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는 1360년 5월 2일, 명나라를 세운 태조 홍무제 주원장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는 주원장이 홍건적의 두령으로 원나라와 맞서 한참 항전을 벌이던 시절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확실하지 않은데, 공식적으로는 홍무제의 정비인 마황후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고려 출신의 공비(碽妃)라는 설이 있고, 또 원나라 여인에게서 태어났다고도 한다. 이런 출생의 불확실함 때문에 그가 아버지나 형제들의 신뢰를 받지 못했으리라는 추측도 있다.
명나라의 건국 과정에서 주체는 아직 코흘리개 어린아이였기에 별 공로가 없었다. 하지만 1370년, 홍무제가 아들과 손자들을 변방 지대의 번왕(藩王)으로 책봉하면서 주체를 연왕(燕王)으로 북평을 다스리게 한 이후로 점차 두각을 나타냈다. 북평은 몽고와 여진 등 이민족과 직접 상대해야 하는 군사적 요충지이며, 오랜 전란 끝에 도시는 황폐해지고 백성들은 헐벗어 있었다. 주체는 이곳을 맡아 삼십 년 동안 몽고족의 침입을 물리치고 경제를 안정시켰으며, 연을 번왕국 중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중앙에서 볼 때, 그토록 커진 연왕의 힘은 국가적으로는 보탬이어도 정치적으로는 부담이었다. 그래서 1398년에 홍무제가 사망하고 그의 맏아들 주표의 맏아들인 주윤문이 2대 황제(건문제)로 즉위하자, 곧바로 연왕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정면 공격은 ‘조카가 삼촌을 박해한다’는 점에서 명분도 없고, 연왕의 세력이 워낙 만만치 않았으므로 첩자와 자객들을 보냈는데, 연왕은 거짓으로 미친 척을 하여 한여름에 화롯불을 껴안고 살거나 시궁창에서 잠을 자는 등 실없는 행동으로 그들의 주의를 흐리게 했다고 한다. 또 땅굴을 파고 그 안에서 무기를 제작하면서 땅 위에서는 거위 떼를 길러, 그 꽥꽥대는 소리로 무기 만드는 소리를 감추었다고 한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춘 연왕 주체는 마침내 1399년, 조카에 맞서 거병한다. 명분은 ‘정난(靖難)’, “황제를 에워싸고 있는 간신들을 처단하여 나라를 바로잡는다”는 것이었다.
북평의 군대는 정예병이었으나 수도 남경의 황제군에 비해 수적으로 크게 열세였다. 그래서 연왕 측이 크게 패하고 연왕조차 죽거나 사로잡힐 위험에 빠진 경우도 있었지만, 건문제가 “숙부님의 생명까지 위협해서는 안 된다. 지나치게 몰아붙이지 마라”며 제동을 거는 바람에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반면 연왕은 자신에 버금가는 군사력을 가졌던 영왕 주권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서 함께 조카를 노렸다. 두 세력 사이의 치열한 공방전은 마침내 1402년 6월, 정예병만을 추려 남경을 전격 습격한 연왕의 필사적인 도박이 성공을 거두어 남경이 연왕군에게 함락됨으로써 끝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