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6)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6:13∼20)
설교를 준비할 때 먼저 주제와 제목을 정해야합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거룩한 공회를 믿습니다”입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을 이렇게 정한 이유가 있습니다. 올해 저는 매월 넷째 주일에 사도신경, 사도들이 가르쳐준 신앙고백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의 순서를 따라 먼저 창조주 하나님께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어서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성령님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 오늘은 “거룩한 공회와”에 대해 말씀을 드릴 차례인데, 예배순서에 따라 사도신경을 외울 때 많은 분들이 여기에 와서 실수를 합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랬습니다. 1월에 미리 말씀을 드린 일이 있는데요,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이렇게 한 문장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교통하는 것,을 연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교통은 교제와 같은 뜻인데요,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것으로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닙니다. 거룩한 공회를 믿고, 또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도 믿는다는 것입니다. 성경과 찬송가 앞에 있는 사도신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공회와” 다음에 뭐가 하나 있습니다.. 무엇이 있습니까? 쉼표(,)가 있습니다, 앞으로 사도신경을 외울 때 “거룩한 공회와” 하시고서 잠깐 쉬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공회”와 “성도의 교제”는 각각 독립된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제목을 “거룩한 공회를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거룩한 공회”는 교회입니다. 성경과 찬송가의 사도신경 밑에 “사도신경 새번역”이 있는데 거기에는 “거룩한 공교회와”라고 되어 있습니다. 천주교회에서 사용하는 사도신경에는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어 사도신경에는 “the holy universal church"라고 되어 있습니다. ”니케아신경“이라고 권위 있는 신앙고백이 있는데, 여기에는 ”하나이고 거룩히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부 하나님을 믿고, 성자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믿고 이어서 교회를 믿습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국어사전을 찾아보니까 “교회(敎會): ① 신자들이 예배 또는 미사 등의 종교적 의식을 진행할 수 있도록 세운 건물 ② 신자들의 공동체나 조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2번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1번, “신자들이 예배 또는 미사 등의 종교적 의식을 진행할 수 있도록 세운 건물”은 엄밀하게 말하면 잘못된 풀이입니다. 신자들이 예배 또는 미사 등의 종교적 의식을 진행할 수 있도록 세운 건물은 “교회당”입니다 교회당과 교회를 오랫동안 구분하지 않고 쓰다 보니까 이렇게 둘이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는데 원칙상으로는 교회당과 교회는 다릅니다. 교회당은 건물이고 교회는 모임입니다.
교회는 모임입니다. 한자로 교회라고 쓸 때 ‘가르침 교(敎)’자, ‘모일 회(會)자’를 쓰지 않습니까? 신약성경은 헬라말로 기록되었는데 헬라말로 교회는 ‘에클레시아’(έκκλησια) 라고합니다. ‘에클레시아’는 ‘부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부름 받은 자들의 모임, 우리는 하나님이 불러주셔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사실을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설교를 준비할 때 주제와 제목이 정해졌으면 본문을 택해야 합니다. 본문이 참 중요합니다. 본문은 설교의 기초가 됩니다. 때로는 본문이 먼저 정해지기도 합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교회, 제목을 정한 이야기는 처음에 말씀드렸고, 이제 본문을 정해야 하는데, ‘어떤 말씀을 본문으로 택할 것인가?’ 많이 생각했습니다. 성경에 ‘교회’라는 말이 112번 나옵니다. 구약에는 교회라는 말이 없고, 모두 신약에 나옵니다. 교회는 신약시대에 들아와서 생겼으니까요. 신약에 나오는 교회라는 말을 하나, 하나 살폈습니다.
여러분, 신약의 어느 성경에 교회라는 말이 제일 많이 나올 것 같습니까? 저는 당연히 사도행전일 줄로 알았습니다. 사도시대에 교회가 생겨서 확산되어 나갔으니까요. 그것이 아니고 고린도전서에 교회라는 말이 제일 많이 나온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교회라는 말은 고린도전서에 22번, 사도행전에 20번, 세 번째는 요한계시록에 19번 나옵니다.
