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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 원문보기 글쓴이: peater
2012년 8월 5일 일요일 [(녹) 연중 제18주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성모 대성전 봉헌 기념 없음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굶주림에 지쳐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을 하며 이집트 생활을 그리워한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불평을 들으시고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 주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 교우들에게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이 되라고 강조한다. 새 인간이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의롭고 거룩하게 사는 사람을 말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는 데 힘쓰라고 말씀하신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복음).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주리라.>
<여러분은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합니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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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많게 한 기적의 현장에 있던 군중은 예수님의 일행을 찾아 나섭니다. 군중이 기억하는 것은 빵의 기적으로 자신들의 육신의 허기가 채워졌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기적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그들을 꾸짖으십니다. 빵의 기적은 영적 선물의 표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영적 양식을 주심으로써 영혼을 배부르게 해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8월 5일 연중 제18주일 - 요한 6,24-35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영원성, 무한성>
한 소년의 손때 묻은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장정만 해도 5천명, 모두 합치면 만 명 가량은 족히 될 큰 군중들을 배불리 먹이신 예수님의 기적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마디로 ‘훅’ 갔습니다. 빵을 많게 하는 예수님을 바라보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 떠올랐을 것입니다.
‘이제 고생 끝이다, 이제부터는 이분이 계속 빵을 많게 하는 기적을 거듭하실 것이고 더 이상 먹고 사는 문제로 애쓰지 않아도 되겠구나. 이분만 따라다니면 평생 굶어죽지 않겠구나. 그간 숱한 고초를 겪어온 우리 민족의 해결사이니 이분만 따라다니면 먹고 살 걱정 안 해도 되겠구나.’
그런 확신이 선 군중들은 그때부터 기를 쓰고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일부 군중들은 예수님을 왕위에 앉혀야 한다는 마음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속마음을 파악하신 예수님께서는 일찌감치 그들을 피해 호수 건너편으로 떠나가십니다.
그러나 한번 불붙은 군중들의 마음을 잠재우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즘 말로 ‘사생팬’ 저리 가라였습니다. 군중들을 따돌리는 예수님을 집요하게 추적하기 위해 노숙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군중의 모습, 아직 깨달음에 도달하려면 갈 길이 먼 군중, 오로지 모든 관심이 인간적, 세속적, 지상적인 것에만 머물러있던 군중들의 모습 앞에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빵’에 대한 가르침을 시작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예수님께서는 썩어 없어질 육신의 양식과 영원히 살게 하는 영혼의 양식을 비교 대조하시면서 세상의 양식에만 온통 쏠려있는 그들의 시선을 한 차원 끌어올리려고 애를 쓰십니다.
세상의 양식이 지닌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허기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한번 배부르게 먹었다고 그 포만감이 며칠, 몇 년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결코 영원히 충족될 수 없는 유한성, 한계성을 지닌 빵이 세상의 빵인 것입니다.
사실 출애굽 시절 모세 역시 일정한 기간 동안 만나의 기적을 통해 사막을 횡단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허기를 채워주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그 기적의 주체는 하느님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느님께서 분부하신 일을 집행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나의 기적은 한정된 기간 동안만 이루어졌기에 지속성, 영원성이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만나는 시나이 사막을 지나가던 얼마 안 되던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약속하시는 생명의 빵의 특징은 영원성이자 무한성입니다. 일정 기간 동안만 시행되는 한정 특별 이벤트가 아니라 세세대대로 영원히 지속되는 상설 이벤트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만을 위한 특별 서비스 빵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한 빵입니다.
