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네. 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와주셨네요. 올라오다 보니까 강원도 연천에서 왔어요. 그러던데 그보다 더 멀리서 오신 것 같은 분은 안 계시겠죠?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고요. 이제 이런 것 같아요. 이제 부처님이라는 분 고타마시따르타라는 부처님이 깨달으실 때가 35살이고 출가했을 때가 29살이니까요. 여러분들 아마 자제분들 정도 나이 그러니까 29살이면 옛날에는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주 아주 젊은 청년이죠. 그런데 이 29살밖에 안 된 청년이 35살 그때까지 어 나름의 애씀과 노력을 통해서 잊게 남으면 어떠라는 사건이 우리 이제 인류 역사 속에서 또 우리들의 여러분 모두 모두 한 분 한 분들의 인생에서 이게 이제 도대체 어떤 의미냐가 아주 중요해요. 왜냐하면 그것은 이천500년 전에 곧다마 시다르타라는 한 왕자의 왕자에게서 일어난 한 사건이 아니에요. 그 2500년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 미 깨달음을 얻었던 그 사건은 지금 여기에서 네 문제거든요. 저마다 각자 자기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아 2500년 전에 그런 분이 있었대. 그리고 그분은 아마 출신이 왕자다 보니까 아마 좀 특별했나 보지. 그리고 우리랑은 다르게 좀 타고난 수행자적 기질이 있었나봐. 전생부터 다가왔던 선근공덕도 뛰어나니까 그렇게 깨달음을 얻었겠지. 나는 아니지. 내 얘기는 아니지. 당연히 내가 어떻게 그 위대한 부처님과 같을 수 있어. 이렇게 우리는 생각한단 말이에요. 너무나도 명백하게 2500년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은 사건은 지금 여기에서 자기 사건이에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이란 말이에요. 너무나 명백한 일이에요. 그냥 좀 뜬금없는 얘기라든지 여러분에게 위로를 힘을 내라고 용기를 주는 말이라든지 좀 형의사적인 말이라든지 원래는 그렇다더라 하는 말이라든지 그게 아니에요. 아 원래는 내가 부처라더라. 그런데 난 지금 아니지만 원래는 부처였대. 언젠가는 또 엄마 부처였으니까 부처를 깨달을 수 있지 않겠나? 이 정도의 얘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원래는 부처였대. 그 지금 지금 나의 실제 그것도 어 부처님이 이런 말 하셨거든요. 법은 잘 설해졌고 스스로 스스로에게서 바로 보이고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고 와서 보라라고 자신 있게 와서 지금 와서 지금 이 말을 스스로 경험해 봐라. 이렇게 와서 뭐라고 할 만한 가르침이고 향상으로 이끌고 지금보다 더 괴로움이 없는 그 향상된 삶으로 이끌고 지혜로운 자라면 각자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그런 가르침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단 말이에요. 나 지금 뜬구름 잡는 얘기가 아니에요. 전혀. 근데 이제 여러분들은 뭐만 하면 되냐면 지금까지 내가 들어왔던 불교에 대한 모든 고정관념 내가 알고 있는 부처 거기에 대해서 불교는 이런 거야. 깨달음은 이런 거야 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 생각을 내려놓으면 돼요. 그리고 아 마음을 열고 마음을 열고 한번 들어보세요. 지금 여기 오신 모든 분들이 아 금생에게 깨달을 수 있단 말이에요. 금생애가 아니에요. 지금 깨달을 수 있단 말이에요. 그리고 이 깨달음이 어마어마한 게 아니란 말이에요. 뭐랄까요? 어마어마한 거죠. 그런데 이게 어마어마한 게 아니에요. 우리에게는 자연 상태예요. 우리의 기본 디폴트 기본 상태가 깨달음이에요. 그리고 누구나 그게 검증 가능하고 누구나 깨달은 속이 있어요. 이 깨달음이 아니면 지금 제가 하는 말을 들을 수도 없고 지금 숨을 쉴 수도 없고 이렇게 앉아 계실 수도 없고 아까 드신 공양을 소화시키고 있을 수도 없고 칸이 부처 작용이 일어나고 있단 말이에요. 근데 지금 우리가 여기서 붙여있는 걸 모르는 이유는 2500년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았던 그 사건이 지금 여기서 내 사건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생각으로 세상에서 배워왔던 생각을 가지고 세상에서는 아 거짓말을 진짜인 것처럼 이 80억 인구가 다 같이 합심해서. 이제 막 태어난 어린 아기들에게 한 살부터 시작해 가지고 나이 80 90 돌아갔을 때까지 80억 인구가 다 같이 여러분을 속이려고 작정을 하면 100% 소가요? 인류 역사 속에 수많은 사람이 전부 다 우리에게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 것처럼 속여서 얘기했단 말이에요. 쉽게 말하면 그런데 어떤 진실한 얘기를 속여서 했느냐 생각으로 만들어 낸 것들 있잖아요. 생각으로 만들어 낸 거 그걸 진짜로 여기게 만들었어요. 제가 맨날 하는 비유인데요. 이게 생각은 뭘 대상을 파악해서 알잖아요. 그럼 우리는 알았다 이러잖아요. 우리는 이게 긴지 짝은지조차 알 수 없어요. 우리가 안다고 여기는 그 지식 의식은 여러분이 키가 큰지 작은지를 알 수 없어요. 여러분 자신이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를 죽을 때까지 연구해도 알 수 없어요. 내가 괜찮은지 괜찮지 하는 사람인지를 몰라요. 왜 그럴까요? 이게 김치 작은지 알 수 없는 이유는 이 년 따라 얘는 요런 인연 옆에서는 길다라고 말할 수 있고 전부터 옆에서는 짧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잖아요. 이 년 따라 임시로 길다. 임시로 짧다고 말할 수 있을지언정 이게 긴지 짧은지는 알 수가 없어요. 정할 수가 없어요. 정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보세요. 