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동백섬, 지심도
동백꽃길에서 사랑을 읽다
사람들은 사랑을 알려고 섬에 온다
마음의 속삭임에 귀 기울여
처음이며 마지막이 무엇인지
배워야 하리라고
처음과 마지막이 동그라미가 되어
하나가 되는 동안이
우리가 사는 동안이 되도록
이루어야 하리라고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건 섬이니까
마음이 섬이 되리라고
그대와 나의 동그라미를 만들어야 하리라고
윤후명 시인의 시 <지심도, 사랑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의 전문이다.
문학작품 속에 그려진 특정 지명이나 장소는 우리에게 특히 큰 호기심과 가보고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그로 인해 유명해지기도 한다. 아일랜드의 평범하고 조그만 호수 섬 이니스프리가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인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의 시 ‘The Lake Isle Of Innisfree’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섬이 된 건 그 한 예다. 섬여행을 좋아하는 필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섬시인인 이생진 시인의 시집 <하늘에 있는 섬>을 읽고 그 섬을 가보고싶어 안달했던 적이 있다. 목포에서 배로 무려 5시간이나 가야 만나는 섬 ‘만재도’. 바로 그곳이 이생진 시인이 단행본 시집으로 낼 만큼 좋아했던 섬이었고, 필자도 한참 늦은 2013년에야 그 섬을 다녀온 적이 있다.
지심도 역시 그렇다. 한국문단의 대표적 시인 중 한 분이며 소설가이기도 한 윤후명 시인이 오래전 <지심도 사랑을 품다>라는 시소설집을 펴냈었다. 윤후명 시인은 그의 작품집에서 “ 나는 지심도를 ‘발견’한 이래 내 사랑은 그곳에서 이루어져야만 완성될 수 있다는 믿음을 키웠다. 그러나 사랑이란 쉽게 찾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섬으로 갈 날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 섬에서만이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은 절대적이었다”라고 썼다. 윤 시인이 사랑을 이루기 위해 꼭 가봐야 한다는 지심도는 도대체 어떤 섬일까?
지난 3월초. 필자는 그동안 별렀던 지심도 여행을 마치 밀린 숙제하듯 다녀왔다. 지심도는 거제도 앞바다에 있는 조그만 섬이다. 면적은 약 11만평 정도. 거제 장승포항에서 배로 약 15-20분이면 만날 수 있다. 천혜의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한 지심도는 우리나라 섬 중 동백나무가 가장 많은 섬으로 유명하다. ‘동백섬(Camellia Island)’이란 이름으로 불리워지기도 한다. 지심도 동백꽃은 12월초부터 피기 시작하여 봄 기운이 무르익는 4월 하순까지 피고 진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섬의 생긴 모양이 ‘마음 心’ 자를 닮았다 하여 지심도(只心島)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서울 출발 기준으로 보면 거제도 및 지심도는 꽤 먼 섬이다. 거제 장승포항까지는 자동차로 5-6시간 걸린다. 통영을 거쳐 신거제대교를 건너거나 부산 쪽에서 2010년 12월에 건설된 거가대교를 건너면 거제도에 이른다. 거제도는 우리나라 섬 중 제주도 다음으로 가장 큰 섬인데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섬 아닌 섬이다. 지심도는 거제도 동쪽 바다에 위치하고 있으며, 장승포항에서 여객선이 왕래한다. 첫배는 8시 30분이며 이후 2시간 간격으로 오후 4시 30분까지 하루 5회 운항된다(여름 성수기 및 주말, 공휴일에는 증편 운항). 장승포항 지심도터미널에 도착하면 섬 안내도, 도선운항시간과 함께 지심도 오디오가이드 어플 안내판도 보인다. 지심도 주요관광포인트에 대해 문자 및 오디오로 자세하게 안내를 해주므로 스마트폰에 어플을 깔면 매우 유용하다.
드디어 배승선시간이다. 96명 정원의 중형유람선 3척이 교대로 오고간다. 선착장을 빠져나가면 곧 지심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바다 위에 가로로 길게 누워있는 섬. 섬 최고점은 97m로 구릉 정도의 완만한 경사이다.
바다경관을 즐길 사이도 없이 곧 지심도 선착장에 도착한다. 지심도 선착장에는 휴게소 건물과 함께 큰 바위 위에 앉아있는 인어공주상이 보인다. 지심도에는 호랑이와 인어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어 인어공주상을 새겨놓았다고 한다. 인어공주상 뒤쪽으로 섬을 오르는 산책로가 보인다.
