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들어오면서 마을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호정리에 자리한 쌍샘자연교회 이야기다. 기자가 쌍샘자연교회를 방문한 날은 공교롭게도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절기인 상강霜降 날이었다. 청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교회까지는 대략 자동차로 30여분. 마침 청주 시내에 볼일이 있다며 백영기 목사님이 마중을 나와 주셨다. 청주에서도 소문난 달동네에 있었던 쌍샘교회가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이름도 쌍샘자연교회로 바꾸었다. 사회선교에 뜻을 두었다가 지역이 개발되면서 교회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곳을 찾다가 이곳으로 들어온 것이 2002년. 올해 10월로 만 12년을 넘어섰다. 1전傳, 1소素, 1감感 예배당 전면에는 T자형 십자가 글씨 좌우로 창살 무늬를 한 긴 액자가 있다. 한쪽에는 교회력이, 한쪽에는 1전傳, 1소素, 1감感이 씌어져 있다. 성탄절과 부활절 정도만 기억하는 일반 평신도들도 교회력에 따라 신앙을 점검하게 하는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일전, 일소, 일감은 한 명을 전도하고 한 번 더 소박하고 한 번 더 감동을 주자는 것입니다.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 기도하며 애써보고, 모든 일에 한 번 더 절제하며 검소하게 사는 소박한 삶을 실천해 보자는 것이죠. 그것이 생명과 자연, 생태의 삶에 일조하는 것이 아닐까요. 문화란 결국 사람의 세상에서 사람들이 이루어가는 공동체이고 관계로서 이루어지고 나타나는 삶의 흔적이라 생각합니다.” 성도들과의 삶에서 믿음을 얻고 신뢰를 쌓고 서로 격려하고 지지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좀 더 소박하고 가난하게 그리고 감동과 마음을 나누는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인 셈이다. 낭성면은 약간 고원지대라 인근의 평지보다 기온이 4도 가량 낮다. 얼마 전부터는 고랭지 배추를 재배하는 이웃 농가들을 위해 절임배추를 주문받아 판매하기도 한다. 마을에 처음 교회가 들어오려 할 때 마을사람들은 의구심을 가졌다고 한다. 다들 떠나는 농촌에 왜 들어오려는 것인지, 혹시 사이비 집단은 아닌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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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방 카페의 이모저모 |
“청주 시내에 있던 교회고 이런 뜻을 갖고 들어오려 한다고 설득했지만 이해를 하지 못했어요. 모두 도시로 떠나는 마당에 여기로 들어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거였죠. 각서를 썼습니다. 교회는 마을 주민이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고 주민들이 싫어하면 여기를 떠나겠다고.” 임기응변으로 모면하려는 마음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복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곳에 들어오면 이분들에게 힘이 되고 이웃이 되고 디딤돌이 되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원래 50여 가구가 살던 마을이었지만 교회가 들어올 당시 11가구가 살고 있었다. 거의 노인들이고 빈 집이 늘어가고 있을 때 교회가 들어오자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고 마을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교회를 따라 성도들 가정이 이사해오면서 마을은 살아나고 있다. 2007년에는 이 지역이 산촌생태마을로 지정되면서 도로도 확장 정비되었다. 교회는 그동안의 사역을 인정받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생명윤리위원회와 기독교환경운동연대가 선정하는 ‘2009 녹색교회’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영성, 자연, 문화를 일군다 쌍샘자연교회는 영성, 자연, 문화의 삶을 일구는 교회를 지향한다. 예배당에 전면에 유형의 십자가가 없다. 대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열일곱 글자가 T자형 십자가 형상으로 그려져 있다. 예배 형식도 일 년에 한 번씩 변화를 준다. 전교인들이 참여자로 예배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11월 말이면 한 해를 결산하는 공동의회를 열어 다음해를 준비하는데 그 자리에서 예배의 형식과 다음해에 활동할 위원회도 자원한다. 영성, 자연, 문화를 지향하는 교회의 목표에 따라 교회에는 세 개의 위원회가 있다. 신앙선교영성위원회, 생명자연생태위원회, 문화사회공동체위원회가 그것이다. 등록 교인이라면 누구나 한 개의 위원회에는 자발적이고 의무적으로 가입하고 있다.