일하는 실체가 길다거나 짧다는 실체적 존재가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인연을 맺어주면 얘는 임시로 길다라고 이름 붙여져요. 그래서 긴 긴 것이 되어요. 임시로 그러다가 긴거 옆에선 짧다라고 임시로 이름 붙여지거든요. 즉 얘한테는 길다. 짧다 하는 어떤 고정된 실체가 없단 말이에요. 그런데 세상에서는 자 170 넘어가면 180 넘어가면 크다. 이렇게 정의해놨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뭐 학교 다닐 때 대학교를 뭐 어느 정도 수준까지 가면 좋은데 명문대라고 치자. 이렇게 정해놨단 말이에요. 인물이 어떻게 생기면 잘났다고 치자. 돈이 얼마 있으면 많다고 치자. 이렇게 세상에서 분별심을 가지고 정해놨단 말이에요. 얘를 야 그 준비 요만하면 크다고 치자. 이렇게 정해놓은 거야 사람들이 다 같이 정할 수 없잖아요. 정해놓으니까 그 다음부터 어떤 일이 생겨요? 얘보다 작은 애들은 전부 다 괴로워. 죽겠어요. 난 키가 작으니까 딱 다를 실체라고. 오인하는 거예요. 오해하는 거예요. 여러분은 지금 여기 계신 모든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나는 내가 마음에 들어 혹은 내가 마음에 안 들어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능력이 없어 혹은 능력 없어라고 생각하고 나는 이만하면 잘살았어 아니면 나는 참 못 살았어라고 생각하잖아요. 다 틀렸습니다. 그건 생각이에요. 세상에서 얘를 가지고 길다라고 치자라고 한 걸 다 같이 집단적으로 그냥 믿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거보다 작으니까 나는 작다. 이렇게 규정한 거랑 똑같은 거예요. 여러분들이 아무리 못사는 분이라 쳐도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 사는 게 잘 사는 거야라고 기준을 정해놓으니까 그거보다 못 산다고 생각되잖아요. 제가 인도에 가보니까 인도에 있는 사람들하고 따진다면 우리는 제일 못 사는 사람이 제일 잘 사는 사람이 될 거에요. 생각으로 비교 분별심을 가지고 분별해서 알게 된 것은 진짜 앎이 아니에요. 그걸 믿으면 안 돼요. 그걸 그렇게 해서 아르마리로 알게 된 지식을 가지고 나라고 여길 수 없어요. 여러분은 내가 누군지를 알 수 없다라는 게 진실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내가 잘난지 알 수 있나요? 임시로 얘가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듯이 내가 임시로 잘랐다거나 못났다고 말해질 수 있을지언정 나의 고정된 실체가 없어요. 그런데 왜 우리는 이만하면 잘 살았어? 아니면 못살았어라고 자기를 규정하죠? 저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야. 저 사람 못난 사람이야라고 규정을 하죠. 이 정도는 살아야지 행복한 거야라고 규정을 하는 순간 그만큼 못 살 때 괴로워집니다. 그리고 생각으로 여러분이 나는 꿈이 있어. 원하는 게 있어. 바라는 게 있어. 나는 요렇게 요렇게 요렇게만 살면 나는 더 이상 바랄게 없어. 이러면서 여러분이 꿈꾸는 무언가를 향해서 지금 열심히 나아가고 있죠. 노력하고 있고 그걸 얻고자 애쓰고 있어요. 그 생각이 여러분을 괴롭히고 있죠. 무언가가 되고자 하니까 그게 안 될 때는 괴로움이잖아요. 그것이 되고 나면 행복이라고 확신할 수 있나요? 없어요 몰라요. 그걸 갖고 나고 이루고 나면 정말 행복할지 알 수 없어요. 그런데도 알 수 있을 거라고 정한 다음에 그거를 향해 달려가는 거예요. 죽을 때까지 하나를 벌었으면 또 두 개를 벌기 위해서 또 세 개를 벌기 위해서 그 끝에 뭐가 있는지 모르면서 끝까지 달려가기만 하는 거예요. 인제 딱 진실이 뭔지 정신을 차려야 된단 말이에요. 그 아무것도 모르고 달려가기만 하는 것을 무명이라. 그래 무명 어디석음 진실을 바르게 깨닫고 보면 야 내가 한 발도 갈 곳이 없었구나. 도착하게 된단 말이죠. 지금 여기에 비로소 난생 처음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기서 존재하게 돼요. 비로소 진짜로 살아있게 돼요. 난생 처음으로 이것이 살아 있는 거구나. 이것이 깨어 있는 거구나. 이게 진짜 나구나 여기는 아무런 부족함도 없고 아무런 괴로움도 없고 그 어떤 갈증이 없단 말이죠. 누구에게나 근데 그 갈증 없는 문제없는 그 삶을 문제로 만든 건 누구냐? 자기 생각이에요. 자기 생각 가지고 난 이 정도는 돼야 돼. 저 정도는 돼야 돼라고 생각하니까 그게 안 될 때 괴로운 거예요. 문득 지금 여기서 멈추면 된단 말이죠. 근데 못 멈춰요. 왜냐하면 여전히 생각으로 추구하는 그것이 화려해 보이고 그것이 좋아 보이고 그걸 얻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을 포기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깨달아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 우리도 그렇게 안다고 해서 실천이 안 된단 말이죠. 그러니까 온 존재로 그냥 탁 자기가 누군지를 깨달아야 된단 말이죠.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왜냐하면 자기이기 때문에 내가 다른 걸 얻으라고 하면 어렵잖아요.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잖아요. 뭐 그러면 보아를 어디 가서 캐와라. 이러면 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 늘 쓰고 있는 자기를 그냥 바르게 보라는 건데 이게 어려울 수가 있나요? 분별만 따라가든 습관이 너무 오랫동안 딱 붙어 있어가지고 이걸 어렵게 느껴지는 것뿐이에요. 이 분별하는 고정된 습관을 내려놓는 게 뭔지도 모르는 거야. 한 번도 이런 얘기를 안 들어봤으니까 그러니까 이런 법문을 계속 듣다 보면 이제 비로소 왜? 여러분 나이만큼의 세월 동안 분별대로 사는 걸 이 세상 모두가 그렇게 가르쳤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것만 옳다고 살다가. 이제 처음으로 이 부처님 법문을 들으면서 아 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구나. 