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황장애
대학졸업반 O희는 친구와 학교 근처 식당에 앉아 있었습니다. 주문한 식사를 기다리며 이
런저런 얘기를 주고 받는데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뛰면서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신은 아득해지고, 주위가 꿈결처럼 갑자기 낯선 곳으로 느껴지는 것이
었습니다. 간신히 화장실로 가서 찬물로 얼굴을 씻고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정신을 가다듬
으려 애를 썼습니다. 오분 쯤 지났을까? 다행이 증상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하지
만, 조금 전 일어난 그 이상한 현상때문에 0희의 마음은 아직도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와 비
슷한 증상은 그 후 몇 주일에 한번씩, 잊을만하면 나타나곤 하였습니다.
두 달쯤 지난 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차안은 만원이었고 공기가 희
박해진 것 같이, 누가 목을 조르는 것 같이, 숨이 막히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동시에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고,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식은 땀이 흐르며, 눈 앞이 캄캄해 졌습니다. 정
신을 잃고 그대로 기절해 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무언가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공포
감과 여기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자제력을 잃어 비명을 지르고, 달리
는 버스에서 뛰어내리거나, 숨이 막혀 죽는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모든 무섭고 고통
스런 증상들이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정거장까지 시간이
영원처럼 길게만 느껴졌습니다.
공황장애란?
0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요?
정신과의사들은 공황장애(Panic disorder)라는 이름으로 진단합니다. 그리고 0희가 경험했던,
무서운 공포와 불안증상이 갑자기 밀려오는 현상을 공황발작(Panic attack)라고 부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발작이라는 용어에 대해 간질발작 등을 연상하고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사실 증상이 나타날 때의 그 무서운 경험, 마치 마른 하늘에 날벼락 치듯 밀려 오는 공포와
불안 증상은 발작이라는 말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면 공황장애라는 병은
대체 어떤 병일까요?
공황이니 공포니 하면 아주 심한 상태의 불안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불안의 정도
와는 무관하게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불안증상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은 모두 공황장애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공황장애의 진단기준을 광범위하게 잡는 것이 이 병
을 조기진단하고 조기치료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공황장애의 조기진단과 조기치료는 왜 중요한가요?
그 이유는 치료를 받지 않았을 경우, 공황장애의 일반적인 진행경과를 보면 쉽게 알 수 있
습니다.
미국 정신의학회(APA)에서 정한 공황장애의 진단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공황장애의 진단기준 (APA)
1. 누구나 불안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천재지변이 일어나거나, 실제로 큰 위험이 닥친) 상황
에 처한 것도 아니고, 여러사람의 관심의 초점이 되어있는(여러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거
나 노래를 부르는 것과 같은) 상황도 아닌데, 예측할 수 없었던 공황발작이 갑작스럽게 일
어났던 경우가 한번 이상 있었다.
2. 이런 공황발작이 한달 동안 4번 이상 있었거나, 공황발작이 나타난 후 또 다시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한달 이상 지속적으로 느낀 경험이 있었다.
3. 공황발작이 있을 때, 다음 13가지 증상 중에서 적어도 4가지 이상의 증상이 동시에 나타
났던 경우가 한번이라도 있었다.
(1) 호흡이 가빠지거나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
(2) 어지럽고 휘청휘청 하거나 졸도할 것 같은 느낌
(3) 맥박이 빨라지거나 심장이 마구 뜀
(4) 손발 혹은 몸이 떨림
(5) 땀이 남
(6) 질식할 것 같은 느낌
(7) 메슥걸음이나 속이 불편함
(8) 비현실감(딴세상에 온 듯한 느낌이나 자신이 달라진 듯한 느낌
(9) 손발이 저릿저릿하거나 마비되는 느낌
(10) 화끈거리는 느낌이나 오한
(11) 가슴부위의 통증이나 불편감
(12) 죽음에 대한 공포
(13) 미쳐버리거나 자제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 같은 공포
註) 4가지 이상의 증상이 동시에 나타난 경우를 공황발작이라고 하며,그 이하의 증상만이
나타난 경우를 제한된 증상발작이라고 한다.
4. 적어도 몇번의 공황발작에서 첫번째 증상이 나타난 후 10분이내에 위의 증상들 가운데 4
가지 이상의 증상이 연이어 나타나고, 그 정도가 점점 더 심해졌던 경우가 있었다.
