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호스피스 시절(2000- ) - "목사님! 도와 주세요! 급해요!"
한 중년의 집사님이 다급히 찾으신다!
이분은 부부가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본인은 하반신 마비로 어렵게 남매를 홀로 키우시는 분이셨다.
자주 들러 가사일이며 나들이 도움을 드렸다.
급히 방문하니 아차!
휠체어에서 옷을 벗고 벽을 향해 계시는 것이 아닌가?
사연을 물으니 오늘 목욕봉사자가 오는 날인데 물을 데워놓고 옷을 벗고 기다리는 중인데 취소되어 대체할 봉사자를 찾아보는데 아무리해도 나밖에 생각이 나지 않더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불렀다고...
그래서 제가 눈을 감고 안아서 탕에 넣어 드리겠다고 하니 기다리란다.
친구 집사님이 오시기로 그후에 약속되었다고.
건넛방에서 한숨을 쉬며 기다리는 십분여 가 왜 그렇게 긴지...
혹시 그 교회 목사님이나 다른 방문객이 지나가다가 그 상황을 본다면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주인댁은 알몸으로 벽을 향해 앉아 있고, 건넛방에는 젊은 목사가 땀을 뻘뻘 흘리며 문닫고 앉아 있는 상황을!
조금 후에 약속하신 집사님이 오셨는데 내 얘기를 평소 들으셨는지 반가와 하시며 목욕봉사를 하셨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식은땀이 흐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다급한 상황에서 내가 생각났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하다!
"목사님! 나 쌌어요!"
병수씨는 논일을 하다가 동네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뛰어들어 말리다 지나가는 경운기에 치어 하반신 마비가 됐다.
생계를 위해 부인이 일찍 식당일을 나가야 하기에 비빔밥 점심을 만들어 하루종일 누워만 계시는 남편의 머릿맡에 간식과 같이 놓는다.
누워만 계시기에 중간에 대변이라도 보시면 아내의 이불빠는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 그 추운 한겨울에도 이불을 개켜놓고 종일 추위에 떨었다.
종일 심심하니까 전화를 붙잡고 살아서 한달 요금이 십만 원에 육박해서 개인사업을 하시냐고, 아내를 위해 절제를 하시라고 권고해도 힘드신 모양이다.
하루 한번은 이서의 그 댁을 방문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한번은 대변을 치워드리고 운전해서
오는데 계속해서 대변냄새가 났다.
발로 밟았는지 발바닥을 봐도 없고...
운전대를 잡은 손에 한덩어리가 묻어 있는 것이 아닌가?
바빠서 손씻는 것을 잊고 온 것이다.
"이 놈이 사람좋은 줄은 알고 떨어지기 섭한 모양일세!"
모악산 밑 구이의 한 산 골짜기에 다리를 잘못쓰는 한 노총각 장애인이 노모를 모시고 외롭게 사는 오두막집이 있다.
매주 한번씩 자그만 간식을 사서 방문해 친구해 드리고 기도드려 위로했다.
가끔 모자를 모시고 나가 자장면을 대접하면 노모께서 그렇게 기뻐하실 수가 없었다!
마침 중국의 예의 교수님이 방문하셔서 일부러 그 형제댁에 모시고 갔다.
중국에서는 한국 하면 번영과 풍부와 화려함만 생각했기에 한국의 민낯도 보여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백여에 사시는 신귀생 님을 잊지 못한다.
너무 가난해서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집안일을 거드는데, 한번은 밭을 매는 이 십대 소년을 지나가는 아저씨가 공연히 심하게 때려 등뼈가 부러져 굳는 병이 들어 곱추가 되었고, 몸이 성숙되지 못해 십대 몸무게 그대로 멈췄고, 나주에는 손가락만 겨우 움직이는 전신마비가 되셨다!
그런대도 항상 밝으시고 유머가 넘치셨다.
노모께서는 아드님을 간병하시느라 평생을 외출 한번 못하셨단다.
님은 독특한 모습으로 운동을 하셨다.
거북이가 문고리를 잡고 몸을 흔드는 모습과 또같다.
등과 전신이 굳어 한 손만 자유로워서 전등을 끄거나 무엇을 집는 등의 모든 일은 오십센티 쯤 되는 대나무를 통해 이루어졌다.
"평생동안 외출 한번 못하셨지만 하늘의 천사들이 응원하세요!
화이팅!"
마침 교회개척 소식을 들으신 문석 형님께서 300만 원을 헌금하셔서 중고 봉고차를 구입했다.
이제 날개를 달았다!
춘선 형수님께서 헌금과 이모저모로 많이 섬겨주셨다.
"하늘에서 주께서 잊지 않으시고 대신 갚아주실거예요!"
엠마오 사랑병원에서 호스피스 교육을 한다는 포스터가 눈에 띄어 등록하고 4-5일 동안 교육을 받았다.
