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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빼어난 여류 시인 설도(薛濤)
설도는 당나라 때 사천에 관리로 와 있던 설운의 딸이다. 아버지가 청렴하여 집안이 가난하였는데,
아버지가 죽자 생활이 너무 곤궁하여 기생이 되었다. 설도는 외모가 아름답고 영리하였으며 어릴 적
부터 시를 잘 지어 소문이 자자하였다. 그리하여 당시의 유명한 시인인 원진, 백거이, 장적, 두목, 유
우석 등과 교유하였다.
말년에는 성도의 백화담에 음시루(吟詩樓)라는 작은 누각을 지어 거기서 시를 짓고 살았다. 그녀는
목부용 껍질과 꽃즙을 사용하여 붉은 물을 내어, 이를 종이에 올려 붉은색 종이를 만들고 여기에 시
를 써서 명사들에게 선물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설도전(薛濤箋)이다. 그의 시 500여 수가 지금 전
하는데, 그 중 세인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춘망사(春望詞 봄을 맞아 부른 노래) 네 수를 소개한
다. 이 시의 셋째 수를 김소월의 스승인 김억이 번역한 것이, 우리가 잘 아는 동심초 노래의 가사다.
그리고 중국 성도에는 설도를 기념하기 위한 유적지가 잘 꾸며져 있다. 그녀가 설도전을 만들 때 사
용했던 우물인 설도정(薛濤井)과 묘, 거닐었던 대나무 숲, 교유했던 시인들과의 모습을 그린 그림 등
이 진열되어 있다.
꽃 피어도 그와 함께 즐길 수 없고 花開不同賞(화개부동상)
꽃이 져도 그 슬픔 나눌 이 없네 花落不同悲(화락부동비)
그리울 땐 언제냐고 누가 물으면 欲問相思處(욕문상사처)
꽃이 피고 꽃이 지는 바로 그때요 花開花落時(화개화락시)
풀을 뽑아 동심결을 맺어 놓고서 攬草結同心(람초결동심)
내 마음 알아줄 그대께 주려 하나 將以遺知音(장이유지음)
길이 끊겨 봄 시름만 깊어만 가니 春愁正路絶(춘수정로절)
이걸 알고 저 새도 슬피 우나 봐 春鳥復哀吟(춘조부애음)
바람결에 꽃도 저리 이우려는데 風化日將老(풍화월장로)
아름다운 그 약속은 어디로 갔나 佳期有渺渺(가기유묘묘)
한 마음으로 그 사람과 맺지 못하고 不結同心人(불결동심인)
부질없이 풀만 뜯어 맺어 보누나 空結同心草(공결동심초)
가지 가득 피는 꽃을 어쩌면 좋아 那堪花滿枝(나감화만지)
보고 싶은 님 생각만 깊게 하네요 翻作兩相思(번작양상사)
아서라, 옥비녀 거울 앞에 버리노니 玉簪垂朝鏡(옥잠수조경)
봄바람은 이 사연 아는지 모르는지 春風知不知(춘풍지부지)
❋ 동심인, 동심초 등은 동심결(同心結)이란 말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말이다.
동심결이란 끈의 두 고를 맞죄어서 풀리지 않도록 단단히 매는 매듭으로 납폐나 염습에 쓰이는데,
맺은 인연을 풀거나 끊지 말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 여기서의 동심초는 풀이름이 아니다. 마치 클로버 꽃으로 만든 시계가 진짜 시계가 아닌 것과 같
다. 실제의 실로 맺은 동심결이 아니라 한 마음으로 맺지 못하는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면서, 두 개의
풀 이삭을 뜯어 동심결처럼 맺어 보는 것을 가리킨다. 모두가 잘 아는 노래지만 학창 시절을 돌아보
며 김성태가 작곡하고 김억이 번사한 동심초를 옮겨 적는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묘비에는 ‘唐女校書薛洪度 墓’라고 씌어 있다. 교서는 그가 받은 관직이고 홍도는 그의 자다. 교서는
그녀의 뛰어난 시재를 아껴 후세에 추서한 것이다. 기생을 높여 부를 때 교서란 말을 쓰는 것은 여
기서 유래한다.