이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구나라는 것의 마음을 열었다 할지라도 마음으로 이게 체험이 안 되고 확인이 안 되고 소화가 안되고 마음이 열리질 않아요. 아직 도저히 납득이 안 가거든요. 그러니까 좀 마음을 열고 법문을 괴기우여. 듣는 시간이 좀 필요해요. 그러다 보면 점점 음 처음에는 도저히 이해 안 되고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던 것들이 너무너무 많네. 이게 가슴으로 그냥 소화가 되면서 너무너무 많네. 옛날 같았으면 처음 들었을 때 같으면 뭘 저렇게 조용한 거는 뭐지? 저렇게 말도 안 되는 미친 소리를 하고 있지? 싶은 생각을 했다가 어떻게 거부할 수가 없구나? 이건 너무나도 너무나도 맞는 말이니까 하고 가슴에서 그냥 동화가 된단 말이야. 하나가 된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이 법문의 마음을 열기 시작하게 돼요. 여러분은 그것만 하면 되는데 그것도 내가 하는 게 아니에요. 저절로 하게 돼요. 왜냐하면 이 법과 인연이 있는 사람은 꽤 괴로움에서. 완전히 소멸 괴로움을 완전히 소멸하는 것은 어렵지 않고요. 여러분은 금생을 넘길 필요가 없습니다. 깨달아 부처가 되고 생사했다라는 것을 위에서 다음 생 그다음 생까지 갈 필요가 없어요. 지금 여기에서 누구나 깨달을 수 있습니다. 혹시나 오늘 처음 오거나 제 설법을 처음 듣는 분들이 혹시 계실지 몰라서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부처님 당시나 서원의 황금기 때 집단적으로 깨달음을 많이 깨닫던 육조 해능스님 임진조주 마주 항벽 이런 깨달음의 시대가 있었어요. 중국 송나라 때 그 당시나 부처님 당시에는 집단적으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냥 우우죽순으로 깨달았어요. 부처님 때만 그런게 아니에요. 부처님 때는 말할 것도 없죠. 소백 수천 명이 깨달았어요. 술 제가 할 것 없이 그런데 나중에 그걸 안 믿었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근데 나중에 방송시대 선불교가 황금기라고 불리던 그 시대를 보고서 이게 진짜 아니네? 충격적인 진실인 거 제 검증이 됐단 말이에요. 그 당시 그 거출했던 스승 스님 조사 스님들이 계시던 마을에 있는 어지간한 노파 할머니들 거사님들 다 깨달았단 말이에요. 오 대단한 걸 한 것도 아니에요. 그냥 가서 법문 들었을 뿐인데 그냥 깨달았단 말이에요. 부처님 당시 경전을 보면요. 보통 일반적으로 한 3일에서 오 일이 뭐 깨닫고요. 좀 둔한 사람이 일주일에서. 이 주일이 걸리면 오래 걸렸다고 하곤 했어요. 물론 이 시절 인연이 아직 마음공부와 인연이 안 된 사람은 1년 2년 3년 5년 10년이 걸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공통점은 뭐냐 하면 누구나 가능하다라는 것 그리고 뭐만 하면 된다. 여러분 이 세상 공부가 아니라 이건 출세간이라고 하잖아요. 세상에 있는 것은 세간 공부예요. 이 공부는 출세간에 공부해요? 다른 점이 있어요. 완전 다른 달라요. 완전 달라요. 방식이 완전 달라요. 세간의 공부는요 좀 타고난게 있어야 돼요. 운동선수로 성공하려면 권동 이게 좀 타고나야 돼요. 운동신경이 타고나야 돼요. 공부 잘하려면 머리 좋은 게 좀 타고나야 돼요. 건강 건강 타고난 사람 있잖아요. 뚱뚱하고 허리호리한 것도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게 있잖아요. 뭐 뛰어난 기획력 아이디어 이런 것들로 보면 타고난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이 잘해요. 타고나지 않았으면 10년 20년 30년 죽도록 노력을 하면 잘해요. 근데 좀 타고난 사람은 좀 덜 노력해도 잘하고 타고나지 않은 사람은 정말 죽으라고 죽으라고 노력하면 좀 잘해요. 이렇게 인과적으로 노력한 사람이 잘하거나 타고난 사람이 잘해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전부 다 근데 딱 하나 이 불교 공부 깨달음 공부 이것만 출세 간법이라고 해서 아무나 다 할 수 있어요. 타고난 게 일도 없어요. 머리 나빠도 괜찮아요? 불교 안 믿어도 괜찮아요? 절에 안 다녔어도 괜찮아요. 돈 없어도 되고요. 체력 안 좋아도 되고요. 네 됐든. 젊든 상관없고요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러니까 아무 조건이 없어요. 오히려 공부를 많이 해서 불교는 뭐야라는 고정관념에 딱 붙잡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알고 있는 기복불교라든지 그 아르마니의 불교가 불교라고 딱 쥐고 있으니까에 육조 스님이 그랬거든요. 욕조 해능 스님이 기존에 모든 불법에서 불교 안에서 이게 불교야라고 얘기하던 모든 것을 육조 해능 스님은 다 아니야 아니야라고 했어요. 다 깨뜨렸어요. 그래 가지고 처음에 육철 스님은 인기가 없는 스님이었어요. 유명하지도 않았고 변방에서 법을 펴는 그냥 아무도 모르는 쌤이었어요. 그런데 그 제자들이 워낙 법문이 훌륭해서 법이 훌륭해서 바로 깨닫게 하니까 제자들이 너무나 많은 제자들이 깨닫다 보니까 나중에 그 제자들로부터 육조 스님으로 추앙받았던 거지. 그 당시는 인기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좀 불교 신자들로부터 거부감이 엄청 많았어요. 왜냐하면 기존의 삼선해야 돼 앉아서 좌선해야 돼. 그런데 욕조 스님이 좌선하면 못 깨달아 좌선에서 깨닫는 거 아니야. 열심히 수행해야 돼 열심히 기도해야 돼. 불교계에서 그랬단 말이야. 수행하고 기껏 기도하는 거 아니야 그랬어요 충격적이죠. 근데 수행하는 거 아니야. 입말은 부처님이 하신 말이거든요. 즉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유의 조작에 애써서 노력하는 수행하는 게 아니에요. 부처님 중도의 가르침은 중도는 하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하되 함의 없이 한다. 내가 애써서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이 공부는 네 애써서 하는 나가 살아나잖아요. 살아있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절의 감은 어때요? 절에 가면 대보살님이라는 분들이 절마다 터잡고 계시거든요. 