왜 고린도전서에 교회란 말이 제일 많이 나올까요? 고린도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 좀 심하게 말하면 문제투성이의 교회였습니다. 파벌이 있었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베드로)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음행 문제가 있었고, 교인들끼리 세상 법정에 송사하는 문제가 있었고,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 문제가 있었고, 성만찬문제, 성령의 은사 문제, 부활논쟁, 그밖에도 많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그 문제들에 하나, 한하나 답을 주다보니 교회라는 말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지요.
교회는 문제가 없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문제가 없으면 죽은 것이지요. 문제가 많은데 그 문제를 사랑의 원리로, 성경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풀어나가는 것이 교회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왜 교회라는 말이 많이 나올까요? 간단합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으니까요. 우리가 지난 주일까지 담임목사님을 통해 그 교회들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말씀 가운데 어느 말씀을 오늘의 본문으로 택할까? 저는 디모데후서 3장 15절 후반절의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이 말씀을 본문으로 할까?
아니면 교회라는 말은 나오지는 않지만 열왕기상 8장에서 본문을 택할까? 열왕기상 8장은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서 드린 기도입니다. 솔로몬은 성전에서 여러 가지를 구하면서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 때, 적국에 패하거나, 비가 내리지 않거나, 기근이나 전염병이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 메뚜기, 황충이 났을 때, 적국에 끌려가는 일을 당했을 때, 이곳에 와서 기도하거나 이곳을 바라보며 기도하면 해결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전염병, 코로나와의 싸움이 힘겹게 계속되고 있고,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북핵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국제정세도 한미일 대 러중북 간의 새로운 냉전이 심해지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그 틈바구니에 끼어 있고,, 기후 문제도 점점 심각해져 가뭄과 홍수가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데 정치가들은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해 이런 문제를 극복해 나갈 동력을 잃고, 솔로몬이 염려하던 것들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이때 교회가 그같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기도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까? 여러 가지로 생각하다가 마태복음의 말씀을 본문으로 정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것은 주님께서 오늘 우리를 향해서, 여러분과 저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복이 있도다”고 하시며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하셨습니다. 성경에서 ‘교회’라는 말이 여기, 마태복음 16장 18절에 처음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 위에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천주교회에서는 이 말씀을 베드로라는 인물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으로 해석합니다만 인물보다 중요한 것은 신앙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신앙고백을 기초로 하고 세워진 공동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은 이단입니다. 초대교회 시절부터 그래왔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토요일 오후가 되면 신천지가 삼각지 교차로, 지하철 8번 출구 옆에 천막을 치고 신천지를 소개하는 전단을 나눠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단체가 이단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생기면 총회에서는 ‘특별위원회에 맡겨서 일 년간 연구하여 다음 총회에 보고하도록 함’, 이렇게 결정하는 일이 많습니다. 저도 그런 문제를 검토하는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일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요,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지지 않은 단체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 말 할 것 없이 이단입니다.
“교회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 위에 세워진 공동체이다” 이 기본적인 사실 다음에 더 구체적인 것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감리교회의 교리적 선언과 신앙고백이 설명을 아주 잘 하고 있습니다. 감리교회의 교리적 선언과 신앙고백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말씀 드렸고, 앞으로도 또 말씀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교리적 선언 6항이 교회에 대한 고백입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주 안에서 하나이 된 모든 사람들이 예배와 봉사를 목적하여 단결한 교회를 믿으며
이 기독교대한감리회 교리적 선언은 92년 전인 1930년에 제정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특히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삶이 변화하는 환경속에서 새로운 신앙고백의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대한감리회 교리적 선언을 손질해서 1997년에 기독교대한감리회 신앙고백을 만들었습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신앙고백의 6항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예배와 친교, 교육과 봉사, 전도와 선교를 위해 하나가 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믿으며
교회의 목적을 ①예배 ②친교 ③교육 ④봉사 ⑤전도와 선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배를 위한 모임입니다. 우리는 예배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교회를 다른 말로 말하면 ‘예배 공동체’입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지난 주일에 담임목사님이 사데교회를 중심으로 설교하시면서 “주님이 내 삶에서 제일임을 고백하는 것이 예배이다”라고 말씀하셨지요.