5. 기질적(신체적)요인이 증상을 일으키거나 유지시킨 경우(예를 들면 암페타민이나 카페인
중독, 갑상선 기능 항진증 등)는 제외된다.
공황장애의 결과
공황장애라는 병은 대개 다음의 7단계를 거쳐 진행이 됩니다. 물론 개개인에 따라 그 양상
이 진행속도가 다를 수 있고 모든 단계를 다 거치는 것이 다를 수 있고 모든 단계를 다 거
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공황발작이 반복될 경우 공포증과 우울증에 빠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공황장애의 7단계
제1기 증상발현 단계
제2기 공황단계
제3기 건강염려단계
제4기 제한적 공포증 단계
제5기 사회공포증 단계
제6기 임소(臨所)공포증 단계
제7기 우울증 단계
제1기 증상발현 단계
공황장애는 모든 연령층에서 나타날 수 있지만 50% 이상이 20대에서 발병합니다. 처음에는
앞서 소개한 여러가지 불안증상들 중에서 어느 한, 두 가지만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
떤 증상이 제일 먼저 나타나는가는 사람마다 다른데 때때로 한 번씩 별다른 이유도 없이 갑
자기 심장이 뛴다든지, 온몸에 힘이 빠지고 쓰러질 것 같은 느낌, 질식할 것 같은 느낌 등의
증상들이 스쳐 지나갈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너무 피곤해서, 혹은 너무 신경을 많이 써
서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수가 많습니다. 이정도의 증상을 경험하는 사람은 상당히 많아 전
체 인구의 10-30% 정도가 일년에 적어도 한 차례 이상 이런 상태를 겪는다고 합니다.
제2기 공황단계
몇가지 가벼운 증상이 간헐적으로 나타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심한 공황발작이 일어납니다.
물론 처음부터 심한 공황발작으로 시작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환자가 겪는 고통과 두려움은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공황발작이 있을때 환자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대로 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서든 이 상
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절박함 뿐입니다.
이 상황에서는 거의 모든 환자가 응급조치를 받으려고 합니다. 우황청심원, 심장약, 진정제
등을 복용하고 응급실로 달려갑니다. 자신에게 심장마비나 뇌출혈 같은 위급사고 치명적인
상황이 일어나는 것으로, 아니면 미쳐버리는 것이라고 믿고 공포에 질립니다.
일단 발작이 시작되면 몇분 동안 계속되다 점차 수그러들지만 이 짧은 시간이 환자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일단 고비가 지나간 후에 더 매우 긴장되고 혼란스런 상태는
적어도 몇 시간 동안 계속됩니다.
제3기 건강염려단계
병원을 찿아간 환자는 당연히 심전도, X-RAY,혈액검사등 여러가지 검사를 받게 됩니다. 그
러나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무서운 증상은 무엇이란 말인가? 내
가 꾀병을 했단 말인가? 신경성이라는데 무슨 신경성이 이렇게 심한 증상으로 나타나는가?
또 신경성이라면 내가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거나 의지력이 약하단 말인가?
검사가 잘 못 되었거나 보통 검사로는 찿아낼 수 없는 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 병원,
저 병원 찿아다니면서 온갖 검사를 받아 봅니다. 컴퓨터 촬영, 내시경, 심전도, 뇌파검사와
심지어는 위험성이 있는 특수 검사도 해 보자고 조릅니다. 그래도 여전히 아무 이상이 발견
되지 않습니다. 환자는 정말 미칠 지경이 됩니다. 신문이나 방송, 책에서 건강에 관한 내용
을 빠짐없이 읽고 혹시 '내가 이 병이 아닐까, 저병은 아닐까' 근심 걱정을 합니다.
실제로 공황장애 환자의 70% 이상이 공황장애로 확진을 받기까지 10명 이상의 의사에게 진
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루종일 자신의 신체에만 관심을 쏟고 혹시라도 이상한 증상이 느
껴지지 않나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생활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오로지 병
에 대한 생각에만 골몰하는 것입니다.
제4기 제한적 공포증 단계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환자들은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게 됩니다. 우선 공황발작이 일어날
가능성이 큰 장소나 상황을 회피하는데 이 회피현상을 공포증(Phobia)라 합니다. 공황발작
의 정도가 심했거나 자주 일어났다면 공포증은 더욱 빨리, 광범위하게 일어납니다.
회피하는 대상은 환자들마다 차이가 있지만, 과거에 공황발작을 경험했던 장소를 일차적으
로 두려워하게 됩니다. 앞서 예에서의 경우 버스에 대한 공포증이 생기게 되겠지요.
