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양곡 소세양이 노래한 면앙정의 정경이다.
대나무와 수풀이 깊은 곳에 정자가 깊숙하니 백척이나 끊어진 언덕 머리에 서 있네 고인물이 가득할땐 들까지 합해지고 뜬 구름이 걷히면 산봉우리가 둘렀네 금성산은 비를 몰아 사방으로 보내고 무등산은 가을을 한 조각씩 나누어 놓았네 꿈에 놀라 깨어보니 가슴이 텅 비었는데 봉래산에 원중이와 학은 무슨 수심 있으리오
나. 하서 김인후가 노래한 면앙정 30영의 오언 절구의 해석을 보면 다음과 같다.
면앙정 30영
추월취벽(秋月翠壁) 추월이라 산이름도 좋으려니와 깎아지른 푸른벽이 사면 에웠네 시냇구름 부질없이 일지를 마소 밤마다 맑은 빛이 돌고 돈다네
용구만운(龍龜晩雲) 만골짝의 유기를 불어 통하고 천 봉우리 짜는 열 숨으로 뜨네 비를 거풀 울밀히 얽히었으니 온갖 물건 비 이슬을 받는구나
몽선창송(夢仙蒼松) 정이 엉겨 고관을 점잖게 쓰고 푸른 일산 박은채 오래섰구나 흰 학이 날아온지 어느 해런고 용 거북과 서로들 너나하구나
불대낙조(佛臺落照) 제 성인의 무리는 그 누구인가 신선 부처 자기들끼리 서로 뽐내네 저 해가 상기도 하늘에 있어 높은 벽에 반조가 들어오네
어등모우(魚登暮雨) 가물가물 아득아득 한들머리에 저 어등산 저물녁 비가 내리네 구태여 주렴을 걷으려마오 신들 가운데 멀리 뻗혀 당에 드네
용진기봉(湧珍奇峰) 방이 바로 쌍첨의 북이라 아침 저녁 빼어난 빛을 보구나 서쪽에서 바라면 더 기특하니 땅 형세 기운 것이 되려 귀엽네
금성묘애(錦城杳靄) 아스라이 비단펼친 저 금성산에 있다 없다 잠깐이라 끊임없네 건곤이라 만리안 시를 읊으며 초당의 한 선비를 생각하네
서석청람(瑞石晴嵐) 서석이라 곤산의 정채를 머금어 새파랗게 솟아라 북진을 꼈네 솔가지 아스라이 어리비치니 좋은 풍경 고사에 맡기었구나
금성고적(金城古迹) 설험을 거듭한지 몇해인가 바윗골은 말없이 아득하기만 지난 일은 늙은이한테 듣는데 맑은 시내 아홉샘을 보내 주누나
옹암고표(甕巖孤慓) 둥근바위 우뚝하여 해를 받드니 뭇산이 한눈아래 나직하구나 신선님의 응당 술을 담아 놓고서 띠끌 속의 해계를 비웃네
죽곡청풍(竹谷淸風) 한 여름에 오히려 소슬한 느낌 선들선들 푸른 옥의 가을이로세 만 구멍의 노호를 삼켜버리고 열어구의 놀이에 붙지를 않네
평교제설(平郊霽雪) 들이 넓어 진계를 열어 놓아라 선명한 밝은 해를 더 보태었네 사람은 기원속에 살고 있다면 새는 옥림앞에 나타나는걸
원수취연(遠樹炊煙) 한 마을이 솔 대고 끼고 있으니 어둔 빛이 눈에 벌어 가물거리네 만가닥 연기 뭉쳐 하나가 되어 향랑음을 몇 번이나 익혔는지
광야황동(曠野黃稻) 서주가 남북으로 비스듬히 뻗어 고물고물 모두가 양전이로세 길고 가는 그 일도 구경 좋지만 익어가는 때가 가장 어여쁘네
극포평사(極浦平沙) 이수라 망루 터는 아스라한데 긴 개울에 흰 모래 어리비치네 모래 끝이고 물이 다만 그곳에 신선 타던 뗏배를 띄워 보련다
