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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애를 포함한 차별금지법 찬성해야 하나 반대해야 하나?
4. 차별금지법은 공산주의자들의 공산화 전략이다.
(5) 정교분리의 원칙도 모르나? 왜 목사가 정치 얘기를 하는가?
많은 이들이 교회에서 정치 얘기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교분리의 원칙을 내세우면서 "교회에서는 가급적이면 정치얘기를 안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항의하기도 합니다. 신자들이 이렇게 반응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잘못된 교회관
교회관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휴거'에 포커스를 맞춘 '세대주의적 견해'와 '성장'에 포커스를 맞추는 '개혁과 회복적인 견해'가 있습니다. 이 중 세대주의적 교회관에 대해 빌 해몬 박사는 『성도의 시대』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세대주의적 견해 - 휴거
세대주의 견해는 복음주의 운동 기간 동안에 세워졌다. 그것은 신약성경을 기록하기 위해 그리고 초대 교회의 기초를 세우기 위하여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사역이 생겼다는 견해이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이 완성된 이후에는 사도와 선지자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 직분들이 교회에서 제외되었다.
많은 세대주의자들은 교회의 기적적인 요소들도 마찬가지라고 믿는다. 그들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령세례를 통해 방언하는 것이나 축사, 신유, 초자연적인 기적들을 믿지 않는다. 그들이 받아들이는 초자연적 경험은 하나님의 주권과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통한 거듭남뿐이다. 그들이 그 진리와 경험이라도 받아들이는 주원인은 세대주의적 견해가 유행하였을 때 개신교 운동에서 이러한 것들이 이미 회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대주의적 교회에 대한 개념
이들은 세대주의자들의 교회, 즉 성도들을 단지 영혼 구원을 위한 증인으로 본다. 마지막 때의 교회는 보는 그들의 개념은 계시록 3장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미지근한 교회이다. 그들은 멸망으로부터 구원받고 예수님의 재림까지 믿음을 붙든 남은 자들만 교회에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휴거를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에 지상으로부터 성도들을 피난시키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구조 헬리콥터로 본다. 주님의 재림의 목적은 지상의 악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임할 때에 성도들이 지상에 있지 않도록 그들을 옮기는 것이다. 이런 개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난 전 휴거와 전천년설을 믿는다. 이것은 대환난 전에 일어날 성도들의 휴거라는 하나님의 일정을 믿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대주의자들은 세상의 타락상을 보며 예수님이 어느 때나 올 수 있다는 증거로 삼는다. 그들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거듭나도록 시간을 연장해주는 주님의 은혜 때문에 재림이 지연된다고 믿고 있다. 세대주의자의 관점은 복음주의자 혹은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다. 심지어 성령세례를 믿고 있는 많은 오순절주의자들도 세대주의자들의 관점에 동의하고 있다. 어떤 그룹들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교회 안에는 '남은 자' 혹은 '선택 받은 자'만이 남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주목적은 천국에 가기까지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는 것이다.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이 얼마 남지 않아서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원리적으로 그들은 교회의 목적이 더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도록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다음으로, 개혁과 회복적인 교회관에 대해 빌 해몬 박사는 이렇게 썼습니다.
"회복의 관점 - 성장
회복과 개혁 신학자들은 신약성경 전체가 교회를 세우는 청사진이라고 가르친다. 모든 진리, 사역 그리고 성경에 나타난 초자연적인 역사는 오늘날 교회가 받고, 믿고, 그렇게 하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1세기 교회는 모든 시대의 지상 교회를 위한 모델이 될 것이다.