그밖에도 공황발작이 일어날 경우 쉽사리 빠져 나오기 어려운 장소나 여러 사람 앞에서 망
신을 당할 위험이 큰 장소를 꺼리게 됩니다. 엘리베이터나 붐비는 백화점, 장거리 고속버스,
혹은 비행기 여행 등이 예가 되겠습니다.
또 공황발작과 비슷한 증상을 일으키는 상황, 예를 들면, 공기가 탁해서 숨막히는 느낌이 드
는 곳, 너무 더워서 땀이 나는 곳, 어지럼증을 일으키는 놀이기구 등도 회피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성관계시 가슴이 뛰고, 숨이 가빠지며, 땀이 나는 등의 자연스런 현상도 공황증상
이 오는 것으로 착각해서 성관계를 회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찬물이 몸에 닿을 때의
쩌릿쩌릿한 느낌이 공황발작이 시작될때의 증상과 비슷해서 목욕탕에 가서도 찬 물을 사용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현상들을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
다"는 우리 속담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공포증은 회피하려는 그 대상 자체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때 일어날 수 있는 공포증
상이 무섭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이를 "공포에 대한 공포(Fear for Fear)"라고 해도 좋
을 것입니다.
제5기 사회공포증 단계
시간이 지나면서 공황발작과 불안발작은 여러 장소, 여러상황에서 거듭 일어나게 되고 환자
는 점점 더 설 곳이 없어집니다. 여러 사람과 어울려 회식을 하거나 사람들 앞에서 얘기 하
는것, 그밖의 일상적인 사회활동들을 모두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됩니다.
특히 발병하기 전에 활발히 사회활동을 하던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
다. 회사에서 멀리 출장을 가라고 할까바 혹은 윗사람들 앞에서 업무 브리핑을 하라고 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고층빌딩에서 모임이 있을 경우에는 고민하다 결국 핑계를 대고 빠질 수
밖에 없는 힘겨운 생활이 계속되면서 결국 직장에 사표를 내는 지경에 이릅니다
.
제6기 임소(臨所)공포증 단계
임소공포증(Agoraphobia 또는 광범위 공포증)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을 수 밖에 없는 거
의 모든 일상생활과 거의 모든 장소에 대한 광범위한 공포증을 말합니다.
이 단계가 되면 혼자서는 집 밖 출입을 못하게 됩니다. 집에서도 혼자 있기가 어렵습니다.
항상 누군가가 옆에 있어야 마음이 좀 편해집니다. 그야말로 죄인 아닌 죄인 신세가 되어
버립니다. 이쯤되면 가족들도 환자에게 짜증을 냅니다. 검사상 아무 이상도 없다는 의사들의
말을 환자가 히스테리, 심지어는 관심을 끌기 위한 꾀병을 하고 있다는 의미로 오해하는 경
우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로서는 환자가 전과는 달리 의지력도 없고, 항상 어린애처럼 매
달리기만 하는 귀찮은 존재로까지 생각됩니다. 가정 내에 갈등과 긴장이 고조됩니다. 이쯤되
면 환자 한 사람의 병이 아니라 집안 전체의 병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환자가 이렇게 된
것은 결코 환자의 정신력이나 성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7기 우울증 단계
공황장애의 마지막 단계는 우울증입니다. 전체환자의 약 30%, 광장공포증이 생긴 환자의 약
절반정도가 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환자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 아무도 자신
을 이해해 주지 않고, 스스로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아무 쓸모도 없고, 남에
게 부담만 주며, 의지도 약하고, 정신적, 성격적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됩니다. 밖으로
나가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신체적 장애보다 더 심각한 정신적 장애입니다.
공황장애 환자들은 '차라리 신체적 장애가 있는 것이 낫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자신의 상
태를 비관합니다.
불안과 우울을 일시적으로나 없애보려고 술이나 신경안정제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살에 대한 생각이 점차 강하게 들고 실제 자살을 기도하는 확률도 대단히 높습니다.
공황장애는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대개 이런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그래서 조기진단과 조
기치료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조기치료를 받는다면 대부분 완치가 가능한 병이 바로
공황장애입니다
공황장애는 얼마나 흔하나?
