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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서울의 세뇰 귀네슈 감독.(사진 한상무) |
지난 1월 6일 터키 출신의 세뇰 귀네슈(55) 감독이 한국 땅을 밟았다. 많은 이들은 그에게 ‘제2의 니포 축구’를 기대했다. 그 역시 한국축구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귀네슈 감독은 시즌 초반 ‘공격 축구’로 K리그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귀네슈 감독도 “6개월의 적응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느덧 6개월이 흘렀다.
“좋은 활약을 펼친 박주영(22)을 종료 직전 교체해 홈팬들의 기립 박수를 유도하려 했다. 그런데 심판이 빨리 벤치로 들어가라고 해 실망스럽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FC 서울 세뇰 귀네슈(55) 감독이 3월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컵대회 수원 삼성전을 마친 뒤 인터뷰에서 한 말은 참신했다. 서울은 이날 마토(28)에게 선제골을 내줬으나 해트트릭을 기록한 박주영(22)과 1골을 넣은 정조국(23)의 활약 속에 수원을 4-1로 크게 이겼다.
그러나 그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은 라이벌을 이긴 것에 대한 기쁨도, 신바람 나는 5연승의 즐거운 반응도 아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심판에 대한 불만이었다. 박주영은 서울이 4-1로 앞선 가운데 경기 종료 2분을 남기고 그라운드에서 나왔다. 계산된 교체였다. 잘한 선수가 팬들의 환호와 칭찬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세심한 배려였다. 그동안 K리그를 거쳐 간 감독들과는 사뭇 달랐다.
K리그의 관행과 상상을 뛰어 넘는 발언과 의견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귀네슈 감독이 꾸준히 내세운 ‘진짜 공격 축구’는 최고의 화제거리가 됐다. 그는 위풍당당했고 그의 말은 거칠 게 없었다. 당당한 자세는 때로는 위험 수위를 넘어서 수원의 차범근(54) 감독, 성남 일화의 김학범(47) 감독 등 다른 팀 감독들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귀네슈 감독은 서울의 지휘봉을 잡은 뒤 “20년간 쌓아 온 지도자 경험을 살려 한국축구 발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다짐대로 그의 언행은 K리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언론을 통한 리그 감독들의 설전은 K리그에서는 익숙하지 않지만 축구 문화가 발전한 유럽에서는 흔히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공격 축구=재미있는 축구
귀네슈 감독은 첫 만남부터 화끈했다. 1월 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가진 취임 기자회견에서 “축구는 쇼(Show)다. 흥미진진한 유럽식 공격 축구를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터키대표팀을 비롯해 트라브존스포르 등 터키에서만 지도자 생활을 했던 귀네슈 감독에게서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찌감치 지난해 서울의 모든 경기를 분석한 귀네슈 감독은 고쳐야 할 점을 명확하게 알았다. 귀네슈 감독은 “패스 미스가 많았다. 3,4번 이상 패스가 안 된다. 조직력이 약하다. 수비수와 미드필더 그리고 공격수의 연결을 매끄럽게 하도록 시스템을 바꿀 것”이라고 했다. 귀네슈 감독은 강릉과 터키에서 강도 높은 전지훈련을 하며 팀의 체질 개선에 집중했다.
그의 계획과 지도대로 서울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시즌 초반 5경기를 모두 이기면서 13골을 터뜨렸다. 경기당 평균 2.6골로 경기당 평균 1.27골인 지난 시즌보다 2배 늘었다. 실점은 1골뿐이었다. 미드필드를 거치며 빠르고 조직적인 패스로 펼쳐지는 공격은 아기자기하면서도 박진감이 넘쳤다. 수비수들의 공격 가담도 활발해 공언한 대로 공격 일변도의 화끈한 축구를 했다. 팬들은 ‘귀네슈 축구’에 매력을 느끼며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모여 들었다.
