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의 생각노트>
용기 있는 리더의 품격
이종화
스스로 이룬 학문을 ‘그릇된 식견’이라 칭했던 퇴계는 세상을 떠나는 날 아침, 곁에 있던 사람들에게 매화에 물을 주라고 일렀다. 그날 오후, 조선 최고의 지성은 병석을 정리하고 좌정했다. 그리고 앉은 채로 영영 잠이 들었다. 온 나라가 슬퍼했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담담했던 것 같다. 스스로의 학문을 그릇된 것이라며 한껏 몸을 낮춘 그 내공을 짐작케 한다.
글로벌 사회와 겸양
동양 사상에 심취했던 독일의 문호 헤르만 헤세도, 인생의 끝자락에서 심장의 고동이 희미해지더라도 미소를 잃지 않는 법을 터득하는 것은, 배우지 않고선 참 이르기 힘든 경지라고 말했다. 소위 ‘수신’이나 ‘체찰’이라 부르는 덕목인데, 서구식 교육이 지배하는 요즘 학교에선 잘 가르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리더로 불리는 사람들이 비전을 말하기에 앞서 함양했으면 하는 가치일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굳이 보여주지 않고도 느낄 수 있게 하는 경지. 산전수전 다 겪으며 나이가 든다고, 지식을 익혀 전문가가 되어도, 문제해결 능력이 남달라 최고라는 명성을 얻는대도, 모두에게 훌륭하다는 평판을 백날 들어도, 쉽게 이를 수 없는 그 경지. 욕망의 사슬에 꽁꽁 묶인 자신을 온전히 버리지 않고선 도달하기 힘들 것 같은 정신의 성숙. 그런 리더라면 우쭐대지 않고 진화를 거듭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이끌 비즈니스 리더를 길러낸다는 그럴듯한 구호를 외치는 MBA에서는 정작 ‘겸손’을 가르치진 않는다.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도 용기와 모험정신, 책임감과 다양성, 전문성과 팀워크 등 화려한 말을 핵심가치로 꼽아 2년 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쳤지만, 학교가 우리에게 체화되길 바랐던 위시리스트에 겸손 따윈 없었다.
제 잘난 이들이 모여 저마다 팀을 이루고 동문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우린 한 가족이라 외쳐댔지만, 웬만한 내공도 없이 자신을 낮추었다간 그냥 아랫자리로 내려앉는 거였다. 빈말로 추어줄망정 빈말이라도 자기를 낮추면 아니 되는 곳. 겸손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작은 글로벌 사회에서 내가 살아가는 법이었다.
가면 속의 진실
한국을 떠나 있던 이태. 우리나라는 변하지 않았다. 출국할 때는 없던 ‘헬조선’이란 신조어가 나라 전체로 퍼졌다. 그리고 그 말은 결국 바다를 건너 내게도 들려왔다. 중산층의 지갑이 차츰 얇아지다가 중산층마저 얇아지긴 미국도 마찬가지였고, 자국의 정치에 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기는 미국인들도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한국인들이 느끼는 절망감은 유난히 깊어 보였다.
변해야 할 게 변하지 않았다면, 그건 아마도 악화되었다는 뜻일 게다. 나아질 거라 기대했지만 양극화는 거의 해소되지 않았고, 그런 나라를 확 떠나고 싶다는 젊음들의 푸념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던 지식인은 꼰대 소리까지 들으며 비판을 받았다. 입만 열면 국민, 국민을 외치던 사람들도 먹고 살기 위해 제 밥그릇부터 챙겼고, 사회는 할 수 없이 과하게 밥을 챙긴 이들을 따로 골라 힐책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라는 게 과연 비난받을 이유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당하지 못한 어떤 부자들은 손가락질을 받을 만했다.
삶이 촛불처럼 흔들리고 춤사위는 어지러운 오늘,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 걸까. 어느 날 차가운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그 사연 많은 배가 여태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것처럼, 가진 사람들의 야릇한 입꼬리 끝에 머문 그 침묵은 의혹을 눈덩이처럼 키워만 가고 있다. 신뢰가 깨져버린 사회에서 가면 뒤에 숨은 진실은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우리 손으로부터 멀어져만 갔다. 용기 없인 잡을 수 없는 게 진실이라는 슬픈 사실이, 진실을 쫓던 이들이 깨닫게 되는 유일한 진실인 것 같았다.
빛과 그림자
대학 시절 어떤 교수님은 자신의 생에 두 번의 변곡점이 있었다고 했다. 한 번은 군 생활, 다른 한 번은 독일에서의 유학이라는 거였다. 특히, 유학 시절 후진국의 가난한 유학생으로 유럽에 건너가, 참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나 나도 유학이란 걸 갔다. 거대한 혼란에서 한 걸음 물러나 내가 살던 세상을 멀리서 보았다.
