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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독서토론회 발제
서명:단테 『신곡』
1. 들어가며
“역사는,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생(生)으로써 가톨릭 신앙을 빛낸 수많은 위인들을 일단(一團)에 모은다. 지식의 각 분야에 걸쳐 그 지배력으로써 빼어난 이들은 특히 문학과 예술을 영도한 그들의 탁월한 천재로써 불멸의 열매를 후세에 남겨놓았고, 이리하여 이것은 사회와 교회를 아울러 부유케 하였다. 특히 그 6백 주기가 목전에 다다른 단테 알리기에리는 지금 누구와도 견줄 수 없게 홀로 뛰어나 있다. 이 탁월성이 비록 옛날에 인정되기는 하였어도 오늘날과 같이 이처럼 세계적으로 공언된 때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그의 향국(響國)임을 영광으로 삼는 이탈리아가 그의 공적을 찬미하기에 소연 (騷然)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 문명 국가의 지식인들은 특별 위원회를 조직하고 이 6백년제(祭)를 외적(外的) 행사로 장식할 것을 결정하였으니, 이것은 인류의 이 초절적인 영광에 대하여 전세계의 경복(敬服)을 약속하게 될 것이다.”
1987년 을유문화사에서 출판된 단테의 『신곡』에는 교황 베네딕토 15세의 ‘회칙(回勑)’이 실려있다. 단테 사후 600년을 맞이하여 카톨릭 세계의 문학과 문예를 연구하는 교수와 학생들에게 당시의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1921년, 교황에 등극한 7년째에 단테를 기념하는 편지를 쓴다. 베네딕토 15세는 이듬해, 1922년에 서거하였다.
폰트 7 정도의 크기로 여덟 페이지를 빽빽하게 박혀있는 글자들을 보면 어지럼증이 느껴지지만, 현재 출판되는 『신곡』 텍스트에서는 읽어 볼 수 없는 글이라 눈여겨 읽어 볼만 하다. 삼위일체와 동정성모의 관한 내용부터 우주의 운행과 질서, 과학적 사실을 통섭하여 쓴 베네딕토 15세의 회칙은 가톨릭 내에서의 단테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백 편의 서사시로 구성된 『신곡』은 사후 7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종교를 넘어 고전으로 읽히고 있다. 단테의 독서력, 인품, 삶의 태도, 시대 상황이 총합 된 작품은 고대의 시인, 호메로스와 비견 된다. 천국의 팡파르처럼 근대의 찬란한 커튼을 여는 작품이라는 것은, 고결한 가톨릭 수장의 찬사를 빌리지 않아도 ‘누구나 쓸 수 있지만 단테만이 쓸 수 있는’ 서사시임을 알 수 있다.
여튼 헌사와 훈시가 깃들인 교황의 마지막 말씀을 읽어야만, 단테로 인하여 내려진 신의 축복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친애하는 신자(子)들이여! 여(余)는 마지막으로 그대들, 그대들은 다행히도 지도자인 교회 밑에서 문학과 문화에 전심할 수 있는 이에게 말하노라. 그대들은 이미 그러하였듯이 이 시인을 사랑하고 포옹하라.
의심할 여지 없이 그는 가톨릭 예지의 찬미자이며 통보자일 뿐만 아니라, 가장 웅변적이고 능변(能能)한 통보자들의 선구자이다. 단테에 대한 그대들 사랑이 강해질수록, 같은 모양으로 진리의 찬연함에 대한 그대들 감탄도 커질 것이며, 또한 거룩한 신앙에 봉사하기에도 그만큼 항구하게 될 것이다.
친애하는 신자들이여! 여(余)는 이제 천주께서 그대들에게 은총을 내리시기를 바라며, 또한 여의 특별한 애정으로써 사도적 (使徒的) 강복(降福)을 주노라.” -등극 7년 4월 30일, 성(聖)베드로 성전(聖)에 가까운 로마에서, 교황 베네딕투스 15세.
2. 단테
이탈리아 르네상스 초기의 시인 단테는 1265년 당시 유럽에서 가장 번영했던 도시국가인 피렌체의 몰락한 소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에서는 저명인사는 성이 아니라 이름으로 부르는 관습이 있는데, 이에 따라 단테는 이름이고 성은 알리기에리이다.
