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축구계가 연일 시끄럽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빠진 미니 월드컵으로 불리는 2008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가 개막한 게 한 이유지만 또 다른 이유는 크리스티아노 호나우두(2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설이다.
영국과 스페인 언론은 날마다
호나우두의 이적과 관련한 소식을 보도하고 있다.
외신들은 레알 마드리드가 역대 최고 이적료인 1억 유로(약 1,600억 원)를 맨유에 제시할 것으로 내다봤다.
프리미어리그 및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맨유에서 더 이상 이룰 게 없다며 호나우두의 이적에 무게를 두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의
라몬 칼데론 회장은 “돈은 충분히 준비돼 있다”며 호나우두 영입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맨유는 국제축구연맹(FIFA)에 제소하는 등 호나우두를 보호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정작 당사자인 호나우두는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 집중하고 싶다”며 자신의 미래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맨유와 레알 마드리드 사이의 이적 사례는 매우 적다.
데이비드 베컴(33,LA 갤럭시)이 2003년 맨유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가기 전까지 1983년 로리 커닝엄(52)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맨유로 임대된 게 두 구단 사이의 유일한 거래였다.
맨유를 떠나 레알 마드리드에 새 둥지를 튼 선수는 베컴을 비롯해 루드 반 니스텔로이(32), 가브리엘 에인세(30) 등 3명뿐이다.
레알 마드리드행은 호나우두에게 또 다른 성공을 안겨 줄까. 호나우두보다 앞서 레알 마드리드행을 선택한 선수들의 사례를 보면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은 반반이다.
루드 반 니스텔로이맨유를 떠나 레알 마드리드에 정착한 선수 가운데 가장 성공한 선수는 반 니스텔로이다.
반 니스텔로이는 2006년 초 알렉스 퍼거슨(67) 감독과 선수 기용 문제로 불화를 겪었다.
퍼거슨 감독은 칼링컵에서 루이 사하(30)를 중용했고 반 니스텔로이를 벤치로 밀어냈다.
사하가 칼링컵 우승에 크게 이바지하면서 반 니스텔로이와 퍼거슨 감독의 사이는 더욱 멀어졌다.
반 니스텔로이는 짐을 정리해야 했다. 반 니스텔로이는 “맨유를 떠나면서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보란 듯이 성공했다.
반 니스텔로이는 이적 첫 시즌부터 레알 마드리드에서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이적 후 두 번째 경기인 레반테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무서운 골 폭풍을 일으켰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우승 경쟁이 치열했던 시즌 마지막 8경기에서 10골을 몰아넣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8경기에서 7승1무를 거두며 바르셀로나를 제치고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2002-03시즌 이후 4년 만에 이룬 우승이었다. 반 니스텔로이는 25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반 니스텔로이는 2007-08시즌 발목 부상 등으로 32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20골을 터뜨리며 변함없는 득점력을 보였다.
반 니스텔로이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 2년 동안 78경기에 나서 51골을 터뜨렸다.
경기당 평균 0.65 득점으로 맨유에서 5년 동안 기록한 득점력(220경기 150골, 경기당 평균 0.68 득점)과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사하는 최근 2년간 58경기에서 18골을 넣는데 그쳤다. 연이은 부상으로 그라운드 밖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결국 맨유는 사하를 이적 매물로 내놓았다.
반 니스텔로이는 이제 레알 마드리드에서 없어선 안 될 선수가 됐다. <골닷컴>의 칼럼니스트 길레스피 길은 “반 니스텔로이는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먹이를 찾아다니는 야수와 같다. 결정적인 순간 골을 터뜨리는 등 레알 마드리드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반 니스텔로이는 “레알 마드리드와 같은 최고의 팀에서 뛰어 기쁘다. 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가브리엘 에인세반 니스텔로이가 떠난 지 1년 뒤 에인세도 맨유에서 방을 뺐다. 2004년 파리 생제르망(프랑스)에서 맨유로 이적한 지 3년 만이었다.
에인세는 맨유 이적 첫해 39경기에 뛰며 주전 왼쪽 수비수로 자리를 잡았다. 맨유 팬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5년 9월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비야레알(스페인)전에서 무릎을 크게 다치면서 전력 외 선수가 됐다. 1년여 뒤 복귀했지만 이미 왼쪽 수비수는 파트리세 에브라(27)의 차지였다. 에인세의 자리는 없었다.
에인세는 지난해 8월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에인세는 애초 리버풀 이적을 원했으나 맨유와 리버풀의 앙숙 관계로 호베르투 카를로스(35,페네르바체)의 대체 선수를 찾던 레알 마드리드로 방향을 틀었다.
원치 않았던 마드리드 생활은 힘들었다. 에인세는 시즌 초반 불안했다. 부상 악몽도 완전히 떨쳐 내지 못했다. 에인세가 주춤한 사이 빠르게 성장한 마르셀로(20)가 주전 왼쪽 수비수로 올라섰다.
에인세는 크리스토프 메첼더(28), 페페(25)가 연이어 다치면서 왼쪽 수비수가 아닌 중앙 수비수로 출전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에인세는 “포지션 변경은 크게 문제될 게 없다”고 했지만 조직적이지 못한 수비는 불안감만 쌓였다.
