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5월 19일, 선운사 입구에 해세운 미당 시비 제막식이 열렸다.
라이온스클럽 고창군지부 주관으로 비용을 추렴하여 세운 시비다.
문단에서도 보탰고, 선후배들도 보탰고, 미당의 堂內에서도 보탰다.
봄비가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미당 부부와 여러 관계자들이 제막식에 참석했다.
제막식에 앞서 미당은 시비를 둘러보았다.
장소가 장소니만큼 시비 앞면에는 미당의 시 <선운사 동구>가 새겨져 있다.
글씨체는 미당의 자필을 採字하여 새겼다.
선운사 동구
서정주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1942년 이른 봄, 미당은 부친의 장례를 모시고 상경하는 길에
동백꽃을 보기 위해 일부러 선운사엘 들렸다가 헛걸음을 했다.
선운사 동백꽃은 남해안의 동백꽃이 다 지고 난 4월 하순경에야 개화하는데,
비감에 잠겨 있다 보니 그걸 깜빡한 것이다.
말술로 소문난 스물여덟 살의 미당은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길가 주막엘 들렸다.
술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주모는 이내 미당과 마음이 통했다.
취기가 아련해지자 그녀는 특유의 쉰소리로 멋들어지게 육자배기를 한 가락 뽑았다.
미당은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에서 작년에 피었던 동백꽃 소리를 들었다.
그러고 보면 꽃잎이 다 붙은 채로 목이 뚝뚝 부러져 떨어지는 동백꽃의 결기는
한평생 농투성이로 살다 잠결에 저승으로 떠난 부친과 무척이나 닮아 있기도 했다.
미당은 천년만년 후대에 전해질 자신의 시비에 무척 감개무량해 했다.
그러나 시비 건립 취지문의 ‘詩聖 서정주’라는 표현이 좀 민망하다고 얘기했더니,
요즘은 웬만한 사람이면 누구나 樂聖이니 畵聖이니 하는 미사여구를 붙이는 추세란다.
당신도 별 거 아니지만 다들 그렇게 하니 ‘詩聖’이란 상투어를 붙여주었다는 투였다.
당연히 ‘선생님께서는 시성이라는 칭호를 받아 마땅하십니다.’ 했어야지
무슨 대답을 고따구로 하여 졸지에 미당을 ‘웬만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말았으니 원…
미당은 더욱 민망하여 차라리 입을 다물고 말았다.
어쨌든 미당은 평생 최고의 고마움을 느꼈다고.
미당은 한때 이 나라에서 시인이 된 것을 스스로 딱하게 여긴 적이 있었지만,
시비를 본 이후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서 미당은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1821~1867)가
‘어느 후줄근한 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던 사연을 소개해놓았다.
일생 동안 받은 원고료를 다 합쳐도 너무나 형편없이 적은 액수여서.
황순원이 축사를 낭독할 때는 어법 빗줄기가 굵어졌다.
주최 측에서 누군가가 우산을 펴서 황순원에게 씌워주었다.
황순원은 웃는 낯으로 우산을 밀쳤다.
“우산 치우시오.
미당을 생각하는 정이 넘쳐서 하늘도 내리시는 비일진데,
가리고 안 맞아서야 되겠소?”
미당은 동갑내기 친구 황순원의 이 한 마디를 평생 잊을 수 없노라고 했다.
그런데 고창군수가 그예 미당의 잔칫상에 재를 팍 뿌리고 말았다.
주변 정리 등 시비 건립 현황을 둘러보기 위해 나온 군수는
아무리 뜯어봐도 미당보다 10여년은 더 젊게 보였다.
군수가 본체만체하자 미당이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제가 이번에 여거 시비를 세우게 된 시인 서정주올시다.”
군수는 이해찬처럼 시건방진 눈초리로 미당의 아래위를 한 번 쓰윽 훑어보더니,
“아, 그러시오?”
하고는 제 갈 길을 가버렸다.
나중에 전해 들으니 군청으로 인사하러 찾아오지 않아서 영감님이 몹시 노하셨다나?
1970년대의 임명직 군수 가운데는 그렇게 목에 깁스한 자들이 더러 있었다.
국민의 품격은 그 나라의 문화가 판가름한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한류가 선풍을 일으키는 까닭도
우리나라의 여러 문화적 요소들이 세계인들에게 긍정적으로 비춰져서 쌓인 금자탑이다
자국의 문화를 모르는 국민은 다른 나라 국민들로부터 존중받을 수 없다.
영국인들은 인도를 줘도 셰익스피어와 바꿀 수 없다고 할 정도로 그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고창군수씩이나 된 자가 자기 고장 출신의 大시인 미당을 그렇게 대접했다는 것은
미당에게 누를 끼친 게 아니라
공직자로서 스스로의 수준과 무지를 드러낸 부끄러운 일이다.
마침 김종필 국무총리의 축전이 당도하여 미당의 떫떠름한 심사를 얼마간 달래주었다.
첫댓글 고향이 그곳인 미당도
동백꽃과 관련해서 그런 사연이 있었다니...
내 블로그
http://kydong77.tistory.com/16861 에
서정주 <선운사 동구>로 [펌]했소이다.
물론 출처는 밝혔구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