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지방선거를 보며
김순진
소란스러웠던 지방선거가 끝났다.
그러나 당사자와 선거사무 관계자들만 소란스러웠고 관심이 있다고 할까 일반인에겐 거의 잊혀진 선거였다. 전국의 투표율이 51.6%로 지난 4년 전의 선거 때보다는 2.7%높아졌다고는 하나, 서울의 투표율이 49.8%로 50%를 넘기지 못하였다. 이는 광역단체장과 광역의원,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을 뽑는 4대선거로는 이해 못할 수치이다. 국민들이 얼마나 정치에 식상했으면 그 많은 선거용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명함이 떨어져 굴러다녀도 그 정도밖에 투표를 안했을까?
우리나라에서 과거처럼 90%를 육박하는 투표율은 기대하기 어렵다 할지라도 최소한 60%를 넘겨 낙제점수는 면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같은 투표율에는 정치인이나 유권자 둘 모두에 책임이 있다.
우선 정치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다.
선거기간 중에는 바른 정치를 한다고 약속한 사람들이 선거가 끝나면 업무의 전문성은 뒤로하고 하나같이 브로커가 되고 중개업자가 된다. 검은돈과 연루되어 연일해서 쇠고랑을 차고 구속되는 정치인을 보면 참으로 한심스럽다. 또 한 가지는 서민경제가 10여 년째 바닥을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이래로 구청만, 지방정부만 배부른 세상이다. 우선 청사나 의회 사무실부터 크게 짓고 보자는 심산이다. 선진지 견학이라는 미명하에 외국 여행부터 하자는 심산이다. 서민에게는 없던 세금이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쓰레기봉투 제도를 만들어 ‘쓰레기봉투를 사라’하고 실제로는 아무렇게나 쓸어 담아간다. 입간판에도 세금이 붙었다. 잠시잠깐만 주차해 놓으면 언제 붙였는지 모를 주정차 위반 스티커가 붙는다. 그러나 주민을 위한 행정이라 하지만 별로 달라진 걸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점점 더 정치를 불신하게 되고 ‘누가 해도 그놈이 그놈’이란 소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유권자들도 화살을 피해 갈 수 없다.
지난 1기 지방선거 때 고양시에서 당선한 지방의원의 한 사람은 의원직이 끝날 때까지 똑같은 말을 들어야만 했다는 고충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투표율이 고작 26%였는데 당선자는 겨우 500표도 안 되는 표로 당선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의원이 의회에 나가서 얼마나 힘을 쓰겠는가? 대다수 사람들은 선거일이 가까워지면 “투표는 해서 뭐해. 나 이번에 등산 갈 거야.”하며 산으로 들로 놀러나간다. 그런 사람들이 무슨 지방정부나 정치인들한테 요구할 수 있는가? 최소한 내 동네 지방의원 후보자가 누구누구고 광역의원 후보자가 누구누구인줄은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정치인이 밉던 싫던 내 할 도리는 하고 나서 비판해야 옳지 않은가?
이번 선거기간 중에 보이는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지난 번 지방선거까지는 기초의회 의원은 정당공천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정당 공천제가 되니까 특정 정당의 후보자는 무조건 당선권에 들었고 중선거구제를 채택하였기에 한 정당에서 두 명 모두 당선하는 해프닝도 낳았다. 물론 한 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중선거구제를 채택한 것에 대하여 일리가 있는 생각이다. 나는 이에 대하여 반대한다. 아니 기초의회는 그러나 최소한 기초의회 의원이라면 한 행정구역 중에 하나를 뽑는다든지 아니면 두 행정구역에서 하나를 뽑으면 좋겠으나 세 개 행정구역에서 두 명을 뽑는 일은 결과적으로 그 동 출신 의원을 배출하지 못하는 소외지역을 만들게 된다.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제에 대하여 반대한다. 선거 때만 되면 조용하던 마을에 패가 갈리고 수군수군 그야말로 원수지간이 된다. 광역의회야, 광역단체장이야 큰 규모의 예산을 심의하고 감독하니 정당공천은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기초단체 의원의 공천으로 말미암은 특정 정당의 싹쓸이 당선, 또는 그 당선자들이 속한 정당의 기초단체장에 대한 감시와 감독이 얼마나 확실하게 이루어질 런지에 대하여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이다. 기초의원의 비례대표 공천에 대 대해서도 반대한다. 기초의원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동네의 일꾼을 뽑는 것이다. 그런데 책임은 없고 발언권만 있는 비례대표는 무슨 소용인가? 정치권에 기초의원을 비롯한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을 배제하는 공선법의 재개정을 촉구한다.
없어졌던 현수막이 왜 또 등장했는지에 대하서도 의문이다. 유권자들은 누가 어느 분야로 출마한 후보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서울시장 후보의 현수막 위에 구의원 후보의 현수막이 걸려 있는가 하면 지방의원 현수막과 광역의원 후보 현수막 나란히 붙어 있기도 하고, 구청장 후보 현수막이 서울시장 후보 현수막과 나란히 걸리기도 한다. 구분도 없고 통일성도 없다. 그런 상황 하에서 정확하게 후보자를 가려내는 건 정말 헷갈리는 일이다.
선거 사무실의 현수막은 왜 또 그렇게 무제한으로 허용하였는가? 어떤 이는 20층 건물에 수 십 미터나 되는 현수막을 내걸었던 것을 보았다. 낙선하여도 기분은 좋을 것 같다. 언제 그렇게 자신의 이름과 사진을 크게 내걸 수 잇겠는가. 아마도 그런 현상은 이번 5.31 지방선거로 족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또 한 가지를 지적하자면 운동원들에 대한 복장 문제이다. 언제는 똑같은 모자만 써도 안 된다 하더니 이번엔 똑같은 옷에 상징까지 넣어 입었다. T셔츠는 되고 Y셔츠는 안 된다는 아이러니는 또 무엇인가? 선거 운동은 허용이 아니라 제지인 것 같다. 모든 것이 안 된다는 상황이고 보면 후보자들에게도 뭔가 확실히 전달하고 싶은 자신을 알리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켜 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본인 및 운동원들의 명함 전달은 허용해야 한다고 본다.
현역 의원들의 의정보고서 같은 것은 선거 개시 6개월 전에는 절대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처음 출마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알리기가 어려운데 특정 후보가 현역 의원이라는 것으로 의정보고서를 선거 개시 90일 전에는 돌려도 괜찮다고 하니 그건 민주주의 원리 중 평등에 원리에 어긋나는 일 아닌가?
이번 선거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 그것은 돈 안 쓰는 선거의 정착이다. 이젠 밥이나 사주고 돈 봉투나 돌려서 당선하려 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제 주머니 털리는 줄 모르고 돈이나 밥을 요구하는 유권자는 선거 철새다.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5.31 지방선거는 무사히 치러지고 4기 지방자치는 시작되었다. 어느 정당 소속이든 지방정부, 기초자치단체를 위한 발전적이고도 미래지향적인 정치풍토가 정착되기를 바라며 이번에 지적되는 사안들은 공청회나 여론을 수렴하여 관련법규를 개정하고 유권자들이 권리를 행사하여야 대접받는 선거풍토,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선거풍토, 그리고 돈 안 드는 선거풍토를 정착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안정된 지방자치를 실현하여 주민들이 보다 높은 삶의 질로 편히 살 수 있는 사회, 군림하는 관(官)이 아닌 봉사하는 관(官), 관(官)이 부유한 사회가 아닌 민(民)이 잘 사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