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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4-31회
이화령-조령산-신선암봉-깃대봉 갈림목-조령 제3관
20230402
1.봄바람을 타고 어려운 암릉 지대를 통과하다.
자꾸 산행이 어려워진다. 갈수록 산행 속도가 느려진다. 심장과 무릎의 고통이 점점 심해진다. 그럼에도 산에 오른다. 2년만에 다시 찾아온 이화령, 추억들이 명멸한다. 봄바람이 살랑거린다. 쌀쌀한 듯, 그러나 헬기장을 올라서는데 몸의 열기가 솟아올라 방풍옷을 벗었다. 조령약수와 조령산까지 발걸음이 늦다. 일행들은 보이지 않는다. 힘겹게 조령약수에 도착하여 샘물 두 바가지를 마시고 기운을 얻었다. 그곳에서 조령산까지는 멀지 않은 길, 잣나무숲 뎈 계단을 올라 헬기장을 거쳐 조령산에 올랐다. 2년 전보다 산행 시간이 훨씬 더 걸렸다.
조령산 바로 아래 전망바위에서 오늘의 산행 동선과 하산 지점이 조망된다. 가야할 신선암봉, 928m봉, 깃대봉이 먼 듯 가까운 듯 시야에 들어오고, 하산지점인 새재계곡 끝지점인 문경새재도립공원 조곡조차장도 가늠된다. 신선암봉에서 928봉을 거쳐 암릉 지대를 통과하는 어려운 구간이 벌써부터 마음에 압박감을 준다. 건너편으로는 부봉, 주흘산 영봉과 주봉, 멀리 탄항산과 포암산도 가늠된다.
신선암봉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허걱거리는 가슴을 불어오는 봄바람을 호흡하며 달랜다. 북서쪽으로 괴산군 연풍면 일대의 들녘 풍경이 가슴을 씻어준다. 암릉 지대를 통과하여 드디어 신선암봉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였다. 산에 올라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우는 기상은 어느 나이에나 무방한 것일까? 이제는 겸허함을 배워야 하는 것일까? 나이에 상관없이 호연지기와 겸허함을 함께 느끼고 배워야 하는가?
봄바람은 북쪽에 불어온다. 봄바람을 타고 신선암봉을 내려간다. 어려운 1.2km의 암릉 지대를 통과하는 게 이번 산행의 최대 어려움이다. 마음을 조아리면서 봄바람을 타고서 오르락내리락, 끝날 듯 끝날 듯 어려운 암릉 지대는 계속되고, 그 지대를 통과한 뒤 위험 지대를 걸어온 암봉들을 뒤돌아보며, 아, 저곳을 거쳐왔구나, 혼자 대견해 하면서, 조금씩 전진해 나갔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걱정 소리에 내 몸은 위축되었다가 다시 가슴을 펴고 더 조심하면서 위험 구간을 위태스럽게 통과하였다. 뒤돌아보니 걸어온 암봉들이 줄지어선 모습에 가슴이 쿵쾅거린다. 오, 저 암봉들이었구나. 저 곳을 어떻게 통과하였을까? 놀랍구나. 나비가 되어 나풀거렸던가. 바람을 타고 날개를 펼쳐 날아왔던가. 자랑스러웠다.