대부분의 환자들이 이런 고통을 자신만이 겪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공황장애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았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대단히 희귀한 병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러나 공황장애는 대단히 흔한 병입니다. 엄격한 진단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전체인구의 약
1%, 넓게 약 5%이상이 공황장애 환자라는 것이 조사결과 밝혀졌습니다. 미국 국립정신건강
연구소의 조사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공황장애 환자가 될 확률은 1-2%정도라고 합니
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증상이 있슴에도 불구하고 숨기고 있거나, 다른 신체적,
정신적 질병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 뿐입니다.
사실 공황장애라는 병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정신과에
서도 이 병을 심리적 원인에서 오는 불안 신경증의 좀 심한 형태로만 생각했었고, 미국을
제외한 여러나라에서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의사들이 많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이병
이 소개된 것은 1980년대 초부터 입니다.
남자와 여자중에서는 여자에게 약 2배 정도 더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일
반적으로 남자들은 불안이나 공포를 남에게 호소한다는 것이 남자답지 못한 짓이라는 생각
을 갖고 있고, 반대로 여자들은 더 많이 더 빨리 병원을 찿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의사들 역시 남자들이 이런 증상을 호소할 경우 심장병(협심증, 부정맥, 심근경색증 등)이나
다른 신체질환을 의심하는 경향이 높은 것도 사실입니다.
원인은 무엇인가요?
공황장애가 어떤 원인으로 인해 생기는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황장애가 정신과에서 다루는 병이니까 정신적인 원인에 의해 생기는 것이냐고 질문합니
다. 그리고 자기 생각에는 정신적인 결함이 있는 것 같지는 않고 틀림없이 신체적 원인에
의한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것이냐고 합니다. 의사들이 검사상 아무 이상이 없고 신경성 같
으니 정신과를 가보라고 권하면 누구를 정신병자 취급하는 것이냐고 화를 내시는 분도 있습
니다. 하지만 정신과에서 다루는 병이라고 다 정신적인 원인에 의한 것은 아닙니다.
현재로서는 공황장애는 유전적인 요인, 선천적, 환경적, 정신적 요인 등 여러가지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발병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황장애의 가장 중요한 발병원인은 신체적인 데 있다는 주장에 많은 정신과 의사들
이 의견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몸의 중추신경계, 즉 뇌의 어떤 생화학적인 기능장
에 때문에 이 병이 생기는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위험을 탐색하는 대뇌기능
이 지나치게 항진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또 다른 학자들은 우리의 생명을 위험으로부터 보
호해 주는 경보기능이 너무 예민해 진 탓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사실 불안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남기 위
해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불안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산속에서 곰을 만났는 데, 혹은 길을 건너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차를 보았는 데 태연
자약하다면 우리는 곰에게 물려죽거나 차에 치어 죽을 겁니다.
불안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우리 생명을 지켜주는 일종의 생명 보호장치인 것입니다. 그리
고 이 생명 보호장치는 우리의 뇌속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숨골이라고 부르는 연수
라는 곳에 청반핵(Nucleus Locus Ceruleus)이라는 작은 신경세포의 덩어리가 있는데 이곳
은 불안의 중추조직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 곳입니다. 청반핵의 역할은 건물에 있는 화재경
보기에 비유해 볼수 있습니다. 화재경보기란 불이 났을 때 경보신호를 울려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재빨리 불을 끄던지, 대피하게 하는 장치입니다. 만일 화재경보기가 고장나서 불이
났음에도 작동하지 않는다면 귀중한 생명과 재산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 반대로 이 경보기
가 지나치게 예민해져서 누가 방안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전기난로만 켜도, 혹은 아무 일도
없는데도 작동을 한다면 아마도 큰 소동이 벌어질 것입니다.
공황장애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청반핵이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지나치게 예민해져서
별 위험한 상황도 아닌데 시도 때도 없이 작동해서 여러가지 불안반응을 일으키는 것 입니
다. 따라서 불안장애의 치료는 이 예민해진 청반핵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환원시키는 것이고,
그것은 몇가지 약물로 가능합니다.
공황장애 환자의 대부분은 자신의 첫 증상이 몹시 피곤한 상태, 예를 들면 며칠씩 밤샘작업
이나 철야기도를 한 후, 혹은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후 나타나므로 그런 것들이
공황장애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공황발작이 일어나는 데는 스트레스가 한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수적인 요인에 불과할 뿐 주 원인은 아닙니다.
진단은 어떻게하지요?
공황장애는 다양한 신체적, 정신적 증상들을 나타내기 때문에 가장 오진하기 쉬운 질환의
하나입니다. 심장질환이나 호흡기 질환, 심지어는 정신분열병으로 까지 오진될 수 있습니다.