단테는 소년 시절을 피렌체에서 보냈는데, 거기에서 천사같이 아름다운 베아트리체와 만나게 되어 플라톤적 사랑을 느꼈으며 이런 체험은 그의 정신생활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뒤에 그녀가 요절하자 매우 상심하여 그 정열을 학문·문학 연구에 기울였다. 그녀가 천국에 살고 있음을 굳게 믿고 그녀와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할 만큼 자기를 높이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청년 시대에는 학문 외에 기마술·무술·무용 등 귀족의 자제에게 요구되는 교양을 닦았다. 처음 수도원 경영의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여 배웠고, 이어 피렌체의 석학 라티니에게 사사했으며, 뒤에 볼로냐 대학에서 수사학·신학·철학·천문학 등을 공부했다. 고전작가로서는 베르길리우스를 좋아했고, 동시대의 작가로서는 귀니첼리를 존경했다.
공적인 생활로는 당시 대귀족 중심의 황제파와 소귀족·상공업자 중심의 교황파의 대립이 격심한 가운데 1289년에 기병대의 일원으로서 교황파 정권 확립에 공헌하고, 그 후 시의 요직을 거쳐 행정 장관에도 선임되었으나, 당의 내분에 휘말려 1302년에 영구 추방의 처분을 받아 유랑생활을 전전하였다. 만년에 라벤나의 영주 노벨로에게 처자와 함께 몸을 위탁하였으며, 1321년 영주의 위촉으로 베네치아에 외교사절로 다녀오는 귀로에 병사하였다. 노벨로는 단테의 유해를 거두어 라벤나에서 장례를 치렀다. 그 후 피렌체는 단테의 유해를 그의 조국으로 돌려줄 것을 교섭하였으나, 단테를 아끼는 라벤나의 시민들이 이를 거절,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31편의 연애시를 포함한 『신생』, 유랑 중 철학과 윤리 문제를 논한 『향연』, 언어 문제를 논한 『속어론』, 교회로부터의 국가의 독립을 논한 『제정론』 등이 있으나, 단테가 남긴 최대의 걸작은 종교적 서사시 『신곡』이다.
이 작품의 구상은 이미 『신생』을 쓸 무렵부터 시작한 듯하며 유랑 중인 1304년에 집필을 시작하여 <지옥편>은 1304~08년에, <연옥편>은 1308~13년에 탈고했으나 잠시 중단하였다가 <천국편>을 생애의 최후의 7년 만에 완성하였다.
3. 작품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유럽을 지배했던 경제체제와 정치체제, 그리고 내세 중심적 신앙관을 내세우는 카톨릭은 인간의 삶에 거의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하고 극히 폐쇄적이지만 안정된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인가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13세기 후반과 14세기의 피렌체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밀어닥치는 곳이었다. 사람들의 이동이 일어나자 교류가 생겨나며 사람들이 모이고 부와 명예, 권력 등 세속적이고 개인적인 가치에 눈을 뜨면서 이전과는 다른 가치와 사고에 관심이 늘어났다.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고 추구하는 새로운 흐름 위에서 인간의 위치와 역할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수행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난다. 이런 흐름은 13세기 내내 철학과 신학, 경제와 정치, 문화와 예술, 일상의 삶에 걸쳐 고르게 나타났다. 이탈리아 피렌체는 그런 변화가 집중되던 곳이었다.
사람의 운명은 그가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시대의 물결에 따라 변화하고 응답하며 사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하여 그 사람은 자기 시대와 사회에 직면하고 견디면서 성장한다.
알리기에리 단테(Alighieri Dante)는 1265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알리기에리 가문은 토지에 기반을 두었던 전통적인 토호 귀족들과 달리 금융과 무역으로 부와 권력을 쌓아가기 시작했던 신흥 시민 계급에 가까웠다. 단테는 어려서부터 수사학과 철학, 신학에 관련된 기초 지식과 함께 실천적 지식인의 역할을 배우는 등, 당시에는 꽤나 진보적인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세상과 인간에게 마음이 열려 있었던 청년 단테는 구원의 원리를 다시 생각하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청년들과 더불어 이른바 청신체파(淸新體派)를 결성하여 문학과 언어의 새로운 흐름을 이끈다.
청신체파란 언어와 내용에서 맑음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시인들의 집단을 뜻한다. 청신체파 시인들은 당시까지 중앙의 언어였던 라틴어 대신에 지역의 언어인 이탈리아 속어를 문학의 언어로 선택했다. 맑음과 새로움은 또한 사랑을 들이고 품어 키우는 온화하고 관대한 내면을 가리킨다. 청신체파 시인들에게 사랑이란 인간을 하느님에게 연결하는 통로였고, 여자는 그런 사랑의 영매로서 천사와 같은 존재였다. 청신체파 시인들은 여자에게서 사랑을 구하여 온화하게 가꿔진 내면에 들이고 그 사랑이 불러주는 그대로 받아 적는 것을 시작법으로 삼았다. 그들에게 사랑은 인간의 구원이자 자기 성찰이고 또한 세상과의 소통이었다.
