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틱이란 본래 Antiquity의 변형어로 오래된 물건을 뜻하고 흔히 골동품으로 번역되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앤틱이 서양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 사용되었던 서양 소품의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앤틱을 옛날 사람들이 썼던 중고품(Secondhand)의 개념으로 자리잡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이다. 물론 누군가 썼던 중고임에는 분명하지만 앤틱이란 연대가 오래된 물건들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오래되어야 앤틱으로 간주될까? 통상적으로 100년 이상된 것을 앤틱이라고 간주하지만 점차로 범위가 확대되어 가고 있다.
만약 앤틱의 상반되는 개념을 모던이라고 한다면 일반적으로 1940년대 이전의 것들이 앤틱 시장에서 거래된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것들도 독자적인 수집 영역이지만 이번 인터넷 강의도 100년이라는 기준에 맞추고 160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의 것들을 주로 다루게 될 것이다.
앤틱의 시대적 범주를 대략 100년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앤틱이 있나?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크게 가구, 도자기(도기pottery, 자기porcelain), 유리제품, 은제품, 보석, 시계, 카펫과 텍스타일, 고서, 갑옷과 무기, 장난감과 인형, 그 밖의 기념품(전쟁기념품, 골프같은 운동관련 품목, 유명인사들의 기념품) 등이 있다.
앞에서 열거한 모든 분야를 크게 장식 미술(Decorative Art)이라고 하면 그림이나 조각, 프린트 같은 것은 순수 미술(Fine Art)에 속한다.
우리의 강의는 장식 미술을 중심으로 진행될 것인데 순수 미술사조의 이해는 장식 미술의 이해를 돕기 때문에 두 분야의 연관성을 잘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앞으로 곧 연재될 스타일에 대한 강의는 앤틱 이해의 기초공사쯤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누구나 한번쯤 무엇인가를 수집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표나 동전 같은 것을 모으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어릴 때 마론 인형이라고 불리는 머리가 노란 서양인형(오늘날의 바비 인형)의 옷을 200여벌 모았었다.
수집을 하게끔 하는 원동력은 바로 강한 애착 또는 집착이다. 내가 아는 어떤 오디오 수집광은 부인에게 구입가격에서 0을 하나 빼고 말한다고 한다. 이런 분들은 단순히 집안분위기를 한 번 바꿔보자는 차원의 데코레이터(decorator)가 아닌 정말 수집광인 콜렉터(collector)이다.
앤틱의 어떤 점이 이러한 컬렉터들을 잠 못 이루게 하는 걸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우선 똑같은 물건이 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우선일 것이다. 말하자면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닙니다! 라는 옛날 약장사의 슬로건처럼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볼지 모른다는 것이 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만드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나 밖에는 이런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자부심인데 이는 자신의 개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점점 늘어가는 컬렉션을 보면서 뿌듯해 하는 재미나 좋아하는 물건에 둘러싸여 미적, 정신적 충족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며, 모아두면 돈이 되는 또는 될 지도 모른다는 야무진 생각으로 모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앤틱 가구를 좋아하시는 어떤 분이 언젠가 내게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앤틱가구는 파장이 큰 기가 나와요. 정신적으로 매우 안정감을 주지요.
기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으나 철제나 플라스틱 같은 합성소재보다는 큰 파장의 기가 느껴지는 것도 같다. 어쨌든 앤틱은 묘한 매력이 많은 분야임에는 틀림없다.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다. 증권 전문가한테 어떤 증권을 사야 대박 터지냐고 묻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도 모범 답안은 있다. 우량주를 사야지! 우리나라의 진품 명품과 같은 영국의 앤틱 프로그램에서 어떤 소녀가 할머니가 물려주신 반지를 들고 나왔다. 그 반지에는 증조 할머니의 머리카락이 돌돌 말려 들어있었다. 좀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쨌거나 빅토리아 시대(1837-1901)에는 이런 반지들이 유행했었다나. 별로 큰 가치는 없지만 할머니의 유품이니 잘 간직하라고 전문가는 말한다.
이를 전문용어로는 기념적 가치(Sentimental Value)라고 말한다. 금전적인 가치를 생각하면서 투자의 개념으로 앤틱을 수집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념적 가치는 큰 의미가 없다. 투자적 가치를 염두에 둔다면 전문가의 조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소장하고자 하는 물건의 시세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고 향후의 동향까지도 읽어내야 하니까. 그리고 고가일 경우 보험도 들어두어야 한다.
어떤 물건을 사야 안전한 투자가 될까?
황금률은 일단 그 시대의 작품(Period Piece)을 사야 한다. 예를 들면 몸체는 17세기인데 뚜껑은 19세기 같이 조합된 체스트 (상자 형태의 가구)는 그 시대의 오리지널 작품과 비교해서 값이 많이 떨어진다.
이처럼 다른 곳에서 떼어내어 붙여 만든 것을 잘못 만난 부부에 비유하여 매리지 피스(marriage piece) 라고 하는데 역시 투자 가치에 있어서 행복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조합된 매리지 피스도 그러한데 하물며 진짜라고 믿고 사는 (정확하게는 속고 사는) 모조품은 투자적인 측면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많은 곳이 수리된 것도 조심해야 한다. 또 다른 원칙은 동시대에 제작된 다른 작품들에 비해 뛰어난 점이 무엇인가를 알고 사야 한다.
예를 들면 제작자의 이름이 알려져 있다든지, 내력이 확실하다든지, 기술적인 면에서 뛰어나다든지, 심미적으로 보기에 훨씬 더 좋다든지, 상태가 이례적으로 좋다든지, 드물거나 희귀한 예라든지 하는 것이다. 물론 앞에서 열거한 조건을 모두 다 충족시킨다면 매우 훌륭한 앤틱이다. 내가 사고자 하는 물건이 이 중 어떤 조건을 충족시키는지 한번쯤 반문해 보아라.
전문가들은 이런 질문을 잘 하고 잘 대답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잘 활용해야 한다(대부분의 앤틱 전문가들의 감정 및 조언 서비스는 무료다).
그렇지만 자신이 집안을 예쁘게 치장하고 싶은 단순 데코레이터라면 자신의 감각만으로도 얼마든지 앤틱을 즐길 수 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내가 좋아서 선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데코레이터의 입장으로 산다 하더라도 내가 앤틱을 사는지, 모조품(Reproduction)을 사는지 알고 사야할 것!
영국 사람들 중에는 앤틱 중독자들이 매우 많고 나라 자체도 앤틱 중독 국가이다. 웬만한 집에 19세기 물건(1800년~1899년)한 두개쯤 가지고 있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집을 다 뒤져봐도 옛날에 쓰던 사기그릇 하나 남아 있지 않을까? 이것은 명백히 역사와 문화의 차이다. 그들의 역사는 우리의 그것에 비해 매우 평온했고 서서히 변화를 거쳐오면서 물려주고 물려받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너무 살기에 바빴던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 세대에 버튼식 쌀통의 편리하고 깔끔함에 투박한 쌀 뒤주를 그냥 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간혹 진품 명품 이라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에서 보기 드문 골동품이 소개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이젠 우리도 옛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 살면서도 몇 백년 된 것에 새로운 관심을 두는 것이 바로 우리가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증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