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첩반상
유 남 희
대구방짜유기박물관엘 갔었다.
전시된 방짜유기는 마치 금물을 뒤집어쓰고 금방 나온 듯 은은하고 우아하게 빛이 났다. 건드리면 여운이 긴 종소리가 울릴 것만 같았다. 칠첩 반상기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국그릇, 밥그릇, 김치그릇, 앙증스런 간장 종지를 제외하고, 일곱 가지의 작고 고만고만한 찬그릇들이 보태져 상이 차려졌다. 얌전히 뚜껑이 닫힌 그릇들은 제자리에 정갈하게 앉아 있다. 큰상 차림이다. 나도 딱 한 번 저런 큰상을 받아보았다.
하나뿐인 언니가 시집을 가자 이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소가를 얻어 대를 이을 아들을 보려던 꿈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머니와 나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가문과 뿌리를 중요시했던 어머니에게 도시는 무섭고 막된 세상이었을 터였으니, 우리들의 뿌리를 아는 고향이어야 한심하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신 듯하다. 마을에서는 큰 일이 있을 때, 큰상 보는 일이나 도복과 큰옷을 마름질 해주는 일에 꼭 어머니를 모셔 가곤 했다. 중매쟁이들이 들락거리면 나는 무단이 성을 내곤 했지만 고향사람들은 날 가만두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런 나는 달래며 여자는 남편만 잘 만나면 그게 상팔자라고 했다. 어쩌면 당신을 빗댄 말이 아니었을까?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인 섣달 중순에 혼례를 치루고 신행을 떠났다. 친정을 떠나며 나는 울지 않았다. 가는 동안 줄곧 어머니를 다시 모실 궁리만 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꼭 다시 모시리라 다짐했다. 웃각시의 부축을 받으며 몇 번의 의식을 치르고서야 시댁 큰방 아랫목에 앉게 되었다. 방안에는 마을의 안어른들로 꽉 찼다. 그들은 새색시인 나를 구경했지만, 새색시인 나는 눈을 치뜨고 그들을 살피거나 둘러보면 안 되었다. 모여드는 손님들은 다 새색시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미처 방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은 마루나 마당에 서서, 고개를 빼고 키가 헌칠하다느니, 마을에 상 며느리라느니 덕담을 했다. 뭇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앉아 있어야하는 새색시 노릇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손님치레 하느라 부엌에선 종일 불을 지폈다. 방바닥은 절절 끓어서 이미 요를 몇 겹으로 올렸는데도 엉덩이가 델 지경이었고 오금이나 버선 속 발은 쏙쏙 쑤시고 저렸다.
각시상 들어간다는 소리가 나자 사람들이 물러앉으며 자리를 내주었다. 이윽고 뚜껑이 얌전히 덮인 유기칠첩반상이 들어와 내 앞에 놓였다. 수랏상만큼이나 호사스러웠다. 옆에 앉은 웃각시가 귓속말로 일렀다.
“일생에 한 번 받는 상이니 많이 들게.”
그녀는 내 두 손을 덮고 있던 하얀 명주 수건을 걷어주고 그릇 뚜껑을 벗기기 시작하였다. 수저를 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때 눈에 들어온 것이 간장 종지였다. 신행을 떠나기 전, 큰고모님이 말씀하셨다.
“야 아 야, 큰상 받걸랑 지렁장에 적신 숟가락을 입술에 살짝 대보고 나서 굶지 말고 떡국이라도 뜨거래이. 그게 법이다. 알겠나.”
수저를 들까 말까 망설이는데 사람들마다 한 마디씩 했다.
“저 상 한 번 받고 나면 여자 팔자는 마 그만인기라.”
“하문요. 오늘이 각시 날이께 뭐든지 뜨야지.”
“그케요.”
“요즘같이 개화한 시상에 못 먹는 기 바본기라.”
참고 참았던 눈물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어머니께서는 그러셨다. 하루 굶어도 산다. 훌쩍거리며 뭘 먹어. 나는 얼른 눈물을 거두었다. 숟가락으로 살짝 적신 짠 간장을 입술에 적셨다.
그때의 간장 맛이 시집살이 짠 맛이었다. 막상 시집을 가보니 어머니를 모시기는커녕 자주 찾아 뵐 수조차 없었다. 팔남매 맏며느리 노릇만으로도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시어른들을 모시고 시누이 시동생 출가시키고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친정어머니는 홀로 늙어가고 계셨다. 큰상 한 번 받고 내 일생을 그 집안에 받치고만 셈이다.
이제 다시 칠첩반상을 받아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옛날 같으면 희수다 미수다 큰상을 차릴지도 모르겠으나 시대가 변했으니 누가 그런 걸 차리겠나. 아이들은 보나마나 때가 되면 상을 차린답시고 호텔 뷔페로 불러낼 것이다. 거기 가 봐야 큰 접시에다 이것저것 음식을 덜어다 먹는데, 그게 어디 옛날 같으면 있을 법이나 한 일인가. 예전에는 잔칫집에 밥 얻어먹으러 온 걸인에게나 바가지에 이것저것 음식을 담아 주지 않았던가.
이제 칠첩반상이란 사라져버렸다. 요샌 가장 이상적인 밥상이 나 어릴 적 가난한 친정에서 질리게 먹던 보리밥에 푸성귀이다. 그걸 웰빙 어쩌구 하면서 최고의 음식으로 쳐준다. 나도 오늘 아침 웰빙 식으로 때웠다. 과일 한쪽에 감자 두 알과 마늘 한 통을 삶아 먹었으니까.
- <에세이스트> 2008년 9,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