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S대학교에 재학 중인 임모(21)씨는 고교 3학년 때 1차 수시모집에 합격한 이후부터 학교에 간 기억이 없다. 서울 압구정동 소재 A고교에 다니던 그에게 더 이상의 내신과 학교수업은 무용지물이었다. 이미 갈 대학이 한 곳은 결정된 상황에서 임씨에겐 더 나은 학교를 가기 위한 2차 수시전형을 준비하는 일이 더 시급했다.
“수시전형을 위해 제일 시급한 건 논술이었고 성적도 3학년 1학기까지만 반영돼 더 이상 학교 수업을 듣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학교 보충수업에 논술 시간이 있긴 했지만 학원특강에 비해 양과 질 모두 턱없이 부족했죠.” 학교에 빠지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임씨는 “병원에 가서 5000원만 내면 진단서를 쉽게 내줬고 가끔 엄마가 선생님께 전화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제가 다니던 학원엔 논·구술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부산에서 올라온 친구도 있었어요. 특강이 매일 오후 5시에 시작되는데 부산에서 그 시간에 맞춰 올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시험 2주 전 아예 서울로 올라와 자취를 하며 수업을 듣더라고요.”
학교 수업을 공공연하게 빼먹는 일은 비단 대입을 앞둔 고3 교실의 풍경만은 아니다. 서울 대치동 D중학교 교실에선 시험기간을 며칠 앞둔 시점부터 수업을 듣지 않고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 속출한다. 전날 새벽까지 계속되는 학원 수업을 듣느라 제대로 자지 못한 아이들이 수업시간을 틈타 눈을 붙이는 것이다. 이 학교 3학년 오모(15)군은 “자는 아이들, 떠드는 아이들이 뒤섞여 있다 보니 시험 기간의 수업은 항상 어수선해 집중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매년 졸업생의 3분의 1 정도가 외고 등 특목고에 진학하는 경기도 내 B중학교에선 지난해 외국어고 일반전형 필기시험을 앞둔 10월 초 한 반에 평균 3~4명이 결석을 했다. 시험을 준비한다는 핑계로 학생들이 대거 학교 수업 대신 학원 특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결석 부추기는 사회
걸리지 않고 결석하는 법! 인터넷에 기상천외 비법 소개
학부모가 ‘법망 피하는 법’ 올리기도… 학교·교사 속수무책
일부 학생들은 시험 준비 등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결석을 밥 먹듯 한다. 학교의 감시망을 피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 검색창에서 ‘학교 결석하는 법’을 검색하면 기상천외한 결석 요령을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white_50435’란 아이디를 쓰는 한 네티즌이 ‘학교 결석하게 도와주세요’라며 올린 글엔 ‘아픈 체하라’는 고전적 대응법은 물론, 장염이나 식중독처럼 ‘아프긴 하지만 치료가 쉬운 질병’에 걸리는 방법까지 올라와 있다. ‘라면 2개를 누워서 먹어라. 상한 음식을 먹는 것도 좋다’(아이디 ‘khatnim’)처럼 자칫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내용이 버젓이 제시되기도 한다.
일러스트 유재일
자신을 ‘두 자녀를 둔 학부모’라고 밝힌 김모씨의 홈페이지엔‘학교에 안 가도 결석이 아닌 때’란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이 글은 학교보건법 등의 법령을 기준으로 했을 때 출석으로 인정되는 결석을 사례별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요즘 학생들의 결석은 더 이상 불량 학생이나 문제아의 전유물이 아니다. 예전 결석의 상당수가 우발적이고 ‘저지르고 보자’는 심리에서 비롯됐다면 최근의 결석은 다분히 계획적이고 합리적으로 이뤄진다. ‘결석 가능 사유’와 ‘출석일수가 수업일수의 3분의 2 이상이면 수료 가능하다’와 같은 학칙을 교묘하게 이용해 이를 어기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결석일수를 늘려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군이 좋을수록, 성적이 우수한 학생일수록 발생횟수가 점차 느는 추세다. ‘학교교육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학교는 문제되지 않을 만큼만 나가고 나머지 시간을 사교육 등에 최대한 활용해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학부모까지 나서서 이뤄지는 고의적인 결석 사태 앞에서 사실상 학교와 교사는 속수무책인 실정이다.
결석하는 학부모·학생의 생각
학부모 “수준 차 고려 않는 공교육보다 개인학습이 효율적”
학생 “어차피 자습만 하는 시험기간엔 학원 특강이 더 도움”
임씨의 어머니 안모(49)씨는 딸이 결석했던 것에 대해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학생의 수준 차를 고려하지 않은 채 획일적으로 짜인 룰 안에서 이뤄지는 현행 공교육에서 배우느니 차라리 개인학습을 시키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안씨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데는 자신이 학창 시절 경험한 무력한 공교육에 대한 불신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이 때문에 안씨는 담임교사에게 직접 전화해 딸의 결석을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만 그는 “학교가 정한 최소수업일수는 지키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서울 Y대에 재학 중인 최모(21·서울 강남구 대치동)씨는 고교 시절 전교 1~2등을 놓친 적이 없는 우등생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내신성적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직전 일주일은 항상 질병결석계를 냈다. 학원에서 마련한 시험 대비 특강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 기간엔 학교에 가도 배우는 게 없어요. 선생님들이 수업을 전부 자습시간으로 돌려 버리거든요. 산만해서 집중도 잘 안 되는 교실에서 자습하느니 집에서 공부하거나 학원 특강을 듣는 게 훨씬 생산적이에요.” 일주일씩 결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방법만 찾으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부모님과 친분 있는 의사를 통해 진단서를 끊었더니 아무 문제 없더라”는 게 최씨의 설명. 그 역시 결석하는 데 부모님의 도움을 받은 셈이다. 그는 “나 같은 방법으로 결석하는 애들은 너무 많아 특별할 것도 없다”고 덧붙였다.
