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워프, 파리에서
1885년 11월 ~ 1988년 2월
1885년 11월 고흐는 도시 풍경과 초상화를 그려 생계를 유지하려는 희망을 품고 앤트워프(지금의 안트웨르펜)로 떠났다. 떠들썩한 항구의 풍경이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1866년 1월에 앤트워프의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했으나, 신경과민 증세가 심해져 2월이 끝나기 전에 그곳을 떠났다.
파리에 온 고흐는 탕기 영감이 운영하던 클로젤 거리의 그림물감 상점에서 툴루즈 로트레크, 앙크텡, 베르나르, 러셀 등을 만났다. 이들은 코르몽의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4월에 이들과 합류하면서 그는 인상주의 회화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 화실에서 무엇을 추구하는지 알 수 없어서 넉 달 만에 떠나고 말았다. 여름에는 색 다루는 연습을 위해 꽃을 다룬 정물화 연작을 그렸다.
인상파 화가들과 어울리면서 과음과 퇴폐적인 생활을 한 그는 건강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영향을 받아 화풍에 변화가 생겼고 한때 점묘파의 기법에 심추하기도 했다. 베르나르와 가깝게 지내던 고흐는 클리시 거리에 있는 포세라는 대중 식당에서 그와 함께 전시회를 열었다. 그러나 고흐가 그 식당의 주인과 다투는 바람에 탬버링이라는 선술집에서 작품을 전시했다. 그 선술집의 주인이며 이탈리아 화가의 모델이었던 세가토리와 사귀었지만 곧 헤어지고 말았다.
6월, 벵 화랑에 전시된 일본 그림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그의 그림의 색채는 더 밝아지고 양식도 많이 변했다. 11월에는 살레 레스토랑에서 '프티 불르바르의 인상파 화가들' 이라는 전시회를 열었는데, 그의 작품과 함께 앙크텡, 베르나르, 드코닝, 툴루즈 로트레크 등의 작품을 전시했다. 이 전시회를 통해 고갱, 기요맹, 쇠라 등을 알게 되었다.
파리에 온 지 1년 6개월이 지나자 이 도시에 대해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더 많은 빛과 색을 찾아 남프랑스의 아를로 떠났다. 파리에서 고흐는 자화상, 정물화, 몽마르트 풍경 등 200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사람의 눈
테오에게...
어제는 성당이 보이는 곳으로 가서 약간의 습작을 하고 돌아왔다. 공원을 그린 습작도 있다.
성당보다는 사람의 눈을 그리는 게 더 좋다. 사람의 눈은, 그 아무리 장엄하고 인상적인 성당도 가질 수 없는 매력을 담고 있다.
거지든 매춘부든 사람의 영혼이 더 흥미롭다.
1885년
첫댓글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끊임없이 떠나는 고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