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하고도 더 밑 영덕 조금 못 미쳐 바닷가 월송정을 향해 우리는 왜 가는 지도 잘 모르면서 달렸다.
그렇게 밖에 말 할 수가 없다.
거기에 가면 무엇이 있기에 이렇게 눈썹을 휘날리며 장장 다섯시간이 넘는 시간을 달려가는 것이란 말인가?
무슨 대단한 사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꿔준 돈을 받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살가운 연인이 있어서 기쁨 덩어리로 굴러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몇 번 만난 친구들하고 테니스 게임 몇 게임하고 마련해 놓은 먹거리 먹고 즐거운 마음들 좀 나누기 위해서 가는 길치고는 너무나 먼 거리다.
서울서 가기에는 어쩌면 부산보다도 더 먼 시간이 요구되는 그런 길을 우리는 달렸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 원주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다시 꺽어 들어 풍기에서 다시 신혼 때 길에서 기가막히게 맛있던 꿀단지를 샀던 불영계곡을 거쳐 울진을 곁눈질하면서 내려가니 옆으로 동해가 우리를 반가히 맞았다.
그리고도 더 내려가서 우리는 드디어 바닷가에 한적한 월송정 테니스장에 도착했다.
9시에 떠나 오후 3시의 시간이었다.
그 테니스장은 정말이지 어릴 적 시골집의 황토방 같기도 하고 부뚜막 같이 그렇게 면이 반질거리고 잘 다듬어 지고 정겹고 정이 서린 그런 테니스 면 세 개를 오롯이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세면 중 두면은 해가 넉넉한 공간에 한 면은 송림으로 바짝 둘러 쌓여 있어서 운치는 그만이지만 공치기는 어른거리는 그런 곳이었다.
또한 면마다 사방이 적당한 높이의 흙 둔덕으로 둘러 쌓여 있어서 공이 어디로 가던지 웬만하면 공 주으러 가는 사람한테 다시 굴러 오는 그런 특이한 구조이고 '펜스'도 보통의 철제로 만든 것이 아니고 새장인지 그물인지 하는 '얄포름한' 펜스로 소나무들을 기둥 삼아 그냥 걸쳐놓기만 한 생전처음 보는 형태의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사방의 소나무와 한 켠의 소나무 숲 너머의 바다 풍경과 함께, 먼 길을 달려온 우리들을 즐겁게 하기에 충분한 참으로 절묘한 위치에 아름답고 정겹게 자리한 그런 곳이었다.
우리를 내내 즐겁게 졸졸 쫓아다니던 토실토실한 진돗개 강아지들을 떨치며 우리는 컨테이너 박스 락카에 짐을 풀고 주섬주섬 자리를 하니 그곳에서 주최한 두 분 내외의 후덕하고 따뜻함과 함께 '과메기'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집 근처 치킨 집에서 그 집 안주인의 고향집인 강릉에서 보내온다는 과메기를 몇 번 먹어 본 적이 있었지만 그 유명도에 비해서 맛이 별로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 월송정에서 먹는 과메기 맛은 그야말로 절묘했다.
그 감칠맛이란 혓바닥을 떠나서는 표현이 안 된다.
이렁저렁하다 보니 먼저 와 있던 삼척의 친구며 대구친구들하고 우리와 다른 차로 늦게 출발한 서울 친구들하고 부산 친구분들이 속속 도착하니 그 절묘한 테니스장에서 게임이 이루어 졌다.
경치가 훌륭하고 벗들이 달갑고 테니스장이 좋아서인지 유별나게 공도 잘 맞았다.
나는 남 공에는 별로 박수치지도 못했는데 남들은 내 공에 어찌나 감탄과 박수를 많이 쳐주는지 우쭐한 마음이 높은 소나무들을 박차고 나가 하늘을 휘돌았다.
그러면서 라이트 게임까지 무사히 소화하고 우리는 어느 식당에 도착하여 물회 저녁과 또 주최자의 '식법 강의'와 함께 그 유명한 영덕대게를 난생처음 먹으니 맛을 넘어 그 자체만으로도 이 먼 '구석'까지 날아온 발품이 남아 돌만 했다. 이어서 중국을 출장 갔다온 얼굴이 단호박처럼 단맛이 철철 넘치는 친구가 내 놓은 '마우타이'를 곁들이니 정말이지 사는 맛이 이맛이다 싶었다.
우리 인원수의 '곱창'면적을 훨씬 넘는 대게의 발 숫자에 다들 정신 없이 손과 입을 놀리지만 결국 배들을 두드리면서 항복을 선언한다.
우리들은 이어서 우리들의 숙소인 백암관광호텔로 향했다.
