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의료기관평가위원회에 즈음한 보건의료노조의 입장
보건복지부와 의료기관평가위원회는 현장의 문제제기에 답해야한다!
- 2007 의료기관평가결과 의혹 해명! 평가제도 전면 개선 없는 2008 평가 추진 중단!
- 노동조합, 시민단체, 전문가가 참여하는‘의료기관평가 제도개선을 위한 TF팀구성’
- 적정 인력확보, 평가주체, 방식과 지표에 대한 전면적인 제도개선 없는 지금의 평가제도는 무의미
◯ 지난 22일 발표한 의료기관평가 결과를 둘러싸고 의혹과 문제제기, 파문이 커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하에서 그동안 연례행사로 진행되어온 의료기관평가위원회(이하 위원회)가 2008년에는 이례적으로 오늘(28일) 다시 개최된다. 지난 21일 개최된 위원회에서는 안건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심도 깊은 ‘2008 의료기관평가 계획 심의’를 하자는 취지로 오늘 한번 더 개최하기로 하였다.
◯ 그런데 지난 24일 임상 질 지표를 둘러싸고 병원 순위가 뒤바뀐 언론 보도로 인해 의료기관평가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5/24일자 복지부 보도자료에 의하면 ‘모성과 신생아 부문이 의료현장에서 왜곡 가능성 등의 문제점이 있어 제외하자는 의견을 들어 평가지표에서 삭제’되었다고 해명했다. 의료기관평가 관련해서 현장에서 왜곡 가능성이 있는 것이 비단 ‘모성과 신생아 부문’만일까?
의료기관 평가를 둘러싸고 병원 현장 곳곳에서 과잉, 편법 파행사례가 만연해 있다는 것을 이미 보건복지부도 알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등수 바뀐 것도, 그 이전 결과도 둘 다 믿기가 어렵다. 평가 기준와 방법 등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보니 결과를 제대로 신뢰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복지부가 자랑하는 평균 95점이 과연 제대로 된 95점일까?
‘임상 질 지표’ 관련한 파행 사례와 문제점에 대해 다시한번 짚어보자.
1) 폐렴 관련한 임상질 지표, A병원은 평가기간 동안은 지표대로 시행을 하다가 평가가 끝난 후 호흡기내과를 제외한 타과들은 평가전으로 되돌아갔다. 전형적인 ‘1회성 평가’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환자대상 금연상담 시행비율의 경우 상담이 어디까지 인지? 1분? 30분? 아무런 매뉴얼 없이 몇 분을 하는 건지 분명하지 않다.
2) 수술 감염 예방적 항생제 관련한 임상질 지표, B병원은 수술 전 1시간 이내 항생제 투여라는 평가 지표를 맞추기 위해 진료 기록 조작이 다반사로 발생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6개월전 자료까지 뒤져 지표에 맞지 않는 것을 수정하려다 보니, 초과 근무는 물론이고 진료 기록 조작까지 해야 했다.
3) 중환자실 관련한 임상질 지표, C병원은 지표 관련해서 누락되거나 잘못된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평가를 앞두고 퇴근 후에 간호사들이 의무기록실에 상주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평소 인력으로는 평가 지표에 맞는 업무 수행이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4) 모성및 신생아 임상질 지표, D병원은 제왕절개수술을 통해 아기를 낳은 산모가 힘들게 누워있음에도 불구하고 평가지표에 의해 아기를 시간대별로 모유수유를 시도하였다. 특히 이 지표는 제도설계 과정에서부터 전문가로부터 많은 문제제기를 받기도 했다. (다른 파행 사례는 2008.5.21자 보도자료 참고)
◯ 이미 의료기관평가의 신뢰성은 땅에 떨어졌다. 어쩌면 이것은 사업예산, 시간과 능력, 그리고 마인드가 부족한 상태에서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의료기관평가 결과 발표 직전에 중소병원은 제외되고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이 순위 안으로 들어온 것을 단지 ‘우연’이라고 치부하기는 힘들다.
외국처럼 평가기준이 3-4년 전에 나오고 의견수렴을 거쳐 1-2년 전에 확정되면서 의료기관이 그 기준에 업무 절차를 바꾸어나가면서 전산과 인력 모두가 준비된 상태에서 실력껏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 평가제도는 전혀 그러하지 못하다. 우리는 몇 달 전에 평가기준을 발표하고 의료기관은 몇 달 동안 벼락치기 반짝 쇼로 준비하다보니 현장노동자를 쥐어짜게되고 자료 등을 조작하게 된다. 그리고 평가가 끝나고 나면 모든 게 원점이 된다.
의료기관평가가 ‘의료기관의 의료서비스 향상을 도모하고, 적정 의료서비스 수준에 대한 공적 기준을 제시하여 의료기관의 자발적 질 향상 노력 유도 및 평가 결과를 공표하여 소비자의 알권리를 증진’이라는 목표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제도 개선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1) 의료기관평가위원회에 노조와 시민단체 참여를 확대하면서 법제화하고 정례화해야 한다.