화끈한 골 잔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4월 들어 다른 팀의 집중 견제로 주춤하더니 정규리그 10경기(8무2패) 동안 3골에 그쳤다. 승리도 없었다. 상대 팀 감독들은 “공격 축구가 뭐냐. 골을 많이 넣는 게 공격 축구 아니냐”고 자문자답하며 귀네슈 감독을 자극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귀네슈 감독은 거짓말쟁이다. 그러나 서울의 김혁중 전력분석관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결과론적이라는 것이다. 김분석관은 “짧은 패스로 이어지는 공격 전개와 강한 압박 등 공격 축구는 꾸준히 이어졌다. 지난해와 비교해 짧은 패스 횟수가 3배 가량 늘어났고 패스 성공률도 몰라보게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귀네슈 감독도 할 말이 있다. 그는 “3월까지는 모든 게 완벽한 팀이었다. 그러나 부상자가 늘어나면서 조직력에 문제가 생겼다. 조직력은 공격 축구의 근간이다. 베스트11 가운데 다치지 않은 선수는 김병지와 아디, 최원권 등 3명뿐이었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귀네슈 감독은 왜 그토록 공격 축구에 열을 올리는 것일까. 귀네슈 감독은 “우리는 프로다. 프로는 팬 없이 있을 수 없다. 한국 축구팬들은 정말 축구를 사랑한다. 그렇다고 경기장에 무작정 찾아 오는 건 아니다. 팬들을 경기장으로 끌어오기 위해서 선수들은 골도 많이 넣고 재미있는 축구를 해야 한다. 재미있는 축구가 곧 공격 축구”라고 강조했다.
냉정하면서 따뜻한 아버지
귀네슈 감독은 치밀하고 냉정하다.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매사 꼼꼼하게 챙기고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다. 훈련을 할 때 귀네슈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 엄격하다. 실제 경기처럼 집중력을 잃지 않고 훈련에 나설 것을 요구한다. 순간적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곧바로 날벼락이 떨어진다. 선수들로서는 예전 감독들과 비교해 훈련이 힘들 수밖에 없다.
귀네슈 감독은 FC 서울 선수들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 한상무) |
지난해까지 서울을 지도했던 이장수(51) 전 감독과 비교해도 훈련량이 많이 늘었고 강도가 세졌다. 귀네슈 감독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있는 이영진(44) 수석코치는 “평소 훈련에서 집중할 것을 강조한다. 집중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는 실제 경기에서 나타난다. 이를 잘 알기에 훈련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귀네슈 감독은 자신이 추구하는 축구에 선수들이 맞출 것을 주문한다. 단번에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충분히 시간을 주고 지켜본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으면 함께할 뜻이 없는 걸로 알고 내친다. 포르투갈 출신의 히칼도(33)가 대표적인 예다.
유럽 진출을 모색하느라 뒤늦게 팀에 합류한 히칼도는 올시즌 내내 훈련시간에 자주 늦고 자기 중심적으로 행동해 동료들과 불화를 일으켜 팀 분위기를 흐렸다. 귀네슈 감독이 여러 차례 경고 했지만 고쳐지지 않자 팀에서 내보내기로 마음을 굳혔다. 다른 코칭스태프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이영진 코치는 “(히칼도가)스스로 한국 문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히칼도는 득보다 실이 많았다. 코칭스태프 회의 끝에 히칼도를 퇴출하기로 결정했다. 히칼도가 깊이 뉘우치며 반드시 (자신의 행동을)고치겠다고 약속해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찔러도 피 한 방울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차가운 사람은 아니다. 내면에는 따뜻한 정을 지니고 있다. 정조국은 “(귀네슈 감독은)선수들을 편안하게 하는 자상한 분”이라고 말했다. 귀네슈 감독은 수시로 선수들과 대화하면서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 코칭스태프와의 관계에서도 독불장군처럼 군림하지 않고 전력 강화, 전술 채택, 베스트11 선정 등 여러 과제를 놓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눈 뒤 결정한다. 홀로 결정하는 건 선수단 일정 등 기본적인 업무뿐이다.