대추초가(大秋憔歌) 띠집이 앞 냇가에 얼려 있는데 집집마다 울타리는 푸른 대나무 환호소리 먼 길을 연대었으니 경착하던 그때가 완연하구나
목산어적(木山漁笛) 추촌이 한 기슭이 격해 있는데 젓대를 희롱하는 목산사람들 넘실대는 복사꽃 물결이라면 쓸쓸한 하얀이슬 내릴때로세
석불소종(石佛疎種) 정자가 옛절과 마주있으니 서풍에 종소리가 떨어지구나 맑은 숲이 상뢰와 늘 어울리니 속된 먼지 한점 인들 있으랴
칠천귀안(漆川歸譏) 강호에 가을 빛이 감돌아 드니 변방에 붉은 기러기가 맨 먼저 아네 칠수라 돌아갈 길 아스라하니 득의의 자랑인양 울며나구나
혈포효무(穴浦曉霧) 반으로 들을 끈 용두기슭이 돌고돌아 이쪽으로 열리었구나 새벽이면 나타났다 묻혔다 하니 조물주도 한가하지 못하구나
심통수죽(心通脩竹) 폐한지 오랜 저 심통사는 푸른 대 무성하여 구름 닿았네 온갖 덤플 언감히 대항할손가 좋은 열맬 봉황 오기만 기다리네
산성조각(山城早角) 자다 깨니 창이 겨우 새려 하는데 성머리 화각 소리 오누나 원님이 일찍부터 정사를 보니 시골마을 웃으며 기뻐들하네
이천추월(二川秋月) 긴 인띠가 원근에 비끼었으니 옥룡천에서부터 끌고 왔구나 더구나 가을달을 걸어 놓으니 정신이 이보다 더 오즉할손가 칠곡춘화(七曲春花) 가운데 봉을 눌러 정자가 서니 세봉이 제 각각 일변이 있네 봄바람 온갖 고움 들려 놓으니 하나 하나를 더 사랑할건가
후림유조(後林幽鳥) 맑은 그늘 솔숲과 대숲 사이에 좋은 새 가름하여 부르고 울고 아름다운 그 가락 천가지지만 들려올 적 철바뀜을 노래네
청파도어(淸波跳魚) 바람이 고요하니 수를 셀것만 즐거워 뛰놀아라 석양 물결에 꼬리치며 자연스레 움직여가니 서로잊은 그 낙이 얼마만인가
사두면로(沙頭眠鷺) 물 푸르고 모래마저 부드러우니 풍류 꿈이 또 한번 찾아드네 기심잊은 늙은 기개 품어서이지 고기를 쫓아온 건 아니랍니다
간곡홍료(澗曲紅蓼) 영롱한 푸른 시내 저 언덕안에 가을빛 무르익은 여귀한 떨기 조촐한 모래톱에 어리비치니 유별나게 붉은 그 모양을 보소
송림세경(松林細逕) 막대 신발 때없이 오게만 하네 푸른솔이 한구역을 끼고 있기에 도연명의 삼경이 본시 짧으니 외론 그루 만지어라 흥이다하네
전계소교(前溪小橋) 해 늦어라 교랑을 놓았으니 동서 내왕이 편리하다만 가장 간절한 건 농부와 어부 밤낮으로 갔다 도로 돌아오네
광주 북구청 발간: 광주호 주변 무등산권 문화유산 기초보고서에서 발췌한 번역 내용임
다. 면앙정 송순의 면앙정가(해제본)
< 면앙정가 >
무등산 한 줄기의 산이 동쪽으로 뻗어 있어 멀리 떨치고 나와 제월봉이 되었거늘 끝없이 넓은 들에 무슨 생각하느라고 일곱굽이를 한데 머움쳐서 무더기무더기 벌여 놓은 듯 가운데 굽이는 구멍에 든 늙은 용이 선잠을 막 깨어 머리를 얹어 놓은 듯 하네. 넓은 바위 위에 소나무와 대나무를 헤치고 정자를 앉혔으니 구름을 탄 청학이 천 리를 가려고 두 날개를 벌린 듯하구나 옥천산 용천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정자 앞 넓은 들에 올올이 펴진 듯하구나 넓거든 길지나 말거나 푸르거든 희거나 말거나 쌍룡이 뒤트는 듯 긴 비단을 온통 펼쳐 놓은 듯. 