지심도 산책길은 섬 구석구석까지 오솔길로 이어지며, 대부분 동백숲길이다. 어느 길을 걸어도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빽빽이 늘어서 있으며, 후박나무, 대나무숲도 간간이 섞여 있다. 지심도 동백숲길은 약 3.5km, 2-3시간 걸으면 섬 전체를 샅샅이 볼 수 있다.
지그재그로 숲길을 오르면 제일 먼저 동백하우스 건물을 만난다. 현재 펜션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 건물은 지심도 내의 건물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일제시대에는 지심도선착장에서 중대를 지휘하던 책임자의 관사였다고 한다. 지심도는 일제강점기에는 군부대 요새로 사용되는 등 아픈 역사의 섬이기도 하다. 섬 전체를 요새화함에 따라 섬에서 터전을 이루던 주민들이 쫒겨나고 포대와 각종 군사시설이 들어서게 되었다. 일제시대 들어선 탄약고 및 포대, 막사 등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동백하우스는 현재는 지붕을 제외한 거의 전체가 변형되었지만 아직도 일본식 검은 기와가 일부 남아 있다. 또한 집 뒤편 높은 옹벽과 빗물수로도 일제강점기의 흔적이다.
지심도 산책로는 미로처럼 이어져 있어 처음에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당황스럽기도 하다. 지도를 보면서 다녀야 주요관광포인트를 빠뜨리지않고 모두 볼 수 있다. 필자의 경우에는 선착장-동백하우스-마끝해안절벽-국방과학연구소-포진지 및 탄약고-해맞이전망대-러브러브하트상-원시림-동백터널-해안선전망대-섬끝전망대-선착장 순으로 돌아봤다.
동백하우스에서부터 산책로 곳곳에는 민박집 및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지심도의 민가는 현재 국방과학연구소 건물이 선 곳 서쪽 사면에 열한 가구가 모여 있고 섬 중간에 한 가구, 그리고 섬 북쪽 모서리에 세 가구 등 총 15세대, 27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내륙의 평탄한 능선지대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땅을 개간하여 밭과 과수원을 조성하였다.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겸하며, 쌀, 보리, 고구마가 생산되고, 멸치잡이, 김, 미역, 굴 등의 양식이 활발하다. 섬 전역에 걸쳐 희귀종인 거제 풍란을 비롯하여 후박나무, 소나무, 유자나무, 동백나무 등 37종에 이르는 수목과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데 이중 60-70%는 동백나무가 차지하고 있다.
먼저 마끝해안절벽 쪽으로 가봤다. 마끝은 지심도의 남쪽 끝이다. 그 이름은 선조들이 남풍을 마파람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마끝까지 가는 길은 햇빛이 거의 들지않는 원시림이다. 이곳은 동박새 등 다양한 새들의 서식지다.
지심도에는 동백나무가 많은 만큼 동박새가 많다. 동박새가 동백꽃의 꿀을 먹으면서 꽃가루를 묻히고 옮기면서 동백꽃을 피울 수 있게 도와준다. 벌과 나비가 없는 겨울에도 동백나무가 꽃을 피울 수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지심도에는 동박새 이외에도 팔색조, 흑비둘기, 직박구리 등 여러 종류의 새들이 살고 있다. 이중 특히 팔색조는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색을 가진 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등록된 희귀조류이며 1968년 천연기념물 제 204호로 지정된 새인데 지심도에도 있다니 반갑다. 흑비둘기 역시 멸종위기종이며 천연기념물이다.
마끝해안의 경관이 수려하다. 절벽 위로 곰솔나무숲이 보이고 좌측은 해식애가 발달되어 있다. 갯바위 낚시를 즐기는 낚싯꾼들의 모습이 여유롭다. 마끝 해안절벽은 원래 곰솔나무군락지였다. 2003년 태풍 매미 때 곰솔나무들이 많이 쓸려가 버리고 현재 자라고 있는 작은 곰솔나무는 10년 정도 된 것이다.
마끝에서 정면으로 서이말이 보이는데 서이말은 쥐의 주둥이를 닮았다 하여 쥐부리끝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서이말에는 남동해에서 가장 큰 등대인 서이말등대가 있는데 20초 마다 한 번씩 20마일 밖에서 불빛을 볼 수 있도록 비춰준다. 거제도 지역을 항해하는 선박에게는 중요한 길잡이가 되는 시설이다.
지심도에는 1994년 이전까지만 해도 초등학교 분교가 있었다. 1956년 11월 일운면초등학교 지심분교가 정식인가를 받아 그 해 12월 22일 임시 가교사를 건축했으며, 1960년 4월 23일 신축교사를 완공했다. 1982년에는 재학생이 35명이 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1994년 2월 28일자로 지심분교가 폐교되었다. 현재는 학교터 만 남아 있으며, 당시 탁아소였던 건물이 마을회관으로 개축되어 이용되고 있다. 해발 97m 정상에는 국방과학연구소가 있는데 일반인들에게는 개방되지않고 있다. 지심도가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여서 일제 강점기 이후 해군의 소유로 되어 있다.
