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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시학>, 2016년 봄호.
e-INTERVIEW 맹문재 시인
● 선생님 안녕하세요? 직접 뵙지 못하고 이메일로 인사드리게 되어서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반갑습니다. 문학 행사장에서 뵐 때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항상 정갈하시고 부드러운 인상이 시인으로서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관리도 잘하고 계신 것 같고요. 요즘 방학 중인데 어떻게 지내시는지 근황 좀 말씀해주세요.
맹문재 :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선생님의 시집 『낮잠 속의 롤러코스터』(시평사, 2005)의 해설 쓰는 일로 인연이 되었는데, 그동안 뵙지 못했네요. 제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문단의 행사에 잘 나가지 않기 때문이지요. 살아가다보면 뵐 날이 있겠지요. 시간이 왜 이리 바쁘게 지나가는지요. 방학 중에 학술서 1권, 김명순 전집, 윤동주 전집 등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는데, 이것저것 하다 보니 아직 한 가지도 이루지 못했네요. 뿐만 아니라 시집 원고며 다른 단행본 원고들도 정리해야 하고,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도 가야 하는데…… 마음만 바쁘네요.
● 안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재직 중이신데 우선 학교생활에 대해서 여쭙겠습니다. 선생님 댁은 관악구인데 출퇴근은 어떻게 하고 계신지요? 그리고 대학의 학생들에게 강의하시는 과목은 시론과 어떤 과목인지요?
맹문재 :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이니 그저 감사할 뿐이지요. 그렇지만 요즘 대학도 일반 회사와 마찬가지로 시장주의에 영향을 받고 있어 만만하지가 않아요. 학교의 구조 조정 문제로 연일 시끄러운데다가 논문도 써야 하고, 강의 준비도 해야 하고, 학생들 취업에도 신경 써야 하고 등등 할 일이 많아요.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과목은 <시론> <시창작론> <문학과 사회> 등등 여러 가지가 있어요. 교육대학원 강의도 있고요. 한 학기에 한 과목은 학생들과 좀 더 열심히 공부하려고 원서를 교재로 사용해왔는데, 근래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만을 남겨두고 바꾸었어요. 저도 늙었는가 봐요.
● 작년인가요? 한 소설가가 우리나라 대학의 문예창작학과 수업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기억이 납니다. 그 의견에 한 시인이 강한 대척을 한 것도 신문에서 봤고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문창과 수업이 문학사에 어떻게 기여하는 지 그리고 보완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어떤 점에 주력해야 할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맹문재 : 잘 아시다시피 우리 사회는 대단히 다양하고 전문화되고 또 급변하고 있잖아요. 따라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인재를 길러내는 대학의 교육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할 필요가 있겠지요. 이러한 차원에서 대학에서 문예창작학을 교육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봐요. 다만 문예창작학과의 수업에 대해서는 좀 더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시 말해 수업의 목표가 학생들의 등단에 집중되어 있기에 재고해야겠지요. 문학 수업의 목표를 등단하는 것에 두면 아무래도 작품 쓰기의 기능에 치중하게 되겠지요. 그러다보면 오히려 큰 작가나 시인을 배출하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에요. 큰 작가나 시인은 한 번의 이벤트나 기능적인 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철학과 역사의식을 가져야만 가능하잖아요. 우리 사회의 병폐 중 하나인 학연이 문예창작과 출신들 사이에서 아주 강한데, 이러한 면도 개선되어야겠지요. 그렇지만 쉽지 않을 거예요. 우리 사회는 점점 경쟁주의와 시장주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대학의 문예창작학과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지만 한국 문학의 발전을 위해 진지하게 개선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 요즈음 시인들이 발표하는 시의 양상은 매우 다양합니다. 어떤 평론가는 작금의
시단을 혼재의 시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문학에서의 ~주의(-ism)와 스타일이 작가마다 독특하게 나타나고 독자들은 경우에 따라서 소통이 안 된다고 합니다. 소위 젊은(?) 시인들의 시는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기도 합니다. 서정과 서사 없이 몽환적이거나 너무 멀리 간 환유와 전경화로 독자를 힘들게 한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요즘 젊은이(?)들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신지요? 해체시, 난해시에 대해서도 지향해야 할 점이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물론 선생님도 젊은 시인에 속하지만요.
