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아니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쓰실 것이다.” 무척 놀라운 진술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최근에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여성협회에 관련된 일을 하다가 이 구절을 접하게 되었다. 에스더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때를 위하여”라는 표현이 그리스도인 직업여성인 우리들에게 하나의 훌륭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데 우리는 뜻을 모았다. 그래서 모임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에스더 4장 12~14절을 다시 읽었다. “그가 에스더의 말로 모르드개에게 고하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 4:12~14). 오, 나는 이 구절을 읽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이 구절은 특별한 선택에 관한 내용이 아니었다. 그것은 초청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에스더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의 일부가 되도록 그리고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그녀에게 부여하신 것을 사용하도록 초청받는 중이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 자신이 하나님의 유일한 선택이 아니라는 점을 똑똑히 듣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제시해 주신 일들을 나의 일로 간주하기를 좋아하지만 이 구절을 읽고 난 뒤에 현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그 일들은 그분의 일이며 나는 그분의 초청에 “예.”라고 대답함으로 그분의 일에서 한 역할을 맡게 되는 것뿐이다. 여성협회에서는 이 구절의 처음과 끝을 분리해서는 안 된다고 결론지었다. 우리는 초청과 약속을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 이 개념은 우리의 초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도움을 받으면서 혹은 받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일을 계속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왕이면 에스더처럼 우리가 그분께 “예.”라고 대답하고 그분의 도구로 활약하며 그분의 계획의 핵심 일꾼이 되는 편이 훨씬 좋지 않겠는가! - 파멜라 맥켄 |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 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네모의 꿈이라는 노래 가사랍니다. 목청껏 따라 부르는 친구들을 보며 “이 노래가 뭐가 그리 좋은가요?”라고 물어봤어요. 그러자 “맞는 말만 하잖아요. 모든 게 네모투성이고요. 어른들이 아무리 둥글게 살아야 한다고 해도 그건 잔소리일 뿐이고 우리는 네모난 모습이 더 좋거든요.” 그저 생각 없이 따라 부르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지요. 하지만 네모난 생각과 네모난 친구들만을 좋아한다면 서로 상처를 주고 다툴 일이 많지 않을까요? 모퉁이에 부딪히고 모서리에 찔려 서로를 원망하고 미워하기만 하면 어쩌죠? 여러분도 그런 네모가 좋은가요? 어른들이 하는 둥글게 살라는 말이 잔소리로만 들리나요? 예수님이 초대하는 그 나라에는 네모난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대요. 심지어, 동물들까지도 동그라미 사랑을 하며 지내는 나라니까요. 이리가 어린양과, 표범이 어린 염소와,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지내며 다투지 않는 나라가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니까요. 사자가 송아지가 먹는 풀을 함께 뜯기도 하며 서로의 생활을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마음이 바로 이런 나라를 위해서 필요해요. 예수님의 나라에 가기 위해서 우리들 마음에는 네모난 생각과 행동들이 동그라미 생각과 행동으로 변화되도록 꿈을 꾸어야 해요. 오늘 하루 여러분의 모습 속에서 둥글게 변화해 가는 생각과 행동이 보여질 수 있게 노력해 봐요. 하늘 면류관에 왕별을 붙이기 위해서는 동그라미 사랑과 성품을 꼭 만들어야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