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동의 산행별곡 1 / 산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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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의 ‘작품’(1989)(국립현대미술관). |
산을 찾아 갑니다.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신의 말씀을 들었고
예수는 다볼산에서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석가모니는 영축산에서, 공자는 태산을 중심으로 설과 철학을 전합니다.
산은 하늘과 닿아있는 땅의 모난 점입니다.
달마는 숭산의 동굴에서 9년을 기도하며 선(禪)에 들었습니다.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성철스님은 가야산에서 존재의 허와 실, 그 공의 세계를 거닐었습니다.
산은 '있음'의 한 그림자이며 물은 끝없는 '변화'의 한 흐름입니다.
중국글자의 상형에서 山은 그런 화산(華山)의 봉우릴 그린 것입니다.
산과 산 사이로 물이 흐릅니다.
백락천(白樂天 唐代시인)도 세상을 떠돌다 향산(香山)에 들어가 몸을 맡겼습니다.
바람 한 자락을 벗하여 술을 마셨고 구름을 보며 노래불렀습니다.
그러다 생의 옷을 바꾸어 입은 시인입니다.
산을 통해 하늘과 산이 이어져있습니다.
산을 안고 춤추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깎아지른 바위산에 외가닥 줄을 걸고 생명의 춤을 춥니다.
사랑하듯 한바탕 살아있음의 거친 숨소리를 산과 나눕니다.
천길 얼음벽 한가닥 줄에 매달리면 공포와 더불어 또 다른 쾌감이 있습니다.
‘키리만자로 산꼭대기에서 얼어 죽은 한 마리 표범’처럼 포효하다 죽기도 합니다.
에베레스트에서 한국의 산사나이 고상돈도 서른 나이에 갔습니다.
산 그림자와 소리를 즐기며 삽니다.
산은 변하는 빛 사이로 뭇 생명의 소리를 연주합니다.
아침의 빛이 저녁의 빛과 다르며 낮의 소리가 밤의 소리와 또 다릅니다.
산이 그림쟁이를 만들고 음악가를 만듭니다.
유영국화백은 산을 삼각형과 자신의 색깔로 재생시킨 화가였습니다.
‘유영국의 산’ 속엔 산보다 더 화려한 생명이 담겨있습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엔 잘츠부르그의 산과 호반의 새소리가 들립니다.
혼자서 때로는 벗과 더불어 산길을 걷습니다.
오르면 내려가야 하고 내려가면 다시 또 올라가게 됩니다.
산길따라 삶의 음양을 배우고 헤쳐가는 리듬을 익힙니다.
정상을 향하지만 정상은 겨우 반환점임을 압니다.
희망과 좌절을 반복하며 그걸 즐깁니다.
저는 지금 배낭 하나를 지고 산길을 걸어갑니다.
잠시 바위에 걸터앉아 물 한 모금 마시며 숨을 고릅니다.
나무가지를 흔들고 가는 바람소리를 즐깁니다.
산은 숲이기도 하고 하늘이기도 하여
어미의 품으로 연인의 가슴으로 저를 받아줍니다.
황산에 가면 하늘에 산이 둥둥 떠다닙니다.
구름바다(雲海)에 둥둥 떠다니는 자신을 봅니다.
날아다니는 산산산, 산이 되어 떠다니는 나를 발견합니다.
빈 배낭, 빈 사내가 산을 내려옵니다.
(1969년 10월. 내설악 죽음의 계곡을 오를 때, 비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