맹문재 : 요즘의 시단에 발표되는 시들의 양상은 매우 다양해요. 이것은 당연한 현상이고 또 자연스러운 것이지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우리 사회가 매우 다양하고 전문화되고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시단 역시 예외일 수 없지요. 따라서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를 시인이 반영하는 일은 당연한 것이고 또 그렇게 해야만 된다고 생각해요. 사회는 변화하고 있는데 시인이 변하지 않고 있다면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없잖아요. 따라서 난해한 시들을 두고 혼재의 시대라거나 소통이 안 된다거나 너무 멀리 갔다는 식으로 부정할 필요는 없어요. 소통하기 어려운 시대를 반영한 작품이므로 소통하기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하지요.
그렇다고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가령 소통이 안 된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를 수용하지 않고 오히려 기성 시대이니 보수적 세대이니 등으로 비판해서는 곤란하지요. 그런데 실제로 우리 시단에는 이와 같은 경향이 강하지요. 그래서 이 문제는 아주 복잡한 면을 띠고 있어요. 기성 시인과 젊은 시인으로 나누어 얘기해보면, 기성 시인들은 젊은 시인들의 시가 난해하고 의미가 없다고 여기고 잘 읽지 않고, 젊은 시인들은 기성 시인들의 시가 낡았다고 여기고 잘 읽지 않아요. 그래서 서로 소통이 잘 안 되고 있어요. 소통하려고 노력은 하지 않고 서로 탓만 하는 셈이지요. 따라서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세로 시를 읽는 풍토가 우선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선생님의 등단 시기와 계기에 대해서 질문 드리겠습니다. 1991년에 『문학정신』으로 등단하셨는데요. 그리고 20대에 포항제철소에서 근무하신 적도 있는데 그때의 상황도 들려 주시구요.
맹문재 :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등단한 지 어느덧 25년이 되었네요. 저의 등단에 관한 얘기는 최동호 선생님께서 쓰신 『인터넷시대의 시창작론 2』(고려대학교 출판부, 2005)에 자세히 밝힌 적이 있어요. 저는 뒤늦게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1년 조금 지난 1991년 여름날 새벽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연락을 받았지만 차편이 없었기 때문에 고향에 내려갈 수 없어 대신 타자를 쳤지요. 그리고 신인상 마감이 임박한 한 잡지에 우편으로 부치고 내려갔지요. 그 잡지는 젊은 시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지금은 발간되지 않고 있어요. 그리고 투고한 일을 까마득하게 잊고 살아가던 어느 날 잡지사로부터 당선 소식을 받았어요. 원고를 투고하면서 주소와 연락처를 쓰지 않아 저를 찾느라고 고생했다고도 전했어요. 최하림, 김화영 선생님께서 뽑아주셨어요. 저는 지금도 큰손자를 지극히 사랑하신 할머니께서 저를 시인으로 만들어주셨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할머니는 참으로 인정이 많으셨지요.
제가 제철소에서 일한 얘기는 이리저리 많이 했어요. 저의 시와 삶을 지탱하는 힘이 그곳에서 나오고 있어요. 저는 그곳에서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여실하게 깨달으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정했어요. 3조 3교대, 한 달에 한 번밖에 쉬지 못하는 근무 여건, 비민주적인 군대식 체계, 안전사고로 죽어간 동료들, 그 죽음을 둘러싼 비인간적인 행동들, 학벌의 위력, 주식 투기나 사교춤 등으로 일탈하는 동료들……. 저는 그 속에서 결국 동료들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리하여 저는 문학 작품으로 담아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노동자 계급의 절망을 모순된 사회의 구조 속에서 조명하면서 극복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해 고뇌하고 귀 기울이는 모습이 절실해 보입니다. 사회적 약자의 대변인이고 고통을 드러내고 질문하십니다. 노동자, 힘없는 자, 마이너리티의 심상을 진정한 미적 거리를 두고 설득력 있게 표현하십니다. 고형진 평론가는 선생님의 시세계에 대해서 ‘솔직하고 정직한 시심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투명함의 시학’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지향하는 시의 세계는 무엇인가요?
맹문재 : 저는 사회적 약자를 개인의 책임이나 어떤 운명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사회의 구조나 제도, 법, 문화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봐요. 가령 한 가난한 노동자의 문제는 그에게만 책임을 지울 수 없고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는 시를 써보려고 하는 것이에요. 이와 같은 저의 생각은 좀 전에 말씀 드린 제철소에서 생활하면서 가진 것이에요. 그렇지만 이 일은 아주 힘들어요.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의 지배로 인해 이기적으로 타락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저만 보더라도 살아남기 위해 자본주의가 시키는 대로 출퇴근하고 일하고 왜곡시키고 그리고 선택하고 있잖아요. 때로는 소극적으로 저항하다가도 거대한 힘을 내세우는 자본주의에 그만 굴복하고 말지요. 점점 인간을 타락시키는 이 자본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전략이 무엇인지 고민이 많아요.
