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 땜
글 德田 이응철
후덥지근한 더위가 벌써 며칠째 동북아를 강타한다. 평온했던 생체리듬이 마차 위에 물통처럼 균형감각을 잃고 출렁거린다. 기상 탓만 나무랄 것인가! 요즘 세월의 씻김 속에서 단잠을 상실하고 노루 꼬리만한 잠을 겨우 부여잡지만, 그것마저 산짐승 농작물 망치듯 온통 꿈이란 놈이 잠자리를 설쳐 최근 머리가 혼미하다.
며칠 전 새벽, 꿈 해몽 책을 찾느라고 부산을 떨었다.
온 식구들이 난리를 친 꿈 사건의 정체는 무엇인가! 오즈의 마법사에나 등장하는 빗자루를 탄 소녀처럼 황새를 타고 날던 꿈이다. 어인 일인가! 평소 꿈을 신봉치는 않지만 허황된 꿈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잠들 때 유혼(遊魂)의 변동이나 무의식세계의 발동이라고 심리학에서 말하지만 비현실적인 것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꿈에서나마 느껴진다면 얼마나 값진 체험인가!
황새를 타고 창공을 날았다. 태 묻은 고향하늘을 비상했다. 돌아가신 어머님과 예전 동네 어르신들과의 만남을 한 꿈이었다. 그 황홀함! 황새에서 내리는 순간 현실로 돌아왔다. 분명 큰 학이었다. 황새일까, 두루미일까 아니면 왜가리나 백로일까! 분명 꿈에는 황새라고 했지만, 분명치 않아 빈곤한 관련서적과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황새는 천연기념물 199호로 크고 흰 몸에 검은 날갯깃을 한 몸길이 102센티로 울음이 고록고록이란다. 흰 몸은 맞지만 날개깃이 검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두루미일까 하고 찾아보니 아뿔싸! 두루미는 모양이나 크기는 같지만 머리 꼭대기에 붉은 반점이 있는 단학(丹鶴)이다. 시베리아에서 한국에서 날개를 접고 월동을 한다. 그렇다면 왜가리일까? 왜가리를 백로(白鷺)라고 한다. 흰색으로 몸길이 30센티부터 1.4미터로 긴 목을 물음표처럼 잔뜩 구부리며 연못에 데칼코마니를 연출한다. 주로 흰색이지만 꼬리가 회색으로 우리나라에만 15종이 송림에 집단 서식한다. 그리고 해오라기가 있지만 30여센티의 작은 몸에 잿빛으로 밤에만 활동하는 여름새라고 알려준다.
황새라고 했지만 왜가리가 분명했다. 귀하신 황새는 아니다. 그저 유년기 때 논을 서성이는 새는 모두 황새라고 불러서 그런가보다. 금의환향(錦衣還鄕)처럼 반기던 꿈은 당귀차를 먹고 난 뒷맛이라고 할까 기분이 업 되었다.
꿈의 의미는 무엇일까? 조류와 관련된 꿈을 모조리 검색해 보았다. 꿈이 영특한 길조로 순기능을 불러온다는 것이 최근 설득력을 잃어간다. 길몽으로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것이 실제 비중이 낮다고 전문가들은 말하지만, 대저(大抵) 복잡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신비스러움과 좋은 기대감들이 한잔 술처럼 낭만 그것이다.
새가 날아가는 꿈은 자식 낳는 꿈이요, 새장에 갇힌 새는 사랑하는 사람의 자유를 구속하거나 통제한다고 씌어있다. 새에게 먹이를 주는 꿈은 새와 동일시하여 주변에 일거리나 감화를 제공할 수 있다고 했고, 큰 독수리는 권세나 사업의 번창이며 부인의 내조가 절실히 요한다고 씌어 있다.
