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지브리 정신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애니메이터와 그의 작품은 현재, 일본은 물론 세계각국의 애니메이션 팬들의 열렬한 지지와 주목을 받고 있으며,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의 산실인 스튜디오 지브리도 이제는 디즈니에 비견될 만큼 성장, 지난 여름에는 월트 디즈니와 배급에 대한 계약을 맺어서 본격적인 세계 진출을 실현하게 됐다. 이렇듯 세계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튜디오 지브리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은 <이웃의 토토로>을 제외하고 그 인물과 배경에 있어서 유럽 백인문화의 깊은 영향하에 놓여져 있다. 그러나 사실 고쳐 생각해보면 그와 같은 경향이 꼭 미야자키만의 것은 아니다. 일본의 상업 애니메이션 안에서 일본을 무대로 일본인이 나오는 작품들이 다수 제작되어 오기는 했지만, 그만큼 서양을 배경으로 서양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이 훨씬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미야자키도 결코 예외는 아니어서 그의 많은 작품 속 배경은 유럽에 바탕을 두고 있다. 네덜란드의 농촌을 연상시키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영국 웨일즈 지방을 현지 로케이션한 <천공의 성 라퓨타>, 역시 스칸디나비아 등지를 현지 로케이션한 <마녀 우편배달부>, 카와사키 공장지대의 이미지와 자신의 상상력만으로 2, 30년대 이탈리아를 현실감 있게 축조해낸 <빨간 돼지>. 특히 <빨간 돼지>의 배경묘사는 프랑스의 유명 만화작가 뫼비우스가 보고도 감탄했을 정도였다. 캐릭터들은 오히려 배경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일본적이다. 때때로 여전히 금발과 파란 눈을 갖고 있지만 밋밋한 얼굴윤곽과 작은 코, 검은 눈동자와 머리카락을 하고 있으며, 더욱이 그 캐릭터들이 그대로 다카하타의 리얼리즘 애니메이션에 들어오면 일본인의 얼굴을 무척 간결한 느낌으로 충실히 재현한다. 그럼 다카하타가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것과는 달리 미야자키가 굳이 유럽을, 유럽의 느낌이 나는 곳을 배경으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먼저 미야자키 개인을 떠나 서구화에 의한 근대화라는 과거 일본역사속의 명제가 개입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미야자키의 그러한 비일본적 공간과 그 안에서 취급되고 있는 주된 테마들과의 상호관계이다.
미야자키에게는 그를 특징지우는 몇가지의 테마들이 존재한다. 그것을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의 모티브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가령 잘 알려진 예를 들어보자. 자연회귀, 환경보호, 반전주의, 반파시즘.... 그러나 지구상의 어디에서도 이 모든 것들이 실현되고 지켜지는 곳이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야자키는 자신의 애니메이션영화를 통해서 부단히 이상향을 축조하고 제시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그가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상향이란? 미야자키 본인조차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는 그러한 세계를 일본인 관객들에게 시각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일차적인 선택은 엑조티시즘(exoticism)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바라는 이상향의 구체적인 모습을 완전히 새롭게 창출해낼 수 없으며,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한계이기도 하다. 따라서 유럽은 미야자키에게 있어 이상적인 사회주의 사회의 시각화에 쓰일 최적의 재료로 생각되었을 테다. 그렇지만 그는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거기에서 방황하기 시작한다.
미야자키의 거의 모든 작품에는 이상적인 마을, 부락이 등장한다. <미래소년 코난>의 하이하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바람계곡, <천공의 성 라퓨타>의 슬러그 계곡 등이 그렇다. 이런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주민들은 거의 모든 경우에 있어서 순박하고 친절하며, 단결을 잘한다고 묘사되어 있다. 즉 인간의 삶의 형태에 있어서 이런 형태의 공동체가 가장 모범적이라는 식으로 미야자키는 관객에게 제시한다. 그러나 하이하바는 마치 에덴동산같으며 바람계곡은 중세유럽의 봉건사회이다. 또한 슬러그 계곡은 자본주의의 폐혜가 극에 달하던 20세기초의 영국 탄광촌이다. 이것은 이상향이 아니라 과거의 대한 단순한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미야자키가 <빨간 돼지>에서 도달한 곳은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였다. 한편 그는 자신의 담론을 구성하기 위한 이항대립쌍으로서 그것들의 이미지에 완전히 반대되는 사회체제를 꼭 잊지 않고 등장시켰다. 1인 관료 독재체제의 인더스트리아, 전제군주체제의 토르메키아, 강력한 군사력과 무스카로 상징되는 국가정부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에서 알 수 있듯이 미야자키의 이상적 사회주의는 파시즘에 대한 강한 반작용의 소산이기도 하며, 게다가 그의 가장 개인적인 작품 <빨간 돼지>에서는 이탈리안 파시즘에 대한 반감이 직접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미야자키의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대학 시절에 본격화된 것으로 한때 그는 만화에 뜻을 두고 만화연재를 시작했는데, 그것을 실은 매체는 일본 공산당에서 발간하는 아카하타(赤旗: 붉은 깃발)였다. [사막의 백성]이라는 제목의 SF와 맑스주의를 결합시킨 만화였다. 대학 졸업 후 미야자키는 토에이동화에 입사해서 애니메이터가 되는데, 입사이유는 “미제국주의 디즈니에 대항하는 애니메이션을 일본에서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또한 거기서 미야자키는 다카하타를 만나게 되는데, 사상과 철학, 특히 사회주의에 대해서 식견이 깊은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한편, 스튜디오 지브리가 설립된 것은 85년 8월로 설립 자금의 75퍼센트는 토쿠마 서점(德間書店)이 출자했다고 한다. 토쿠마 서점의 [아니메이쥬(Animage)]이 최초의 애니메이션 전문지로서 창간된 것이 78년도의 일이었고, 그 후 애니메이션 제작까지 검토되는 과정에서 [아니메이쥬]의 편집장 스즈키가 다카하타, 미야자키 콤비를 만나게 된다. 그러던 중 스즈키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원안이 되는 스토리를 미야자키로부터 듣고나서, 토쿠마 서점내의 영상 위원회를 설득하기 위해 [아니메이쥬]에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을 연재하게 했다. 마침내 1년 뒤에야 완성, 공개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성공으로 스튜디오 지브리가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애니메이션계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게 된다. 지브리는 미야자키, 다카하타, 스즈키를 중심으로 항상 그 시대에 필요한 현재의 일본에 비전을 제시하는 작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활동을 하고 있다. 완벽한 미야자키, 다카하타 중심의 작가체제를 통해 흥행보다는 늘 작품성을 우선으로 두어 온 스튜디오 지브리는 완벽한 회사체제를 통해 애니메이터들을 ‘그림그리는 노동자’가 아닌 안정된 상황에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해왔다. 외국에 하청을 일체 주지 않고 자체력으로 제작할 뿐만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을 남용하지 않고 가능한 한 인간의 손으로 모든 작업을 함으로써 보는 이들이 화면에서 따뜻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기본 자세를 지키고 있다. 이런 수작업을 고수하는 것은 그만큼 수작업에 자신이 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후에 스튜디오 지부리는 일본 뿐만이 아닌 해외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되는데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다지 반가워하는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내년 공개 예정인 <도깨비 공주>은 어디까지나 일본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지, 세계를 대상으로 한 작품이 아니라고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예고편과 줄거리, 그리고 미야자키의 제작의도를 들은 필자로서도 <도깨비 공주>은 어디까지나 일본을 위한,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