그렇게 명쾌하게 잘 설명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군중들은 깨닫지 못하고 이런 청을 예수님께 드립니다.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아직도 군중들은 자신들의 시선을 한 차원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먹고 사는 문제, 당장 해결해야 할 빵 문제에 머물러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을 향해 그들이 그토록 집착하는 육의 세계, 죄의 세계, 죽음의 세계를 넘어 영과 자유, 생명의 세례로 넘어올 것을 그렇게 강조하시지만 군중들의 귀는 철저하게도 막혀 있습니다.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둔한 백성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 자신이 바로 생명의 빵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영원히 허기지지 않고 목마르지 않는 구원의 샘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오늘 우리가 구원되기 위해, 영원히 살기 위해 선택해야 할 일 역시 오직 한가지입니다.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매일 미사를 통해 나누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먹는 일입니다. 그분께서 메시아임을 굳게 믿는 일입니다. 그분의 가르침-복음-에 따라 사는 일입니다. 그분께서 가르쳐주신 생명에 이르는 길-사랑의 길-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2012년 나해 연중 제 18주일
<나에게 오는 사람은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제1독서: 탈출기 16,2-4.12-15 제2독서: 에페소서 4,17.20-24
복음: 요한 6,24-35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성모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
2011년 11월 24일 서울 광진구, 모친을 살해하고 8개월간 시신을 숨겨온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존속살해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영장 신청을 받았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학생은 “어머니가 대학진학 상담을 위해 학교에 오게 되면 모의고사 성적표에 전국 62등을 했다고 고쳐놓은 게 들통 나 혼날까봐 겁이 났다”고 살해 원인을 말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늘 좋은 성적을 원했고 아들도 초등학교 6학년 때 토익 900점을 넘겼다고 합니다. 중학교에 가서도 반에서 1∼2등을 했지만 중3이 되면서 점수가 많이 떨어지자 두려워 성적표를 조작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그걸 알아채어 “죽도록 맞았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진학 후 첫 시험에선 전국 4000등이었지만 다음 시험에서는 2만 등이 되어 성적표를 계속 위조했다고 합니다. 2500등, 1500등, 700등, 500등, 250등, 67등, 62등. 점차 나아지는 성적표를 본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전국 1등도 할 수 있다고 했고 아들은 더욱 두려웠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살해한 3월20일은 학교 학부모 총회를 이틀 앞둔 날이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담임선생님과 면담하면서 자신의 실제 성적을 알게 될 것이 두려워 살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살인 사건 전날인 3월19일에도 어머니는 아들이 고3인데도 너무 나태하고 의지가 약하다며 매질했다고 합니다. 그 날 밤 아들은 '맞을 때 입는 솜바지'로 갈아입고 거실에 꿇어앉았으며 매질은 밤 10시부터 이튿날 오전 8시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골프채를 두 손으로 쥐고 아들의 엉덩이를 120여 회 때리다 보니 솜바지의 왼쪽 엉덩이 부위가 찢겨 살점이 떨어져나가 골프채에 피가 묻었다고 합니다. 매질 후 어머니가 잠들자 아들은 오전 11시, 부엌에 있던 칼을 들고 안방에 들어가 잠들어 있던 어머니의 얼굴과 목을 찔렀다고 합니다.
이 어머니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많이 있습니다.
아들이 그렇게 심하게 맞기 시작한 건 5년 전쯤 어머니와 아버지가 별거하면서부터였고,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정식으로 이혼을 요구한 올해 초부터는 체벌의 강도가 한층 강해졌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난 지 1년 만에 가출해 6개월을 떨어져 살았고, 그 뒤로도 이따금씩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일찍이 모친을 여의고 열다섯 살 때부터 세 동생을 돌봤지만 그녀의 부친은 두 남동생만 아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온 어머니는 가정으로부터가 아닌 자신의 힘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를 결심합니다. 당시 여자가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사회에 진출하여 성공하거나, 아니면 결혼하여 아이를 성공시키는 것입니다. 우선 어머니는 첫 번째 방법을 택합니다. 어머니는 혼자 힘으로 서울의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유학도 다녀왔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남편과 결혼을 하고 자신을 철저히 무시했던 친정과는 인연을 끊었습니다. 아들의 아버지도 친인척과 왕래를 하지 않아 세 사람은 철저한 외톨이였다고 합니다. 그랬기 때문에 어머니가 살해된 3월20일부터 아버지가 실종 신고를 한 11월18일까지 그녀의 자취를 궁금해 하거나 수상히 여긴 사람이 없었으며, 아들이 "엄마는 가출했다”고 거짓말을 해도 믿었다고 합니다.
남편도 혼자 일본유학까지 다녀 온 아내 정도라면 사회 어디에 내놓아도 괜찮다고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내를 통해 자신의 지위를 높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는 자신의 노력이 남편의 지위를 높여주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먼저 남편에게 인정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소중한 존재이니까 찬물에 손을 담그면 안 된다. 당신이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해라”라고 남편에게 말했고, 어떤 때는 면도칼을 들고 “당신이 나를 안 믿으니까 동맥을 끊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유명 브랜드의 고급차를 갖고 싶어 했습니다. 보통 차는 “남들이 무시한다”며 거부했습니다.