부상 선수들에 대해서는 각별하다. 시즌 초반 귀네슈 감독이 김은중(28)을 문병한 소식은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서울은 3월 21일 컵대회 수원전에서 4-1로 이겼다. 5연승을 한 데다 라이벌전에서 대승해 기쁨은 두 배로 컸다. 구단 수뇌부에서 격려와 함께 사기 진작을 위해 회식 자리를 갖고자 했다. 그러나 귀네슈 감독의 대답은 “노(No)”였다. 그는 “내 자식이 다쳤는데 어떻게 회식자리에 참석할 수 있느냐. 병원에 다녀와야겠다”며 자리를 떴다. 이날 경기 도중 다친 김은중을 찾아보겠다는 말이었다.
김은중은 전반 38분 수원의 이싸빅(34)과 충돌해 오른쪽 눈 아래 뼈가 골절돼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귀네슈 감독은 경기를 마치자마자 코칭스태프와 함께 김은중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갔다.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감독이 다친 선수를 문병하기 위해 부상 당일 늦은 밤에 병원으로 달려 간 것은 이례적이었다. 서울의 한웅수 단장은 “(귀네슈 감독은)사명감이 투철한 진정한 프로 감독”이라고 치켜세웠다.
귀네슈 감독은 훈련을 하기 전에 작은 부상이라도 있는 선수는 뺀다. 부상을 숨기고 뛰는 건 감독에 대한 배신이라는 게 지론이다. 서울의 한 관계자는 “국내 풍토에서는 아프다고 훈련에서 빠지면 꾀부린다며 선수생활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선수들이 진짜 아파도 말하지 못하고 꾹 참고 뛰어야 했다. 그러나 귀네슈 감독은 다르다. 그래서 선수들이 귀네슈 감독을 믿고 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아이디어를 나누자
귀네슈 감독은 올해 K리그 관계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었다. 귀네슈 감독은 비효율적으로 반복되는 원정경기 일정 등 평소 느꼈던 K리그의 행정 문제들을 스스럼없이 말했다. 그의 지적은 날카로웠고 뼈가 있었다.
귀네슈 감독은 경기 전날 오전 9시까지 한국프로축구연맹에 17명의 출전선수 명단을 제출하는 방식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연맹은 1990년대 초중반부터 홍보 및 팬들의 흥미를 이끌기 위해 경기 하루 전 각 팀의 출전선수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귀네슈 감독은 “축구는 전쟁이다. 전쟁을 앞두고 왜 내 전술을 미리 알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세계 어디를 가도 경기 시작 1시간 30분 전에 출전선수 명단을 제출한다”며 연맹에 쓴소리를 했다.
지난해부터 성남의 김학범 감독 등에 의해 계속 제기됐던 이 문제는 귀네슈 감독의 비판이 기폭제가 돼 다시 한 번 논란이 됐다. 연맹은 이에 대해 14개 구단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귀네슈 감독의 발언이 효과를 본 것이다. 연맹의 한 관계자는 “올해 3번 이사회가 열렸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시즌이 끝난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이 문제와 관련해 논의가 있을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게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마찰도 끊이지 않았다. K리그의 수비 위주 축구를 놓고 열띤 공방을 펼치기도 했다. 발단은 3월 12일 기자회견이었다. 귀네슈 감독은 “K리그가 골이 적고 재미가 없는 건 수비 위주로 경기를 운영하는 감독들 때문”이라며 먼저 한 방을 날렸다. 이에 대해 몇몇 감독이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수원의 차범근 감독은 “K리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말”이라며 불쾌해 했다. 성남 김학범 감독도 “팬들이 공격 축구에 즐거워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K리그 14개 팀이 모두 공격 일변도로 축구를 할 수는 없다. 팀 사정과 감독의 축구관에 맞게 저마다 색깔을 갖는 게 옳다”고 강조했다. 귀네슈 감독과 국내 감독들의 대립각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귀네슈 감독은 다른 감독들과 일부러 싸우려 했던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단지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들을 제시한 것뿐이다. 내가 현장에서 느낀 점을 통해 여러 의견을 내놓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내 의견에 전적으로 찬성하거나 반대할 필요는 없다. 다양한 의견이 모여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와야 한국축구가 보다 발전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아무런 대답이 없거나 무조건 내 의견을 인정하지 않으려 할 때 안타깝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귀네슈 감독은 FC 서울 선수들에게 늘 팬을 위해 행동할 것을 주문했다.(사진 주성용,선원익) |
팬의 기대를 충족하라
5월 12일 서울-전북 현대의 정규리그 10라운드가 끝난 서울월드컵경기장. 그라운드에서 라커룸으로 연결되는 복도의 공기가 심상치 않았다. 귀네슈 감독이 이상협(21)과 마주해 신경전을 벌였다. 냉정한 귀네슈 감독과 달리 이상협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씩씩거리기까지 했다. 경기 후 진행되는 공식 인터뷰 때문이었다. 귀네슈 감독은 인터뷰를 거부한 채 빠져 나온 이상협을 붙잡아 인터뷰에 응할 것을 지시했다.