교실에 남은 학생들 생각
“돈 많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결석해도 되나…”
교실 안 위화감 조성하고 공교육 근간 흔들어
대학 입시 설명회에서 한 유명 학원 대표의 설명을 듣고 있는 수험생과 학부모들. /photo 조선일보 DB
학생들의 잦은 결석은 경우에 따라선 공교육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학생이나 학부모는 결석을 한없이 가볍게 여기고, 학교와 교육당국은 ‘그래도 규칙을 어기는 건 아니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서울 목동 Y중학교 황모(51) 교사는 “매년 특목고 입시 시즌만 되면 중3 학생들의 결석률이 높아지는 현상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요즘 결석은 학원 수업 수강이 그 원인인 경우가 많은 만큼 성적이 우수한 학생, 부유한 학생 중심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 교실에 남는 건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은 중·하위권 성적의 학생들이지요.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학생들 사이에서도 위화감이 조성되고 격차는 계속 벌어져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선 이미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자신을 중3 학생이라고 밝힌 ‘긴파치센세’란 아이디의 한 네티즌은 인터넷 포털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결석이 횡행하는 현재 학교 현실을 개탄하는 글을 올렸다. “…우리 반에도 특목고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대부분 과목당 몇 십만원씩 하는 고액과외를 받거나 학원에 다닌다. 과학올림피아드 등을 준비한다며 무단으로 결석하고 그 시간에 공부하는 아이들도 있다. 얼마 전엔 그 친구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지를 풀고 있더라. 수능시험은 고3들이 보는 것 아닌가? 그걸 보니 ‘특목고에선 이미 중학교에서 배우는 것 이상을 요구하는 모양이다’ 싶더라. 도대체 학교는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정부·전문가들은
“파행수업 막자” 내신 반영 3학년 1학기까지서 전 학기로
전문가 “정책 고친다고 해결 안돼…입시위주 교육을 바꿔야”
서울시교육청은 3학년 1학기까지의 내신만 반영했던 특목고 입시전형을 대폭 수정, 올해부터 2학기 기말고사까지 반영하도록 했다. 경기도교육청 역시 3학년 1학기까지의 내신성적만 반영하면 됐던 작년과 달리 올해부턴 적용 시점을 ‘3학년 2학기 중간고사까지’로 연장했다. 입시에 반영되지 않는 기간의 학교 수업이 파행으로 치닫는 상황을 막기 위한 정부 차원의 고육지책인 셈이다.
교육과학기술부 학교제도기획과 이근표 연구사는 “입시 대비를 노린 결석이 늘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29일 ‘고등학교 운영개선 및 체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며 “올해부터 중·고교를 막론하고 전 학년 전 학기의 성적이 내신에 반영되도록 한 것 역시 교실 수업 정상화를 위한 방안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연구사는 “최근의 결석 증가는 정책을 뜯어고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며, 선의의 취지로 만들어놓은 결석계를 학생과 학부모가 악용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라고 말했다.
결석을 밥 먹듯 하는 이런 현상의 원인은 학생과 학부모일까, 아니면 정부의 교육정책일까. 이에 대한 전문가의 입장은 다소 엇갈린다. 문용린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부모가 먼저 자기 철학과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 교수는 “대학입시 대비용 논술학원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우리나라 사교육은 분명 문제”라며 “부모부터 무분별한 사교육에 휘둘리기보다는 미진한 학교 공부를 보충하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사교육을 현명하게 활용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성기선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이나 학부모의 자세를 탓하기에 앞서 입시제도의 틀부터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성 교수는 “입시 위주 교육제도와 학벌 중심 사회 구조, 무기력한 공교육 체계를 그대로 둔 채 당위적 논리만으로 ‘결석하고 학원 가는 아이들’을 막을 순 없다”며 “사교육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학생과 학부모의 현실을 이해하고 그 문제를 근원부터 해결하려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첫댓글이러려고 자식 특목고 준비시키는 학부형들 중1 입학 때부터 학교 봉사 등 학교 선생님들께 잘 보이려 한다는데요 ... ... 선생님께 잘 보여야 3ㅡ2학기 급할 때 결석해도 눈감아 주시니까요 ... 물론 아이들 학교수업 시간에 학원 수강시간 잡아놓은 학원들 뻔뻔함에 기가 막히지만요 ...
첫댓글 이러려고 자식 특목고 준비시키는 학부형들 중1 입학 때부터 학교 봉사 등 학교 선생님들께 잘 보이려 한다는데요 ... ... 선생님께 잘 보여야 3ㅡ2학기 급할 때 결석해도 눈감아 주시니까요 ... 물론 아이들 학교수업 시간에 학원 수강시간 잡아놓은 학원들 뻔뻔함에 기가 막히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