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베개와 구름베개
어릴 적 동생은 메밀베개를 베고 나는 구름베개를 벴다.
동생은 서걱거리는 훗날에 대해 얘기하는 걸 좋아하고 달밤에
피는 꽃말을 많이하고 빨간눈금 달린 3각자 모으는 게 취미였다.
난 아찔하거나 뜬구름잡는 꿈을 많이 꾸고 늘 젖어있는 구름을 베
고 잤다.
구름속에서 걸어나오는 얼룩무늬에 새잠 들었다.
밤마다 눌린 귀근처엔 새잠이 하얗게 쌓였다.
가위눌림을 골라낸 부드러운 깃털구름과 마스카라 올린 속눈썹이
충돌할 때마다
동생과 나 사이에서는 놀란새들이 날아나왔다.
동생은 메밀국수를 좋아하고, 나는 부글거리는 메밀거품을 좋아
했다. 동생은 아들이었고, 나는 물소리가 요란한 우렁각시였다. 동
생은 사막에서 피라밋을 지키는 스핑크스 직업을 갖고 싶어했다.
나의 베개속엔 솜이 아닌 흰눈이 가득 들어있다. 자고나면 녹아있
는 흥건한 울음, 한여름에도 머릴 털면 흰눈이 나비나비로 쏟아졌다.
밤이 어두운 건 밤마다 눈을 감기 때문이란 말 들었다. 인중이 길
면 베개를 더 오래 베고 잘 수 있다는 말 들었다. 지금도 눈이 내리면
친정. 시댁가는 두 개의 발자국을 훔쳐 볼 수 있다. 동생은 처가.
친가. 외갓길이란 세 곳의 집합지점을 남달리 챙기고 있어 역시 뒷
꼭지에 피어있는 매화꽃도 잘 살펴보지 못했다.
잠은 두 눈을 뜬 채 베개를 베고 연연하다가, 새소리와 꽃베개와
꿀잠은 서로서로 샐녘까지 기대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