남편은 이런 아내가 부담스러워서 집보다는 집 밖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둘의 관계는 점점 멀어졌습니다. 아들을 낳은 지 1년 만에 6개월 동안 떨어져 살았고, 그 뒤로도 이따금씩 집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별거를 시작한 5년 전부터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구타가 심해졌습니다. 이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은 아들을 성공시키는 것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모든 행위가 아들을 위해서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이렇게 된 것은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던 자신을 세상에서 채우려 했던 데에서 비롯되었던 것입니다. 만약 가정에서부터 인정받는 사람이었다면 아이를 외톨이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책임은 어머니의 부모님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경찰서에서 아이를 만난 이모가 물었습니다.
“차라리 도망가지 그랬니?”
“도망칠 곳이 없었어요.”
아이를 이렇게 철저하게 고립시킨 것은 어머니와 아버지 탓이었습니다. 또 그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들의 부모의 탓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들이 온전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이도 세상에 외톨이로 남게 만든 것입니다.
EBS 다큐프라임에서 방영된 ‘마더쇼크’란 프로그램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고통을 보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되면 행복할 줄만 알았고, 또 엄마가 되어 행복하겠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아기가 보기 싫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쁜 엄마 같아서 죄책감이 듭니다.
한 어머니는 아기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어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열 시간 동안 애가 보챘던 날은... 애가 우니까... 이런 말까지 하면 너무 정말... 그렇지만... ‘애 입에 손수건을... 물려버리고 싶다.’... 너무 막 미칠 것 같고. ... ‘애기를... 버리고 싶다.’ ... 흑흑”
다른 분은 어린 아기를 안은 채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어느 날 창문을 열고 밑을 보았는데... ‘뛰어내리고 싶다.’라는 생각이 충동적으로 들고...”
어머니는 아기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도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자신은 엄마가 되기에 합당하지 못한 사람처럼 생각이 듭니다.
‘엄마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어떤 것들이 있는 지 어머니들에게 물었습니다.
- 항상 아이가 최우선이어야 한다
- 항상 아이의 마음을 읽어줘야 한다
- 항상 화를 내면 안 된다
- 항상 교육정보에 능통해야 한다
- 항상 나를 포기해야 한다
- 아이의 재능을 발견해야 한다
- 아이의 장례 계획을 잘 세워줘야 한다
- 항상 모유 수유를 해야 한다
- 항상 참아야 한다
그러나 정작 엄마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한 사람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엄마가 행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기는 엄마를 보면서 하루에도 2000-3000편의 광고를 보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아기는 엄마를 통해서 세상을 배워갑니다. 그런데 엄마가 정서적 안정이 되어있지 않다면 엄마의 짜증난 목소리와 눈초리 등이 아기의 마음 깊숙이 새겨지게 됩니다. 따라서 좋은 엄마는 엄마로서 당연히 해야 한다고 강요받는 수많은 저런 것들보다 정서적 안정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아이를 위해 24시간 헌신해야 하는 엄마가 정서적으로 어떻게 자신을 안정시킬 수 있을까요? 아마도 남편의 힘이 가장 클 것입니다. 남편이 일찍 들어와서 엄마의 일을 조금이라도 분담해주고 수고한다고 한마디만 해 주어도 엄마는 큰 힘을 얻게 됩니다.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로 나옵니다. 그리고 교회의 아버지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엄마는 자녀들이 부족한 것을 금방 눈치 챕니다. 바로 혼인잔치에 술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당신 자녀들에게 달려가지 않습니다. 곧바로 예수님께 달려갑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약간 부정적인 대답을 하시며 포도주를 주시기를 거부하십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기적을 강요하십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하면 당신을 사랑하는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녀들에게 포도주를 주시지 않을 수 없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만큼 그리스도께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먼저 사랑받고 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그래서 당신의 자녀들인 교회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얻어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아버지보다 아이에게 신경을 더 쓰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이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아이를 위해서 아버지에게 더 신경을 써야합니다. 만약 둘이 이혼하게 되면 아버지의 부재로 가장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은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먼저 남편에게 인정받아야합니다. 그러나 인정받는 가장 빠른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겸손함입니다. 순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순종으로 아버지께 인정받으셨기 때문에 당신의 자녀들에게 생명의 빵이 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먼저 하느님으로부터 인정받으려고 노력합시다. 우리는 재료이고 우리로 양식을 만드실 수 있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만약 밀가루에 모래가 섞여 있다면 빵을 만들 수 없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생명의 빵이 되고 싶거든 먼저 나를 좋은 빵으로 만들어주실 수 있는 분께 인정을 받도록 합시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