이상협은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 귀네슈 감독 때문이 아니라 경기 결과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이상협은 0-0으로 팽팽히 맞서던 후반 38분 송진형(20)의 중거리슈팅을 전북 골키퍼 권순태(23)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자 쏜살같이 달려가 밀어 넣어 선제골을 기록했다. 정규리그 665분 만에 터진 득점이었다. 7경기 만에 승리를 잡는 듯 했으나 1분 뒤 제칼로(24)에게 동점골을 내주며 1-1로 비겨 또 다시 승리하지 못했다.
승리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은 컸지만 그렇다고 프로선수로서 지켜야 할 의무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귀네슈 감독은 강조했다. 연맹 경기 심판 규정 제4장 공식 경기 운영 제35조 인터뷰 실시 제2항에는 ‘선수는 기자단 인터뷰 요청에 반드시 응해야 한다. 거부하면 벌금 40만 원을 부과한다’고 돼 있다. 그동안 인터뷰를 거부해도 대충 넘어 갔던 것과는 다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귀네슈 감독의 완강한 자세에 분을 참지 못한 이상협이 들고 있던 정강이 보호대를 던졌다. 그리고 몸을 돌려 그라운드로 돌아가 취재진과 인터뷰를 했다. 아무리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고 하지만 감독 앞에서 한 행동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후 선발 5차례를 포함해 7경기에 출전하는 등 이상엽에게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 공과 사는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귀네슈 감독의 뜻이었다.
귀네슈 감독이 서울의 지휘봉을 잡으면서 가장 먼저 뜯어고친 게 선수들의 의식이었다. ‘프로답게 행동하라’는 게 큰 줄기다. 프로선수라면 모든 일에 책임을 지고 팬들을 위해 행동하라는 것이다. 팬과 연결시켜주는 다리 역할이 바로 언론이라는 것이다.
감독 스스로가 솔선수범하고 있다. 한국행을 결심했을 때부터 한국 언론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 노력했다. 취임 기자회견을 마치고 입구에 서서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또 경기 이틀 전 기자 간담회를 갖고 팬들이 궁금해 하는 사안과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기자 간담회는 지난해부터 시작됐지만 몇 차례 이뤄진 뒤 슬그머니 사라졌다. 올해 귀네슈 감독이 정례화했다.