그런데 약 3세기 이후,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은 거의 모든 진리들과 초자연적인 교회사역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교회는 1,000년의 어두운 시간 속으로 들어갔는데, 그 시기를 암흑시대라 부른다. 그 기간은 150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교회의 대회복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교회 회복은 이때 일어난 첫 회복 운동 때부터 계속 발전해왔다. 각 시대의 회복 운동은 교회 타락 기간 동안에 잃어버렸던 진리들과 사역들을 다시 회복시켰다. 회복 신학자들은 주님의 교회에 가장 큰 배교가 이미 일어났다고 믿는다. 세상의 악의 잔은 점점 넘치도록 차오르고 거짓 선지자들이 우는 사자같이 선택받은 자들조차 미혹하기 위하여 찾아다닐 때에도 교회의 전진은 계속될 것이다. 교회는 더욱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회복된 교회에서는 주님의 재림 전에 성도의 완전한 성숙이 이루어지고 그 수가 마침내 차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계6:11)
회복과 개혁 신학자들은 교회는 '성숙'되기 전에는 '휴거'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여러분, 이 중 어느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것이 더 성경적일까요? 저는 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사도행전 3장 21절에 나오는 '회복' - 재림 전이 아니라 후에 일어난다 - 에 대한 오해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교회가 지속적으로 계속 발전해나가는 것은 아니므로 ... 오히려 최근에는 동성애를 인정하는 등 더 퇴보하는 경향이 있다) 후자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거의 완벽한 범죄』라는 책에 나오는 프란시스 맥너트의 설명도 이것을 뒷받침해줍니다.
"존 다비는 성경을 면밀히 연구하여 복음적인 기독교의 보수주의자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준 많은 이론들을 만들어냈다. 그의 가장 영향력 있는 혁신적 신학이론은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로서, 교회 역사가 여러 개의 시대로, 혹은 '세대'(dispensations)로 나누어진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다비에게, 복음 시대(Gospel era)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는 별개의 세대였는데, 따라서 치유와 기타 성령의 은사들(고전 12장에 나오는)은 사도 시대라는 특별한 세대만을 위한 것이었다. 칼빈과 마찬가지로, 다비는 치유와 기타 성령의 은사들이 마지막 사도와 함께 끝났다고 믿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 동안 영국의 어빙파 신자들(Irvingites) 사이에서는 그런 카리스마적 은사들이 폭발적으로 나타났다. 어빙파 신자들은 모든 은사를 사용해야 할 것을 주장하는 오순절 그룹이었다. 불행하게도, 어빙파 신자들은 극단적인 모습들까지 보여주는 바람에 다비에게만이 아니라 그 시대 대부분의 영국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이단으로 낙인찍혀 결국 지속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고 말았다.
다비는 자기 시대에는 이단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으나, 지금은 많은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는 수많은 가르침들을 강조했다. 이 가르침들 속에는 종말과 대환난의 임박성에 대한 강조가 포함되어 있는데, 대환난기에 참된 신자들은 하늘로 들려 올라가는(휴거)반면, 배교한 그리스도인들과 불신자들은 고난을 당하도록 남겨지게 된다는 것이다. ...
그는 세상의 임박한 종말을 너무나 확신한 나머지 1842년에 종말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런 다음, 역사 속에 있는 수많은 다른 기독교 '예언자들'처럼, 그는 세상이 불길에 휩싸이지 않았는데(종말이 오지 않았는데도 - 역자 주) 여전히 그 이후 40년 동안 큰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는 일을 계속했다. 점차 다비는 자신의 견해에 대해 권위주의적인 모습으로 변해갔고 그 시대에 유명했던 여러 명의 지도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워치만 니(Watchman Nee)와 조지 뮬러(George Mueller)를 형제단에서 쫓아냈다."
