시는 크로아티아에 있다.
이탈리아 반도를 마주보고 있는 아드리아의 보석이라 불리는 도시.
대항대시대 씨리즈를 했다면 베네치아에서 아드리아해를 따라 나오는 길에 있던
"라구사" 라는 조그만한 도시를 기억할 것이다..
조금만 더 가면 베네치아고, 게임 내에서도 큰 비중이 없는 도시이긴 하지만
이 "라구사"가 바로 두브로브닉의 과거 이름이었다..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는데,
눈부신 바다쪽으로 돌출된 바위 위에 성벽을 지어서 도시를 만들었다.
두브로브닉 성의 대문격인 성문..
한눈에 보기에도 튼튼해보인다.
성문에서 반대편 바다 앞 시계탑까지 이어진 중심대로
플라카 거리..
새하얀 대리석과 햐안 벽의 건물들은 광을 냈는지 사람들의 발길과 손길에 닳아서 그런것인지
맑은 하늘 아래 햇빛을 반사시키며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고 있었다.
"두브로브닉은 그날도 눈부셨다."
안그래도 하얀 빛깔의 바닥이 정말 반들반들 윤이난다.
미끄럽지 않을 정도로..
여행하다가 순간 깜짝깜짝 놀라는 것.
나에게는 조금은 감격스럽기도 하고 꼭 가고 싶던 곳에 도착한 곳에서
자기네 땅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돌아다니는 초등학생들을 보면 조금 당황스럽다..
하지만 곧바로..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당연히 초등학생들도 있겠거니 하는
당연하고도 확실한 논리로 마무리 되지만 말이다..
그 좁은 골목에도 조금이라도 터가 있는 곳이면
여지없이 노천카페 테이블들이 차지하고 있고..
성벽 위에도 올라가서 한바퀴 돌 수가 있다...
성벽 아래로 보이는 투명한 바다.
이렇게 성벽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한다..
오르막을 오를 때는 새파란 하늘을 향해 걸어가는 것 같고,
내리막을 터벅터벅 내려갈 때는 새파란 하늘보다 조금 더 푸른 바다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
이곳은 두브로브닉의 성벽이기 떄문
.
나에게는 꿈속에만 그리던 이 도시에도
이 풍경들을 너무나 당연한 무덤덤한 일상으로 여기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적나라한 풍경들을 직접 내 눈으로 보기까지는 잘 실감이 가지 않지만 말이다.
성벽 바로 아래에는
진부한 표현이지만 쪽빛바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아드리아해의 짙푸른 바닷물이
빨려들어갈 듯이 강렬하게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바닷가로 돌출된 거친 바위 절벽 위에
저 육중한 성벽들을 용케도 잘 쌓았다는 생각이 든다...
멀리서 보기에는 아름답고 동화스럽기만 한 두브로브닉에도 아픈 상처가 있다..
1990년,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탈퇴하여 독립을 선언하자
9그것을 저지하려는 세르비아와 전쟁을 피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흔히 유고 내전이라고 알고 있는..
아드리아해를 노리는 세르비아의 함대는 이곳 두브로브닉 앞바다에도 여지 없이 몰려들었다..
그 때 유럽의 지식인들이 보트를 타고 두브로브닉 앞바다로 나가서
이 아름다운 도시를 폭격하기 전에 자신들에게 먼저 포탄을 쏘라고 시위했단다..
사실 그것 덕분에 이 도시가 유명해지기도 했지만,
그 내전 당시의 폭격으로 도시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이 복구되어서 얼핏 보기에는 흉터를 말끔히 치료한 것 같지만,
성벽에 올라가 도시를 한바퀴 돌아보면 이렇게 당시의 폭격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낸 모습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미야자키 감독의 "마녀배달부 키키" 의 배경도시가 된 곳이 바로 두브로브닉이라고 한다..
그 애니메이션을 본 게 먼저인지, 이 도시의 존재를 안 것이 먼저인지는 가물가물하지만..
"키키"가 날아다니던 그 만화속 도시를 보고 감탄했었던 기억은 난다..
저런 도시를 정말 순전히 상상만으로 구상했다는 정말 대단할 것이라고 말이다..
참 오묘하다..
오히려 바다쪽으로 갈수록 언덕이 높아진다..
이 성이 평평했다면,
성벽이 도시를 품고 있다는 느낌, 소중한 것을 상자에 예쁘게 담아놓은 것 같다는 느낌이 훨씬 덜하지 않았을까..
멀리 카트룸섬도 가까이 보이고..
혹시 누드비치가 보이지 않을까 해서 자세히 훑어보았지만..
아쉽게도 반대편 쪽에 있는 듯..
바다로 돌출한 육중한 성벽이 품고 있는 빨간 지붕들...
서유럽의 일명 "중세도시"들에서의 빈틈없는 완벽함은 없지만
약간 낡은듯한 이 모습.
덜 의도된 모습.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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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닉은 그날도 눈부셨다."
첫댓글 빨강 지붕이 이뻐여 ㅎㅎ ^^
한 폭의 그림이군요
꼭 가봐야지.... 그런 마음으로 감상했습니다.
아.. 너무 가고싶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