예배를 더 쉽게 이해하려면 글자 그대로 풀면 됩니다. 예(禮), 예를 갖춰서, 배(拜), 배는 절한다는 뜻입니다. 예배는 예를 갖춰서 하나님께 절하는 것,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는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한눈 팔면 안됩니다. 최근에 국가 원수끼리 악수하는데, 또 정치인끼리 악수하는데 ‘노 룩(no look)악수'라고 해서 눈은 다른 사람을 보았다고 해서 ‘결례가 아니냐?’는 말이 나온 일이 있었습니다. 예배 드리면서 노 룩 악수를 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으면 안됩다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 친교가 나오는데 친교에 대해서는 다음 달에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다음 달에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를 살필 차례이기 때문입니다.
교육, 여러분, 자신을 한 번 돌아보세요. ‘내가 그래도 신앙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고, 최고의 가치로 삼고, 신앙을 기준으로 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은 교회에서 받은 교육 덕분이 아닌가?’ 생각되지 않습니까? 저는 그렇게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자주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교회에서 학생 시절, 청년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만날 때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만나기도 하고, 몇이서 모여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때 ‘교회에서 받은 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다.’는 말을 하는 일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그 영향 가운데 살겠지요.
교회학교에는 영아부에서 시작해서 유아부, 유년부,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청년부, 청장년부, 장년부, 노인대학, 여러 부서가 있지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라는 뜻인데 복지에 대해 말할 때 많이 쓰는 말입니다. 교회교육은 정말 요람에서 무덤까지입니다.
그 다음, 봉사, 요즘은 봉사라는 말 대신에 섬김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요. 봉사에는 구제가 많이 포함되는데 구제를 포함해서 ‘섬김과 나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교회는 봉사에 힘써야 합니다. 이웃을 위한 봉사,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 나라를 위한 봉사에 앞장서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사회로부터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고, 소중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1960년대, 우리나라가 가난에 시달리고 있을 때 젊은 전도사님 한 분이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시절에 청계천변에 무허가 판잣집들이 많았는데 거기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교회 이름을 활빈교회(活貧敎會)라고 지었습니다. 살 활 가난할 빈, 가난한 사람들을 살리는 교회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정성껏 섬겼습니다. 그때 시청에서 가끔 무허가 판잣집들을 강제철거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판잣집 주민들과 철거반원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이 목사님이 일하는 판잣집촌에 철거반원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철거반원들은 개인집들을 철거하다가 이번에는 교회를 철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민들은 “우리 집을 철거당하더라도 교회는 철거할 수 없다”고 외치며 교회를 둘러싸고 격렬하게 저항했습니다. 결국 철거반원들은 교회를 철거하지 못하고 철수했습니다. 그 전도사님과 교제가 있는 사이여서 그 곳을 가 보았습니다. 한양대학교 뒤 성동구 송정동인데요, 현장을 보면서 ‘아, 교회가 이웃을 위해 힘써 봉사하고 지역사회를 섬기면 잉렇게 주민들부터 사랑을 받고, 또 보호도 받는구나. 주민들이 교회를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구나’ 하는 것을 실감나게 깨달았습니다.
잘 섬기는 교회가 잘 성장합니다. 제가 지난달에 미국 시애틀에 다녀왔습니다. 시애틀의 형제교회에서 열린 한민족통일선교서밋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세계 여러 곳에서 통일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 70여 명이 모여서 서밋을 가졌습니다. ‘서밋’은 ‘정상회담이라는 뜻인데. 거기에 모인 분들이 총회장이나, 신학교 총장, 잘 알려진 교계지도자, 이런 분들이 아니고 저같은 실무자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통일선교의 일에서는 최고의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자는 뜻으로 ‘서밋’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서밋 장소인 형제교회 성도들이 참석자들을 참 잘 섬겼습니다. 아침 식사는 호텔에서 하고 점심과 저녁은 교회에서 제공하는데 정성이 가득했고, 안내, 음향, 영상, 차량운행 빈틈이 없었습니다. 제가 그 교회 담임목사님께 “120%의 섬김입니다” 했더니 담임목사님 말씀이 “예, 저희 교회는 섬기는 훈련이 잘 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지역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시더군요.