죽음에 대한 이해와 준비, 호스피스 환자 정의와 그들의 생각, 증상, 임종과 그 현상, 임종 간호와 섬김 등 다양한 강의에 매료되었다.
예수병원 호스피스를 담당하는 윤미옥 간호과장은 천사와 같았다.
나도 저런 사랑의 섬김이가 될 수 있을
주께서 이 호스피스를 위하여 중국에서 귀국시켰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구나! 내가 평생동안 힘써야 할 일이 이 일이구나!"
처음 뵙는 교육생들 사이에서 유난히 인기가 좋은 장로님 한 분을 뵈었는데 바로 최주환 장로님이시다.
거기서 만난 분들이 이희우, 조 은, 권필순, 박경숙, 이정수, 양경자, 오인숙, 손숭월, 김명숙 천사 봉사자였다.
매주 한번씩 병원의 호스피스 환자를 방문하여 발마사지를 해드리면 자기의 더러운 발을 씻기고 마사지해 준다고 마음의 문을 열고, 한두 시간 구구절절한 마음 속 깊숙히 켜켜이 쌓여 있는 이야기를 찬탄하고 공감하면 좋은 친구가 됐다.
그렇게 육신적으로 친구가 되면 다음 단계로 영적인 부분까지 터치하게 된다!
이 사역을 가정방문으로 까지 획대해서 섬기는 겨자씨 나눔 선교회의 김상섭김영희 목사님 부부는 별과 같은 존재였다.
우리는 곧 한 팀을 이루어 전주, 완주, 익산, 군산, 김제, 남원, 순창, 무주, 진안, 장수, 부안, 임실 등 전북 시군 전체를 철환하며 환자를 섬겼다.
동행하신 팀원이 이미옥, 김희연, 최사모님이시다.
목사, 자원봉사자는 있는데 항상 간호사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한번은 어떤 모임에서 호스피스를 소개하며 간호사 없음의 어려움을 호소했는데 마침 그 자리에 갓 퇴직하신 간호사 한분이 자원해서 섬기기로 하셨다.
장현화 선생님이신데 알고보니 신흥고 은사님의 사모이시다!
환자를 정말 진심으로 대하시는 모습이 아름다왔다.
종종 금일봉을 쥐어 주셨다.
못난 제자가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게 생각되셨으리라!
대학병원의 호스피스는 황인희, 권양숙, 이인숙 님들이 수고하셨다.
군산 호스피스는 박금례 목사님이 팀원이 되어 수고하셨고...
내가 첫 호스피스 환자를 만난 것은 82년도였다.
지인의 소개로 예수병원에서 삼십 대의 나이로 말기암을 앓고 계시는 돌볼 분이 없이 외로이 투병하시는 여성이셨다!
처음 환자를 뵌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사람이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환우복을 입은 백인같은 피부에 가녀린 모습은 흡사 천사와 같은 이미지로 다가왔다.
정말 돌봐 주시는 가족이 없었다.
당시의 저는 호스피스를 접해 보았거나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에 무조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몇번의 만남이 계속되고 부터 그녀가 자기의 이야기를 비치기 시작하셨다.
여고생 때 오빠의 친구를 사랑하여 임신하고 가족의 미움을 받으며 졸업과 동시에 결혼해서 아들을 두었는데 어느날 남편에게 여자가 생겨 버림받았단다.
어느날 방문했더니 잘 생긴 중년 남성과 부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방문해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전남편과 세컨드였는데 이런 아이러니가...
둘째 부인이 그녀보다 비교불가능한 외모를 가진 것이다.
아! 이렇게도 외도가 가능한 것이구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항암제를 맞으면 완전 탈모되었다가 다시 머리털이 나기를 몇 번 반복하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내가 일이 있어 전주를 두 주 동안 떠나있을 때 그녀는 "정말 고맙다!"는 전언을 남기고 하늘길을 먼저 떠나셨다!
지금은 그녀의 이름과 얼굴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가녀린 모습만 잔상으로 남아 있을 뿐...
"우리 이땅에서 미처 못다한 이야기를 천국에서 계속 하기로 해요! 아드님이 커서 지금은 사십 대가 되었겠네요!ㅣㅣ"
27. 호스피스 시절 2 - 27. 호스피스 시절 2
"목사님! 우리 어머니가 이상해요! 빨리 좀 와주세요!"
어젯밤 9시까지 대화를 나누었던 칠십 대의 위암 말기 교장 부인이시고 최근 예수님을 영접하신 분이셨다.
아드님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예수병원으로 달려가니 오전 9시!
이 시각에는 천사들이 도시락을 준비해서 출근으로 바쁘시기에 보통은 <귀향여행>을 출발하지 않는 시각인데?
"목사님! 어젯밤에 아기천사 둘이서 나를 델러 왔어요!"