어디를 가느라고 무슨 일이 바빠서 달리는 듯 따르는 듯 밤낮으로 흐르는 듯. 물을 따라 모래톱은 눈처럼 펼쳐 있고 어지럽게 나는 기러기 떼는 무엇과 정을 통하느라고 앉았다 내렸다 모였다 흩어졌다 하면서 갈대꽃을 사이에 두고 울면서 서로 쫓는고. 넓은 길 밖 긴 하늘 아래 둘러 있고 꽂혀 있는 것은 산인가 병풍인가 그림인가 실물인가 높은 듯 낮은 듯 끊어지는 듯 이어지는 듯 숨거니 보이거니 가거니 머물거니 어지러운 가운데 이름난 양하여 하늘도 두려워 않고 우뚝 선 모습이 추월산을 머리로 삼고 용구산 몽선산 불대산 어등산 용진산 금성산이 허공에 벌어져 있는데
원근의 푸른언덕에 머문 것이 많기도 많구나. 흰 구름 뿌연 안개 노을 푸른 것은 산아지랑이리라. 많은 바위와 골짜기를 제집으로 삼아 두고 나며 들며 아양도 떠는 구나. 오르거니 내리거니 장공(장공)에 떠나거니 광야를 건너거니 푸르락 붉으락 옅으락 짙으락 서산으로 기우는 저녁 햇볕과 섞이어 가랑비조차 뿌리는 구나. 남녀를 재촉해 타고 소나무 아래 굽은 길로 오며 가며 하는 때에 푸른 버드나무에 우는 꾀꼬리는 교태겨워 하는구나.
나무 사이 우거져 녹음이 짙은 때에 백척(백척) 난간에서 긴 졸음을 내어 펴니 수면의 서늘한 바람이야 그칠 줄 모르는 구나. 된서리가 걷힌 후에 산 빛이 수놓은 비단이로구나. 황운은 또 어찌 끝없는 들에 퍼져 있는고 어부도 흥에 겨워서 달을 따라 (피리를)부는 것인가
초목이 다 떨어진 후에 강산이 묻혔거늘 조물주가 야단스러워 얼음과 눈으로 꾸며내니, 경궁요대와 옥해은산이 눈 아래 펼쳐졌구나. 천지도 풍성하구나. 간 곳마다 아름다운 경치로다. 인간세상 떠나와도 내 몸이 겨를 없다. 이것도 보려 하고 저것도 들으려 하고 바람도 쏘이려 하고 달도 맞으려 하니 밤일랑 언제 줍고 고길랑 언제 낚고 사립문은 누가 닫으며 낙화는 누가 쓸 것인가 아침 시간이 부족한데 저녁이라고 싫을소냐 오늘이 부족한데 내일이라고 넉넉하랴 이 산에 앉아 보고 저 산에 걸어보니 번거로운 마음에도 버릴 것이 전혀 없다. 쉴 사이 없거든 길이나 전하리라. 다만 한 청려장이 다 무디어 가는 구나. 술이 익었거니 벗이야 없겠는가 부르며 타며 켜며 흔들리며 온갖 소리로 취흥을 재촉하니 근심이라 있으며 시름이라 붙었으랴. 누으락 앉으락 굽으락 젖히락 읊조리며 파람불며 마음놓고 놀거니 세상도 넓고 넓으며 세월도 그때로구나. 신선이 어떻던가 이 몸이 신선이로구나. 강산 풍월(강산 풍월) 거느리고 나의 평생을 다 누리면 악양루 위의 이태백이 살아와도 호탕한 정회야 이보다 더할소냐. 이 몸이 이런 것도 또한 임금의 은혜이시도다.
- 「잡가」에서 옮긴 김동욱 논문 게재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