남은 어려움은 깃대봉 오르는 길, 짙붉은 진달래꽃이 산비탈과 능선에서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삼라만상이 약동하는 봄, 내 몸도 약동하여 힘차게 전진하여야 하는데, 낡은 몸은 한계에 도달하여 자꾸 더뎌진다. 깃대봉 전의 삼각점 산봉에 오르는 비탈길에 노랑제비꽃이 유난히 노랗게 반짝인다. 봄날은 노랑색으로 와서 붉음으로 이어지는데, 그 중 노랑제비꽃은 붉은 색으로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맑은 노랑제비꽃 빛에 마음이 노랗게 물든다. 열렬하지 않고 은근한 노랑색 사랑을 안고 나는 차분하게 깃대봉 갈림목을 거쳐 허물어진 조령산성 성곽 안쪽길을 따라 걸었다. 깃대봉이, 왜 자기에게 오지 않았느냐고 핀잔을 주는 듯, 이제 언제 올 것이냐고 의문을 품는 듯 머리를 내게로 돌린다. 나도 모른다. 정말 모른다. 봄바람을 타고 위태한 산행을 마치고 나니 내 몸과 마음은 더욱 미지가 된다. "산은 모른다고 한다/ 물은/ 모른다고 한다// 속잎 파릇파릇 돋아나는 날/ 모른다고 한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내가 이처럼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산은 모른다고 한다/ 물은/ 모른다고 한다"(김춘수의 '모른다고 한다' 전문)
2.산행 과정
전체 산행 거리 : 16.1km
전체 소요 시간 : 7시간 2분
눈부시구나/ 드높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산과 물 보듬고 어흥! 등뼈를 세우며/ 구비구비 치닫는 우리의 백두대간/ 봄 오면 진달래, 산벚꽃 다투어 피고/ 뻐꾸기, 멧비둘기 우짖는 여름/ 가을이면 타오르는 만산홍엽/ 겨울엔 설화 피어 세상 밝히는/ 금수강산 한 허리가 빛 잔치이구나
그렇다/ 저 겨례의 성산 백두 천지로부터/ 금강, 설악, 태백, 소백, 죽령, 속리, 덕유/ 지리로 뻗어 내린/ 이 장엄한 국토의 혈맥을 타고/ 반만년 자랑스러운 역사를 들어올리며/ 봄, 여름, 가을, 겨울/ 씨 뿌리고 가꾸고 거두어/ 오순도순 복되고 기름진 삶을 꾸려왔거니/ 흙 한 줌, 풀 한 포기인들 사랑으로 다독이며/ 만대를 우러러 받들지 않을 수 있겠느냐
오늘 여기 국토의 대동맥을 잇는/ 이화령 고갯길은/ 일제의 삽날로 끊어진지 오래/ 상처로 남았더니/ 이제 아픈 세월을 씻어내고/ 세계로 나아가는 더 큰 나라/ 인류의 멘토로 나서는 더 큰 겨레의/ 우렁찬 출정을 하는 백두대간의 첫 걸음이다.
한반도의 젖줄 한강과 낙동이/ 여기서 두 갈래 길을 내고/ 동과 서, 남과 북을 경계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요새였던/ 이울재마루/ 이 길을 넘어 문화와 물류가 오가고/ 역사의 고비마다 말발굽 소리와/ 포성은 지축을 흔들었으리라
그러나 끊긴 국토의 혈맥이 하나 되는 오늘/ 반가워라, 단군께서도 오시고/ 주몽, 온조, 혁거세 잔을 드시니/ 백두, 묘향, 금강, 지리, 한라 덩실/ 춤을 추는구나/ 나라의 평화, 겨레의 자유와 복락/ 이화령에서 꽃으로 피어나리니/ 솟아오르는 백두대간이여/ 하나 되는 국토의 혈맥이여/ 통일의 새 아침을 향하여/ 우리 함께 날아오르자/ 새 역사의 탑을 쌓아 올리자
-이근배(1940~) 시인의 '솟아오르는 백두대간이여 하나 되는 국토의 혈맥이여' - '백두대간 이화령 구간의 복원에 붙여'
이화령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와 경북 문경시 문경읍 각서리를 잇는 고개이다.
백두대간 이화령 표석을 중앙에 두고 왼쪽에 이화령 설명안내판, 오른쪽에 백두대간 이화령 복원 머릿돌이 세워져 있다.