이처럼 세대주의의 창시자인 존 다비는 비성경적인 은사중지론자였고, 심지어 이장림 씨 같은 시한부종말론자였습니다. 그리고 조지 뮬러와 같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을 형제단에서 쫓아낸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의 견해를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주장을 스코필드해설성경의 편집자 스코필드가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엄청난 영향력 때문에 교회 안에 누룩처럼 번졌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교회가 염세주의적이 되어 정치에 대해 침묵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윌리암 데알테가의 책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진정한' 교회에 대한 개념은 영국교회를 조목조목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에게 있어 진정한 기독교 친교(fellowship, 그는 교회라는 용어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가장 이상적인 규모인 신도 수 30명 정도의 작은 모임으로써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다. 따라서 정식으로 임명된 목사도 신학교도 없었고, 교회 건물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는 또한 진정한 교회란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아 시종 박해받는 신자들의 작은 집단이라야 한다고 믿었다. 진정한 교회는 정치나 사회 입법 등과 같은 속세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교회의 기능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다비의 성서적 예언과 전천년왕국설에 대한 집중적인 주장은 형제단 교리의 핵심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초기의 형제단에서 너무나 중요하게 취급되었던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들을 향한 적극적인 관심은 더 이상 형제단 생활의 중심이 아니었다. 다비의 복음은 구원에 관한 설교와 종말의 임박이라는 두 요소와 동의어가 되었다. 다비에게 있어서 종말은 너무나 가까이 임박했으므로 복음 전도는 더 이상 우선 과제가 아닌 유일한 과제였다. 교회는 사회문제에 관여하거나 심지어 기독교적 삶의 자세를 가르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또한, 프란시스 맥너트의 책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의 복음주의자들에게 남긴 다비의 또 다른 유산은, 그가 세상의 종말이 거의 임박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으로부터 나와야 하며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어떤 행동도 취할 생각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구원받게 해야 한다는 절박성을 생각할 때 사회적 행동은 시간 낭비처럼 보였다. 그는 세상과 교회 모두를 파멸할 운명에 처한 것으로 보았다. 심지어 우리 시대에도, 어떤 복음주의자들이 '사회정의는 타이타닉호의 갑판 위에서 가구를 재배치하는 것에 불과하다. 배는 가라앉고 있다.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유행하고 있는, 목사가 정치적인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성경의 영향이 아닙니다. 세대주의의 교회관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선지자적인 외침을 통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2) 정교분리에 대한 무지
교회에서 정치적인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정교분리에 대해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정훈 교수님은 『교회 해체와 젠더 이데올로기』라는 책에서 "올바른 정교분리이론의 확립"에 대해 썼습니다. 먼저 이정훈 교수님은 "교회를 공격하고자 할 때 고의적으로 '정교분리'이론을 왜곡하여 확산시킨 실행자로서 필자는 한국 교회가 이러한 잘못된 '정교분리' 관념을 내면화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솔직히 과거의 잘못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올바른 정교분리의 이론을 설명했는데, 그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국교 설립은 금지 된다.
1-1. 국교 설립을 통한 비국교도에 대한 차별은 금지 된다.
2. 특정 종교를 우대하거나 차별하는 공권력 행사는 금지 된다.
이처럼 헌법이 말하는 정교분리 원칙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헌법 질서 내에서는 국교가 인정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국가 권력이 종교에 대한 간섭을 하거나 특정 종교를 우대 또는 차별하는 정책 수립 내지 정치 활동을 하는 것이 금지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헌법학계의 통설입니다.
또한, 법원의 판례와 헌법학계의 통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정교분리' 원칙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정교분리는 국가의 특정 종교에 대한 우대와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다.
둘째, 정치와 종교의 사실상의 완전한 관계 차단이 '정교분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셋째, 정교분리 위반의 판단 기준은 공권력과 특정 종교의 사실상의 협력 관계 또는 관련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에 있다.
그러므로 정교분리는 목회자의 정치적인 발언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입니다. 저는 이정훈 교수님의 책에서 정교분리에 대한 이런 내용을 읽고, 늘 그렇듯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정교분리'를 검색해보던 중 이런 글을 발견했습니다.
"정교분리
1. 개요
현대 국가가 종교적 중립성을 유지하여 권력과 특정 교단을 결부하지 않는 것
2. 역사적 전개
정교분리는 프항스혁명 이후 봉건왕조 체제의 종교의 국교 특권을 박탈하고, 특정 종교의 전횡을 방지하며, 근대 국가의 정책에 종교적 영향을 배제하기 위함이었다. ...