여러분들이 처음 절로 가잖아요. 그러면 기가 죽어요. 대보살님들이 수행도 많이 했고 기도도 많이 했고 뭐 이것도 많이 하고 저것도 많이 한 분들이 딱 얘기를 하면 꽤 난단 말이에요. 그분들은 대단한데 우리는 대단하지 못하거든요. 즉 그런 분들이 얘기하는 불교에는 뭐가 있냐면 차제 계단 높고 낮은 계급이 있단 말이에요. 수행 잘한 사람 못한 사람이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단계별로 점점 점점 향상되는 과정이 있단 말이에요. 근데 그건 진짜 불교가 아니에요. 그런 방편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방편의 불교예요. 그런데 진짜 불교는 그게 아니에요. 그래서 이 육조 스님의 선불교 부처님의 불교는 열심히 수행하는 사람을 높여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낮추고 이런 게 없어요. 오래 공부한 사람은 훌륭하다 하고 이제 먹은 사람은 초신자라고 약보고 그런 게 없어요. 타종교라고 무시하고 그런 게 없어요. 아무 조건이 없어요. 딱 하나 조건을 유일하게 하나예요. 그게 금강경의 수행 방법 하나도 안 나오는데 발 안 역달 산맥 산불이 심 나와요? 화원경의 수행 방법 하나도 안 나오는데 발 볼eSIM이 나와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보리심 보리가 깨달음이에요? 깨달음을 얻겠다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느냐. 이것만 중요해요. 이것만을 봐요. 다른 거 안 봐요. 발 안역따라 3맥 삼불이 심 안역따라 산맥 삼부리가 최상의 깨달음. 그걸 얻겠다라는 마음이 있느냐. 즉 이건 다르게 말하면 괴로움의 문제가 지긋지긋해서. 나는 괴롭지 않게 살고 싶다.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이 있더라도 나는 거기에 끝나가지 않을 수 있는 지혜를 얻고 싶다. 내일 죽어도 상관이 없다니까요. 큰 병에 걸려 죽을 병에 걸려도 상관없다니까요. 진짜 내가 누군지를 깨닫는다면 이게 정말 생사 스타예요. 어마어마하잖아요. 생사 혜탈 말이 얼마나 엄청나고 무게감이 있어요? 얼마나 무시무시무시해요? 근데 그게 우리 모두가 가능한 얘기라니까요? 그 얘기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고 육조현영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부처님 당시에 그 한 백 년 되는 시대 육조 스님 당시 한 100년대는 일이백 년 되는 고 깨달음의 시대 그 특정한 공간에서 만 이 깨달음이 모두에게 가능했던 국소적인 하나의 사건이었어요. 인류 역사 속에서 두 시대에만 있었고 공간적으로 인도의 특정 지역 중국의 특정 지역 속에서만 가능했던 이야기였어요. 그 깨달음이라는 것이 그런데 지금에 와서 인터넷이라는 것을 통해서 전 세계 어디에서든 전 세계 어디에서든 누구나의 법문을 들을 수 있고 법문을 듣고 깨어날 수 있는 너무나 열린 시대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도래했다. 이런 식의 표현을 쓸 수 있을 정도에요. 집에서 정말 괴로움이 지긋지긋하게 힘드신 분이라면 간절한 마음만 가지고 법문을 듣기만 해 보세요. 처음엔 잘 모르겠어도 그냥 들어보세요. 그러면 점점점점 마음에와 닿아요. 그리고 한두 번 마음을 내서 듣다 보면 내가 왜 여기쯤 꽂히는지도 모르겠는데 자꾸 이상하게 자꾸 듣고 싶은 뭔가가 끌려요? 근데 그게 왜 그러냐면 분별심은 모르겠어요. 생각은 모르겠어요. 왜 이러는지 내가 왜 이러는지. 주변 친구들한테 욕을 먹어요. 저도 종그랑아 상관없는 애였잖아. 너가 어쩌다 그렇게 종교에 빠졌어? 요소를 듣는다니까 본인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가 왜 이렇게 내가 미쳤나? 왜 스님 범문을 듣고 있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스님 법문을 듣는 게 아니에요. 진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다 궁금해해요. 우리의 근본이 무엇인지 그걸 알고 싶어요. 여러분 TV에서 영화나 연애 프로그램이나 개그 프로그램을 해도 갑자기 멍 때리고 있을 때 글귀가 두각기가 나오더군요.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누구나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이거 답을 못 내리고 간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 아닌가요? 내가 인생을 산다고 하면서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어디서 온지도 모르고 어딜 가는지도 모른다. 이거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에요? 내가 어디서 왔는지가 분명해지고 어디로 갔는지가 분명해져요. 내가 누군지가 분명해지고. 그러니까 궁금한 게 없어져요. 이 세상에서. 결혼이 사라진다니까요. 누구나 할 수 있는 공부고. 그래서 오늘은요 부처님 가르침 이제 어떤 분들은 그래요. 부처님 가르침은 무하다 무하 내가 없다라는 가르침인데 선불교의 가르침은 참나 불성을 얘기한다. 그래서 스님 말하는 그 선불교에서 자꾸 견성 깨달음을 성품을 보라고 자꾸 하는 게 부처님 무아이 가르침과 좀 어긋나는 거 아닌가요? 이런 식으로 오해를 하는 분들이 계세요. 선불교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은 절대 이런 오해를 안 해요. 선불교에서 말하는 견성이라는 것은요? 자기 성품을 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방편이고 방편이라는 말을 선불계에서는 끊임없이 하고 있거든요. 불성도 놓아버리란 얘기는 선불교에서의 단골 멘트예요. 근데 그걸 모르니까 방편으로 이 불성을 깨닫도록 이끌어주는 동안은 불성이 뭔가 있는 것처럼 가짜로 화성의 비유라는 비유를 들어요. 거짓으로 만든 방편을 만들어서 그 방편을 열심히 깨닫도록 해 줘야 된단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 불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에요. 