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09.07.07
지도를 보면, 속리산 양 옆 계곡의 물과 보광산 양 옆 계곡의 물이 괴산의 중심 즈음에서 마주쳐 충주 쪽으로 흘러 남한강에 든다. 남한강에 들기 전까지의 이 강을 괴강이라 한다. 달래강, 감천이라고도 한다. 쌍곡계곡, 화양동계곡, 소수계곡 등 괴강 상류 계곡은 물 흐름이 빠르지 않고 바닥에 큼직한 자갈이 많아 다슬기가 잘 자란다. 여름이면 다슬기 잡이 하는 사람들을 계곡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괴산 사람들은 이 괴강에서 나는 다슬기 맛을 자랑한다. 괴강을 바로 옆에 끼고 있는 칠성면 둔율리에서는 다슬기 축제도 연다.
이름만큼 다양한 다슬기
다슬기는 우리나라의 계곡과 강, 호수 어디든 있고 흔히 먹는 민물고동이다. 이렇게 흔한 먹을 거리에는 지역마다 제각각의 이름이 있기 마련이다. 경남에서는 고둥, 경북에서는 고디, 전라도에서는 대사리, 강원도에서는 꼴팽이, 충청도에서는 올갱이 등등으로 불린다. 괴산에서는 올갱이라 한다. 서울 등 도시의 외식업체에서는 올갱이라는 말을 흔히 쓰는데, 충청도 쪽의 다슬기 음식이 외식업계에 먼저 알려졌기 때문이다.
생물도감에는 다슬기의 종류를 다슬기, 참다슬기, 곳체다슬기, 염주알다슬기, 주름다슬기, 띠구슬다슬기, 좀주름다슬기 등으로 구별하지만 같은 종류라도 서식지의 유속과 바닥 환경에 따라 모양새에 차이가 난다고 한다. 다슬기를 전문으로 잡는 사람들은 생물학적 구별법과는 다르게 부른다. 괴산 사람들의 분류법은 이렇다. 껍데기에 오돌토돌한 작은 융기가 발달한 것은 ‘까끌이’, 껍데기가 다소 맨질맨질한 것은 ‘뺀질이’. 그 중간의 것은 ‘반까끌이’, 약간 둥그스럼한 것은 ‘사발이’라고 한다. 이렇게 껍데기의 모양새가 다른 것을 괴산 사람들은 서식 환경의 차이에서 오는 것으로 설명하는데, ‘뺀질이’는 물 흐름이 빠른 계곡에서, ‘까끌이’는 물 흐름이 적은 댐 하부 등지에서 나온 것이라 말한다. 맛의 차이에 대해서는 ‘뺀질이’가 월등하단다. ‘사발이’는 계곡 깊은 곳에서 잡히는데 최근에는 귀하다고 한다.
‘선수’는 밤에 잡는다
낮에 괴강에서 다슬기를 잡는 사람들은 피서를 겸한 ‘일반인’들이다. 다슬기를 전문으로 잡는 사람들은 밤에 계곡을 오른다. 다슬기는 낮에는 자갈 아래에 숨어 있다가 밤에 위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다슬기 잡이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할머니들이다. 서너 명씩 짝을 이뤄 랜턴을 들고 캄캄한 밤에 계곡에서 다슬기를 줍는 것이다. 이 야간 작업을 취재하기 위해 여러 차례 청을 드렸으나 초보자가 같이 가면 위험하다며 말렸다. 허리 깊이 정도의 물에서 뜰채로 바닥 긁는 작업을 하는데 계곡 바닥을 알지 못하면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다슬기를 잡다가 익사 사고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한 해에도 몇 번씩 듣게 된다. 전문가가 아니면 따라서 할 일이 아니다. 낮에 ‘작업’하는 ‘일반인’들도 다슬기를 많이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기는 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거나 흐린 날에도 다슬기가 위로 올라온다. 그러나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피해야 할 것이다.
할머니 한 분이 하룻밤에 다슬기를 잡는 양은 5킬로그램 정도이다. 현재 시장 소매가격이 1킬로그램에 2만원선이니 10만원 벌이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를 일당으로 볼 수는 없다. 밤새 작업하고 다음날 장에 나오면 그 다음날은 휴식을 취해야 하니 사흘에 10만원 정도 버는 것으로 봐야 한다. 물론 도매로 넘기는 할머니들도 있다.
쌉쓰레한 물내
괴산의 다슬기 요리는 크게 해장국과 무침으로 나눌 수 있다. 해장국은 다슬기로 국물을 내고 살을 바늘로 빼낸 후 그 국물에 된장, 고추장, 파, 마늘, 아욱, 부추 등을 넣고 한소끔 끓여서 밀가루달걀옷을 입힌 다슬기 살을 넣는다. 식당에 따라 고추장에 넣고 안 넣고 하는 차이가 있지만 충청도 지방의 다슬기 해장국은 거의가 이 스타일이다. 경상도에서는 여기에 들깨나 찹쌀을 갈아 넣어 다소 걸쭉하고 고소한 맛을 더한다. 무침은 다슬기 살을 초고추장에 버무린 것이다. 다슬기의 가격이 비싸 무침을 먹는 경우는 드물고 거의가 해장국을 해서 먹는다.
괴산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올갱이해장국’이라는 간판을 흔히 볼 수 있다. 택시 기사 분들은 “특별히 맛있는 데는 없고 어떤 집은 짜고 어떤 집은 싱겁고 한 차이만 있을 뿐”이라 평가했다. 둔율리 다슬기 축제장에서 해장국을 만들어 파는 할머니들은 “잡은 지 한나절 지나면 벌써 맛이 흐려진다”며 다슬기 해장국 맛의 포인트는 싱싱한 다슬기에 있다고 말했다. 행사장에서는 막 잡은 다슬기로 해장국을 끓여내었는데 과연 식당에서 먹은 것보다 쌉쓰레한 특유의 물내가 강했다. 둔율리 할머니들은 해장국이라 하지 않고 된장국이라 했는데, 이 지역에서는 다슬기국이 일상으로 먹어온 음식이라는 뜻으로 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