거기는 우리들의 숙소면서 또 이차 '나이트게임'이 주최자의 세심한 배려로 마련 된 곳이었다. 나도 일단은 조명등이 번쩍이며 아줌마 아저씨들이 시끌하게 '삼겹살을 흔들어 쌓는' 모습들을 힐끗 보면서 '물이 영 안 좋구먼!'하는 혼잣말을 뱉음으로 나의 놀 줄 모르는 미련함을 '캄프라치' 내지는 자위를 하면서 곧방 혼자서 숙소에 들어와 '하니발'이란 잔인한 영화를 반토막 정도 '땡기다' 잠을 청하니 그럭저럭 잠이 올 즈음 친구들도 이 '물 좋은 곳'에서 의외로 일찍들 파하고 서나서나 들어 와서 잠을 청한다. 나도 다시 귀마개로 완전 무장을 하고 잠을 청하여 어느 만큼 지나니 '사우나행' 아침기상이란다.
사우나에서 나의 그 특이건강요법인 냉탕온탕을 댓 번 했더니 빈속의 부실한 몸뚱아리가 거의 녹초가 될 판이었다.
하지만 일정이 있는지라 우리는 식당을 향해 움직여 남는 시간을 이용하여 무슨 연속극의 배경이 된 '박선장'의 집을 둘러보며 기념촬영을 하고 등대에 올라 '응뎅이'를 쪼르륵 콩크리트 턱에 괴고 어릴 적 시골 개구쟁이로 돌아가 일렬로 해받이를 하며 그 앞에 펼쳐지는 파도들의 군무와 합주를 보고 들으니 우리들의 찌든 마음과 정신이 일시에 청소되어 산뜻한 기분이 절로 일었다.
수탉의 머리갈기처럼 물보라를 휘날리며 방파제에 부딛혀오는 그 하얀 파도들의 부서짐은 우리네 인생의 애닳고 어리석은 치달음같아서 잠시 애잔한 마음을 파도에 실을 즈음 또 움직여야 한단다.
등대를 내려와 파장이 다된 그날의 어시장을 대충 둘러보며 유서깊은 후포리의 역사를 들으며 아침 산책을 마무리하고 식당으로 차들 돌려 어제의 그 식당에서 또 물회로 아침을 먹는데 어제의 애매하던 물회 맛은 온데 간데 없고 절묘한 새 맛이니 참으로 사람의 입이 간사한 모양이다.
해장술도 한잔씩 걸치며 가벼운 담소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테니스장을 향했다.
이리 저리 어울려 게임을 즐기니 여기 저기 송림 위로 웃음꽃이 만발이다.
우리는 이런 맛을 즐기려고 만사를 제껴 놓고 이 먼길을 향해 온것일까?
그것은 단순히 테니스에 미쳐서라기에는 부족하다.
정이 그렇게 만들었다기에는 우리가 쌓은 정의 두께가 그리 두꺼울까 싶어서 의심이 간다.
사춘기도 아니니 남녀의 어울림이 그리 만들었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
역마살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나 하나면 모를까 너무들 많으니 그것도 이유가 아니고 도대체가 무엇인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즐거움만은 끝이 없었다.
이제 게임도 마무리를 하고 늦은 점심을 무슨 텔레비전 프로에 나왔다는 식당에서 갈비탕으로 먹고 아쉬운 이별을 나눌 시간이다.
아마 바다가 있어서 일까?
주최한 친구의 정이 그 자글자글한 눈가의 웃음마냥 깊고 깊어서일까?
사람들과 나누었던 그 웃음이 너무도 거짓이 없어서 이었을까?
아닌 말로 그들이 모두 전생에 피붙이라도 되었었기에 그런 것일까?
우리가 남은 인생이 지나온 인생보다 짧아서 일까?
나는 서로를 놓기가 싫었다. 다른 친구들도 다 같은 느낌의 눈빛으로 나는 보였다.
왠지 또 볼 수 있을까 하는 턱없는 우려도 갑자기 들기도 했다.
그러건 말건 시간은 흐르는 법 우리 인,천 서울 팀들은 또 각각 차에 오르고 바다를 벗삼아 그 먼길을 달려 올라오니 어제와 오늘의 파트너 친구분은 운이 없게도 완전히 뒤집힌 빈 속을 쓰다듬으며 깊은 잠에 들고 나는 파도를 벗삼아 잠시 달리고 나니 날은 어두워지고 나의 이번 여행길도, 같이 했던 즐거운 시간들과 그 웃음 띤 얼굴들을 하나 둘 떠올리면서 그 막바지를 쓸쓸히 접어 가고 있었다.
우리들 일행은 중간 휴게소에서 차를 같이 마시고 또 다시 들른 곳에서 곰탕으로 저녁과 여행을 갈무리하고 집에 도착하니 나의 여행은 하늘이 만들어주기라도 한 일정표처럼 완벽하고 즐거운 마음만, 그윽한 차의 향기처럼 여운으로 마음에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