단테의 여자, 베아트리체는 피렌체 시내에서 이웃하여 살았던 포르티나리 가문 태생으로, 단테와 어릴 적부터 자주 만났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단테는 그녀를 생전에 아홉 살과 열여덟 살 때, 딱 두 번 만났다고 묘사한다. 베아트리체라는 여성의 존재와 그녀와의 만남에 신비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처음 만남에서 싹튼 사랑이 두 번째 만남에서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행동으로 자라난다. 단테의 인사에 대해 베아트리체는 세 번째 만남으로 응답한다. 둘의 세 번째 만남은 연옥의 꼭대기, 지상천국에서 이루어진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천국에 올라있던 베아트리체는 지옥부터 시작해 연옥까지 올라온 단테를 지상천국에서 맞아들여 천국으로 이끈다. 이로써 단테의 인사는 구원의 완성으로 화답 받는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삶 전체에 걸쳐있다. 세상과 인간에게 마음을 열어 탐사하고 묘사하는 단테를 이끈 것은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순탄치 않았다. 무엇보다 베아트리체의 죽음으로 단테의 마음은 길을 잃었다. ‘우리 인생길의 한가운데 올바른 길을 잃고 난 어두운 숲속에 서 있었네’ 서편에 해당하는 지옥편 1곡의 1연은 의미가 깊다. 뿌리가 드러난 컴컴한 나무숲에서 뒤를 돌아보는 단테의 표정이 그려져 있는 귀스타브 도레의 삽화는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사건을 접할 때마다 떠올리곤 한다.
상심한 단테는 한동안 애도의 마음으로 그녀를 생각하며 글을 썼다. 이렇게 해서 나온 책이『새로운 삶』(1294)이다. 이 책은 단테가 스스로 지은 시를 산문으로 해설하는 독특한 형식으로 되어있다. 『새로운 삶』으로 베아트리체를 향한 문학청년의 사랑을 매듭지은 단테는 고전 철학 연구에 더 매진하며 세상과 인간의 탐사를 더욱 심화하고 발전시키는 한편, 피렌체의 현실 정치 일선으로 나서서 스스로 구상한 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극도로 복잡하게 전개되던 정쟁의 와중에 피렌체에서 추방령을 선고받고, 망명자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단테는『새로운 삶』을 제외한 모든 글을 망명 기간에 썼다.
단테의 망명은 정치 활동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나 좌절보다는 또 다른 희망의 꽃을 피웠다. 단테는 자신과 사회에 대한 성찰을 수행하는 지식인 작가이자 길을 걷는 자였다. 작가이자 방랑자인 단테가 글쓰기를 통한 새로운 실천을 펼치는 것은 참으로 고단한 일이었다. ‘단테(Dante)’라는 이름에는 ‘지속하다’, ‘견디다’의 뜻이 있고, ‘알리기에리(Alighieri)’라는 성에는 ‘날개’, ‘날아오르다’라는 뜻이 있다. 풀이를 하면 단테는 ‘계속해서 견디며 날아오르는 자’의 운명을 처음부터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해서 견딘다는 것과 날아오른다는 것은 죄로부터 벗어나 구원에 이른다는 게 아닐까.
단테의 『신곡』은 지옥과 연옥을 거쳐 천국으로 향한다. 어두운 숲에서 올려다본 언덕 위의 빛을 향해 곧바로 가는 직행이 아니라 지옥과 연옥으로 우회한다. 인간은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떠올릴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유일한 존재다. 빛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림자를 돌아보아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빛의 존재냐, 그림자의 존재냐 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과 의지, 그리고 실천에 달려있다. 신의 섭리도 간섭하지 못하는, 원래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창조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 본성을 어기든, 충실하든 지옥에 떨어진다. 결국 신의 섭리를 따르면서 삶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단테(Dante)’하며, ‘알리기에리(Alighieri)’해야, 천국에 이르는 것이다.
