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빙심옥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에 백로처럼 고고하게 살겠다고 나름대로 크고 당당한 포부를 지녔던 나는
중년이 된 어느 날 뒤돌아보니
겁 많고 소심한 말단 공직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부도 못하였지만 그렇다고 입바른 소리도 하지 못하면서 어정쩡하게 살아온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한시 전시장에서 중국 당나라 시인 왕창령의 시 '부용루송신점'을 만나게 되고, 또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에서 제가 좋아하는 시구는 일편빙심재옥호인데, 그 중에서도 빙심옥호(氷心玉壺)가 마음에 쏙 들어 족자로 만들어서 거실 벽에 걸어놓고 가훈처럼 생각하며, 맑고 깨끗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芙蓉樓送辛漸(부용루송신점)
寒雨連江夜入吳(한우련강야입오)
平明送客楚山孤(평명송객초산고)
洛陽親友如相問(낙양친우여상문)
一片氷心在玉壺(일편빙심재옥호)
부용루에서 신점을 전송하며
찬비 내리는 강물 따라 밤에 오나라 땅에 들어왔는데
이른 아침 벗을 떠나보내니 초나라 산이 외롭게 보이네.
낙양의 벗들이 만약 내 안부를 묻거든
한 조각 얼음 같은 마음 옥항아리에 있다 전해주게.
王昌齡(왕창령)의 시 '부용루송신점'입니다.
왕창령이 죄를 지어 귀양살이를 할 때, 오나라에 있는 부용루라는 누각에서 낙양으로 가는 친구 신점을 만났습니다.
부용루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신점이 낙양으로 갈 때 같이 가지 못하고 헤어짐을 안타까와하면서 낙양에 있는 친구들에게 자기 마음을 전해 달라면서 지은 시라고 합니다.
친구 신점과 헤어지는 송별시지만,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다기 보다는 자신의 인격이 높고 절개가 곧음을 읊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나고 헤어질 때의 정경과 부용루에 올라 멀리 바라다 본 초나라 땅에 대한 그리움이 들어 있습니다.
이 시의 백미는 마지막 구절 일편빙심재옥호(一片氷心在玉壺)에 있는데,
직역하면 ‘한 조각 얼음 같은 차가운 마음이 옥항아리 안에 있다’로 읽혀지지만,
이 시에서 담고 있는 뜻은 ‘一片氷心’을 ‘아주 맑은 마음’으로 ‘玉壺’를 ‘티 없이 깨끗한 옥항아리‘로 비유하여
‘아주 맑은 마음이 티 없이 깨끗한 옥항아리 안에 들어있다’로 해석됩니다.
한 마디로 ‘지조 있는 맑고 깨끗한 마음’을 이야기 합니다.
벼슬하면서 많은 난관과 좌절을 경험했지만,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시류에 휩싸이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절개가 굳고 올바름을 알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삶이 차갑고 고독하여 애절함까지 느끼게 합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귀양살이 중에도 맑고 깨끗하게 살고 있으니 빨리 낙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친구들이 도와주게’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정월대보름 세시풍속인 '귀 밝이 술'에 대한 밝고 맑은 이야기를 하다보니 부용루송신점까지 와 버렸네요.
오늘도 밝고 맑은 마음으로 많이 웃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