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자와 풀은 쑥쑥 자라는데 일손이 느리고 딸려 따라가지 못한다. 엎친데 덥친 격으로 남편은 농가 주택 수리 하는 것 배우러 2박3일 일정으로 상주로 연수를 떠났다. 가서 보니 우리 마을 바로 위라고 오라고 날 부른다. 밭일이 급하니 대중교통 이용해서 오란다.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보은으로 가서 상주 가는 버스를 타고가다 화령에서 내려 다시 화북으로 가기, 상주에서 화북으로 가기. 이거나 저거나 새벽부터 서둘러도 대전에서 가려면 여러 번 차를 옮겨 타야하고 차 시간을 맞추다 보면 점심 전에 도착하면 다행이다.
(내가 기를 쓰고 가는 오미자 밭의 측면)
잘라낸 오미자에 그물망을 씌우는 것이 급하긴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 둘러 둘러 갈 수는 없다. 가는데 힘 다 써서 일할 기운 없으면 간 보람이 없다.포기하고 있는데 품앗이 신청한 글에 지인이 답글을 달았다. 화령으로 일이 있어 가기 때문에 일손을 보탤 수 없다는. 염치불구하고 태워 달라 부탁을 했다. 화령까지만 가면 다 간 길이다. 화서 인터체인지로 우회해서 돌아가 주시는 친절을 베풀어 주셔서 화서까지 쉽게 도착했다. 우리밭이 문장대 가는 길에 있으니 관광버스를 불러 세워서라도 갈 수 있을 것 같다. 길을 따라 걷다보니 스무살 때 친구와 전라도로 무전여행 떠났던 기억이 난다.이렇게 길을 따라 걷다가 트럭 같은 것 얻어타고 다녔는데. 연수중인 남편이 잠깜 나와(그래도 오고가고 1시간이다) 함께 화북으로 왔다.다리를 내 보일 일도 없었다.허긴 40대 아줌마 다리보고 차 세울 남자라면 문제가 있다.길 가운데로 몸을 던져야 세울둥 말둥이다.
오미자 밭에는 풀천지다. 이 놈의 풀은 밤낮없이 새끼만 놓고 자라기만 하나보다. 오뉴월 땡볕에 낫으로 풀을 베는데 내 일이니 하지 못할 노릇이다. 오뉴월 땡볕에는 며느리 내 보내고 가을볕에는 딸 내 보낸다는데 그 밭의 소출이 오로지 내 것이라면 이 볕 저 볕 가릴 처지도 아니다. 밭일을 도와주시는 분들이 없다면 이 막노동을 어찌 감당할까.
시골어르신들이 오며가며 말씀을 보태신다. “이 밭은 임자가 없는 줄 알았는데 임자가 있네요.” “낫 쓰는 것 보이 아주마이 상일꾼 다 됐네요.” 오미자 그물망 씌우기도 몇 번 해보니 그 새 요령이 생긴다. 나름 과학적 방법 고안한다고 잔머리 굴리다 더 힘들기도 했지만 쉽게 익혔다. “제가 그물망 씌우기 기술자 되었어요. 아저씨 밭에 씌우실 때 저 부르세요.”
자주 갈 수가 없어 한 번 가면 죽기살기로 일하게 된다. 투표하러 간 날 일하고 어제 일했는데도 우리 오미자는 꼭 엄마 없는 애들 같다. 남의 밭에는 풀도 없는데 우리 밭엔 풀천지고 이제 손가락 굵기가 되어가는 열매는 우리 집은 작아 보이고 남의 것은 커 보인다. 우리 밭에는 조금 열렸는데 남의 밭에는 조롱조롱 많이도 열렸다. “내 건 유기농이야. 그래서 그래.”그래보지만 기가 죽고 배가 아프다.
허리 펼 기운도 시간도 없이 일하고 있는데 남편이 교육 일정으로 귀농자 일터를 돌아보러 왔다. 마누라는 죽기 살기로 일하고 있고 남편은 한량같다.
(교육받고 있는 귀농센터의 개가 내려다 보는 풍경.) “나도 강의실에서 교육받고 잡다.” “많이 했네.” 그러면서 바로 일행에게 이렇게 말한다. “전에는 내가 다 했는데 내가 없으니 오늘 힘든가 봐요.” 허걱, 자기 풀벨 때 나는 놀았나 보다. 허긴 첫 애 키울 때를 이야기 하면 꼭 하는 말이 “너 기저귀는 아빠가 다 빨았다.” “엄마는 뭐 했어요? 직장 다녔어요?” “그래, 우리 딸은 일 주일에 똥과 오줌을 딱 하루만 쌌어.아빠가 줄장가면 참았다가 이 주일 만에 쌌어.”
긴긴 하루가 가고 집에 돌아 와 누웠는데 얼굴이 햇볕에 익었는지 열이 풀풀 난다. 아침에 일어나니 안 아픈 데가 없다. 미모는 지켜야 하는데 내 미모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보이니 이 노릇을 어찌 할꼬? |
출처: 향나무집 원문보기 글쓴이: 강물
첫댓글 차암 편안하고 재미있는 글이네요.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나요. 향나무집 오미자야!!!주인 자주 볼수 없어도 햇볕에 바람에 튼실하게 잘 자라주렴
읽어가는데는 숨이 찼는데...읽고나니까 미안하게도 웃음이 나네요.ㅎㅎ 얼마나 세월이 지나면 이 때가 즐거운 비명이었다고 말씀하실수 있으려나? 푹푹찌는 더위 못지 않게 혜영선생님의 열기도 느낍니다. 오히려 그열기는 저를 서늘하게 만든다고 하면 마음 몰라준다고 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