3. 방식
정교분리는 구체적인 적용 방식에 있어서 국가마다, 그리고 개인마다 해석의 차이가 크게 존재한다. 첫 번째 유형은 국가가 특정 교단에 특별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형태가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국가는 미국과 독일이다. 미국은 대통령 취임식에서 당선자 개인의 종교와 연관시켜 선서 등을 할 수 있으며, 조지 W. 부시가 2002년 9월 11일 9.11 테러 1주년 당시 '미국의 이와 같은 이상은 모든 인류의 희망입니다. ... 그 희망이 아직도 우리가 갈 길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빛은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둠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라며 요한복음 1장을 살짝 변형한 연설을 한 바 있다. 독일은 기독교민주연합 등 그리스도교 계열 정당이 나름의 탄탄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다. 이런 형태의 정교분리는 정치와 종교의 완전한 분리라기보다는, 국가권력과 특정 교단의 분리라는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한 것이다. ...
4. 정치
한국의 경우, 미국과 독일에 가까운 정교분리를 채택 중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종교와 연관 지어 정치적 신념을 밝히는 행위가, 적어도 한국과 미국, 독일의 기준에서 보자면 정교분리에 위배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마틴 루터 킹 목사,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등은 스스로의 종교와 정치적 신념을 연관시켜서 공적으로 말하기도 하였다."
이제, 제가 간혹 정치에 대해 말하는 것이 정교분리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지난주 애국 운동을 하다가 법정 구속된 전광훈 목사님이 보석으로 나왔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제가 전광훈 목사님이 만나자고 해서 처음 만났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 저는 정교분리에 대한 이런 설명을 들었습니다.
"삼일운동, 학교, 병원, 복지시설, 6.25 전쟁, 조국 근대화 발전의 그 중심에는 기독교가 있었습니다.
1948년 5월 31일, 대한민국 제헌국회를 열면서 이승만 대통령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감리교 출신의 목사이자, 종로구 지역에서 국회의원이 된 이윤형 의원에게 기도를 요청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제헌국회는 그렇게 기도로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대한민국은 기독교 정치가 되었습니다. 이승만이 성경에 기초하여 나라를 세우고 헌법을 성경에 기초하여 세운 나라입니다. 이래도 신앙과 정치가 관계가 없습니까?
이승만의 4대 정책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한미동맹, 기독교 입국론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가는 곳마다 목사를 세우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군대에 가면 군목과 교회를, 경찰서에 가면 경목과 교회를, 병원에 가면 원목과 교회를, 학교에 가면 교목과 교회를 세웠습니다. 가는 곳마다 목사를 만나고 교회를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정치와 분리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어떤 모습이 되었습니까?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을 가진 대통령이었습니다. 토마스 제퍼슨이 교회를 보호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정교분리의 원칙을 만들었습니다. 진짜 정교분리의 원칙은 이렇습니다.
1. 세상 정부는 교회를 탄압하는 법을 제정할 수 없다.
2. 세상 정부는 교회에 세금을 징수할 수 없다.
3. 세상 대통령은 교회의 수장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정교분리의 원칙을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진짜 정교분리의 원칙도 제대로 모르고 가짜 정교분리의 원칙으로 교회는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이는 일제시대 때 일제가 진짜 정교분리의 원칙 세 가지를 의도적으로 빼버리고 정치와 교회는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거짓말이 들어오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런 거짓 정교분리의 원칙을 원래대로 회복시켰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목사들과 장로들이 정치에 참여하여 국회의원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80% 이상 기독교인이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이후 다시 교회와 정치는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고 변질되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독교 교회는 친북·종북좌파 세력들과 동성애, 이슬람, 반기독교 악법으로부터 위협받고 있습니다. 만일에 좌파가 원하는 대로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 철수, 고려연방제로 적화되어버린다면, 가장 첫 번째 타겟인 목사와 교인과 함께 교회가 무너집니다.
