奉化大路 斷想 ( 7) - 봉화대로는 왜 남한산성으로? -

[늙은山나그네]

(7)

파발막과 찜질방

멀리는 백제의 도읍지 하남위례성으로부터 시작하여 남한산성과
이조백자 등 역사의 향이 피어나는 넓고을(廣州)이라 자부한다.
그러나, 수도 외곽의 작은 도시일 뿐이다.
삶의 질이 아무리 향상돼도 이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더구나 옛광주는 경도발 45리, 중부면 산성리 일대로 경안역에서
30리 상거에 있다.

한데, 예외 하나를 보았다.
최근(2008년 11월 12일 현재)에 개업한 듯한 찜질방이다.
6층건물 전체를 찜질방과 수반업종으로 채운 <황금스파랜드>.
그 안에 있는 동안은 소도시에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할 수 없겠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서울의 찜질방은  어찌나도 허술한지 늘 어느
시골에 있는 느낌인데.

안성시 죽산의<건강나라>(옛길:영남대로단상 3번글참조)에 이어
두번째로 서울사람 기죽이는 곳이라 할까.
건강나라가 친자연적이라면  황금스파랜드는 업그레이드된 최신
시설과 시스템이라 하겠다.
실내 편의시설 이용료를 비롯하여 입출(入出)시간의 자동 체크에
따른 할증료의 부과에 이르기 까지.

공교롭게도, 찜질방이 옛 파발막(把撥幕)에 접해 있다.
봉화대로와 각지방을 달리는 파발마가 대기하거나 휴식을 취하던
곳에서 내 파발마(두 다리)도 하루밤을 쉬었다.
파발막이 말만 쉬게 하고 재우는 곳이던가.
사람이 먹고 자는 것이 우선 아니었던가.

파발막이 찜질방으로 업그레이드 됐나.

묘한 역사의 재현이다.

경안역 파발교

이곳(목현천 송정교 북단~경화여고 입구)에 지인의 공장이 있던
70, 80년대에는 자주 드나들던 광주다.
1세대도 되지 않은 사이에 격세지감이 들도록 변했다.
항상 의문인 것은 이같은 발전에 삶의 질도 동반하고 있느냐다.
특급 찜질방이 그 증거라면 오죽 좋겠는가 마는.

마지막 밤이라 그랬을까.
푹 자려 했으나 오히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광주인들이 이 호화 찜질방에 맛을 드리고 있는 건지 평일인데도
바글거려 그랬다.
이 좋은 시설에도 수면(睡眠)이 배려된 곳은 없으니까.
최고의 시설이 지금의 내게 무슨 소용인가.
이마의 훈장 때문에 조용한 수면실 외에는 그림의 떡일 뿐인데.

햇볕이 해결사다

영남대로 용인에서  만났던 경안천은  봉화대로 경안에서 재회한
후 목현천과 곤지암천을 차례로 흡수하여 팔당호에 뛰어든다.
당연히 새벽의 물안개지역이다.
너무 일찍 서두른 것을 후회하게 하는,  예상치 못한 11월 중순의
싸늘한 새벽공기가 안개까지 뒤집어 쓰고 있어 한기가 들었다.
아침 식사를 하지 않을 것이면서도 24시간 영업 간판을 내걸어논
채 문이 열리지 않은 식당이 배신감을 느낄 정도로 미웠다.

하늘의 햇볕정책을 고대하며 부지런히 걸었다.
45번국도로 접어들어 중부면 번천삼거리까지 갔다.
경안TG앞 상번천휴게실이 반가웠으나 역시 문이 열리지 않았다.
차로를 버리고 오랜 옛길로 들어섰다.
광지원리 ~ 광주간 신43번국도(중앙대로)가 열리기 전에는 애용
되던 자동차로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농로 수준으로 퇴락했다.
직진하면 2개의 중부고속국도 밑을 통과해  도마치, 퇴촌과 분원
입구, 팔당호에 이른다.(45번국도)

웅크리지 않게 하고,  겉옷을 벗기는 힘은 풍운에 있는 게 아니고
태양으로부터 나온다.
백두대간 종주중 저체온현상으로(지리산 성삼재 ~ 정령치 구간)
위기에 직면한 적이 있었다.(백두대간3회글 참조)
그 때, 하늘을 향해 얼마나 애절하게 부르짖었던가.
햇볕을 보내달라고...
마침내 그 햇볕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안개를 무력하게 할 뿐 아니라 오한도 퇴치하는 해결사가.

