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시집) 김윤배 시인의 시 '페이스북 무덤'
시를 읽는 아침 ・ 2023. 3. 6. 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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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무덤 / 김윤배
사는 일이 통곡이어서 어깨 들먹이는 공간
페북은 소내素奈로 가는 길목의 그늘이다
흰 능금꽃이 피었다
통곡은 수만 송이의 꽃을 낙화로 이끄는 비밀한 힘
낙화 다음에 무엇을 볼 것인지 생각하지 않는 공간이 페북이다
무엇이든 페북에 올리는 순간 통곡은 시작된다
꽃이 진다
꽃 진 자리로 통곡은 전염되고
사람들이 가슴을 두드려 곡의 높이를 잡는다
따라 우는 사람들은 자기 설움으로 통곡한다
머지않아 흰 능금꽃 핀 계곡의 물소리를 듣게 될 페친들
소내로 가는 공간의 들뜬 갈채들이 갈기를 얻는다
어떤 통곡이 먼저 소내에 들지 알 수 없다
페북은 무덤으로 성시다
김윤배, 『내 생애는 늘 고백이었다』, 별꽃, 2023년, 50~51쪽
페이스북, 저도 즐겨 하는 SNS입니다. 일주일에 3~4개꼴로 소소한 삶의 이야기나 제 활동과 관련한 이야기를 올립니다. 이 글에는 20여 개 내외의 ‘좋아요’가 달립니다. 그다지 신경 쓰지도 않은 SNS인데 여러분들이 읽어주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강릉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아내에게서 ‘카페인 중독’이라는 신조어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흔하게 얘기되는 커피의 카페인 중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설명을 통해 이 ‘카페인’이 다른 단어의 줄임말임을 알았습니다. 혹시 아시나요? ‘카페인 중독’이 어떤 단어의 줄임말인지.
내 생애는 늘 고백이었다저자김윤배출판별꽃발매2023.01.01.
카(카카오 스토리), 페(페이스북), 인(인스타그램)의 줄임말입니다. 모두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SNS입니다. 이 중에 저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합니다. 저는 카카오 스토리는 아이디는 있지만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중독에 포함된다니,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한동안 카·페·인에 중독되어 있던 때가 있었습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시작할 때였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나, 쉽게 만날 수 없는 시인들과 허물없이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이런 만남은 새로운 인연도 만들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사람 중 다수는 페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일부는 대면으로는 만나보지도 못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카·페·인’은 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습니다. 카·페·인 덕분에 내 관계의 지평이 공간의 제약을 넘어섭니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세계 곳곳에 친구가 있고, 그들 덕분에 실시간으로 먼 곳의 소식을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긍정적인 부분만 있을까요? ‘카·페·인 중독’이라는 말처럼,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중독될 정도라면, 긍정의 범위를 넘어선 것입니다.
화자가 시에서 하는 얘기도 의미심장합니다. ‘낙화 다음에 무엇을 볼 것인지 생각하지 않는 공간이 페북이다’라고요. 생각해보면 SNS는 생각의 일방통행로에 가깝습니다. 깊이 전달되어야 하는 문장임에도 접착력이 약한 매체의 특성상 가십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다수입니다.
김윤배 시인의 시집
이와 관련된 기사 하나를 읽었습니다. <“딱 2분만 보려 했는데 2시간” 마약 같은 ‘숏폼’ 중독>이라는 동아일보의 오피니언 기사(2023.3.3.)였습니다. 숏폼은 더욱더 밀도 있게 집약해 놓은 매체입니다. 숏폼 중독은 기억력과 집중력, 독서력 저하로부터 일상의 지루함, 삶의 질 하락과 같은 부정적 영향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신문은 말합니다. 숏폼과 카·페·인은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유사한 매체임은 부정할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새로운 매체도 꾸준히 출연할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새로운 SNS가 출연할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그 어느 매체이든 가능한 인간다움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SNS에 사람이 없다면 그곳은 무덤에 불과합니다. 소내(素奈)*가 가득한 곳이라고 불러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 소내(素奈) : 흰 능금나무꽃으로, 상중의 모습인 흰옷을 입고 머리에 흰 꽃을 꽂은 모습이 마치 흰 능금나무와 같다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출처] (신간 시집) 김윤배 시인의 시 '페이스북 무덤'|작성자 시를 읽는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