"축하해요! 오늘 천국가실 거예요!"
"근데 목사님! 이상해요! 오늘 새벽 침대 맡에 키 크고 시커먼 놈이 서있어 누구냐고 했더니 저승사자래요! 목사님! 나 천국 가요? 지옥 가요?"
"오늘 온 저승사자도 진짜인데 할머니를 지옥으로 데려가려고 온 것이 아니고, 천국 갈 믿음이 있나 보려고 시험하러 온 거예요!"
찬양과 기도를 마치고 병원을 나섰는데, 얼마 안되어 전화가 왔다.
평안히 주무시듯 소천하셨다고!
할렐루야!
전주병원에 입원해서 투병 중인 환자 역시 칠십 대의 호스피스 환우신대 젊은 시절 한인물 하셨을 출중한 미모의 소유지이셨는데 죽음을 기다리시는 얼마안되는 할머니셨다!
얼마나 쾌활하신지 최장로님을 조금만 젊었으면 남친 삼고 싶다고 농담도 하시고...
식사를 못하신지 오래되셔서 거동을 못하시고 누워만 계시지만 같이 대화와 찬양과 기도를 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시며 오히려 우리 팀을 위로 하시다 평안히 소천하셨다!
"그럼 나보고 어쩌란 말이에요?"
오십 대 아들이 칠십 대 아버지가 대변을 일주일 정도 보지 못하고 불편감을 호소하시자 짜증이 나서 병실을 박차고 나가셨다.
"할아버지! 그것은 제가 전문가죠! 옆으로 누우세요!"
항문에 비닐장갑을 끼고 손을 넣어보니 주먹만한 떵덩어리가 돌덩이 같이 입구를 막고 있다.
간호사에게 얻은 관장약을 투입하고 한손으로 틀어막고, 왼쪽으로 눕게해서 배 전체를 시계방향으로
손으로 마사지 한 후 오분쯤 뒤에 손가락으로 떨어진 밤톨만한 덩어리를 이삼십여 개를 신문지 위에 놓았다.
그걸 보신 할아버지께서 "왕!" 하시며 눈물을 쏟으셨다.
그날 난 떵싸고 감격해서 우시는 사람을 처음 봤다! ㅋ
팔복동의 지인 전도사님 부부 부탁으로 장인어른을 방문했는데, 역시 대변을 못보셔서 어려움을 겪고 계셨다.
물론 전도사님 부부도 쩔쩔매시고...
예의 그 방법으로 변을 파내는데 어찌나 많이 나오는지 아마 세숫대야의 반은 찼으리라.
그들의 놀라는 표정이 잊혀지지 않았다!
진안의 한 산촌 마을을 방문했는데 방문을 여니 구린내가 진동해서 장 권사님을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먼저 들어가 주간에는 돌볼 이가 없어 변을 보면 종일 치우지 못하시는 편마비 환자의 변을 먼저 치워드렸다.
얼마 후에 지인들과의 대화 중
"변을 치우는 목사님의 손에서 예수님의 손을 보았다!"고.
앗싸! 할렐루야!
대구 옆 경산에 계신 환자 오라버니를 방문 요청이 있어 달려갔는데 널찍한 사과과수원 한곁에 이층 벽돌집을 멋지게 지은 부농으로 보였다.
마침 이층에서 손님을 맞고 계시는 오십 대의 환자의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가 얹혀 있었다.
삼십여 분이나 지났을까 아무말도 없이 한켠에 앉아있는 우리 팀에 관심을 가지셔서 다가가 소개했다.
"우리는 전주에서 소개받고 왔는데 선생님께서 평생 들어본 일이 없는 말씀을 들려드리러 하니 삼십 분만 주위를 물리쳐 주시라!"고 하니 주위를 물리치셨다.
부인과 팀원만 남은 상황에서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님을 보고 괜찮겠다, 회복되고 있다고 위로하는 말을 하시겠지만 저는 님께서 곧 직면할 죽음에 관해 말씀드리겠다"고 운을 뗐다.
그리고는 죽음의 의미와 임종의 과정, 환자와 가족이 겪는 심리 증상, 사후의 세계와 그 준비 등을 간결하게 말씀드리는 중간에 부인이 환자가 피곤하니 그만하라고 제지했다.
다음 순간 환자가 화를 내서며 나가있으라 하셔서 마무리를 지었는데 자신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시겠다고 하셔서 손을 잡고 간절히 영접기도를 드렸다.
집을 나서는데 가까운 곳에 교회가 보여 그 목사님께 전후사정을 전화로 말씀드리고 심방을 부탁했다.
첫심방 때 "나 이미 예수 믿어요! 천국갈 수 있어요!"
강한 확신을 가지셨다고, 그리고 한달 후에 평안히 소천하셨다는 전언을 들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