현재 의료기관평가를 주관하고 있는 보건산업진흥원은 병원 현장을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해당사자들의 이해를 반영하다보니 평가 지표가 비현실적이며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평가 지표에 맞게 병원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간호등급 1등급이 아니라, 특등급’은 되어야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병원 현장에서 공공연하게 나온다.
공급자 정부 시민사회단체를 아우르고 있는 위원회가 보다 더 객관성과 현장성을 견지하려면 노조와 시민단체 참여를 확대하고 나아가 법제화를 통해 회의가 정례화 되면서 평가 주체, 방법, 지표 개발 등 의료기관 평가 전반을 지휘 감독해야 한다.
2) 병원 인력 확보가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80%의 병원이 간호등급이 7등급인 것이 현실이다. 현실과 맞지 않는 평가 지표로 직원을 ‘쥐어짤 것’이 아니라 병원 인력 확충 방안을 유도할 수 있는 평가방식을 개발하여야 한다.
3) 신뢰받을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
특히, 진료 질을 높이고 평가를 받은 병원 어느 곳을 가든지 신뢰하기 위해서는 표준진료가 가능한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임상 질 지표를 만들어야 한다. 의료기관평가가 진료 질을 개선하는 유인책이 되어야 하는데, 진료 기록 조작을 하고 평가가 끝나면 원위치 되는 현재의 평가 지표로는 평가를 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
4) ‘줄 세우기 식’ 평가 결과 발표는 재고되어야 한다.
의료기관평가 본연의 목표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00병원 몇 위’ 하는 식의 평가 결과는 의미가 없다. 인증 방식 등을 통해 의료서비스가 떨어지는 병원들의 서비스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유도해야한다.
5) 근본적인 제도개선에 나서야한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평가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공정한 3자에게 연구프로젝트 의뢰, 평가 주무기관 교체, 예산 확충 등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 현재 8-9억의 예산으로는 평가지표 개발과 현지 실사, 설문조사 등을 내실 있게 수행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러다보니 2007년 일부에서 현지실사과정에서 향응접대 사례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곧 2008 의료기관평가가 시작된다.
올해 평가 대상은 260병상 ~ 500병상의 의료기관이다. 2007년과 비교했을 때 현행 의료기관평가 지표와 더욱 거리가 먼 의료기관들이다. 비록 2주기 의료기관평가가 진행되고 있지만 중소 규모 특성에 맞는 평가 지표를 만들어야 한다. 즉,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과도한 평가 기준은 삭제되어야한다.
이를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오늘 위원회에서는 ‘의료기관평가제도 개선을 위한 T/F 팀’ 구성을 결의하고, 팀원들은 8 ~ 10인 이내로 구성하되 평가위원회 추천을 받아 확정한다. T/F 팀은 5월 28일부터 7월 27일 까지 2달 동안 그동안 제기된 의료기관평가제도 관련 개선방안을 마련하여 의료기관평가위원회에 보고하고, 의료기관평가위원회는 이 보고서를 기초로 2008 평가계획을 확정한다.
1,2 주기 6년을 지나 3주기 의료기관 평가 시행도 얼마 남지 않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준비를 미리미리 철저히 해야 한다. 3주기 평가는 지난 1ㆍ2주기와는 질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어설프게 시작한 평가제도로 인해 국민들과 병원노동자들은 졸지에 ‘모르모트’로 전락시키게 된다. 그동안 의료기관평가 관련한 정부ㆍ공급자ㆍ시민사회단체 등 각 주체들이 제기한 문제점을 바탕으로 하여 신뢰받을 수 있는 평가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고 복지부 의료제도과와 각 과에서 각각 시행하는 평가제도, 심평원 급여평가과에서 시행하는 평가제도 등을 하나로 묶어 바람직한 의료기관 평가 제도를 설계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별도로 T/F 팀을 만들어 적극 대응책을 내놓아야한다. 새로운 T/F 는 기존의 진흥원과 병협 주도가 아니라 새로운 전문가와 공익등이 적극 나서서 새 판을 짜야한다.
올해 평가를 받을 예정인 몇몇 의료기관에서 벌써부터 평가준비에 대한 고통 때문에 현장 노동자가 평가 전에 병원을 사직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정부는 불필요한 혈세를 낭비하고, 병원 직원에게는 엄청난 노동강도로 고통을, 국민에게는 잘못된 허위정보를, 의료기관은 편법 운영과 과잉대응을 하게 만드는 현재의 의료기관 평가제도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의료기관평가가 제도 개선없이 현재와 같이 파행과 편법으로 진행된다면 보건의료노조는 평가 전면 중단을 요구하며, 대정부 투쟁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혀두는 바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시기이다. 마지막으로 보건복지부의 열린 자세와 개선 노력을 다시한번 기대한다.
보건의료노조
2008년 5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