황새를 타고 하늘을 난 꿈이 복권 구매까지는 못되나, 결코 개꿈의 영역은 아니다. 일말의 희망에 편승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해몽은 닭 쫒던 개 하늘 쳐다보는 격이다. 공직에서 손을 논 백수에게 무슨 권세가 쥐어지고, 이순(耳順)이 넘어 자식은 무슨 해괴한 풀이인가! 팔자가 늘어져 신 중년에 예술을 입체적으로 만끽하며 하루를 보내는데, 새와 동일시해 무슨 남의 자유를 구속한단 말인가! 가당치 않다.
길몽은 사념의 숲에서 활력을 불러온다. 황새를 탄 해몽을 할 자 어디 없냐고 소리치고 싶다. 노구 때문에 자주 꿈꾸는 편도 아니다. 회복기 환자가 양지쪽에 앉아 사고를 줄다리기 하듯, 모든 추리를 동원해도 꿈에 신통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꿈은 오래 기억되어야 길몽이라고 우주왈 말한다. 평생 내겐 세 번의 꿈들이 비온 후 연잎에 물방울처럼 영롱하다. 대학 시험을 보고 누님 댁 부엌 자싯물에 꽃송이를 담근 일이며, 뜻하지 않게 아내와 사별하고 꾼 꿈이 특히 예사롭지 않다. 어머니와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달리는데, 아내가 혼자 창밖을 걷는 게 아닌가! 내가 소리치자 나를 보더니 손을 흔들며 마구 따라 오던 아내-. 나는 소리쳤다. 다음에 갈게-. 머리칼을 날리며 계속 따라오는 아내의 꿈-. 그리고 세 번째는 손녀를 잉태했을 때 윤기 나는 작은 알밤을 주운 꿈이 오래 남는다.
기억이 또렷하니 꿈땜 또한 신통력이 있었다. 첫 번째 꿈은 다음날 아침 대학합격을 가장 먼저 그 누님이 알려주어 꿈땜을 했고, 두 번째 꿈은 모골이 송연해짐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인의 해몽에 안심했다. 어머님이 신이 되어 곁을 지켜준다. 죽은 이가 꿈에 나타나는 것은 전설처럼 흉몽이 아니라 길몽이란다. 오죽하면 죽은 시체에서 송장물이 길몽 중 길몽이라고 하지 않던가!
해마다 연보(年譜)를 바치며 현몽에 감사한다. 제 2의 생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보내준 내자와 벌써 강산을 한번 훌쩍 더 변화시키고, 머리 올리지 않은 딸들의 미래에 바쁘다. 윤기 나는 알밤을 주운 꿈은 핀잔까지 감수했다. 굵은 알밤을 주웠더라면 손자라는 해몽에-.
최근 시간이 많아 고향의 논둑을 베고 누워 구남매를 먹여 살린 어머님을 자주 회상한다. 희한한 꿈에 정오가 지나 논배미를 찾았다. 모내기철로 마침 형님 내외분이 학처럼 모를 누비고 계셨다.
유년기 때 못줄 잡던 작은 논배미를 서성이며, 그 날, 고희(古稀)가 넘어도 대지를 떠나지 못하는 형님 내외분과 외식을 하며 간밤의 꿈 얘길 고했다. 단박에 형님은 박장대소(拍掌大笑)하시며 아까 동생이 서성이던 논배미가 황새배미니 꿈땜했다고-. 또한 일주일 후 어머님 기일(忌日)까지 도래함을 알려주시는 게 아닌가!
위대한 황새 꿈이 다소 싱겁게 끝났지만 황새 목 부분인 논배미가 희한한 구성으로 밀려온 꿈이다. 꿈땜으로 영광과 신선함이 교차하는 하루에 감사한다. 꿈은 상시(常時) 먹은 심정이라 하지만, 황새까지 나에게 길몽으로 화답하니 어찌 황량지몽(黃粱之夢)이라 할 수 있으랴! 물론 우리의 삶을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하루의 청량제는 꿈 그리고 우연 같은 땜이 아닐까!(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