시즌 중반 들어 팀 전술에 적응한 에인세는 주전으로 발돋움했고 시즌 막판 7경기 연속 선발 출전하며 4실점의 그물 수비를 선보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27승4무7패(승점 85)로 비야레알(승점 77)을 여유 있게 따돌리며 2시즌 연속 프리메라리가 정상에 올랐다.
에인세는 시즌 막판 코칭스태프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지만 잦은 부상으로 기대만큼 팀 전력에 기여하지는 못했다. 에인세의 첫 시즌은 좋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았다. 평이했고 성공의 여지를 남겼다.
데이비드 베컴베른트 슈스터(49) 레알 마드리드 감독은 호나우두의 성공을 자신했다. 슈스터 감독은 “호나우두가 이적하면 베컴이 왔을 때처럼 스페인 언론의 열띤 관심을 받을 것이다. 이를 잘 견뎌 낸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3년 여름 2,500만 파운드(약 505억 원)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베컴은 하루가 멀다 하고 스페인 언론의 집중 조명에 시달렸다.
그렇지만 스페인 언론의 극성은 영국 언론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베컴은 레알 마드리드에서 큰 성공을 이루지 못했다. 언론에 시달린 것 보다는 포지션 중북 그리고 팀 내 입지가 문제였다.
베컴이 왔을 때 레알 마드리드에는 루이스 피구(36,인테르 밀란)가 오른쪽 미드필더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베컴은 세계 최고의 프리키커로 명성을 떨쳤지만 피구, 지네딘 지단(32), 카를로스 등 프리킥을 잘 찬다는 선수가 팀에 넘쳐 났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베컴은 자신의 장점을 살릴 수 없었다. 베컴은 중앙 미드필더로 나섰지만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베컴이 자리를 잡지 못하는 사이 레알 마드리드는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2003-04시즌부터 2005-06시즌까지 하나의 우승 트로피도 들어 올리지 못했다. 감독 해임도 밥 먹듯이 이뤄졌다.
레알 마드리드가 부진하자 비난의 화살은 베컴에게 쏠렸다. 베컴은 계약 마지막 해였던 2006-07시즌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레알 마드리드에게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안겨 줬지만 그의 경기력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완전히 지우진 못했다.
베컴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남긴 성적표는 144경기 출전에 15골이다. 딱히 내세울 만한 성적은 아니다.
베컴이 레알 마드리드에 남긴 건 스타 마케팅에 따른 수입이었다. 레알 마드리드가 베컴에게 주목했던 건 경기력이 아닌 그의 명성과 상업성이었다.
베컴은 “난 유니폼 판매용 선수가 아니다”라고 반발했지만 베컴의 이름과 등번호 23번이 새겨진 유니폼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레알 마드리드는 베컴의 영입 이후 엄청난 수입을 올렸다. 베컴 역시 유니폼 판매와 초상권, 각종 마케팅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 또 영국을 넘어 세계적인 선수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축구선수로서 한 단계 성장하지는 못했다.
한 축구 관계자는 “영국 축구계는 베컴의 성공 이력이 맨유에서 끝났다고 본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스포츠 스타로 성공했지 축구선수로 성공한 건 아니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SPORTS2.0 제 108호(발행일 6월 16일) 기사
이상철 기자
첫댓글 확률은 반반일꺼 같아요... 팀플레이를 잘한다면 성공하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글쎄..장담할수 없겠죠..로날도 마음이 이미 맨유에서 떠났다면 백날 붙잡아도 소용없을꺼 같은데.. 서로 불편하기만 하죠..가든 안가든 빨리 결론이 났음 좋겠어요
레알에서.. 베컴이 카펠로 우승시켜주다시피 했던거 같은데...... 비록 골 수나 그런 것은 적지만.... 적어도 경기 내에서 베컴은 엄청났는데 -ㅅ-
참.... 칼링컵우승하자고 반니를..... 뭐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겠지만... 루드가 자존심상할만 하네
저 기자 정신이 나간거 아닌가요? 그의말대로라면 겨우 프리킥이나 잘차고 경기력의심받는 수준의 선수가 어떻게 팀전체가 2~3년간 부진을 겪게할정도로 그라운드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거죠? 정말 못하는선수는 아예 있는지 없는지 존재조차도 보이지 않을텐데 말이죠 저분은 레알마드리드를 돈에미친 구단으로 매도했거나 아니면 베컴의 경기자체를 본적이 없이 비하하는 류의 한사람이네요 어떤 저런사람이 스포츠 기자라는 명함을달고 축구 기사를 올리는거죠?
흠...저도 그시절 레알경기를 보진못했지만 베컴이 축구선수로써의 성공은 맨유에서 끝이라고 봐도되죠..레알에서는 부진한거 사실이었고 글고 저번에 티비에서도 봤는데 전문가들고 그렇게 말하더라구요..마지막시즌에가서 막판역전우승에 일조했지만요
레알의 경기력이 별로였던때도..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준 몇 안되는 선수중 하나가 베컴이었는데..-_-
144경기 15골,, 어시스트가중요한건데
무슨 베컴이 스트라이커인가 -_- 144경기 15골 이면 어때서? 윗님이말씀하신거처럼 어시가중요한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