『신곡』은 단테의 ‘자전적 알레고리’라 불릴 만큼 그 자신의 삶과 경험, 생각을 비유적으로 담고 표현한 문학 텍스트다. 눈으로 읽는 문자 중심의 텍스트는 개인의 내면을 강화하는 반면, 입과 귀로 소통하는 소리 중심의 텍스트는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체 의식을 키운다.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고자 했던 단테의 『신곡』은 소리를 내어 부르는 노래이다. 당시 인구의 대부분이었던 문맹자들과 그들이 속한 일반 대중에게 『신곡』이 널리 퍼져나가기를 원했을 것이다. 작품이 ‘노래’의 형식으로 띠고 있다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깃들어있다. 구원, 정의, 사랑, 인간, 공동체, 의지, 행복과 같이, 어느 시대나 사회에서도 논의해야 하고 실천해야 할 보편적인 개념들에 관련된 깊이 있는 논의가 『신곡』에 펼쳐져 있다. 또한, 그러한 덕목들을 구체적인 시대와 사회에서 실행하기 위해 우선 인지해야 할 죄와 악에 대한 광범위하고 섬세한 이해와 공감이 스며들어있다. 작품을 읽으면서, 또는 부르면서 어떤 감동을 느낀다면, 그것은 단테의 소통하려는 노력이 어느 시대와 사회의 맥락에도 부응하여 그에 맞는 화두를 제공하기 때문이 아닐까. 고전으로서 『신곡』은 타자에 대한 감수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텍스트다. 시대와 사회가 달라도, 그 달라진 맥락들에 부응하여 끝없이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 것이 고전의 정의라고 할 때, 『신곡』은 그 정의에 가장 잘 화답하는 대표적인 텍스트다.
어두운 숲에서 올바른 길을 잃고서 헤매던 단테는 존경하는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앞세워 내세 여행에 나선다. 이교도 베르길리우스는 원래 지옥의 림보에 갇혀있었으나,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은 단테를 내려다보던 천국의 베아트리체가 몸소 림보까지 내려와 베르길리우스에게 단테를 도와 어둠으로부터 구출해달라고 요청한다. 사실상 베아트리체를 그렇게 천국에서 벗어나 지옥까지 내려가게 만든 사람은 성모 마리아이다. 성모 마리아가 천사 루치아를 불러 베아트리체에게 단테의 현황을 알려주며 그러한 구원의 기획을 지시한 것이다. 다소 복잡한 이러한 정황이 단테가 내세 여행을 나서게 된 배경에 깔려있다. 말하자면 단테의 내세 여행은 천국에서 기획된 한 편의 드라마였다.
이성과 철학의 상징으로서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사랑, 대식, 분노, 자살, 고리대금, 탐욕, 주술, 위조, 분열, 배신과 같은 완강하고 거친 죄들로 가득 찬 지옥과 연옥으로 이끌며 함께 그 힘들고 어려운 여행을 완수한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단테는 계속해서 성숙해져 간다. 죄를 관찰하고 슬퍼하며 이겨내고 마침내 씻어내는 과정은 곧 한 개인의 내적 발전의 과정이기도 했다. 죄에 직면하는 그 과정에서 단테는 죄란 경계하고 넘어서야 할 것이면서 또한 슬퍼하고 위로해야 할 대상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성숙해져 연옥의 꼭대기까지 올라 단테는 베아트리체와 재회하고, 이때부터 길잡이는 베르길리우스에서 베아트리체로 바뀐다. 이성과 철학 대신 이제는 신성과 신학이 단테를 이끌어 천국으로 안내하게 된다. 그리고 천국의 하늘들을 차례로 오르면서 정의, 고결, 의지, 섭리, 희망, 행복에 관련된 영원한 가르침을 체득하며 구원의 길을 완성해 나간다.
천국의 꼭대기에 이른 단테는 궁극의 구원에 머무는 대신, 이 땅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동안 경험했던 내세를 글로 써서 사람들에게 전달하리라 결심한다. 단테는 앞으로 쓰일 『신곡』을 가리켜 ‘하늘과 땅이 서로 손을 맞잡은 시’라고 정의한다. 하늘에서 내려주는 일방적인 바이블이 아니라 땅에서도 능동적으로 손을 내미는 상호 관계가 『신곡』의 근간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단테가 생각한 ‘문학을 통한 인간의 실천’이었다.
단테 이후에 인간은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문명의 눈부신 성취를 이루어냈다. 지금은 고도로 발전한 과학기술의 토대 위에서 자본주의의 압도적인 승리처럼 보이는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다. 단테가 생각했던 하늘과 땅이 서로 손을 맞잡는 구도에서 현재는 땅이 하늘을 추월할 기세다. 인간은 어느 시대보다 오만해졌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짧은 시기 동안 이루어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그들로 인한 성취를 무화시킬 만큼 제도와 질서라는 명목으로 완강하고 집요하게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 근대문명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또 다른 형식의 문명을 생각하고 출발시켜야 하는 급박한 처지에 놓여있다.
