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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소리터 어울 한마당 성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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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밤 쌍암동 월영마을 샘소리터에서 정읍 풍류객들과 이리풍류객들이 만들어 가는 어울 한마당이 열렸다.
월영마을 샘소리터는 지난해 샘기픈소리 정악단의 단장인 김문선씨가 집 한쪽편에 풍류방을 지어 지난해 6월 말 완공하고 샘소리터라고 명명한데 기인한 것이다.
이번 행사는 지난해 10월 말 샘소리터에서 처음 시행되어 성황을 이룬 어울 한마당에 이은 또다른 어울마당 두 번째 행사이다. 이날 행사에는 정읍에 새롭게 둥지를 튼 시인 유종화씨를 비롯한 익산의 남상숙박사와 전주도립에 몸담고 있는 풍류객들이 대거 참여해 행사를 빛냈다. 샘소리터의 어울 한마당은 2번째 행사였지만 그 의미는 매우 깊다. 호남의 줄 풍류로 불리는 영산회상을 중심으로 한 율객들의 합주가 샘소리터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샘기픈소리 정악연주단은 한때 김문선씨가 몸담았던 초산음률회의 구전으로 전승되는 구음 위주의 무 악보 형태에서 전승되는 풍류의 일관된 음을 찾아 악보로 정리하는 작업과정에서 탄생한 정악단이다. 익산과 구례, 군산, 대전을 오가며 향제 줄 풍류가 전승되어 연주되는 지역들을 찾아 구음을 악보로 정리하던 과정이던 1988년, 나름의 이견이 있어 김문선씨가 새롭운 정악단을 만든 것이다. 과거 추산 전용선선생이 걸었을 율객들의 행보를 떠 올려 보면 마땅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추산 선생의 행보를 생각하기에 앞서 김문선씨의 행보를 지켜보면 나름의 밑그림이 그려지곤 한다. 그것은 김문선선생이 스승들의 길을 답습하듯 걷고있기 때문인데 그런 행보를 위해 영산회상으로 대변되는 향제 줄 풍류의 전곡 9곡을 연주 하는데 필요한 연수생들을 만들어 가는 역활과 그렇게 전수된 기능을 활용해 풍류를 함께 즐기는 모습은 과거 율객들이 걸었던 모습으로 떠 올려지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김문선 선생을 찾아 ‘영산회상’ 9곡을 연주하는데 갖추어야할 거문고, 양금, 대금, 해금, 가야금, 단소, 피리, 장고, 아쟁 등의 악기를 배우고 연주했던 연수생들이 수없이 많았겠지만 실질적으로 연주하며 즐기고 정읍에 남아 오늘날 풍류객으로 만들어 놓기 까지 결코 만만찮은 시간과 노력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각기 다른 악기로 각기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한 일대일 교육이 몇년에 걸처 꾸준히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듯 어렵게 전승되는 국악의 현실은 현대음악에 밀려 그동안 사장되며 전승의 맥이 끊길 뻔하기도 했다. 정읍 정악의 맥은 나름대로 샘기픈소리, 초산음률회와 수제천 정악 연주단 등에서 근근이 이어져 오고 있지만 정읍의 3곳 정악 연주단들 모두 크게 활성화 되지는 못했다.
정읍풍류의 역사에 나타나 있듯 과거 빈곤했던 풍류객들은 이곳 저곳 각 지방을 떠돌며 잔치 집에 초대되면 악기 하나로 전체 좌중의 심금을 울리며 떠돌기 일쑤였다. 국악인들의 그런 현실이 정읍이라고 예외가 아니지만 정읍의 이러한 국악계의 현실을 꽤뚤어 보듯 그에 적합한 해법을 김문선씨는 어울 한마당에서 찾아 가고 있는 듯 하다. 과거에도 그런 국악 현실을 내다보고 문호를 열어 풍류객들의 안위를 돌봤던 사람이 있다. 바로 정읍의 대부호 김평창과 그의 둘째아들 김기남이 그들이다.
전계문, 전추산, 편재준, 김환철, 이기열, 김영수, 김문선으로 이어지는 정읍 향제 줄 풍류의 맥은 위의 김평창과 김기남의 노력으로 그 남아 나름의 명맥이 이어질 수 있었다. 일찍이 정읍의 기라성 같은 풍류객들을 상대로 풍류를 배우고 악기를 배우며 활성화 하고자 했던 구례의 대부호 김무규와 익산의 대 부호들은 이런 정읍의 풍류객들이 그곳에 정착하기를 소망했었다.
오늘날 정악의 메카로 불리는 익산과 구례풍류는 그런 지역들의 대부호들이 초청해 그곳에 정악을 전하게 한것에 기인한 것이다. 그렇게 각지로 흩어진 정읍의 율객들은 각지에 제자를 두었지만 같은 스승들이 전했던 곡을 각기 다른 지역의 율객들이 만나 연주하며 즐기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듯 각지에 흩어져 있던 나름의 풍류객들이 샘소리터의 어울 한마당 풍류판에 모습을 나타냈는가 하면 그들과 어우러지는 꿈같은 모습을 연출해 좀처럼 보기힘든 장면들을 보여줬다. 현재 다각도로 도차원의 향제풍류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를 정리해 가고 있는 것도 김문선씨의 남다른 노력 중 한 부분이다. 나름의 독자적인 입장으로 향제 줄 풍류의 구심점이 되고있는 정읍향제풍류의 자료를 구축해 외부 연구진들의 정읍방문에도 구축된 자료를 제공해 주는 역활도 해오고 있다.
(기자생각) <김문선씨는 외부에서는 각광받는 정읍풍류가 정작 정읍내부에서는 각광받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극복하기 위해 김문선씨가 독자적으로 자신의 집 한쪽편에 풍류방을 지어 자신의 스승들이 걸었던 방식 그대로 제자들을 길러내는 한편 풍류방을 통해 율객들과 기호계층을 수용, 과거 정읍의 대부호 이자 국악 애호가 이던 김평창이 만들어 갔던 정읍 향제 줄 풍류의 전성기를 다시 만들어 보고자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샘소리터의 방향은 작지만 큰 힘으로 작용되어 공동체를 이루고 문호를 열어 풍류방으로 표현되는, 모두가 주인되는 넓은 수용력으로 차인들을 비롯한 함께 하고자 하는 샘소리터의 모든 풍류 마니아들이 찾는 더 넓은 풍류방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데 그 취지를 두고 있다. 이들 샘소리터 풍류객들의 움직임과 활동은 인터넷 카페를 통해 엿볼 수 있다.(http://cafe.daum.net/samsoriplace) |
첫댓글 기사 고맙습니다. 샘소리터 완공일을 정확히 5월 30일입니다. 기사마다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공부 많이 하셨습니다.두루 관심가저 공부하시니 보기가 좋아요.
어 야
어 야
어 야
어 야
아이고 그렇군요. 다시는 실수 않겠습니다. 용서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