이 불성이라고 말하는 것이 초기 경전에서 석가모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과 똑같은 거예요. 절대 다를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이게 뭐랄까요 이 법이라는 것 진실이라는 것에 대해서 한번 논뜨는 경험이 있으면 초기 경전과 선호록이 다 소화가 되고 아 이렇게도 말할 수 있구나 저렇게도 말할 수 있구나 이런 방편을 쓸 수 있구나 하고 다 소화가 돼요. 그냥 근데 머리로만 이해하면 다른 얘기 같아요. 교리가 다르잖아요. 초기 불교는 무화 선불 개수는 참나 이러잖아요. 내가 없다 하고 내가 있다고 한단 말이 정반대 같단 말이에요. 정반대가 아니에요. 참나가 무하고 무화가 참나예요. 선불교가 맨날 하는 말이에요. 시민 무심이고 무심이 심합니다. 같은 맛이거든요. 그것을 어 초기 불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초기불교 경전 가운데도요 어 굳다가 니까요라고 해서 소부라는 경전의 아주 부처님의 주로 초기 경전 초기 더하지 않은 가미되지 않은 초기에 생생한 부처님의 생생한 어 언어가 이렇게 살아 있다 할까요? 그런 어떤 경전들을 모아놓은 소부라는 가르침 안에 스타니 파타니 법구경이니 이런 경전이 있어요. 그 가운데 이제 우다나라는 경전이 있어요. 우다나라는 경전 속에 이 깨달음이 무엇인지 열반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나와요. 이 열반이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 요걸 들어보면 선불계에서 말하는 이 견성 이것과 같은 얘기를 하고 있구나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 수 있어요. 일단은 이렇게 말해요. 이 불성이라는 이것. 우리는 불교에서는 불성이라고 선불교에서. 쉽게 설명을 하지만 진정한 나 참나라고도 때로는 부를 수 있지만 주인공이니 온갖 다양한 말로 부를 수 있지만 참나라고 말하면 틀려요. 불성이라고 말해도 벌써 틀려요. 왜냐하면 참낮이든 불성이든 대하든 지나든 뭐라고 말해버리면 그게 하나의 여러분 머릿속에서 그게 하나의 견해가 돼 버리고 어 그 개념이 돼버리고 언어로 명과상 이름과 모양으로 굳어져요. 상이 생기는 거예요. 즉 대상화가 돼버리는 거예요. 깨달음을 대상화시키는 거예요. 둘로 쪼개 가지고 내가 성품이 이런 건가? 저런 건가 알려고 한단 말이에요. 둘로 쪼개지는 물을 범해요. 필연적으로 그래서 견상 음우회계라고 했지만 법을 바르게 살아라는 선사스님들은 누구나 견성해서 성품을 깨달아라 해놓고 자기가 말한 그 견성이라는 성품이라는 걸 빼앗아 버려요. 그 말에도 걸리지 말라는 거죠? 그러나 말을 쓰지 않을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방편으로 성품이라는 말을 쓴단 말이에요. 참나라는 말도 쓰고 그러면 약간 말에 걸리면 안 된단 말을 끊임없이 하고 있단 말이죠. 그래서 선에서는 견성 또는 불성 이런 말보다 깨달음 이런 말보다 열반 이런 말보다 이것 이렇게 말해요. 이것 지금 여기 있는 이것이 때문에 언제나 우리 모두가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제가 이것이라고 하니까 갑자기 멍해지죠? 뭐지? 보통 사람들이 이거 탈 때는 이거 이거 이거 아니면 저거 그거 이런다든지 무언가를 지칭하면서 이거 이래야 되잖아요. 근데 지칭하는 게 없어요. 지칭하는 게 있으면 지칭하는 자와 지칭하는 것이 둘로 나뉘잖아요. 이것이라는 무언가를 이렇게 딱 만들어 두는 거잖아요. 그럼 하나가 만들어지면 그 생성된 법이에요. 유의 조작된 거예요. 생겨난 거예요. 대상이에요. 이 진정한 법이라는 건 생겨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거거든요. 불생불멸법이에요. 그런데 이것은 생겨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는 거예요.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가질 수도 없고 모양도 없고 크기도 없고 빛깔도 없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이라고 할 때 이것은 온 세상 전체를 다 통으로 지칭하는 하나를 지칭하는 거예요. 온 세상 전체가 둘이 아니라 하나거든요. 그러니 꿈속에서 뭐가 꿈이에요? 하면은 꿈속에서 이게 꿈이야. 이거 조금 이거 저것도 꾸미고 하늘도 꾸미고 달도 꾸미고 뜻 앞에 잔나무도 꾸미고 말을 했다면 꿈이고 생각했다면 꿈이고 모양이 있다하면 꿈이고 가리켰다 하면 꿈이고 전부 다 꼬마는 게 없잖아요. 그래서 이거라는 표현을 쓴단 말이죠. 이 오다나 경전에서 이렇게 말해요. 비구들이요. 이것은 그것이 있다. 이래 이것이 있다. 근데 이것은 태어나지 않고 존재하게 되지 않고 만들어지지 않고 형성되지 않은 이것이 있다. 이래요. 우리는 우리 눈
태어난 것만 알잖아요. 태어난. 거 생겨난 거 형성된 거 존재하는 거 만들어진 거 이것만 알잖아요. 그러면.
만들어졌잖아요 언젠가. 세상의 모든 바다 만들어졌잖아요. 모양이. 있고 빛깔 있고 크기있는 거 다 만들어졌잖아요. 마음도. 만들어졌잖아요. 느낌도. 만들어지
만들어지잖아요. 어떤 느낌이. 만들어지지 않은. 건 하나도 없죠. 이게 재임무상 제법무화이죠. 여러분 갓난아기 때 몸 지금 없잖아요.
만들어지고 만들어지지 않은 건. 하나도 없죠. 전부 다 만들어진 거예요. 다 변해서 사라졌잖아요. 유위 조작 할 할 의자 생성된 것이다 재행 무상할 때 재행이라는 것은 모든. 행위라는 게 형성된 것 이런 뜻이에요. 인연. 딱 정할 수. 있어요 정할 수 없는 어떤 흐름이죠. 변화되는 작용의 흐름 끊임없이 변화하는 움직임
재행이라고 그래 재행. 이에 따라서 생겨난 모든 것은 무상하다 무상하게 변해간다. 끊임없이 변해갈 뿐이지 거기엔 고정된 실체가 없다. 이게. 재임무상 제법무화이죠. 여러분 갓난아기 때 몸 지금 없잖아요 한 톨도. 찾아볼 수 없잖아요 다섯 살 때 그. 몸 뽀송뽀송하던 그. 피부 그 살결 그 뼈 있고 요만한 뼈 지금 없잖아요. 다. 변해서 사라졌잖아요. 그때 살뼈 싹 다 없잖아요. 무상하게 변해 갔잖아요. 지었을 뿐인 거예요. 부상하게 변해갈. 나이 든 몸이 있어요. 그 옛날 젊었던 몸은 사라졌어요. 몸이 나예요.