한국교회는 나라를 위한 봉사를 특별히 많이 한 것으로 잘 알려진 교회입니다. 우리나라가 근대화를 위해 노력할 때 그 일에 교회가 많은 도움을 주었지요. 현대식 교육, 현대식 의료, 새로운 문화,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는 일, 여러 가지가 교회를 통해서 이뤄졌습니다. 한글을 보급하고 발전시키는 일에도 앞장섰습니다. 1882년에 성경이 처음으로 한글로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로스(Ross)라는 선교사가 중국 선양(沈陽)에서 이 일을 했는데요, 올해가 그 1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4월 26일에 140주년 기념행사가 새문안교회에서 있었습니다. 그 행사에 한글학회 이사장이 참석하셔서 축사를 했습니다. ‘한글학회는 기독교 기관이 아닌데 저 분이 왜 축사를 하지?’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요, 그 분은 기독교가 한글의 보급과 발전에 큰 도움을 준 것을 감사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드시고, 교회가 보급했다’라는 말이 오갔왔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교회는 민족운동을 위해서도 많은 봉사를 했습니다.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을 한 분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런 사실을 강조하면서 이제 기독교는 분단을 극복하는 것으로, 통일선교로 나라를 위해서 앞장서서 봉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통일에 앞장서는 것을 저는 ‘제4의 봉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개화를 도운 것이 제1의 봉사, 민족운동이 제2의 봉사, 건국, 민주화, 인권운동, 그밖의 일을 합해 제3의 봉사, 이제 통일이 제4의 봉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애틀 한민족통일선교대회에서 개회예배 설교를 맡아 그런 말을 했고, 10월에 또 하나 중요한 모임에서 주제강연을 하게 되어 있는데 같은 말을 할 것입니다. 교회가 민족을 잘 섬길 때 교회는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통일선교에 힘쓸 때 그런 것이 회복될 것입니다.
예배, 친교, 교육, 봉사 그 다음은 전도와 선교인데, 여러분, 전도와 선교가 어떻게 다릅니까? 전에는 전도라는 말과 선교라는 말을 구분해 쓰는 일이 많았습니다. 1997년에 감리회 신앙고백을 만들 때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전도는 복음을 전하는 것, 특히 개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나라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말하고, 선교는 폭이 좀 넓게 사회봉사, 그리고 네팔과 같은 해외에서 전도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또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전도라는 말을 쓰고, 진보적인 교회에서는 선교라는 말을 많이 썼습니다. 지금도 진보적인 교회에서는 여선교회라고 하고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여전도회’라고 부릅니다. 그러면서 지금은 선교라는 말이 점점 많이 쓰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선교는 교회의 생명이고 존재이유이지요.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이기도 하고, 지상명령이기도 합니다. 잘 아실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저희 교회가 오늘 본문에 따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 위에 튼튼하게 서 있는 교회인 것을 감사를 드립니다.
나아가서, 우리 교회는 감리교회이고, 우리는 감리교인들인데 감리회 신앙고백 제6항 “우리는 예배와 친교, 교육과 봉사, 전도와 선교를 위해 하나가 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믿으며”, 이 고백에 따라 예배와 친교, 교육, 봉사, 선교에 앞장서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계속해서 힘쓰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주님, 저희들을 주님의 몸인 교회, 거룩한 공회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교회가 영과 진리의 예배, 산 제사가 드려지는 곳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땅의 교회들이 생명수기 흘러넘치는 샘이 되어 목마른 자들이 없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피흘려 사신 교회를 더욱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게 아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이 교회에 하늘의 영광과 베푸신 은혜가 진리와 함께 영원히 넘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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