베아트리체와 베르길리우스가 단테를 어두운 숲에서 구출했듯, 단테는 궁지에 몰려 한계에 다다른 인간을 근대문명으로부터 구출하여 저 언덕 위의 빛으로 인도한다. 우리는 점점 망각하고 있던 ‘도덕과 윤리’의 가능성과 의미를 다시 되살려야 한다. 단테는 늘 혼자였지만, 그 홀로됨으로 내면에 침잠하여 자신을 성찰하며 순례했다. 그는 세상의 나그네였으나 내세를 여행하는 순례자였다. 어둡고 캄캄한 인생길에서 뒤를 돌아보았던 단테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리 들어서는 너희는 희망을 버릴지어다” 지옥문 앞에서 몸을 떨었던 단테를 위로하며 여정을 북돋우던 베르길리우스는 생전 단테의 정신적 동반자였다. 동시대가 아닌 천 년 전의 인물을 동반자로 선택했던 단테는 시대와 상관없이 어떤 타자와도 관계를 이어갔다.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은 그가 외로웠을 순간에 손을 내밀어 준 타자들이었을 것이다.
4. 나가며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 중에는 똑같은 제목을 가진 텍스트가 네 권 있는데 단테의 『신곡』이다. 1987년 을유문화사판, 2007년, 민음사판, 2007년판 열린책들판, 그리고 이번에 나온 북길드판 ‘단테 『신곡』 함께 읽기’이다. 그 중 1987년에 출판된 을유문화사판을 얼마 전에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며 발견했다. 누렇게 때 묻은 표지를 물티슈로 닦아내고 담배필터처럼 변한 책장들이 나를 닮아서 잠시 눈이 쨍했다. 텍스트의 소중함을 모르고 함부로 써놓았던 글자들이 지옥에는 가기 싫었던 절박함이 느껴져 피식피식 웃게 된다. 페이지 속에 그려진 도레의 삽화들이 그때는 왜 그렇게 실제처럼 느껴졌는지, 누구보다 공포를 싫어하지만, 누구보다 전설의 고향을 좋아하는 아이처럼 삽화를 보고 또 보다가 끝까지 읽어냈던 결실이 있는 책이다.
예전에는 세상이 지옥 같다는 말을 실감하며 살았다. 소년 때는 먹고 사는 일이 지옥 같아서 일부러 철없게 굴려고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았다. 그 덕에 인생의 여러 고비를 겪기는 했어도 스무 살에 읽은 『신곡』의 영향 때문인지 지금은 ‘연옥의 시간’이라며 스스로 위로하고 달래며 탈이 있어도 탈이 없다고 변명하는 사회인처럼, 탈춤을 추는 춤꾼처럼 꾸역꾸역 살아온 것 같다. 혼자만 사는 것처럼 살다가 시류에 휩쓸려 굴러떨어지고, 시류를 타다가 시류에 휩쓸려 굴러떨어지다 보니 아직도 어떤 방법이 지옥행을 막는지는 알 수 없다.
요즘은 자꾸 뒤를 돌아본다. 나는 혼자여서 좋지만, 혹시 누군가가 혼자였을까 봐, 혼자일까 봐 내가 못 해 준 옛날의 그 처지들이 그들을 지옥에 방치해 둔 것이 아닐까 하고 돌아보게 된다. 연옥과 천국은 아니더라도 지금은 그들의 지옥문을 같이 두드려나 볼 텐데 말이다.
『신곡』에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일곱 개의 죄,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색욕, 탐욕, 나태 등으로 묘사된다. 단테의 표현대로라면 나는 지옥행 급행열차를 탄 게 아닐까. 인간의 본성 중에 도덕 윤리로도 어쩔 수 없는 욕망들이 여전히 나를 들끓게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옥 같은 생활고를 겪기도 하였지만, 또 앞으로도 충분히 지을 수 있는 죄라서 아직 ‘저 언덕 위의 빛’은 요원하다. 앞으로 한 두 번은 단테의 『신곡』을 읽겠지만 여전히 나는 지옥의 입구를 서성이게 될 것이다.
단테의 ‘인생의 한 가운데’는 2분의 1이었다면, 5분의 3 정도 살은 나는 지옥을 좀 잘 견디지 않았을까. 어쩌면 ‘연옥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는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