변해갈 뿐 재범무와 거기에는 고정된 실체가 없어요 변해가는 것뿐이에요. 그럼. 여러분 몸은 이게 나을까요? 그 여러분 10대. 몸인데 몸은. 무사하게 변해 간다 내가 아니다 놀랍지 않나요? 몸이 난 줄 알았잖아요. 명백하게 몸은
나이 드는 게 나예요 어느 몸이 나아요? 같지 않거든요. 그 몸은 딱 정할 수. 있어요 정할 수 없는 어떤 흐름이죠 변화되는? 여러분. 머리카락 자르고 애써 중지 안 하잖아요. 머리카락도 난데 손톱도 난대 버려버리잖아요 쿨하게 버리잖아요. 오줌통 사고 쿨하게 버리잖아요. 딱 정할 수 있는 내세울. 수 있는 뭔가가 없어요. 우리 진실은. 나라고 할 때 나를 내세울. 수 있는 뭔가가 없어요. 인연따라 변화하는. 그 전체를 통으로 그냥 나라고? 이름 지었을 뿐인 거예요. 부상하게 변해갈 뿐이에요 생겨난 모든 것은 사라지거든요. 그럼 보세요 여러분 몸뚱아리 옛날에? 생겨났기 때문에 지금은 사라졌고 지금은 나이 든 몸이 있어요. 그 옛날 젊었던 몸은 사라졌어요 몸이 나예요 남은 내가 아니에요 계속. 변하는 무언가예요 근데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반야심경에서 색 색즉시 공 했고 색이라는. 건 몸을 말해요 나는 색 수상행식으로 이루어졌다. 게 느낌이잖아요. 느낌은 영원하지 않아요. 특정한 느낌이 내가 아니에요. 내가. 않나요? 몸이 난 줄. 알았잖아요. 명백하게 몸은 내가 아니지 않나요? 여기 몸이 팔이 하나 잘렸어요. 손가락이 하나 잘렸어요. 그럼 그 손가락 계속 들고. 다닐 거예요? 집에다 이렇게 잘 고이 모셔놓을 거예요. 계속 썩어 들어가는데. 잘리면 내 거 아니잖아요. 여러분 머리카락 자르고 애써 중지. 안 하잖아요. 머리카락도 난데. 손톱도 난대. 버려버리잖아요 쿨하게 버리잖아요. 오줌통 사고. 쿨하게. 버리잖아요. 내리버리잖아요. 내 몸이 나간 건데 내 몸이. 아니거든요. 느낌 인연따라 생기고 사라지는? 게 느낌이잖아요. 느낌은 영원하지 않아요. 특정한 느낌이 내가. 아니에요. 내가 느끼는 게 아니에요 느낌이 따라. 왔다 갈 뿐이에요 견의 생각 생각. 내가 아니에요 생각은 계속 바뀌어요 그래서 어떤. 생각을 딱 쥐고 난 이런 사람이야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그거는 정말 어리석은 거예요 자기가 임시로 어떤. 인연 따라 그 생각을 쥐인 것뿐이에요 그. 생각은 끊임없이 달라져요. 특정한 생각이 내가 아니에요. 내 생각이 없어요. 의지 뭔가. 하고 싶은 마음 의도 어릴. 땐 이런 걸 좋아했는데 아이들면. 따른 걸. 좋아할 수도 있거든요 어릴. 땐. 여행 가는 걸 좋아했는데 제가 구내 있을. 땐 그렇게 해외여행을 가고 싶더라고요. 저녁해서. 이제 마음껏 가도. 되는데 법패 좀. 그만하고 가면 되거든요. 근데 막 굳이. 이렇게 인연 따라. 의지가 달라져요. 어느 게. 자기라고 말할 수 없어요.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고정된. 실체가 없어요. 의식 내가 아는. 의식 의식이 계속 바뀌어요 이게. 맞다고 했다가 저게 맞다고 바뀌고 다 바뀌어요. 즉. 몸도 바뀌고 마음도 느낌도 다 바뀌어요. 나가 없어요. 그런 그럼 보세요? 그럼 내가 없나요? 몸도 내가 아니고 마음도 내가 아닌데 내가 없나요? 별 없진 않죠 요즘 제 말을 듣고 있잖아요 그죠? 뭐가 들어요? 뭔가가 듣고. 있어요 지금 듣고 있는 걸 통해서 내가. 있긴 있구나. 근데 우리는 내 몸이 듣는 줄 알았어요. 내 몸에서 귀가 듣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 근데. 귀가 귀가 있어도 딴 생각하면 소리가 들려도 안될 수 있죠. 눈으로. 눈을 뜨고 있는데 딴 생각하면 눈앞에 있는 게 안 보일 수 있어요 마음이 눈으로. 가서 작용을 해야만 보거든요. 눈으로 눈을 뜨고 있는데 마음이 딴. 거를 보고 있으면 딴 상을 딴 이미지를 보고. 있으면 눈앞에 안 보여요 보세요 마음이 보는 거지 눈이. 보는 거예요? 그럼 그 이 보게? 하는 이 마음 그건 어떻게 생겼어요? 2. 소리를 듣게 하느니 마음 이거 어떻게 생겼어요? 알 수가 없는데 있기는 있어요 즉 이것은 뭐다 해져 있을 수 있지 않죠? 이거다 이렇게 붙잡을 수 없죠. 대상이 아니죠. 이게 진정한 주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잖아요 진정한이란 표현을 썼지만 주관이. 아니죠 죽에게 나뉘지 않는 거지 이것은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뭐라고 이렇게 그림 그릴 수가 없어요. 뭐라고 그림 그릴 수 있는 것만 불교 명과 상이라는 용어가 있어. 명상 이름 명자 모양 상자 모양 있는 것만 대상 대상으로 모양 있는. 거 생겨나고 사라진 거 어떤 대상 어떤. 모양 있는 거 물질도 모양이 있지만 정신적. 대상도 모양 있죠 질토 이러면 질투라는 모양이 있잖아요. 사랑 이름 사랑이란 모양 있잖아요 이런 어떤 정신적인 대상도 모양이 있어요. 모양 있는 무언가의 이름을 붙여요. 명과 상 이런 이름은 이 모양을 의미하는 거야. 이렇게 그런데 이 마음 진정한 자기는. 명과 상의 아니에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사실은 여기에 이름 붙여 버리면 그건 바로 명상이 돼버려요. 그래서 불성. 이런 불성이라고 저는 말을 하지만 여러분이 불성이구나 이렇게 붙잡아 버리면 그 명과 산이 돼버려요. 그래서 제가 불섬이라고? 말했지만 불성을 버려버려야 돼요. 말하고 나서 스스로 없애버려야 된단 말이에요. 죽였다 살아나게 하고 위와 장이 막 연결되게 하고 피가 막 움직이게 하고 세포가 죽었다 살아났다 하고 끊임없이 생성 소멸하는 그 뭐가 그렇게 움직이게 할까요? 내가 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이 하나요? 이 몸 내 거라고 하면 이 몸 내가 움직여야 되잖아요. 여러분이 한 적 있어요? 