좌파들은 동성애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려 지금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공산주의, 동성애, 이슬람, 반기독교적 악법에 의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교회가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전광훈 목사님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교분리의 원칙은 바른 것이 아니고, 일제시대 때 일제가 정략적으로 왜곡시킨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제가 인터넷에서 발견한 다음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조선 그리스도인들에게 선교를 할 때의 기본 입장은 '정교분리' 정책이었다. 그것은 당시 한국 주재 선교사들의 신학적 경향과 출신 교회의 배경이 미국의 복음주의적인 정교분리형 교회 출신이기도 했지만, 보다 큰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그것은 '한국 교회의 민족운동 참여 경향을 차단하여 한국에서의 정치적 권한을 획득해가는 일본 당국으로부터 선교에 대한 보장을 확보하고자 하는 방법론적 처세였다.' 사실 이 정교분리론은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면서 처음부터 취한 한국에서의 기독교 정책의 기조였다. 조선의 초대 통감이 된 이토오 히로부미는 1905년 말, 일본 주재 미국 감리교 감독 해리스(M. C. Harris)를 한국으로 초청한다. 그는 조선에서의 정신적 방면의 계몽, 교화에 대해서는 해리스에게 맡기는 대신, 정치적인 일은 전적으로 자신이 맡겠다고 말함으로써 선교사 측과 조선기독교 통치에 관한 묵계를 만들었다."
사실이 이런데도, 한국 교회의 다수의 목회자와 성도들은 정교분리를 오해하여 '목사가 강대상에서 정치에 대해 입도 벙긋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들은 비겁하게 정교분리의 원칙 뒤에 숨어서 벙어리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이 속수무책으로 정치인과 언론들에 속아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것입니다. 이정훈 교수님은 이런 나라와 교회의 상태를 보고 이렇게 쓴 소리를 했습니다.
"한국 교회는 교회와 정치가 분리된다는 왜곡된 정교분리 논리를 수용하여 정치적 문제에 교회가 침묵하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정교분리는 특정 종교 단체와 공권력의 정책적 유착을 금지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종교의 사회적 순기능을 헌법이 배제할 수 없으며 교회는 사회와 정치의 소금 역할을 하여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이미 위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교회의 침묵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의 입법으로 이어지고, 교회가 명확하게 결혼과 가정을 정의하지 않은 결과, 서구의 많은 국가들에서 동성혼이 합법화되었다. 이러한 정치적·사회적·문화적 문제들을 명확하게 인식하여 적극적으로 교회가 도덕적으로 잘못된 법과 정치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명함으로써 한국 사회에서 도덕적 지도력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시리즈 설교를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即生 必生即死) 즉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말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즉 정유년 9월 15일자에 나오는 구절로 명량해전을 하루 앞두고 장수들에게 당부한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지금이 이런 각오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입니다. 이정훈 교수님은 우리나라의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결국 제가 깨달은 영적 전쟁의 실체는 다음가 같습니다.
'사도행전의 폭발력을 소멸시키기 위해 적그리스도인 가톨릭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인간이 구원받는 것을 효과적으로 방해했다. ... 종교개혁은 진리이신 예수님을 회복하는 종교·정치·문화·경제적 혁명이고 이를 통해 많은 이들이 사망에서 벗어나 주님의 영원한 생명에 합류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참 신앙의 전통이 프로테스탄티즘으로 형성되었고 이러한 정신은 ... 위그노로 상징되는 기술과 소명을 기초로 한 자본주의를 제도화하게 되었고 진정한 인권을 기초로 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인해 이교도들조차도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사탄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앞세워 공산주의를 등장시켜 사람들을 다시 도탄에 빠지게 하고 죄의 지배를 받게 하는 전략을 취했다. ... 중국의 마오이즘과 문화혁명이라는 6,500만을 학살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악랄한 이데올로기가 출현한다. 음란한 세대가 이것을 복음으로 받아들여 68혁명이라는 최악의 문화혁명을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한다. 이것이 결국 GM이라는 전략으로 체계화되어 UN을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체제를 전복시키고 소비에트를 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청년들의 양심과 도덕을 해체시켜 죄의 본성을 향해 돌진하는 죽음의 길을 '인권'으로 포장하여, '인간의 존엄성'에서 추론한 거룩한 하나님이 주신 법을 폐기하고 스스로 개와 돼지만도 못한 존재로 인간을 나락에 빠뜨린 것을 인간 스스로 자축하고 있다. 전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갈 가장 강력한 무기가 개발된 것이다. 이 '젠더 이데올로기'는 기존의 좌파 이데올로기 중 가장 진화한 것으로 종교개혁의 전통이 살아있던 유럽의 교회들을 획기적으로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길고 긴 진지전에서 승리를 목격한 좌파들은 고무되었다. 북미와 어렵게 버티던 나라들이 점령당하면서 이 엄청난 쓰나미가 우리를 향해 오고 있다.'