● 선생님의 시집에 많이 등장하는 제목과 소재에 ‘이자’ 가 있습니다. 「착지점 이자」「이자 감기에 걸린 어린이날」 「이자의 적을 만든다」 「신용 대출」 「이자」 「이자 클럽」 등 자본의 무자비함에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 때로는 역설과 아이러니로 전면적인 대처를 합니다. 시와 현실 속에서 오늘의 상황은 어떠하다고 느끼시는지요?
맹문재 : ‘이자’를 제재로 삼고 쓴 작품들이 어느덧 시집 한 권 분량이 되었어요. 이 작품들을 모은 시집을 간행하려는 생각도 갖고 있어요. 제가 이자에 집중하고 있는 의도는 지금의 거대한 자본주의에 대항하려는 것이에요. 자본주의는 유죄도 무죄로 만들고 비인격자도 인격자로 만들고 허위도 진실로 만들 정도로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고 있어요. 그리하여 자본주의는 자기의 이익을 철저히 추구하기 위해 우리를 끊임없이 경쟁시키고 더 이상 사용할 가치가 없으면 가차없이 퇴출시키지요. 이와 같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것이 이자예요. 자본주의는 이자를 챙겨 더욱 힘을 갖게 되는 반면 우리는 자본주의에 이자를 제공하느라 희생당하고 있지요. 그리하여 저는 이자를 고발도 하고 공격도 하고 풍자나 야유도 하면서 맞서고 있어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지만 시인으로서 대항하는 것이에요.
● 선생님께서는 어떤 지면에서 문학은 ‘무엇을 그릴 것인가’보다 ‘어떻게 그릴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여러 시창작 교실에서 공부하는 수강생들에게 그 방향에 대해서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을 주시면 더 선명해질 것 같습니다.
맹문재 : 문학 작품의 창작에서 ‘어떻게 그릴 것인가’의 문제는 저만의 주장이 아니라 아주 보편적인 것이지요. 저는 이 문제의 핵심을 ‘플롯’으로 보고 있어요. 플롯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내세운 주제이기도 하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작품을 쓰는 데 플롯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고 제자들에게 강조했어요. 저는 이 플롯의 개념을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를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플롯이란 선택한 제재를 집중적으로 그리는 것으로 설명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요즈음은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플롯을 ‘선택과 집중’으로 설명하면서 강조하고 있어요. 「시와 현실」(『만인보의 시학』, 푸른사상, 2011)이란 글을 통해 플롯의 중요성을 써보기도 했어요.
● 선생님 시집 『물고기에게 배우다』(2002년), 『책이 무거운 이유』 (2005년)가 출간되었을 때 독자들의 반응은 특별했습니다. 「책을 읽는다고 말하지 않겠다」라는 시에서도 책에 대한 외경심을 읽을 수 있었고 철학적인 시상의 접근, 자기 숙고와 반성의 자세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시는 사람을 닮아가고 사람은 시를 닮아간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선생님은 항상 겸손한 자세로 사물을 바라보고 배우는 시선을 멈추지 않습니다. 클리셰한 질문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시는 선생님께 무엇이라고 정의를 내리시겠는지요?
맹문재 : 저에게 시는 인생의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전부이기도 합니다. 저는 시 쓰는 일 외에도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시 쓰는 일을 빼놓을 수 없어요. 저는 시를 쓰는 일이 그저 재미있고 성취감을 느껴서 행복해요. 시를 쓰는 일이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얘기하는 시인들을 종종 봤어요. 좋은 시를 쓰는 일이 어려우니 이해는 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재주 없는 제가 시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대견할 뿐이지요. 저에게 시는 등짐과 같아요. 저는 시라는 등짐을 진 존재여서 생을 다하는 날까지 내려놓을 수 없어요. 그저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묵묵히 걸어가려고 해요.
제가 책을 읽는 것도 시를 쓰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에요. 저는 책을 소장하는 것도 좋아하고 읽는 것도 좋아하고 소개하는 것도 좋아해요. 저는 정말 「책을 읽는다고 말하지 않겠다」라는 작품에서 소개했듯이 칸트처럼 한평생 책을 읽고 싶어요. 결혼도 하지 않고 책을 읽은 칸트의 삶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남은 생애에 열심히 읽으려고 해요. 저를 아껴주셨던 김규동 선생님께서는 여든을 넘기시고도 하루에 세 시간 이상 책을 읽으셨어요. 선생님께서는 『나는 시인이다』(바이북스, 2011)에서 “이걸 계속하지 않으면 내 존재가 사라지는 것 같아 슬퍼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요즘도 종종 떠올라요.
