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부처님의 출가 이유와 ‘위없는 바른 깨달음’
석가모니 부처님의 출가이유
석가모니 부처님은 원래 인도 카필라국의 정반왕의 태자로 태어나신 분입니다. 그에게는 한 나라의 왕위가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이 추구하는 권세와 부귀 등, 그 모든 것을 다 갖추신 분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왜 태자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 하였을까요?
불전(佛典)에서는 부처님의 출가 이유를 ‘사문유관(四門遊觀)’이라고 하여,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태자는 성문 밖으로 산책 나갔다가 백발에 허리가 굽은 노인을 보고는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는 사실을 실감하였고, 다른 문밖에서는 고통에 신음하는 병자를 보고 병에 시달리는 인생의 괴로움을 절실히 알았으며, 서쪽문 밖에서 장사지내러 가는 상여 행렬을 보고는 세상에 태어난 자는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통절하게 느꼈습니다.
인간은 태어났다가 결국은 늙고 병들어 죽고 마는 것! 어머님은 이미 세상을 떠 났고, 아버님도 또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 이 세상에 태어난 자는 아무도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 아아, 인생은 허무하고 괴로운 것 이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의 수렁이 우리의 앞을 막아 서 있다.(五分律).
그는 몹시 마음이 언짢았고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북쪽 성문 밖으로 나갔다가 희미하게나마 한 가닥의 희망을 붙들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출가 수행자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형식적인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인으로 보이는 그 수행자는 해탈의 길을 찾아 출가하였다는 것입니다.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태자 싯다르타에게 큰 기쁨의 소식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태자는 날 것만 같았습니다. 꽉 막힌 숨통이 확 트이는 듯했습니다.
‘그렇다! 행복 중에서도 가장 행복인 무상의 열반을 얻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을까?’
궁전으로 돌아온 태자는 어떻게 해야만 생노병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난 열반을 얻을 수 있을까?하는 문제를 생각하였습니다. 명상하는 그의 습성은 변함이 없었지만, 태자의 동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부왕은 태자의 심경변화를 알아차리고 크게 염려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출가하고야 말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왕은 태자의 마음을 잡기 위하여 날마다 연회를 베풀고 아름다운 여인들로 하여금 시중을 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밤, 싯다르타는 선녀처럼 예쁘게 꾸미고 갖은 교태를 다 부리던 여인들이 꼴불견의 추한 모습으로 뒤엉켜 잠들어 있는 것을 목격하고, 인간의 허위성과 인생의 보잘것없음을 절감하였습니다. 그래서 출가하여 수도할 것을 결심하고 부왕에게 그 허락을 간청했습니다.
태자로부터 직접 출가하겠다는 말을 듣게 된 부왕의 놀라움은 컸습니다. 왕은 태자에게 타이르기도 하고 꾸짖기도 하고 나중에는 애원하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번 굳힌 그의 결심을 꺽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부왕은 태자에게 왕통을 이을 왕손을 얻기 전에는 출가할 수 없다는 조건을 내세워 출가를 잠시 늦출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태자는 같은 석가족의 콜리 성주의 딸인 야소다라와 결혼하였고, 그와의 사이에 아들 라훌라가 태어나자 드디어 출가를 결심하고 몰래 왕궁을 빠져나가 출가사문(出家沙門)이 되었습니다.
아들의 출가를 막으려고 했던 부왕의 온갖 노력은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더할 수 없는 호강을 다하고 자란 태자가 부모와 처자와 왕궁을 버리고 끝내는 출가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싯다르타가 출가한 까닭은 뚜렷했습니다. 그 이유를 부처님이 된 뒤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출가한 것은 병듦이 없고 늙음이 없고 죽음이 없고 근심ㆍ걱정ㆍ번뇌가 없고, 지저분함이 없는 가장 안온한 행복의 삶을 얻기 위해서였다. 이 세상에 만약 늙고 병들고 죽는 이 세 가지가 없었다면 여래는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잡아함경 권14)
이와 같이 싯다르타 태자는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출가하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출가 이전에 그가 번민하였던 내용도 바로 그것이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즉 그는 일찍부터 늙고 병들고 죽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였고, 그 필연적인 인생의 괴로움을 슬퍼하였으며, 불완전하고 지저분한 인간세계의 모순을 괴로워하였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없는 삶을 찾아서 출가하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가 그와 같이 출가를 결행하게 된 데에는 시대성과 사회상 및 내성적이며 명상적인 그의 성격도 어느 정도 작용을 하였으리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스승을 찾아서
밤중에 궁전을 떠나온 싯다르타는 카필라 성의 동남쪽으로 가다가 날이 밝은 뒤에 어느 강가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그는 스스로 머리를 깎고, 지나가던 사냥꾼과 옷을 바꾸어 입고 출가수행자 즉 사문이 되었습니다. 수행자가 된 그를 흔히 사문 고타마라고 부릅니다.
수행자 고타마는 당시 저명한 수도인을 찾아 편력의 길에 나섰습니다. 그가 처음 찾아간 수행자 바가바라는 고행주의자였습니다. 고타마는 바가바라가 제자들을 거느리고 온갖 고행을 닦고 있는 것을 보고, 그 고행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그들은 천상에 태어나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고타마는 천상에 태어날 것을 목적으로 하여 고행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천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지금의 자신이 죽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몸이 죽어서 천상에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그 천상에서의 수명이 다하면 다시 인간세계에서 고통을 겪어야 하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천상에 태어난다는 것을 무엇으로 보장한단 말인가? 그래서 그는 그곳을 떠납니다.
그가 다음에 찾아간 곳은 배화주의자(拜火主義者)였습니다. 그들은 범천과 해와 달, 물과 불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 또한 자신이 닦을 만한 수행이 못된다고 판단하여 그곳을 물러났습니다.