“성도들이 기쁜 마음으로 교회에 오고 교회 봉사도 자원해서 했으면 싶었어요. 교회에 부담을 안고 오는 성도들이 많잖아요. 교회 봉사도 지나치면 상처를 받게 되고 교회를 멀리하게 되거든요.” 교회에서 말하지 않아도 성도들은 스스로 부담을 갖기 마련이다. 하지만 공동체의 목표를 이루어가기 위해 참여는 필수. 그래서 의무이되 활동할 위원회는 스스로 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 위원회에서 계속 활동해도 되고 해가 바뀌면 다른 위원회로 가서 활동해도 된다. 신앙선교영성위원회는 교회가 다른 일을 아무리 많이 하고 잘 해도 신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신앙과 영성을 탄탄히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중요한 축을 감당하고 있다. 평신도들도 위원으로 참여해 예배 예전이나 영성 훈련, 신앙사경회를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생명자연생태위원회에서는 지역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자연학교를 개설해 아이들이 자연의 모든 것들을 배우게 하는가 하면 로컬 푸드 운동을 실천해가기 위해 ‘착한살림’ 매장도 운영하고 있다. 문화사회공동체위원회에서는 교회가 지역사회 속에 있는 공동체라는 것을 인식해 노아공방, 카페 ‘사랑방’, 갤러리 ‘마을’ 등 문화 시설을 갖추어 문화가 있는 지역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지역의 아이들이 생명과 꿈을 노래하는 아동센터 ‘민들레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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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 뒤편 |
기자가 방문한 날에도 사랑방 카페를 찾아 청주 시내에서 왔다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미 와 봤던 이가 친구들을 데리고 또 찾아왔다는 것. ‘사랑방’은 무인 카페로 운영되고 있을 뿐 아니라 지역에서 피어난 각종 야생화 꽃차도 맛볼 수 있다. 다양한 서적을 구비해 작은도서관 역할도 겸한다. 지인들과, 때로는 홀로 이곳을 찾아 넓은 창 너머로 보이는 자연을 앞뜰 삼아 망중한을 즐기는 이들에게 카페는 이름처럼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교회가 매월 한 번씩 열고 있는 인문학 강좌도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카페 이층은 갤러리로 마을 사람들이 세상과 사람을 만나는 또 하나의 창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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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공방 |
모두의 교회 1992년 청주시 모충동 쌍샘에서 사회선교에 뜻을 두고 설립한 쌍샘교회. 98년 무렵, 도시영세민을 위한 주택 건설로 지역이 개발되면서 교회는 본래의 취지가 무색해지게 되었다. 사역의 방향을 새롭게 정할 필요가 있었다. 교인들과 상의 끝에 시골로 들어가자는 결론을 내리고 인근 농촌 지역을 샅샅이 찾아 다녔다. 교회 재정이라고는 보증금 2100만 원이 전부였다. 그 돈만큼 땅을 사자, 천막을 치고 광야교회를 해보자, 겨울에는 교인들 집이나 공간을 빌려 예배드리자는 마음이었다. 땅을 사고 교회를 고민하고 있을 때 ‘교회가 네 교회냐’라는 울림이 있었다. 하나님의 교회인데 우리 교인들만의 힘으로 지을 생각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기획서를 작성했다. 교회가 어떤 길을 걸어왔으며 앞으로 어떤 사역을 할 계획인지 구체적으로 밝혔다. 100만 원을 한 구좌로 한 구좌만 도와 달라고 했다. 선배 목사, 형편이 나은 이웃교회, 뜻을 같이하는 지인들이 한 구좌씩 참여해 어렵지 않게 100구좌를 만들 수 있었다. 교인들도 가구당 한 구좌씩만 감당하기로 했다. 어떤 교회는 1년 혹은 2년에 한 구좌로 책정해 참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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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마을 |
‘이 교회는 주님의 교회, 우리 모두의 교회’라는 마음으로 교회를 지었다. 카페 사랑방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분이 100만 원을 헌금해 주어 그것으로 황토 흙과 기초공사할 시멘트를 사서 건축을 시작했다. ‘노아공방’도, ‘착한살림’도 그렇게 지어졌다. 돈 많은 교인은 없지만 재주가 다양하다. 그렇게 하나씩 건물도 사람도 늘어 이제 교인수가 100명을 넘어섰다. “교회가 건강하려면 공동체성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동체는 교회의 모든 지체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어울려야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고 봐요. 규모가 너무 커도 어렵겠죠.” 목회를 시작할 때부터 교인 수나 교회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교회가 필요로 하는 지역에 들어가 그곳에서 평생 함께 하겠다는 마음만 가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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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 전경 |
살맛나는 마을로 교회 옆에는 한창 건축 중인 건물이 두 동 있다. 생태자연도서관과 게스트하우스다. 황토 벽돌을 찍어 내벽을 쌓고 친환경 단열재로 짓고 있는데 진척이 더디다. 올 가을 완공을 목표로 했지만 기금이 마련되는 만큼씩 짓기 때문이다. 생태자연도서관은 교회의 비전과 정체성을 확고히 다지는 데도 중요하지만 마을의 구심점이 되고 지역을 살리는 디딤돌이 될 것이기에 더디지만 차분하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도서관과 함께 게스트하우스가 완공되면 가족 단위로 와서 쉼을 얻고 자연 생태에 관한 의식도 기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재미있고 살맛나는 마을로 회복되길 꿈꿉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을 안에서 에너지, 문화, 교육 등 웬만한 것은 해결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가야 한다고 봐요.” 마을을 살리는, 사람을 회복시키는, 스스로 행복한 마을. 교회가 있어 시골 마을이 살아나고 한국 교회가 회복되는 꿈. 그 꿈이 청주 쌍샘자연교회에서부터 영글어가고 있다. 교회가 자리하고 있는 ‘도토실’은 골짜기 사이에 있는 땅으로 큰물이 날 때 사람이 피할 수 있도록 돋아진 땅을 일컫는 순 우리말이라고 한다. 늘 스스로를 돌아보고 비워낼 것, 벗어낼 것들은 없는지, 지금의 수준에서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없는지 살핀다는 백영기 목사의 말에서 서리 맞은 가을 국화처럼 빛이 바랜 한국 교회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교회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백영기 목사는…
고향은 충주, 61년생으로 4형제 중 셋째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가 갖은 고생을 하다가 성경구락부 야학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스물셋에 청주에서 성서신학원을 다니며 신학을 공부했다. 전도사로 제천에서 교회를 개척 건축한 경험을 갖고 있다. 신학(예장 통합)을 제대로 공부한 후 사회선교에 뜻을 두고 목회를 시작했다. 필요한 공부는 계속 해야겠지만 스펙을 쌓기 위한 공부는 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교회에서 중요한 건 공동체이다. 건물이 아니라 삶이고 정신이고 가치요 생명이다. 늘 정성을 다해야 하지만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잊어서는 안 된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지만 정말 소중하고 필요한 것을 놓치지 않는 공동체. 백 목사가 추구하는 현재이고 미래다. 한국 교회가 지향해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