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서정주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를 못 참아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조지훈의 "석문(石門)"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 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 난간(石壁欄干) 열두 층계 위에 이제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까지는, 길이 꺼지지 않을 촛불 한 자루도 간직하였습니다. 이는 당신의 그리운 얼굴이 이 희미한 불 앞에 어리울 때까지는, 천년(千年)이 지나도 눈감지 않을 저희 슬픈 영혼의 모습입니다.
길숨한 속눈썹에 항시 어리운 이 두어 방울 이슬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남긴 푸른 도포 자락으로 이 눈썹을 씻으랍니까? 두 볼은 옛날 그대로 복사꽃빛이지만, 한숨에 절로 입술이 푸르러 감을 어찌합니까?
몇 만리 굽이치는 강물을 건너와 당신의 따슨 손길이 저의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 그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 줌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어두운 밤 하늘 허공 중천(虛空中天)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저의 옷자락은, 눈물 어린 눈이 아니고는 보이지 못 하오리다.
여기 돌문이 있습니다. 원한도 사무칠 양이면 지극한 정성에 열리지 않는 돌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다시 천년(千年)토록 앉아 기다리라고, 슬픈 비바람에 낡아 가는 돌문이 있습니다.
출전 : 시집 '풀잎 단장'(1952)
시는 산문시이다. 산문시라고 해서 아무런 운율이 없는 것이 아니며, 일상 언어의 자연스러운 리듬을 살리면서 독특한 효과를 살리고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 버림받은 신부가 지닌 한을 짤막한 틀의 정형적 리듬이나 자유시의 리듬에 담게 되면, 그 절절한 사연을 표출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이 작품은 조지훈의 후기시에 속하는 것으로 그의 고향인 경북 영양 일월산 황씨 부인 사당에 전해지는 전설을 소재로 했다.
"옛날일월산 아랫마을에 살던 황씨 처녀는 그녀를 좋아하던 두 총각 중 하나에게 시집을 갔다. 신혼 초야 잠들기 전 신랑이 뒷간에 다녀오다 신방문에 비친 칼 그림자를 보고 놀라 그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리 달아났다. 그 칼 그림자는 마당의 대나무 그림자였는데 연적의 칼로 오인했던 것이다. 신부는 족두리와 원삼도 벗지 않은 채 신랑이 돌아도기를 기다리다 한을 안고 죽었는데 그녀의 시신은 첫날밤 그대로 있었다. 그 후에야 이 사실을 안 신랑은 뉘우치고, 일월산 부인당에 모신 후 사당까지 지어 바쳤다."
제1연부터 제3연까지 격양되어 오던 정서는 제4연에서 갑자기 톤(tone)을 달리한다. 제4연부터는 미래에 있을는지도 모를 해후의 뒷모습을 그리고 있다. 제1연과 제5연을 따로 떼어 읽을 때 시상이 상반된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어조의 변화에서 온다. 제3연에서 '어찌 합니까?'는 푸념처럼 들리는 한편 제4연에서 '사라지겠습니다'는 절개를 지키겠노라는 매운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원한'이란 주제의 일관성을 가지면서도 첫째 '자신의 힘만으로는 풀리지 않는다'는 하소연, 둘째 '당신이 오면 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상반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제5연에서는 현재까지도 '열리지 않는 돌문'을 보여 줌으로써 그 원한이 신화적 시간대에 미치고 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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