여러분이 야 위 작용에 장. 같이 도와줘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그냥 이렇게 때려넣는 거예요. 그럼 얘가 알아서 다 해요. 얘가 그냥 지가 알아서 지 이 시스템 자체가 알아서 하잖아요. 내가 하지 않잖아요. 생각은 내가 하는 것 같죠? 생각이 막 일어나지 않나요? 생각이 뜬금없이 막 나타나요. 이 생각하다가 갑자기 저 생각하고 그 사람은 집안 대청소 할 때 보세요 혼자서 집안 대청소해야지. 그 부청이라고 말할 수도 없어요 그래서 이것이라고 해요 이 불성이라는 거 이거 이것이 지금 여러분 이렇게 여러분 이렇게 누가 손을 이렇게 들었다 놨다 할까요 뭐가 지금 여러분 숨을 그렇게 쉬고 있을까요? 아까 밥 먹은 걸 뭐가 이렇게 알아서 소화시키고 있을까요? 몸이 어떻게 기가 막히게 지가 알아서 나이를 들어가게 하고 세포가 죽였다 살아나게 하고 위와 장이 막 연결되게 하고 피가 막 움직이게 하고 세포가 죽었다 살아났다 하고 끊임없이 생성 소멸하는 그 뭐가 그렇게 움직이게. 할까요? 내가 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이 하나요? 이 몸 내 거라고 하면 이. 몸 내가 움직여야 되잖아요. 여러분이. 한 적 있어요? 여러분이 야 위 작용에 장 같이 도와줘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그냥 이렇게 때려넣는 거예요. 그럼? 얘가 알아서 다 해요. 얘가 그냥 지가? 알아서 지 이 시스템 자체가 알아서 하잖아요. 내가 하지? 않잖아요. 생각은 내가 하는 것 같죠? 생각이 막 일어나지 않나요? 생각이 뜬금없이 막 나타나요. 움직여야 되잖아요. 여러분이 한 적 있어요? 여러분이 야 위? 작용에 장 같이 도와줘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그냥 이렇게 때려넣는 거예요. 그럼 얘가 알아서 다? 해요. 얘가 그냥 지가 알아서 지 이 시스템 자체가 알아서 하잖아요. 내가 하지 않잖아요. 생각은 내가 하는 것 같죠? 생각이 막 일어나지 않나요? 생각이 뜬금없이 막 나타나요. 이 생각하다가 갑자기 저 생각하고 그 사람은 집안 대청소 할 때 보세요 혼자서 집안 대청소해야지 하다가 안방에서 서랍을 열었는데 요거 하나 꺼내다가 갑자기 이거랑 연결된 거 딴 거 다 연결된 거 딴 거 하나 땅 가다가 갑자기 1 2시간 지나고 나서 내 뭐 하는 짓이지 하고. 그러다가 사진첩을 보고 있어요 혼자 그러다 갑자기 20대 때 그 뽀송뽀송했던 얼굴에 꽂혀 가지고 이땐 예뻤는데 하다가 나도 이럴 때로 돌아갈? 수 없나 하다가 갑자기. 수술해버릴까 하다 그 청소하려던 본래 생각은 다 사라졌잖아요 이게 우리 생각이 그와. 같이 움직인단 말이에요 내 생각이 아니라서 그래요. 생각은 뜬금없이 지혼자 막 움직이는 거예요 내 생각이 아니에요 그냥 인연 따라 생각은 일어나고 있어요. 인연 따라 여러분이 TV를 보는 인연 따라 TV에서 나오는 어떤 거를 머릿속으로 막 생각을 떠올려요 오늘 어떤. 강렬한 삶의 경험이 있었어요 그러면 잠잘 때 갑자기 그 관련된 꿈을 꾼다든지 인연이 어땠냐에 따라서 이 년 따라 생각이 일어나고 이 년 따라 말이. 나오고 여러분 인연 따라 좋은 엄마. 좋은 아빠 예쁜 말을 하는 엄마 아빠. 사이에서 큰 자녀들은요 말하는. 게 너무 예뻐요 예쁘고 욕 같은. 걸 안 하고. 너무 이렇게 애어라고 그래요 사랑 그. 자체로 가득한 말 애어라 부르거든요 저절로 웨어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제가 이게 여러분 백 프로. 진실이에요. 제가 군생활 하면서 장병들 만나보면요. 슈퍼 남자아이가 젊은 남자아이가 욕 같은 거 안 하고 정말 말 하나에도 정말 반듯한 말만 하고 뭔가 사람을 기쁘게 하고 예쁜 말만 하고 이런 친구들이 뭔가 그렇게 참 반듯 잘 컸다 싶은 친구들이 있어요 잘 안. 될 수가 없고 사랑을. 안 받을 수가 없고 어디 가서도 그 사람을 누가 미워할 수가 없는 사람이에요. 존재 자체가 그게 오빠 아니에요? 그렇게 그런 인연 속에서. 태어나면 그런 과부를 받는 거예요 그런. 아이는 그런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의? 단 한 순간도 욕을 섞지 않는 적이 없는 타고난 그냥 그 욕과 부정적인 생각 가진 사람이 한 명 탁 이 등으로 돌아왔을 때 갑자기 분위기 싸한데 여전히 이 등병이니까 좀 힘을 못 쓰는데요 이런. 아이가 상병쯤 되잖아요 메모반 분개가 다 망가집니다 놀랍게도 그런 친구 하나가 병장으로 있잖아요 상담을 해 본 모두가 우리 모두가. 한결같이 요 날짜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디데이 뭐냐 그 친구 전역하는 날이에요 그 친구 전역하자마자. 대학교 그. 정도 대학 갈 인연이 되니까 자기는. 그런 친구를 만났고 공부하는 부모님을? 만나고 공부할 인연이 되니까 공부를 저절로 하는 거예요 그냥 주변에 다 공부한 애들이 있으니까 같이 공부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지원자가 간 거예요 이 년 따라 지원돼 간 거예요 근데 머니는 뭐라고 얘기하냐면 내가 얼마나. 노력한 줄 알아? 내가 노력해서 간 거야 이렇게 생각하거나 그렇게 머리가 똑똑한데 본인은 똑똑해 했는데 본인은 조금만 노력했는데도 좋은. 대가들이 있어요. 그런 애들이 뭐라고. 굳게 믿는 줄 아세요? 그런 친구들이 이렇게 이런 독서를. 해요. 뭐라고 말을 하냐면 어지간한 대학은 뭐 서울대 연대고대 이런 거 빼고는 어지간한 대학 정도는 솔직히 말하면 누구나 다 갈 수 있어. 근데 안 해서 그래. 이걸 100 프로 믿고 있어요. 군에 있을 때 좋은 대학 다니는 친구가 있었는데 걔가 100 프로 그 생각을 저랑 아무리 토론해도. 그 생각을 버리질 않아요 아니에요 교수님. 아무리 뭐라고 얘기해도 저는 이 생각은 안 굽혀요. 진짜 누구나 다. 갈 수 있어요. 좋은 데 다. 갈 수 있어요. 