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에 대하여
문정희
말벌처럼 허리 부러진 페닌슐라!
이 반도의 아래쪽이 나의 고향입니다
독재자들이 철따라 출몰한 땅! 초등학교 때는
수업을 전폐하고 대통령 할아버지라는 글을 쓰기도 했어요
탱크를 밀고 나온 군인들이 새로 길을 만들고
선거를 악용하며 버티는 사이
나의 젊음은 최루탄 속에 시들어갔어요
북쪽에는 더 미친 독재자가 있다고 겁주던
노회한 독재자들이었어요
문학을 했지만 문자옥(文字獄)*이 두려워
무사하게 사는 법부터 터득했습니다
인간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서둘러 결혼 속으로 도망쳤지만
결혼 속에도 독재자는 있었어요
그는 더욱 난해한 모습으로 삶을 애무하며
지배와 행복의 명분을 세워나갔어요
혼자 때리고 혼자 깨어지는 무정란 같은 언어를 들고
비겁하게 침묵을 지키다가 가끔 모호한 시를 썼어요
속도와 물신 앞에 무릎 꿇지 않으려고 버둥거렸지만
시간의 검푸른 이끼 속으로 빨려들어 갔어요
이윽고 내 안의 늙은 독재자가 나를 덮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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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인의 글을 꼬투리 삼아 탄압하는 것.
—《시인수첩》2014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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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 1947년 전남 보성 출생.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오라, 거짓 사랑아』,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나는 문이다』, 『다산의 처녀』, 『카르마의 바다』『응』 등과 시선집 『지금 장미를 따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