차시 감상|보탑시(寶塔詩)의 시인 원진
언어로 탑을 쌓는 시인
박정도(한국교원대학교 교수)
원진(779~831)은 당나라 때의 시인으로 자는 미지(微之),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 사람이다. 정
원(貞元) 9년(791)에 명경과를 급제하여 벼슬을 감찰어사까지 지냈으나 환관들의 모함으로 좌천되
었다가 무창(武昌) 군절도사로 있다 급서했다. 평소 그는 백거이와 격의 없이 지냈으며 시로 서로 화
답하며 우정을 쌓아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관계를 부러워하여 ‘원백의 사귐(元白之交)’이라고 칭할
정도였으며 그가 남긴 문집으로는 『원씨장경집(元氏長慶集)』이 있다.원진은 젊은 시절 차(茶)를
좋아하여 즐겨 마셨다. 우리가 원진을 생각할 때 제일 먼저 기억나는 것은 이른바 ‘보탑시(寶塔
詩)’이다. 이 보탑시의 원래 제목은 첫 자부터 일곱 자로 창작된 ‘일자지칠자시차(一字至七字詩
茶)’이다. 보탑시는 이름 그대로 글자로 탑을 쌓아 가는 시인데 위에서부터 점점 글자 수를 늘려 피
라밋 형태로 써 내려갔다. 이 보탑시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차
잎새와 향
시인과 승 곁에
옥절구와 비단 포장
탕관 속에 이는 작은 거품
밤엔 달 아침엔 안개 속의 음차
쌓인 피로 풀어주며 취한 뒤엔 선약
시의 윗 구에는 차와 차를 좋아하는 차인(茶人)들에 대해, 그 중간 구절에는 차를 끓이는 정경을, 마
지막 부분은 차를 마시는 때와 차의 약리적 효능에 대해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茶
香葉嫩牙
慕詩客愛僧家
雕白玉羅織紅紗
煎黃色碗轉曲坐花
夜後邀陪明月晨前命對朝霞
洗盡古今人不倦將至醉後豈堪
시(詩)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함축하여 운율적으로 표현한 문학작품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시조
와 중국의 근체시를 제외하고는 정해진 틀 없이 자유롭게 써 왔다. 발표된 작품이 만약 독자의 마음
을 사로잡게 된다면 그 시인의 시는 성공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시인이 밤을 지새며 시상에 알
맞은 적절한 시어를 고민하여 찾아내 독자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시는 이러한 독자의 마음을
감동케 하는 내면적 기능 외에 문자로 그린 그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초현실적인 시인
이상의 작품들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시에 쓰인 한자(漢字)는 그 의미가 매우 함축적이
기 때문에 독자들은 한시 속에 담긴 의미에 더 관심이 있었고 구조 위주의 시각적인 보탑시 같은 새
로운 형식에는 관심이 적었다. 결국 이와 같은 형식의 시는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더 발전하지
못하였다.원진의 이 시는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피라밋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 각 행에 운
자를 사용하여 운을 고르고 작자가 말하고자 하는 내면의 세계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특히 첫
행을 차(茶)자 한 글자와 마지막 구 14자를 한 행으로 삼은 시의 구조는 기호학적 요소마저 풍기는
새로운 시도이다. 시의 윗 구에는 차와 차를 좋아하는 차인(茶人)들에 대해, 그 중간 구절에는 차를
끓이는 정경을, 마지막 부분은 차를 마시는 때와 차의 약리적 효능에 대해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차가 가지고 있는 실용성과 심오함이 이 오십 다섯 자로 압축하여 나타났다. 그러므로 이 보
탑시는 불교적 영향과 차의 모든 내용을 담아낸 차의 종합시이다.요즘 우리나라에서도 하루에 수십
권의 시집이 출판되고 수많은 시들이 발표되고 있으나 그중 오랜 수명을 지닐 시들이 과연 몇 편이
나 될까. 수백 수천 편의 잡문보다 한 편의 불후의 명작이 필요한 시점에서 볼 때 원진은 이 보탑시
한 편으로 그 이름을 중국 문학사와 차문화사에 영원히 기록되게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원진을 백
거이나 소동파에 뒤지지 않는 위대한 차 시인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