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미국에서 고향을 찾아와 천고마비의 계절이 실감나는 고향 가을 하늘을 쳐다 봅니다. 강 뚝따라 펼쳐질 풍성한 결실로 이어질 청명한 가을 하늘을 쳐다 봅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가끔 들리는 고향임에도 고향의 가을은 포근하고 풍요로운 삶을 가꾸도록 채찍질 해 줍니다. 강언덕에 피어 있는 꽃의 향기와 무르익어가는 벼의 고개 숙임에 밤새도록 나를 잡아주고도 남습니다.
내가 살던 고향에는 코스모스 대신에 이곳 저곳에서 귀뚜라미 소리와 개똥벌레의 화려한 외출 그리고 맹꽁이 합창에서 가을이 되었음을 알려 줍니다. 맑은 하늘에 둥둥 떠있는 별들을 쳐다 보면서 나름 옛적에 마당에 있는 평상에서 어머님의 무릎에 누어 보았던 북두칠성을 찾아 헤매 봅니다.
굳이 인위적으로 만든 동산에서 풍기는 화려함을 내 풍기지 아니 하드라도 강뚝을 따라 피어 있는 이름 모를 꽃들과 강아지 풀 억새 풀을 통하여 가을이 자연스럽게 연출 되는 것을 봅니다.
아주 가냘프고 샛노란 꽃은 나의 눈을 매혹의 속으로 파고 들게 합니다. 이름모를 꽃들과 강아지 풀도 고향의 가을을 무르익게 도와 주는 것 같습니다
흰구름 뭉게 구름이 짙은 하늘을 쳐다 봅니다. 강가에 새로지은 쉼터에 앉아 그리운 옛적 정겨운 동무들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듬성 듬성 피어 있는 노란 꽃의 향기가 벌들을 초대 하면서 또한 거센 바람에 아롱곳 없이 먹이의 틀을 꾸미는 거미도 나를 초대 해 줍니다.
어쩌면 마음이 따뜻함을 유지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위해서 꽃과 스스로 흐르지 못 하는 영산강을 무심히 쳐다보는 내 자신을 좋아하는것인지도 모릅니다
영산강 뚝을 따라 뉴욕보다 습기가 많은 땀에 흠뻑 젖어 걷노라니 꽃과 개미들 거미들 나무들 제비들, 두루미들 그리고 영산강 물이 뜬 구름과 함께 어울려 하나가 되어 허물없이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고향에 오면 혼자 걷던 이 길을 친구 셋이 걸으니 그동안 나를 유혹 했던 세상 잡음 잊어 버리고 중학교 다닐때 추억에 사로 잡혀 봅니다. 함께 영산강 뚝을 걷노라니 내 닫힌 가슴을 활짝 열고 긴 숨을 쉬니 나의 진솔된 노래가 터져 나옵니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 그 소중한 것들을 …
살다보면 더러는 잊혀지며 살게 되는 것이 많고 무엇인가를 사랑하면서 살다보면 외로움보다는 삶의 기쁨과 행복을 느끼면 살게 되지 않을까요?
어쩌면 나 역시 생이 저물어 가는 것을 아는지 서쪽 능선에서 해가 저물어 가는 길목에서 나의 생을 접목 시켜 봅니다. 과연 나는 생을 잘 살았는지 행복하게 살았는지 서쪽에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자문을 해 봅니다
가을길을 걷노라니 초승달이 몇 점의 나무사이에 걸쳐 있음을 봅니다. 저 초승달도 며칠 후면 환한 얼굴로 채색되어 추석이라는 명목으로 가족의 끈에 함께 어울리도록 할 겁니다.
어쩌면 눈먼사랑도 익어가기보다는 채 영글지도 못한 사랑 때문에 가슴 아파하고 그리워하고 후회도 할때가 많을런지도 모릅니다. 어느시인이 이야기 했지요. 가을에는 눈 먼 사랑도 익어가는 계절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사랑은 정말로 익어가는 사랑인지 사뭇 궁금해 지는 계절입니다
가을은 어디론가 혼자 훌쩍 떠나고 싶은 외로운인가 봅니다. 아마도 삶의 무게 짓눌려 힘들고 지쳐서 어데론가 탈출구를 찾기 의함이 아닐까 해 봅니다.
어쩌면 산다는건 기다림이고 그리움이기도 하지만 외로움이기도 합니다. 그 모든 것을 승화시키며 사는 것도 우리 몫이 아닐까 해 봅니다.
산다는 것은 누구를 기다림이라고 하였던가요? 오늘도 영산강 강뚝에 앉아 그리운 사람이 부르면 언제든 찾아갈 준비를 해야 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PS: 어제 영산강을 중학교 동창과 영산강을 거닐면서 느낀 저의 고향 가을을 읊어 보았습니다. 내일 부터 뉴질랜드와 호주 여행 간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