다음 코스는 포진지. 1936년 지심도에는 진해만 요새기지 지심도지구방어진지가 축조됐으며 포진지 옆에 탄약고도 만들어졌다.
포진지에서 다시 돌아나와 능선길을 따라가면 곧 해맞이전망대에 이른다. 이곳은 활주로로도 사용됐던 곳으로 바다를 향해 시야가 훤히 트인 곳이다. 능선길이 광장처럼 넓다.
활주로 끝에는 양 손가락을 마주하여 하트모양을 만든 조형물도 보인다. 이 조형물이 바로 윤후명 시인의 시소설집 <지심도 사랑을 품다>를 상징화한 ‘러브러브하트상’이다. 윤 시인은 지심도를 '사랑이 머무는 섬'이라 했다. 지심도에서 그는 '사랑이여 이루어지라'고 외쳤다. 아, 그렇구나. 여기가 바로 그 '사랑'의 섬이구나. 먼 옛날이야기같던 '사랑'이 갑자기 눈앞에서 춤을 추고 내 가슴을 세차게 두드린다. 연인들은 내 마음은 아랑곳없이 하트조형물 앞에서 끼리끼리 사진찍기에만 바쁘다.
하트상 다음 산책코스는 원시림과 동백터널로 이어진다.
원시림은 수백년의 세월을 견뎌온 나무들이 길을 둘러싸고 있어서 해가 거의 들지않는 곳이다. 원시림 초입에는 우측으로 천선과나무가 서 있다. 하늘의 신선이 먹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섬 주민들은 어머니의 유두를 닮았다 하여 젖꼭지나무라고도 부른다. 원시림에는 비파, 송악, 거제딸기 등 다양한 식물들이 분포되어 있다.
원시림 다음은 동백터널이다. 수백년 동안 자란 동백나무 가지가 서로 마주보고 긴 터널을 이루고 있다. 동백꽃이 절정인 3월-4월 초순경이면 흐드러지게 핀 동백들이 시들지도 않은 채로 바닥에 떨어져 붉은 카펫길을 만든다. 동백은 추운 겨울에도 꽃을 피운다 하여 영원한 사랑을 상징한다.
곰솔할배, 서치라이트보관소, 방향지시석 등을 지나면 해안선전망대에 이른다. 전망대 가는 숲길도 아기자기하다.
해안선전망대는 해식절벽이 특히 아름다운 곳이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가덕도, 나무섬, 형제섬, 상대마도, 하대마도, 안경섬, 홍도 등 주변 섬들도 볼 수 있다. 전망대 아래쪽 바위해안에는 야생염소도 눈에 들어온다.
지심도의 제일 동쪽은 샛끝이다. 마끝처럼 선조들이 동풍을 샛바람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현재 관광객들에게는 ‘그대 발길 돌리는 곳’이라는 시적표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마끝과는 다르게 강한 샛바람이 불기 때문에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샛끝까지 왔으니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대나무숲과 황매화가 흐드러지게 핀 길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일본인전등소라고 쓰여진 건물을 만난다. 이 건물은 일제 때 전등소 소장의 사택으로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이다. 지심도 전등소는 지심도 포대의 완공과 함께 1938년 1월에 준공된 것으로, 발전소와 소장 사택, 막사 등의 부속건물로 구성되었다. 전등소는 지심도의 기지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했다. 현재 발전소는 ‘지심도여행’에서 민박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 주변의 숲길과 바다조망도 아름답다. 울긋불긋한 파라솔들이 쪽빛바다와 멋진 대조를 보여준다.
팔색조 이미지 출처 : 두산백과
동백숲길 날머리를 걸으며 동박새와 직박구리 등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인다. 초봄 짧은 시간 머무르다 보니 귀하디 귀한 새 팔색조를 보지못해 무척 아쉽다. 팔색조의 번식기가 5-7월이라던데 그때 와야 팔색조를 볼 수 있는 걸까. 하늘을 가린 동백 숲 속으로 사뿐히 날아드는 아름다운 팔색조를 상상해본다. 윤후명 시인은 그의 소설에서 “나는 분명히 팔색조를 찾아 그 작은 섬에 갔다가 그녀를 만났다”고 했는데, 나도 혹시 이 섬에서 비록 팔색조는 보지못하더라도 그 새처럼 아름다운 누군가를 문득 만날 수 있다면 어떨까?(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