이후, 쾌조의 걸음으로  비닐하우스가 늘어선 농장(산내들?) 앞을
지나서 중부고속국도와 나란히 걸었다.
고속국도 밑 통과를 반복해서 광지원리(光池院)에 도착했다.
역시, 경쾌하게 걸을 수 있게 한 따스한 햇살 덕이다.
영릉(英陵과 寧陵:여주군능서면왕대리))에 왕래하던 임금이 쉬는
역원(驛院)이 있던 곳이란다.
역원 옆 연못에 햇살이 비치면 못(池)이 빛을 발했다고 해서 마을
이름을 '광지원리'라 했다나.

지호지간의 두 검단산

옛 검북참(黔北站)이 있던 곳은 지금의 검복리(黔伏)다.
중부면사무소 앞에서 직진하는 하남로(43번국도)를 버리고 좌측
산성로(342번지방도)를 따라가면 나온다.
동문매표소를 통과한 후  번천(樊川) 다리를 두번 건너서 꼬부랑
오르막길을 한참 가야 한다.
검복리(黔伏里)는 검단산(黔丹山) 밑에 있는데, 마을이 검단산을
향해 엎드려 있는 모양이라 '검복리'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

남한산성 동문매표소

그런데, 지호지간의 두 검단산으로 인해 헷갈리기 십상이다.
하남과 광주의 검단산과 성남과 광주의 검단산 때문이다.
해발657m 검단산은 수도권의 인기있는 산중 하나다.
하남시를 본거지로 하여 광주 중부면에까지 뻗어있으며 검단산~
두리봉~용마산의 긴 능선을 형성하고 있다.

백제초기인 한성시대에 하남위례성의 숭산이었으며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성산이었단다.
지금도 하남의 진산으로 하남시가지는 물론, 남북 한강의 합류점
양수리와 팔당호를 비롯해 서울과 양평 일대의 경관이 장관이다.
팔당호를 사이에 두고 북쪽에 마주한 683m예봉산에서 뻗어가는
현란한 능선도 일품 조망이다.

또 하나는 한북정맥과 부분적으로 겹치는 광주산맥(廣州山脈)의
지맥이라는 530m대 검단산이다.
광주군 중부면과 성남시 중원구 경계, 남한산성 외곽에 자리잡고
있는 산이다.
공교롭게도 지맥 능선상에 하남 검단산의 두리봉과  동명 이봉인 
두리봉까지 있어서 더욱 혼란스럽다.

다만,  정상은  KT시설로 인해 접근 금지중이며 하남의 검단산에
비해 인지도가 낮아 등산객이 뜸한 것이 차이라 하겠다.
남한산성 남문에서 성벽을 벗어나 남하하면 검단산~망덕산으로
이어지는 광주산맥 지맥이다.

봉화대로는 왜 남한산성으로?

동문(東門)을 밟음으로서 마침내 남한산성 안에 들어섰다.
'산성보건진료소'간판에 문득 생각이 나서 문을 두드렸으나 내가
찾아가는 곳은 모두 작당을 했나.
바가지 식당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문이 잠겨 있으니.
단양의 의사는 매일 드레싱하는 것 잊지 말라고 신신 당부했다.
그러나, 이틀 후에 충주 노은에서 단 1번 했을 뿐이다.
이상징후가 없으며 머리가 절로 숙여지는 듯했던 무거운 느낌도
가셨기에 거창한 모양의 백십자훈장을 단 채 강행군한 것이다.

남한산성 동문

북적대는 산성의 심장부가 봉화대로의 광주다.
한강 이남중  강동, 송파 양구와  하남, 성남 양시 등이 모두 광주
땅이었던 예전에는  경안역 30리 이전이며 산성이 있는 산성리가
광주목의 중심지 였으니까.
지수당(池水堂: 道문화재자료 제14호), 현절사(顯節祠: 道유형문
화재 제4호), 연무관((演武館; 道유형문화재 제6호), 침괘정(枕戈
亭: 道유형문화재 제5호), 숭열전((崇烈殿: 道유형문화재 제2호),
행궁(行宮: 국가사적 제480호) 등을 일별한 후 남문으로 갔다.

마지막 진로의 선택지점에서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부질없이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삼남대로를 제외한 모든 대로의 시종점은  서울 경계점으로 이미
정한 바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나의 봉화대로는 남문이 시종점이다.

남문에서 산성을 타고 수어장대(守禦將臺: 道유형문화재 제1호),
청량당(淸凉堂: 道유형문화재 제3호)을 지나서 서문까지 갔다.
그리고 마지막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봉화대로는 왜 평평한 길을 두고 남한산성을 거쳐갔을까?