그는 당시 가장 명망이 높은 대표적인 선인 두 사람을 차례로 찾아가 사사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알라라 카라마이며, 또 하나는 웃다가 라마풋타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선정법에 의하여 수행하는 수행주의자였습니다. 이들은 선정 즉 정신통일에 의하여 정신적 작용이 전면 정지되어 해탈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고타마는 이들에게 각각 지도를 받아 수행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해탈의 경지라고 인정하는 최고 수행의 단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 경지도 일단 정신통일의 상태가 끝나버리면 다시 전과 같은 상태로 되돌아오게 되므로 수정을 끊임없이 되풀이하여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결코 무고안온(無苦安穩)의 해탈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이 수행 방법은 결국 죽음에 이르지 않고는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영원히 사는 법을 위하여 선정주의의 수행방법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그는 이름 있는 훌륭한 수도자들을 찾아보았으나 아무에게서도 그가 바랐던 바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가야의 네란자라 근처 고행림이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고행을 시작했습니다. 여기서의 고행은 생천(生天)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정신의 자유를 얻기 위한 육체적 고행이었습니다. 이때 부왕 숫도다나는 아들을 염려하여 다섯 사람을 보냈는데, 이들 다섯 사람도 고타마와 함께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출가한 후 한 곳에 머물러 수행하기는 이 고행림에서의 수행이 가장 오래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그야말로 육체를 최고로 괴롭혀 단련하는 살육의 고행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짧지 않은 동안의 고행 결과 그에게 남은 것은 몸의 초췌와 마음의 피로뿐이었습니다. 그가 출가한 목적이 육체를 괴롭히는 힘든 고행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무고안온(無苦安穩)의 열반을 얻고자 하는 것이 그의 출가 목적이었으므로, 그는 고행만으로는 도저히 출가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다는 것을 판단하고 그 고행을 버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네란자라 강물에 들어가 몸을 씻었습니다.
마침내 위없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다
고행자가 맑은 물에 목욕을 한다는 것은 고행주의자와의 결별을 뜻하는 것이 됩니다. 오랜 고행으로 지치고 더러워진 몸을 깨끗이 씻고 난 그는 기진하여 거의 탈진 상태에 빠져 간신히 나뭇가지를 잡고 언덕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때 마침 그곳을 지나던 근처 마을의 수자타 아가씨에게서 우유죽을 공양 받고 기력을 회복하였습니다. 그와 함께 수행을 하였던 다섯 수행자는, 수행자는 목욕을 해서도 안 되는데 고타마가 목욕을 하고 거기에다가 아리따운 아가씨로부터 우유죽까지 받아먹는 것을 보고 실망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 다섯 수행자는 “고타마는 타락하였다. 그는 정상적인 수행자가 아니다. 신성한 수행을 모독하였다. 우리는 그가 있는 곳에 머물 수가 없다."하고는 그곳을 떠나 녹야원으로 가버렸습니다.
고타마도 고행림을 떠나 수행하기 좋은 새로운 수행처를 찾아 나섰습니다. 마침 그늘이 좋은 핍팔라(보리수) 나무를 발견하고 그 아래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앉기에 알맞은 반석이 놓여 있었습니다. 고타마는 그 근처에서 풀을 베는 사람으로부터 부드럽고 깨끗한 풀을 한 아름 얻어다가 반석 위에 깔고 그 자리에 앉아서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면 결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히고 속박하는 것을 자기 밖의 외부적인 것에서 찾으려고 하였으나, 안으로 눈을 돌려 무한한 자유와 무고안온의 행복을 자기의 한 마음에서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인간이 현실적으로 짊어지고 있는 노사우비고뇌(老死憂悲苦惱)를 문제 삼았습니다. 왜 노사우비고뇌가 일어나게 된 것일까? 그것을 추구한 끝에 얻은 결론은 생 때문이었습니다. 생이 있기 때문에 노사가 있게 된 것이며. 생은 유, 유는 취, 취는 애, 애는 수, 수는 촉, 촉은 육입, 육입은 명색, 명색은 식, 식은 행, 행은 무명(무지) 때문이었습니다. 그 최초의 원인이 무명이라면, 그것을 밑뿌리부터 제거할 때 그것에 의하여 일어난 모든 결과인 현실의 고(苦)도 함께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고타마는 내심의 깊은 성찰에 잠겨 모든 것이 연기(緣起; Pratitya samutpada)하는 도리를 관찰하였습니다.
이렇게 연기의 도리를 깊이 관찰한 고타마는 생사 괴로움의 근본원인인 무명의 멸진(滅盡)에 향하였습니다. 그는 드디어 35세 되든 해의 12월 8일 새벽, 무명을 멸함으로써 ‘위없는 바른 깨달음(無上正等正覺)’을 얻었습니다.
수도의 목적을 달성하여 부처님이 된 고타마는 “나는 일체의 승자(勝者)이며, 일체의 지자(智者)이다. 일체법에 물들지 않고, 일체를 버렸으며, 갈애(渴愛)가 다하여 해탈하였다.(大品)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일체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자율적인 큰 자유의 삶을 얻었으므로 모든 중생 중에서 최승자이며, 우주와 진리를 체득하여 완전히 깨쳐 알아 자주적인 대각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로부터 싯다르타는 붓다(Buddha; 부처, 覺者)ㆍ석가모니(석가족의 성자)ㆍ세존(世尊)ㆍ여래(如來)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붓다는 열반할 때까지 45년간 법을 설하여 수많은 중생을 제도하고, 80세 되든 해 쿠시나가라의 성 밖의 사라나무가 두 그루 나란히 서 있는 사이에 누워 마지막 순간까지 가르침을 펴고, 고요히 열반에 들었습니다. 이 때가 기원전 543년경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