여기서 한국 교회가 ... 순교자의 각오로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도 전멸하게 될 것입니다."
"구소련의 붕괴와 동구권의 몰락, 그리고 민족 자주의 상징이었던 '주체사상'의 추락 이후 한국의 좌파들은 자연스럽게 동성애를 인권 프레임으로 전환해 정치투쟁에서 성공한 포스트모던 서구 좌파를 대안으로 삼고 추종하게 되었다. ... 동성애 정치투쟁에서 승리한 유럽에서 교회가 멸절되는 것을 경험적으로 인식하고 승리를 확신하게 된 한국의 좌파들에게 '동성애=인권'이라는 전략 전술은 거부할 수 없는 지상 과제가 된 것이다. 차별금지법 등으로 교회가 올바른 결혼, 가정, 국가에 대한 발언을 할 수 없게 되고, 창조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동성애를 앞세운 젠더 이데올로기가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되는 순간 교회가 멸절되는 것을 목도한 이상 이들의 투쟁은 더 강화될 것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제더 이데올로기가 헌법 개정의 틈을 치고 들어와 헌법에 자리 잡고자 투쟁하고 있는 것을 보면 상황의 심각성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소위 프로테스탄티즘의 해체와 자신들의 정치 혁명을 위해 교회에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이때 교회는 일치단결하여 저들의 의도를 명확히 파악하고 개혁주의 신앙을 강화해 하나님의 주권을 이 땅에 선포하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음을 인식하고 실천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글에서 교회를 해체시키려는 젠더 이데올로기와의 싸움을 "영적 전쟁"이라고 칭한 것은 매우 적절한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교회의 사활이 걸린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놀이가 아닙니다. 매우 위험하고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지금은 비겁하게 몸을 사릴 때가 아닙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일사각오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세력들과 맞서 싸워야 할 때입니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참호에 숨어 있기만 하면 안 됩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참호에서 몸을 내밀고 총을 쏘아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목사들의 모습을 보면 참호 속에 납작 엎드려서 떨고 있는 겁쟁이들이 연상됩니다. 용기를 내어 적을 향해 반격하는 목사들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처럼 비겁하게 살지 맙시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답게 주님을 위해, 진리를 위해, 영혼들을 위해 일사각오로 할 말은 하고 할 일은 합시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의 공산화 전략인 동성애 차별금지법을 기필코 막아내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마가복음 8: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 후기
본서는 동성애에 미혹된 젊은이들을 깨우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막기 위한 시급하고 절박한 필요에 의해 급히 만들어졌습니다. 본서는 저의 순수 창작이 아니며 논문식으로 다른 책들의 내용을 적극 활용한 책입니다.
오래전 모 신학대학 총장을 지내고 기독교학술원 원장을 지낸 분의 책을 읽은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필요한 부분들을 거침없이 다른 책에서 가져와서 주를 달고 사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언제 차별금지법이 통과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간에 쫓기던 터라, 저도 같은 방식을 취했습니다.
저는 이 설교를 하고 책을 쓰기 위해 동성애에 대한 많은 책을 구입해서 읽었습니다. 그 책들 중 특히 존 스토트의 『동성애 논쟁』, 조 달라스의 『동성애를 말하다』, 케빈 드영의 『성경이 동성애에 답하다』, 길원평 교수님의 『동성애 과연 타고나는 것일까?』, 이정훈 교수님의 『교회 해체와 젠더 이데올로기』가 커다란 도움이 되었고 그 책들에서 필요한 부분들을 주 처리를 하여 가져왔음을 알려드립니다.
탁월한 그 책들의 저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