 

 

남한산성 남문(그림 상), 수어장대(그림 중), 서문(그림 하)

남한산성(국가사적 제57호)은 신라 30대 문무왕이(12년, 672년)
당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해 축성했단다.
그의 부왕인 태종무열왕(春秋)이 당(唐)의 힘을 빌어 삼국통일의
꿈은 이뤘으나 동상이몽의 당군이 골칫거리였으니까.
이조 15대 광해군 때  경도보장지(京都保障地)로 정해진 후 인조,
숙종, 순조때까지 증축 및 보수에 신경을 썼다.
행궁을 비롯해 종묘, 사직, 관아, 재옥,객사, 종각 등.
병자호란 때 인조와 소현세자가 47일간 머물렀던 행궁은 숙종과
영조, 정조, 철종, 고종 등이 능행길에 이용했단다.

그러나, 산성의 지리적 조건과 대로의 조건은 다르지 않은가.
궁궐 재목을 비롯해 필요한 물자의 운송 문제가 봉화대로 지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개연성은 차치하고, 대로는 동선이 짧고
편한 것이 우선이다.
그렇다면, 광지원에서 하남~광나루(廣津)의 편한 지름길을 두고
왜 해발 350여m의 남한산성을 넘는 검북참(검복리)~광주(廣州:
산성리)~율목정(栗木亭: 성남수정구창말)~송파진을 택했을까.

에필로그

귀가후 여러 문헌을 뒤져보았으나 답이 나오지 않아 고심했다.
한데,  대로가 경도(興仁門)~전관교(箭串橋)~신천진(新川津)~
송파진(松波津)으로 이어진 점에 주목했더니 답이 아른거렸다.

먼저, 이조때의 경도와 광주간 도강나루(渡江津)를 살펴봤다.
도미진(度迷津,渡迷津): 광주와 광장동의 상류지역을 연결했다.
광주와 경도의 경계선으로 경도 출입의 교통로로 활용되었다.
광나루(廣津,廣壯津): 경도와 광주간의 중요 나루였다.
도승(渡丞: 從九品)과 관선(官船)을 배치해 도성출입자를 살폈다.
삼전도(三田渡): 광주 남한산성으로 통했다.
병자호란때 치욕의 삼전도비로 알려진 곳이다.
신천나루(新川津): 왕십리와 뚝섬 간에 놓인 살곶이다리(箭串橋),
하중도(河中島:신천동과 잠실동)를 건너 송파로 가는 새내나루.

주목받을 만한 나루는 광나루와 신천나루다.
그렇다면, 봉화대로가 편한 광진~경안역 길을 두고 살곶이다리~
신천진쪽으로 해서 남한산성을 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살곶이다리'는 2대 정종과 3대 태종의 낙천정(樂天亭:離宮:뚝섬
상류 한강변) 왕래를 위해 설치된 다리란다.
그러니까, 임금들의 이궁왕래와 배릉(拜陵:광주, 여주)길이다.
또한 이 다리를 건너야만 한강을 건너는 나룻배길로 통하는 교통
요지가 된 것.

아마, 이런 이유로 인해 남한산성을 관통할 수 밖에 없었나 보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산성길이 험로인 것만은 인정했나?
"송파나루 남으로 심점(深店)~이보현(利保峴)~신현(新峴)~경안
역에 이르는 길도 봉화대로"(自津南至深店二十里利保峴五里新峴
十五里慶安驛十里此亦大路)라는 주서를 달았다.(大東之志)

거리도 양쪽이 동일하게 50리 길이다.
광주군 중대면 송파진(송파구송파동)에서 대왕면 심곡리(성남시
수정구심곡동)~세초면 대야원(성남시 중원구 대원동)~목현리를
지나서 광주장을 보러다니던 길이 아니었을까. (대부분의 옛길을

흡수한 현 3번국도 일 수도)
과거길의 선비들이 묵어간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는 이 길 역시
만만찮은 고개들을 넘어야 했으므로 길 선택 이면사가 있었을 터.

아무튼, 경도발 500리길 봉화대로는 출발부터 엉뚱했다.
종착지인 봉화에서 동북 50리 태백산 각화사에서 시작.
죽령길의 사고로 위기.
충주호 수몰로 멀리멀리 우회.
충주 장호원 간의 두 길중 택일로 고심,
마지막 남한산성길의 의문 등.

서울 단골 의원에서 이마의 실밥을 뽑을 때,  의사는 지방 병원의 
응급봉합이었을 망정 세련된 바느질 덕에 감쪽같다고 판정했다.

이 분도 지방 의사에 대한 우월감(superiority complex) 소유자?
7일이라는 짧은 기간인데도 우여곡절이 많았던 봉화대로다.

그럼에도, 감쪽같은 이마처럼 뒤끝 없이 잘 마무리 됐다 할까.  

                                                             <봉화대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