귀네슈 감독은 “경기만 잘한다고 스타 플레이어가 되는 게 아니다. 스타라면 팬 관리를 잘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이 언론이다. 갑자기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이 들어와도 팬들이 원하는 내용을 잘 이야기할 수 있게 언제나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선수 육성이 곧 성공이다
“수원과 성남처럼 거액을 주고 선수를 영입할 생각은 없다.” 5월 17일 잠잠하던 K리그에 한 차례 폭풍이 불었다. 진원지는 또 귀네슈 감독이었다. 귀네슈 감독은 정례 기자 간담회에서 “여름 이적시장에서 젊고 경험이 많은 선수를 영입해 키우겠다. 그게 우리의 선수 영입 방침이다. 비싼 선수를 데려올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5,6명의 후보를 놓고 성장 가능성, 전술 밸런스 등을 고려해 코칭스태프와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귀네슈 감독은 7월 25일 국가대표팀의 주전 수비수인 김진규(22)를 곽태휘(26)에 현금을 얹어 데려와 첫 번째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K리그 1,2위인 성남과 수원을 비교 대상으로 삼아 사태가 커졌다. 성남과 수원은 어린 선수를 육성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성남과 수원에서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성남의 김학범 감독은 “팀마다 선수 보강 방법이 다르다. 일부러 선수를 키우지 않는 게 아니다. (귀네슈 감독이)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2003년과 2004년 이청용(19), 송진형, 김동석(20) 등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을 싹쓸이 스카우트한 것을 비롯해 2005년 김병지(37), 김한윤(33), 이을용(32) 등 노장들을 영입한 것을 겨냥한 것이다.
귀네슈 감독은 이에 대해 파장이 있긴 했으나 자신이 걸어가야 할 성공의 길이라고 했다. 귀네슈 감독은 “감독의 성공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우승이 아니면 실패로 본다. 그러나 우승이 전부는 아니다. 이를 만들어 가는 과정도 중요하다. 그게 바로 선수 육성이다”고 말했다.
귀네슈 감독은 K리그 무대를 밟은 11번째 외국인 감독이다. 지난해까지 10명의 외국인 감독이 활동했는데 K리그 우승을 한 감독은 1991년 대우 로얄즈를 이끌었던 헝가리 출신 베르탈란 비츠케이뿐이었다. 국내 풍토에서는 성적 지상주의가 만연해 있어 성적이 좋지 않으면 곧 실패라는 인식이 강하다. 특히 외국인 감독의 경우 국내 감독과 비교해 기대치가 높아 실패의 느낌은 더욱 강했다. 귀네슈 감독은 “K리그에서 성공 신화를 쓰겠다”면서 우승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 그가 내세운 목표는 ‘공격 축구, 젊은 선수 육성, 코치들의 지도력 향상’이었다.
귀네슈 감독의 성공 방정식은 6개월이 지난 현재에도 변함이 없다. 그는 “성적으로 판가름하면 현재 1위인 성남 김학범 감독만 성공한 것이고 다른 13개 팀의 감독은 실패한 게 된다. 옳지 않은 기준이다. 좋은 선수를 뽑아 장기적으로 어떻게 키웠는지도 지도자의 주요 평가 항목이다. 내가 떠난 뒤 그 선수들이 K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귀네슈 감독은 어린 선수의 육성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사진 한상무) |
대화가 필요해
귀네슈 감독의 또 하나의 목표는 대표선수를 길러내는 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지역 예선 및 본선과 2004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지역예선에서 터키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았던 경험이 있기에 대표팀 소집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귀네슈 감독은 “대표팀에 차출되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다. 내가 키워낸 선수들이 대표팀에 많이 뽑혔으면 좋겠다”며 연령별 대표팀 감독에게 힘을 보탰다. 또 대한축구협회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원칙 없는 무분별한 대표선수 차출은 옳지 않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올해 초 올림픽대표팀의 8개국 초청 카타르국제친선대회 출전에 따른 K리그 14개 구단의 대표선수 차출 거부 사태가 벌어지자 “아직 한국축구 문화를 잘 모른다”며 말을 아꼈다. 그러나 지난달 2007 아시안컵 대표선수를 차출할 때 소집 규정 때문에 수비수 김치곤(24)이 하루 차이로 K리그 14라운드를 뛰지 못하게 되자 “대표선수가 많은 게 혜택을 받기보다는 벌을 받는 것 같다”고 불평했다.