공황장애는 환자의 증상을 근거로 진단을 내리게 됩니다. 아직까지 공황장애를 정확히 진단
할 수 있는 검사는 없습니다.
다만 젖산염(Sodium lactate)이라는 물질을 정맥주사할 경우 정상인들은 아무 변화도 느끼
지 못하지만 공황장애 환자들 가운데 3/4정도는 공황발작때와 비슷한 증상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4-85년에 세브란스병원에서 공황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젖산염 검사를 실시한 결과 80%가 공황증상을 나타낸 것으로 보고 되었습니다. 또한 5%
정도 농도의 이산화탄소를 흡입하게 할 경우에도 이와 같은 결과를 나타냅니다. 이런 방법
들은 실제로 공황장애의 진단에 널리 이용되고 있습니다.
신체적 질환중의 몇가지는 공황장애와 비슷한 불안증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특히 갑상선
기능항진증, 저칼슘증 등이 공황장애로 오진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황장애가 의심될 경우
에는 혈액검사 등을 통해 혹시 이런 병들이 아닌지를 먼저 조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밖에도 마리화나(대마초) 코카인, 암페타민(흔히 히로뽕이라고 하는 메트암페타민을 포함)
등의 남용과 솔벤트 같은 유기용제의 다량, 혹은 지속적 흡입도 공황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
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 경우 일단 공황발작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약을 끊은 후에도 공황발
작이 계속되는 경우가 많아 이러한 물질들이 공황장애를 일으키는 한 원인으로 생각되고 있
습니다.
공황장애는 유전병인가요?
공황장애가 유전병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그러나 어느 정도 유전성이 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공황장애 환자들을 조사해보면 가족 중에 공황장애 환자가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황장애는 한가지 요인만으로 발병하는 병은 아닌 것
같습니다. 비록 유전적 성향이 있다 하더라도 그 밖에 여러가지 조건이 갖추어져 있을 때
비로소 공황발작이 시작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공황장애의 치료
우선 공황장애는 치료, 그것도 완치가 얼마든지 가능한 병이라는 것입니다. 공황발작이 처음
시작될 때 정확한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하면 약물 치료만으로도 쉽게 완치시킬 수 있습
니다. 미국의 뉴욕 주립정신의학연구소의 임상연구에 의하면 그곳을 찾아 온 공황장애 환자
의 약 1/3이 약물요법으로만 치료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치료제로서 가장 먼저 사용된 약은 이미프라민(Imipramine)입니다. 미국 컬럼비아 의과대학
의 정신과 교수인 클라인 (Donald Klein) 박사가 1959년에 처음으로 개발한 이 약은 원래
항우울제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약을 항불안제로도 치료가 되지 않는 심한 불안발작
을 일으키는 환자들에게 사용해본 결과 뚜렷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이때부터 이
런 종류의 불안발작은 일반적인 심리 불안증상과는 전혀 다른 질병이라는 주장이 나오게 되
었으며, 그것이 바로 공황장애가 처음 알려지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후 지금까지도 이미
프라민은 공황장의 효과적인 치료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프라민은 치료를 시
작해서 일정한 용량까지 약을 늘린 뒤에도 약 3주가 경과해야만 뚜렷한 효과가 나타나기 시
작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후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약이 알프라졸람(Alprazolam, 자낙스)입니다. 자낙
스는 약을 복용해서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짧고, 공황발작을 억제하는 효
과 외에도 예기불안 등 심리적인 불안감도 효과적으로 완화시켜주기 때문에 현재는 공황장
애 치료의 일차적인 선택제로 되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항우울제인 파록세틴, 세트랄린, 플루오세틴이 미국 FDA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공황장애에 대한 약물치료를 시작하면 공황발작은 늦어도 2-4주 후면 현저히
없어지지만, 약을 끊은 후에도 증상이 재발되지 않으려면 약 6개월 정도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강조해 두어야 할 것은 공황장애의 약물치료는 반드시 정신과 전문의의 처
방과 지시에 따라 시행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환자가 임의대로 약을 복용하거나 중단할
경우에는 치료도 제대로 되지 않고 습관성의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약물치료를 받는 경우에는 가벼운 불안발작이 계속되는 경우가 흔히 있는데 이것은 전형적
인 공황발작이 아닙니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심리적으로 공황발작에 대한 공포증이 생긴
환자가 사소한 자극이나 회피하고 싶은 상황에 노출될 경우 심리적으로 불안해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불안발작인 경우가 많습니다.