● 저는 선생님 시를 읽으면 폴 첼란과 조지 오웰이 떠오릅니다. 시집 『사과를 내밀다』 역시 선생님의 삶의 내력과 가족사 그리고 주변인의 애환을 다양하게 변주하고 있습니다. 안온함과 쓸쓸함, 결연한 의지 그리고 결구는 희망을 시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십 세」라는 시에서처럼 빈손으로 환유된 삶의 진행은 다음 ‘60세’라는 시를 기다리게 합니다. 요즈음 관심을 갖고 계신 화두(?)는 무엇인지요?
맹문재 : 시를 쓰고 논문을 쓰고 책을 읽고 강의를 하고 그리고 가장으로서 식구들의 밥을 마련하기 위해 동동거리는 것의 저의 모습이에요. 삼십대 이후의 제 모습이기도 하지요. 그러면서 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요. 저는 아직까지 감옥에 가지 않았잖아요. 꼭 감옥에 가야만 투사가 되고 좋은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은 것이지요. 그리하여 어떻게 행동할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제가 시를 쓰기로 결심했던 이유에 부합하면서 저의 시 세계가 좀 더 역동성을 가질 수 있는 행동이란 어떤 것일지요.
● 문단에는 부부 시인, 자매 시인, 형제 시인, 부자 시인, 부녀 시인, 모자 시인, 모녀 시인 들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경우 이선영 시인과 작품과 생활면에서 모범적인 부부 시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두 분이서 어떤 각별한 생활의 지침이라든가 경계할 점이라던가 아니면 지켜야 할 사항을 규정해놓고 계신지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잊지 못할 해프닝 같은 것은 없으셨는지요.
맹문재 : 부부 시인이라면 언뜻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같은 동반자를 떠올리겠지요. 그렇지만 우리 부부는 그렇지 못해요. 일반인 부부와 다를 것이 없어요. 가정 경제나 자녀 교육 문제로 다투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작품을 쓰는 데는 간섭하지 않아요. 특별히 서로 약속을 한 것은 아니지만 저는 아내의 창작 분야에는 일체 간섭하지 않아요. 오히려 문장이나 띄어쓰기 등에 확인이 필요할 때 제가 아내에게 조언을 청하지요. 그러한 경우도 지금까지 몇 번 안 되어요. 저는 아내에게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은데, 형편이 그렇지 못하니 그저 미안할 뿐이에요.
● 사소한 것도 알고 싶군요. 집필하실 때 선호하는 장소가 따로 있으신지요?
맹문재 : 저는 집필 장소를 따로 갖고 있지 않아요.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기 때문에 연구실에서 집필을 해요. 이 대담 글도 그렇고요. 저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연구실에 나가요. 읽어야 할 책과 써야 할 글이 많기 때문이지요.
● 좋아하시는 단어나 문구 혹은 아포리즘 같은 것은요?
맹문재 : 앞에서 조지 오웰을 말씀하셨으니 그가 『나는 왜 쓰는가』에서 한 말을 소개해볼게요.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저는 글을 쓸 때 오웰의 이 말을 떠올리곤 해요.
● 끝으로, 시인으로서 대학 교수로서 평론가로서 작금의 시의 흐름에 대해서 짚어주시고, 후배 시인과 제자들에게도 당부하고 싶은 말씀도 청해봅니다.
맹문재 : 요즘 활발하게 활동하는 후배 시인들에게 일단 응원을 보내요. 저도 어느덧 밀려나는 세대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아요. 때가 되었으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지요. 그 대신 후배 시인들 못지않게 공부해야겠지요. 후배 시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역사의식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에요. 역사의식을 가져야 옳은 길을 선택할 수 있고 용기를 낼 수 있고 또 자신의 길에 책임을 질 수 있지요. 결국 큰 시인이 될 수 있고요.
역사의식을 가져 달라는 것은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예요. 국가 기관이 대선에 개입하고, 국민이 선택한 정당을 강제로 해산하고, 세월호 참사를 정부가 기만하고,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고 등등에서 보듯이 우리의 민주주의는 크게 후퇴하고 있어요. 사회의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어 청년들에게 희망이 보이지도 않아요. 좀 더 지식인답게 역사의식을 가지고 맞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 방학 잘 보내시고 가까운 날 좋은 자리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