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은 숲에 둘러싸여 낟알이 익어가는 벌판을 바라보고 있다. 자리에 앉으면 창밖에는 초가을 햇살 아래 벼들이 물결처럼 바람에 일렁인다. 이성부의 시 '벼'가 입가에 맴돈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바람 한 점에도/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벼가 떠나가며 바치는/이 넓디 넓은 사랑…"
이런 여유를 시샘하듯 바로 음식이 차려진다. 콩가루.찹쌀가루 등을 섞어 쑨 죽이 먼저다. 생과일을 갈아 숙성한 소스의 야채샐러드와 물김치가 함께 나온다. 세 차례 차려내는 1만5000원짜리 정식의 애피타이저다.
두 번째는 일품요리들. 두부김치.비지전과 비지 단호박 탕수, 3색 녹두묵 채, 감자 국수, 콩떡, 오리 훈제쌈 등이다.
묵 채를 제외한 다른 음식에는 쥐눈이콩이 들어갔다. 일명 약콩. 예부터 우리 민족의 아픔을 달래 준 약용작물이다. 두부도, 훈제 오리 찍어 먹는 소스의 베이스인 막장도, 비지도 콩에서 나왔다. 생감자를 실처럼 채 쳐 끓는 물에 살짝 담갔다 찬물에 헹군 감자국수는 숙성시킨 과일즙과 콩가루를 섞은 소스에 비벼 먹는다. 가닥가닥 씹히는 감촉이 아삭아삭하다.
마무리로 밥상이 나온다. 콩을 두어 지은 밥과 그 솥에서 끓여낸 누룽지.된장찌개(빠글빠글 끓였대서 이름이 빠글장), 비지장, 묵은 김치 된장찜, 깻잎 장아찌, 콩나물 무침, 콩자반, 부추 콩가루찜, 북어 고추장 구이 그리고 김치와 나물 두어 가지가 차려진다.
김치와 나물을 빼면 모두 콩이 들어간 음식이다. 깻잎 장아찌는 된장에 박아 익혔고, 북어는 고추장을 발라 구웠으니 모두 콩(메주)의 덕을 본 찬품이다.
고양시 원당 벌판 1800평 너른 땅에 자리 잡은 쥐눈이콩 전문음식점 '동트는 농가'의 상차림이다. 차려진 음식에서 알 수 있듯이 보통의 한정식과는 많이 다르다. 퓨전인데 낯설지가 않다. 대부분 음식엔 쥐눈이콩이 들어간다. 화학조미료는 안 쓴다. 그래서 맛이 고소하면서 입이 편하다. 깔끔하고 경쾌하다. 집에서 잘 차려서 먹는 느낌이다.
콩은 원산지가 한반도와 만주 일대다. 고대 우리 민족의 생활 터전과 같은 지역이다. 그러니 콩과 한민족은 물과 물고기 같은 사이가 아닐 수 없다. 산악지형이 많아 초지가 적고 겨울에는 풀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육류 생산이 어려운 한반도 자연환경에서 생존의 필수요소인 단백질의 대부분을 우리는 콩에서 섭취했다. 콩이 없었다면, 영화나 인류학 교과서에서 본 것처럼 굼벵이나 다른 곤충이 그 일을 대신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콩이 매우 훌륭한 식품인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쥐눈이콩은 옛날부터 약으로 쓰였다. 옛 의서들에 기록된 효능을 보면 만병통치약에 가깝다. 많은 효능이 최근 의학적으로 규명, 입증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약이 흔해지자 종자마저 간 데 없게 됐다. 몇 년 전 정선군에서는 야생 종자를 채취해 증식시켜 농업개방에 대비한 특용작물로 농가에 보급했다. 그로부터 쥐눈이콩영농조합 '동트는 농가'가 출범했고, 원당의 이 집은 그 조합의 하나뿐인 특약 판매장으로 올 초 문을 열었다. 8개월밖에 안 됐지만 수도권의 콩요리 전문점으로는 이미 손꼽히는 명소가 됐다.
첫댓글 좋는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