공황장애에 대한 치료가 늦어져서 이미 공포증이 매우 심해진 환자들에게는 약물치료 외에
도 병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고, 환자들이 오해하거나 잘못 믿고 있는 여러가지 편견들을
바로 잡아주는 인지적 치료와 공포의 대상이 되는 장소나 상황에 불안감 없이 접근할 수 있
도록 도와주는 행동치료등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공황장애의 치료는 이와같이 진단과정에서부터 치료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이고 다각적인 공
황장애 치료 프로그램이 있어야 최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전체적인 치료
성공률은 최저 60%에서 최고 90% 이상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습니다.
그 밖에 궁금한 점들
Q 공황발작이 올 때 정말 죽거나 기절하기도 합니까?
A 공황발작으로 인해 사망하는 일은 없습니다. 기절하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공황발작은
자율신경계통 중에서도 교감신경계가 작용해서 증상이 일어나는 것이며, 졸도하는 현상은
그와는 반대로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어서 일어납니다. 즉 공황증상과 졸도는 서로 정반
대의 생리학적인 기전에 의해 나타납니다.
Q 공황발작의 13가지 증상들 중에 한두가지 증상만 있었는데 그렇다면 공황장애가 아닙니
까?
A 증상이 4가지 이상 나타났던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까?
- 있긴 했지만 아주 오래전의 일입니다.
또 다시 그런 증상이 올까봐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 글세요. 저는 정말 심각한 공황발작이 오지나 않을까 불안해서
운전을 하거나 혼자 멀리 여행가는 것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증상의 가지수에 상관없이 공황장애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 한 번만이라도 4
가지 이상의 증상이 나타났던 일이 있었고, 그런 증상이 또 일어날까봐 두려워하는 시기가
한달이상 계속 되었다면 공황장애의 진단 기준에 부합됩니다.
Q 제 경우는 생리가 시작되기 직전에 공황발작이 일어나곤 하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A 생리직전에 공황발작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몇 가
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우선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보통 때에는 느끼지 못했
던 여러가지 신체적 감각을 느낄 수 있고 그것을 공황발작의 증상으로 착각하면서 공황발작
이 아닌 불안발작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또 생리 중에는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작은 신체적
인 변화에도 민감해지므로 불안발작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임신 중에는 공황발
작을 더 자주 경험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발작빈도가 줄어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Q 저는 어릴때 자다가 공황발작이 일어나 깨어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습니까?
A 수면 중에 공황발작이 오는 경우도 매우 흔합니다.
공황장애 환자들 중 약 48%가 수면 중에 공황발작을 경험한 일이 있다고 합니다.
Q 제가 공황장애 환자라면 제 아이들도 공황장애에 걸리게 되는 건가요?
A 공황장애 환자들의 가족력을 조사해 보면 일반인들에 비해 공황장애 환자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따라서 부모가 공황장애 환자일 경우 자녀에게 공황장애가 나타날 확률은 일반
인에 비해 약간 높습니다. 그렇다고 공황장애가 반드시 유전되는 병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
니다. 공황장애가 나타나는 데에는 유전적, 환경적, 체질적, 정신적, 그 밖의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관여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공황장애 증상 목록표
다음 13가지 증상들이 공황발작 중에 극심한 불안과 더불어 나타나는 증상들입니다. 자신을
평가해 보십시오
1 .호흡이 가빠지거나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
2. 어지럽고 휘청휘정하거나 졸도할 것 같은 느낌.
3. 맥박이 빨라지거나 두근거림. 심장이 멎을 것 같은 느낌.
4. 손발 혹은 몸이 떨림
5. 땀이 많이 난다.
6. 숨이 막히거나 질식할 것 같은 느낌.
7. 메스껍고 토할 것 같거나 속이 불편하다.
8. 비현실감(딴세상에 온 듯한 느낌이나 자신이 달라진 듯한 느낌.
9. 손발이 저릿저릿하거나 마비되는 느낌.
10. 몸이 화끈거리는 느낌이나 오한.
11. 가슴부위의 통증이 있거나 가슴이 답답하거나 가슴이 불편함.
12. 죽을 것 같거나, 무슨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공포감.
13. 자제력을 잃을 것 같거나 미칠 것 같은 느낌.
첫댓글 좋은정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