나와 나를 둘러싼 주변의 한계와 가능성이 파란 하늘의 흰 구름처럼 드문드문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걷고 있는 시대, 우리 세대가 할 수 있는 일과 하기 힘들 것 같은 일이 언뜻 보였다. 우리 뒤를 걷게 될 사람들이 무얼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생각해 보기도 했다.
코리아는 외국인들에게, 특히 아시아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이름이었다. 국적을 이야기할 때마다 머뭇거려야 했던 필리핀 아이, 날 보면 말춤을 추어 달라 조르던 베트남 친구, 뿌리 깊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강해도 국가의 개념은 좀 약했던 머리 좋은 인도 친구에게 한국은 참 부러운 나라임에 틀림없었다. 혼란스러운 자기 나라는 지도상에서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킬킬거리던 베네수엘라 친구를 보며 제 나라에 수치심이 아닌 자부심을 느끼는 것도 큰 행운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울 지하철 노선이 무려 아홉 개라며 다섯 개뿐인 비엔나보다 더 큰 것 같다고 말하던 오스트리아 친구도 과거 적대 관계였던 미국은 아주 위험한 나라라며 우스갯소리를 해대는 아르메니아 친구에게도 한국의 발전상은 경이로웠다.
빛과 그림자가 나란히 손잡고 달리는 역사라는 경주. 나라 밖에서는 이제 듣기조차 힘든 <냉전>이란 낡은 단어가 남긴 이념의 이분법을 여전히 깨지 못하는 나라, 대한민국. 우리 현대사를 지켜보던 외국인들은 그들이 수백 년씩이나 걸려 겨우 만든 빛을 단숨에 움켜쥔 한국에 찬사를 보내며, 그 빛이 남긴 그늘도 주목하고 있었다. 한 일본 친구는 한국보다 일본이 나은 점은 청렴이라 말하기도 했고, 어떤 교수님은 산업화를 이뤘지만 한국은 아직 세계시장을 지배할 만한 경쟁력은 없다고 꼬집었다. 쉼 없이 올라가려 했고, 남보다 빨리 목적지에 당도하려고만 했던 우리가 그동안 잊고 지낸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리더의 품격
프랑스에서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던 시절. 그 활기차고 암울했던 시기, <목로주점>과 <나나>를 통해 사회 밑바닥을 세밀하게 그린 자연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는 ‘드레퓌스 사건’으로 프랑스 정치 논쟁의 한복판에 선다.
프로이센 군대에 파리의 심장인 베르사유 궁전을 점령당한 프랑스인들은 놀라운 결속력으로 비스마르크가 요구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해버린다. 반독일 감정이 팽배하던 그 시절, 프랑스 대위였던 드레퓌스가 독일에 군사 정보를 제공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는다. 그 후 진범이 발견되었지만 군부는 그의 결백을 은폐하려 했고 드레퓌스는 계속 죄인으로 남았다. 당시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였던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사설을 통해 문제를 제기했고 이는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이때 졸라는 자신의 작품과 작가로서 쌓아온 그의 명성을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모두 걸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는 국가권력을 모략했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고 망명길에 오른다. 졸라는 어두운 노년을 보내다 세상을 떠났지만 진실의 편에 용기 있게 선 양심적인 지성으로 빛나고 있다.
우리가 이념의 틀에 갇혀 쉬 빠져나오지 못하는 건 그보다 더 차원이 높은 정신적 구심을 여태 찾지 못해서일 것이다. 빨리 일어설 수 있어 좋았지만 빨리 지은 집에는 빠진 벽돌도 많은 법이다. 한국이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점들이 많다고 해도, 선진국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는 정신적 리더들은, 없다. 사회에는 늘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고 다툼과 갈등은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앞선 나라라면 이념을 초월해 누구나 귀 기울여보고 싶은 현자들이 있다. 그들은 정답을 제시하지도 판결을 내리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낮은 곳에서 오랫동안 갈고 닦은 지혜를 소신껏 밝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전문가도 많고 일 잘하는 실력자들은 많아도 스스로를 낮추며 양심을 지키는 용기 있는 리더는 드문 우리나라.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그 존재 정도만 알려진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오늘 자신에게 적이 있다면 그건 겸손하지 않아서일까. 촛불이 캐럴을 덮은 겨울, 난 과연 더 낮아질 수 있을까.
월간 금융 2017년 1월호
첫댓글 가슴이 먹먹해지는 글입니다.
가만히 있다가 <44번 버스 승객>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요즘입니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작금의 혼돈이 정리되고 좀 더 수준 높은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이 남기는 울림에 가만히 귀기울여봅니다.
삼십대의 현역 은행원인 이종화 씨는 젊은 수필가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