지가 공부를 안. 해 그래요. 아 그게 아니라 죽어라 공부를 해도 안 되는 친구가 있어 없어요. 절대 있을 수가 없어요. 제가 해. 보니까 그럴 수가 없어요 그렇게 섣부르게 자기. 경험을 일반화시켜야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일반화시켜요 근데 사람은 다 다르거든요 사람은 다. 다르잖아요 그런데 자기 경험만 자기는 알기 때문에 그걸 옳다고. 딱 정해놓는 거예요. 이렇게 보세요 정해진 실체가 없어요. 내가 없어요. 인연이. 알아서 하고 있는데 생각이 내가 노력했어. 너희들 노력 안 해서 그렇게 된 거야 이렇게 생각이 규정해버려요. 생각이 인연 따라 하고 있어서 내가 개입되지 않아요. 그래서 턱 맡기면 인연에 내 맡기면. 삶은 저절로 흘러갑니다. 그런데 그런다고 해서 내가 노력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내가 열심히 애쓰는데. 집착하지만 않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열심히. 애쓰는 것도 인연이잖아요 내가 갑자기 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 날 갑자기 그것도 인연따라 일어나는 마음이에요 그럼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나 성공할. 거야 이것도 인연이에요 근데 2년이라는 건 뭐냐면? 내 안에서 일어난 하나의 결심이라는 인과. 그 조건이 결과가 이 년 과보를 형성하려면 수많은 연들이 적절하게 조화롭게 맺어져야만 과보를 형성해요 근데 중중무진 연기라고 해서 이 연이 무궁무진한. 인연이 받쳐줘야만 내 나를. 성공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나 돈 벌 거야 인을 일으킬 순 있는데 연이 받쳐줘야만 목이 좀 있고 범벌 인연이 받쳐주는 사람은 과보가 맺어져요 근데. 연이 안 받쳐주는 사람은 난 돈 벌 거야 해도 돈을. 안 못 벌어요 그러면 내가 한. 거야 아니에요 인연이 하는 거에 전부. 다 내가 아는 것 같지만. 이 말은 다시 말해 뭐예요? 숙명론 아니죠 운명론 아니에요. 자기 결정권이. 없다는 얘기 아니에요. 있는데. 내 결정권 자유의지가 있다는 거예요. 있는데. 그게 절대적이지는 않다는 얘기예요. 자기 결정 플러스 수많은 보조적인. 연들이 함께 해야 된다는. 거에요 그 말은. 뭐예요 결국은 인연 따라간다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돼요 내가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해야 돼요 근데. 결과는 내. 맡겨야 돼요 이게 가장 조화로운 지혜예요 나는. 열심히 노력해야 되는 거예요 언제나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을 그런데. 내가 노력하면 될 거야 그건 오만한 생각이에요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거예요 이 년에 내 맡기는 거예요 그러면. 애초에 아 결과에 대한 집착이 없겠죠. 난 노력은. 해. 근데 될지 안 될지 모르니까? 열심히는 해 보되 안 됨 말고. 되면 좋고. 쿨하게 하는 거죠. 그러면 안 돼도 상관없죠. 왜 상관없을까요? 안 되는 거는 안 되는 게. 더 좋기 때문에 안 되는 거예요 우리는 예를. 들어 대학교. 간다 이러면 전부 다 좋은 대학 가고 이대를 가길 원하잖아요. 근데 이 세상 전부 다 의대 가면 돼요? 안 되거든요. 나는 의대 간 인연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러면 인연이 의대 안 가게 성적을 딱 만들어 줄 거예요. 아버지 열심히. 공부를 해도 그게 나에게 가장 적절한. 인연인 거예요. 내 생각으로 해석하면 나한테 왜 이런 일이 벌어져하고 괴로워했지만 그건 자기 생각이에요. 2년에. 내 막히면 모든 것은 전부 다 나를 돕기 위해서 일어나고 있어요. 그걸 불교에서 잣잇음이라. 그래요.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 같은 것이 연기법이고 자비심이에요. 연기직 자비예요. 무한한 자비심이 우리 삶을 끊임없이 돌보고 있어요. 무한 돌보고 있어요. 여러분 저 어디죠 불교에서도 그렇고 교회 성당 가서도 마찬가지인데 너희들 나쁜 짓 했지 조건에서 지옥 간다 이러면서 협박하는. 종교 많이 보셨죠 불교수도 협박해요 협박이 안 통하니까 테마에다가 지역도를 그려놓고 나서는 협바닥을? 막 혓바닥 위에서 이렇게. 뭐 쟁기질도 하고 몸을? 막 뜨거운 물에다가 던지고 칼로 만든. 산에다가 저 위에서 몸을 던져. 가지고 온몸에 칼을 꽂기도. 하고 이런 지옥을 형성해서 그린. 그려 놨다니까 절에 가면 그 협박하는 거 아니에요? 좀 방편인데. 방편인데 좀 재밌게. 말하면 협박하는 거란 말이에요. 너희들 죄 저질렀지 큰일 났고 너 지울까 그러면 겁나서 벌벌 떨 거. 아니에요. 그럼 그럼 제가 어떻게 되죠? 여기 있잖아요 여기요. 불자를 이렇게 보시도 좀 하고 부처님 전에 보시고 참여하고 하면. 그걸 딱 사라져요 아. 이게 이게? 뭔 말이냐면 인류 역사 속에서 종교가 신자들을 조종했던 방식이라고 종교 학자들이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 얘기 그 구절을 읽으면서 제가 젊었을 때 그 구절을 읽으면서 약간 충격이면서. 띵 하더라고요. 정말 이내 맛있더라고요. 야 이게 이게. 종교인들 같은? 이런 말을 쓸 수가 없을 텐데. 역시 종교 학자라서 냉철하게 썼구나. 근데 보니까 옛날부터 지금까지 다. 그래왔다는 거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종교는 무한한 사랑과 무한한 자비를. 얘기를 해야 되는 것이고 이 불의법이라는 심층 종교에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