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는 공달(公達). 영천 영음 출신.
순유의 조부 순담과 순욱의 조부 순숙은 형제관계였다. 순욱의 조카였으나 나이는 더 많았고, 그래도 윗사람으로 모셨다 한다. 조부 순담은 동한의 광릉태수를 지낸 적 있다.
하진이 정권을 잡은 후, 순유를 비롯한 국내의 명사 20명을 초빙하였다. 이에 순유는 후한의 황문시랑으로 임명되었다. 동탁이 정권을 잡고 전횡을 부리자 정태, 하옹, 종집, 오경과 함께 동탁을 치기 위해 모의를 했다. 이 계획은 성공을 눈앞에 두고 탄로나서 순유와 하옹은 옥에 갇혔다. 하옹은 자살했으나, 때를 맞춰 동탁이 살해당해서 순유는 옥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순유는 집에 돌아왔다가 다시 높은 벼슬에 초빙되었다. 그러나 순유는 촉한태수가 되길 원하였는데, 그래서 촉한태수가 되어 가다가 길이 끊어져 형주에 머물렀다. 이 때, 조조는 천자를 영접하고 순유의 명성을 듣고 불러서 여남태수에 임명했다가, 중앙에 불러서 상서로 임명했다. 순유의 명성을 듣고있던 조조는 그를 맞이함에 큰 기쁨을 느꼈고, 순욱과 종요를 불러서 "순유는 보통사람이 아니오." 라고 말했다. 그 후 순유를 군사로 삼았다.
순유는 장수정벌때 따라나섰는데, 장수와 유표가 서로 연계하고 있으며 장수가 떠도는 군대이니 유표가 오래 돕지 못함을 알고 싸우지 말기를 권했으나 조조가 듣지 않았다. 과연 유표의 군대가 도우러 와서 조조는 궁지에 몰렸다. 조조가 기습을 행하여 겨우 빠져나왔다.
여포와 싸울때, 병사들이 피로하고 지쳐서 조조는 군대를 돌리려 했다. 그러나 순유와 곽가가 나서서 한번 더 공격하면 여포를 이길 수 있다고 하였고, 곽가는 수공을 생각해내었다. 그리하여 여포는 조조에게 패하여 사로잡혀 죽었다.
순유는 원소와의 싸움에도 종군하여, 계책을 써서 백마에서 안량을 죽였다. 이에 원소가 진노하여 군대를 이끌고 조조와 대치하자, 많은 장수들이 겁을 먹고 도망치려 했다. 순유가 이를 독려하며 적을 쳐부술 계책을 말하자, 조조는 이에 따라서 문추를 베었다. 원소의 군량보급선을 끊을 계책을 말했고, 서황을 추천하니 서황은 부하 사환과 함께 가서 적장 한명(혹은 한맹)을 격파했다. 장합이 항복해오자, 조홍은 의심하여 이를 받지 않으려 했으나 순유가 설득하자 조홍은 그를 거두었다.
원소 사후, 조조는 원담과 원상을 토벌하러 어양에 이르렀는데, 순유가 말하길 유표가 더 강성하니 그를 토벌하는게 낫다고 하였다. 조조는 원담과 화친하고 군대를 돌렸고, 원담이 모반하자 순유가 가서 이를 토벌하고 원담을 참형에 처했다. 이에 조정에서는 순유를 능수정후에 봉했다.
순유는 종요와 절친했고, 순유가 계책을 말한것을 종요가 엮어보려 했으나 완성치 못하고 죽었으므로 (순유 사후 16년이 지났을때 종요가 세상을 떠났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순유는 조조를 수행하여 손권을 정벌하던 도중에 58세로 사망했는데, 조조는 "공달과 내가 같이 지낸 지 20년이 되었지만 서로 털끝만큼도 어긋남이 없었다." 하며 그에 대해 말할때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애닮어했다.
순유의 장남은 순즙인데, 일찍 죽었다. 차남인 순적이 대를 이었으나 아들이 없어서 대가 끊겼다. 후에 순유의 손자뻘인 순표가 능수정후에 봉해졌다. 후에 순유는 경후로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