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출생, 1993년 사망. 러시아 출신의 무용수 겸 안무가이다. 키로프발레단의 솔리스트로 활약하던 중, 1961년 발레단의 파리 공연 때 프랑스에 망명했다. 그 후 미국과 영국에서 활동하다가, 로얄발레단에서 마고트 폰테인(Margot Fonteyn)의 상대역으로 명성을 떨쳤다. 안무가로서는 <백조의 호수(Swan Lake)>를 남성 무용수 중심으로 개작하는 등 러시아 고전발레를 새로운 시각으로 서유럽에 알렸고, 몇몇 작품을 창작하기도 했다.
1938년에 태어나 1993년 세상을 떠난 루돌프는 여유롭지 못한 유년생활을 보냈습니다.
비좁은 방 한 칸에서 지냈던 어린 시절, 그의 유일한 낙이자 괴로운 현실을 잊는 유일하게 방법은
음악을 듣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는데요,
그러던 그가 일곱 살이 되던 어느 해 운명처럼 무용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민속음악에 맞춰 추는 민속 무용을 배웠는데요.
하교를 해도 저녁 내내 춤을 멈출 수가 없었고, 춤 동작을 모두 기억하는 천재적인 면모를 발휘하여
자신 뿐 아니라 가족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네요.
가난해서 발레를 배울 수는 없지만 보는 것 만은 포기를 못하기에
연말에 볼쇼이 무용수들의 백조의 호수를 처음으로 보게 된 그는,
화려한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매혹되어 수석 무용수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가 무용을 배우게 되는 계기는 민속음악이었으며,
천재적 재능을 파악하게 된 것은 누나 덕분이었는데요.
그의 누이는 열한살인 루돌프를 일주일에 두 번씩 무료 강습을 1년 반이나 받도록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누레예프의 무용 선생님은 루돌프가 기초를 익히자
더 좋은 무용수에게 강의를 부탁했고, 나날이 실력이 향상되어 민속무용단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민속무용단원으로 지방 순회공연을 하기 시작한 누레예프는
순회 공연 중 도망을 나와 러시아의 대표적 발레단인
‘러시아 국립아카데미 마린스키극장 키로프 오페라 발레극장’의 오디션을 보내 되는데요.
체계적인 발레를 배우지도 못하고 다른 지원자 보다 나이가 많은 17세였지만
심사위원단은 그의 재능과 열정에 반해 입학을 허가해주었습니다.
발레학교에서 3년 동안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한 부족했던 기술을
악착같이 연습하여 루돌프는 키로프 발레단과 계약을 하게 되었고,
꿈에도 그리고 명성 높은 발레리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발레에 입문을 하게 된 후, 그는 마고트 폰테인과 함께 로열 발레단을 이끌었으며,
파리오페라 발레단 예술감독이 되어 디렉터로서의 면모 또한 유감없이 발휘하며
최고의 무용가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사생팬의 원조 꽃미남 무용수
요즘 잘나가는 아이돌 그룹이면 다 가지고 있다는 사생팬,
루돌프 누레예프는 이미 1950년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매우 남성적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가냘픈 중성적인 묘한 매력의 소유자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인기에 관한 일화를 소개해 드리자면
어느 날 루돌프가 일어나 창문을 열었는데,
창문 건너편에 보이는 나무에 없던 꽃이 가득 피어있어 자세히 보니
열성팬이 자신의 속옷을 뭉쳐 꽃처럼 나무에 장식해 놓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다른 일화로는 공연을 마치고 집에 왔을 때 그의 집 앞에 한 여성팬이 그를 기다리며,
결혼식 준비물을 다 가지고 왔다고 말을 건넨다는 것이 있습니다.
이만하면 그 당시 루돌프 누레예프의 인기가 지금의 어느 아이돌 못지 않았다는 걸 세삼 느낄 수 있지 않으신가요?
영원한 팬들의 사랑
발레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 조차도 루돌프 누레예프는 알고 있을 정도를
그는 전세계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최고의 발레리노로 영원한 로미오, 영원한 왕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에이즈로 조금은 이른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나버린 그를,
아직까지도 팬들이 기리고 있다는 것을 다양한 작품들을 보며 알 수 있습니다.
남성 무용수 또한 무대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루돌프 누레예프,
그의 공연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