서울은 이청용, 기성용(18), 김동석, 송진형 등 4명이 ‘FIFA(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 캐나다 2007’ 본선 참가로 청소년대표팀에 빠져 나간 데다 김치곤마저 국가대표팀에 뽑혀 가뜩이나 부상 선수가 많은 상황에서 귀네슈 감독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협회와 연맹이 문제가 됐던 정규리그 6월 23일 경기를 10월 17일로 연기하기로 합의했지만 귀네슈 감독의 불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귀네슈 감독은 “한국축구 문화가 폐쇄적”이라고 지적했다. 협회와 연맹 그리고 구단 관계자들이 미리 대표팀 소집 등에 대해 논의를 하고 그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임조차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귀네슈 감독의 말이다.
축구문화가 발전한 유럽에서는 대표팀과 리그 일정을 미리 짜 서로에게 피해가 없도록 하고 있다. 특히 A매치 48시간 전 소집, 연간 A매치 횟수 등 FIFA의 국가대표 소집 규정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 축구 선진국처럼 국제적인 원칙과 약속을 지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국은 해마다 10번 이상의 A매치를 갖고 있다. 2005년에는 17차례, 지난해에는 무려 22차례의 경기를 가졌다. 올해에도 7월 28일 아시안컵 일본과의 3·4위전을 포함해 벌써 11경기를 치렀다. 여기에 올림픽대표팀과 청소년대표팀이 포함되면 각급대표팀의 국제경기 숫자는 크게 늘어난다. 여전히 K리그보다 대표팀이 중심이 된 구도일 수밖에 없다.
귀네슈 감독은 나아가 “보다 많은 대화 창구를 열어놔야 한국축구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억지로 하기보다는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올시즌을 마치면 협회와 연맹 등 관계자들끼리 긴밀한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갈 길은 멀다
귀네슈 감독은 스스로 K리그를 조금이라도 바꿨다고 느낄까. 귀네슈 감독은 고개를 살짝 끄덕일 뿐이다. 아직 진행형이라 이렇다 하게 이뤄진 게 없다는 뜻이다.
귀네슈 감독은 취임 6개월 동안의 생활을 뒤돌아본 뒤 “K리그에 일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의 생활 방식을 바꾸고 프로의식을 심었다. 기술과 실력을 향상하는 일 외에 체계적이고 세세한 선수 관리로 팀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했다. 또 재미난 공격 축구로 팬들의 기대치를 어느 정도 충족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1997년부터 2년 동안 서울의 감독을 지낸 박병주 고문은 귀네슈 감독의 전술 변화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렸다. 박고문은 “경기 수준이 확실히 높아졌다. 조직적인 기술 축구를 구사하고 있는데 전임 감독들과는 차별된다”고 말했다.
귀네슈 감독으로서는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자신이 심은 축구 문화가 뿌리를 내려 잘 자라게 해야 하며 국내 감독들의 집중 견제도 이겨내야 한다. 또 선수들의 변화 못지않게 이슬람 문화권에서 온 자신도 한국 문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박고문은 “K리그 사정에 익숙하지 않아 어떻게 바뀌었고 그로 인해 어떤 효과를 봤는지 속단하기 이르다”며 조심스러워했다.
귀네슈 감독도 이를 수긍했다. 그는 “이제껏 했던 모든 게 서울의 감독으로서 축구 문화를 바꾸려 한 것이다. 아직 완전히 다 고쳐진 것은 아니다. 조금 더 수정하고 보완해야 하며 이 같은 노력은 꾸준히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귀네슈 감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나도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차근차근 바꿔 나가겠다. 시간은 충분하다. 앞으로 다른 팀들도 서울을 따라 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과 귀네슈 감독의 계약 기간은 2009년까지다. 2년 6개월여의 시간이 남아 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SPORTS2.0 제 62호(발행일 07월 30일) 기사
이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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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셔온듯 싶어요 결과가 나올때까지 서울 프런트가 기달려 줄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뭐 세계적명장이신데ㅎ
김진규가 결코 싼선수가 아닐텐데..-_
기사내용은 좋네..성적만 잘 오른다면 큰 성공을 얻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