1.이화령(梨花嶺, 548m)은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사이에 있는 고개로 조령산과 백화산 사이에 위치한 한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고개가 가파르고 험하여 산짐승의 피해가 많으므로 전에는 여러 사람이 어울려서 함께 넘어갔다 하여 이우릿재라 하였으나 그 후 고개 주위에 배나무가 많아서 이화령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화령에서 깃대봉 구간은 도상거리는 짧은 편이지만 힘준한 암반지역이 많기 때문에 실거리가 매우 길고 안전사고 위험도 매우 높은 지역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이화령은 일제 강점기인 1925년 도로개설로 단절되었으나 87년만인 2012년 산림청과 행정안전부의 주관하에 생태축을 연결하였다.
2.백두대간 이화령을 잇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白頭大幹) 이화령(梨花嶺)은 일제 강점기인 1925년 단절된 후 87년만에 다시 연결되어 민족정기의 얼을 되살리고 생태계를 복원하게 되었다. 이 사업은 큰 뜻을 발의한 행정안전부가 주관하여 산림청이 주관하고 괴산군이 사업을 맡아 2012년 2월부터 동년 11월까지 길이 90m, 폭 46m의 마루금을 복원하여 본래 높이인 해발 548m로 박두대간을 연결하였다. 아울러 복원의 역사적 의미를 담은 시비를 세워 온 국민이 공감하고 지속적으로 계승·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한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며, 영남과 중부지방의 연결 지점인 이화령 복원은 단절된 생태계와 국토혈맥의 연결이요 나아가 민족의 자존심을 다시 세운 최초 복원사업으로 그 역사적 가치를 후세에 같이 전하고자 그 뜻을 머릿돌에 새긴다. 2012년 11월 15일 행정안전부장관 맹형규, 산림청장 이돈구, 괴산군수 임각수
충북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 이화령에 충청북도 표석과 이근배 시비, 이화령 휴게소가 있다.
1.충청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백두대간의 고개 : 구 3번 국토인 이곳 이화령은 1998년 1.6km의 이화령 터널이 뚫리고 2004년 12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개통돼 지금은 옛 정취를 느껴보기 위해 지나는 탐방객들 외에는 한적한 길이 되어 버렸다. 이화령 고개를 이곳에서는 이우릿재로 불러왔으며 1400년대에 작성된 고려사지리지에서부터 조선말까지 전하는 옛 문헌을 보면 이화령은 이화현(伊火峴)으로 적고 있다. 일제 강점기 이후 거의 1세기 동안이나 충청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백두대간의 고개 가운데 하나였던 이화령은 이제 터널에 그 역할을 넘겨주고 옛길로 남게 되었다. 이화령의 고갯길 변천과정을 보면 우선 조선시대에는 이화현이라 하여 통행량은 상대적으로 새재보다 적었지만 문경에서 괴산지역으로 통하거나, 새재의 우회로 역할을 하면서 조선시대 내내 나름대로 많은 쓰임새를 갖추었다. 이화령의 개척연대는 조선시대 초기에 개척되는 새재보다 오히려 더 오래되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왜냐하면 계립령을 백두대간 동서의 주요 통행로로 삼았던 고려시대 역시 어떤 형태로든 문경에서 괴산 방면으로 통하는 현재의 이화령과 같은 목적의 통행로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2.일제강점기에 도로가 개설되어 민족 자존심 손상 : 일제 강점기 때 신작로가 나면서 일본식 지명으로 이화령이란 엉뚱한 이름이 지금은 터를 잡고 사람들의 입속에 굳어져 가고 있다. 또한 1925년 일제 강점기에 도로가 개설되어 남북종축의 생태계가 깨지고 민족자존심도 손상되었다. 이화령 신작로 부역에 참가했던 이곳 노인들은 일대에 돌배나무가 있어 봄이면 배꽃이 피기는 했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다고 한다. 지금 이화령, 이우릿재로 불리는 조선시대의 이화현은 언제 이 길이 개척되 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새재보다 오히려 더 오래되었을지도 모른다. 관음리쪽의 계립령이 주통로로 이용될 당시 이쪽에서도 어떠한 형태로든 통행로가 있었을 것이고 또 각서리에 요광원이라는 숙박 시설들이 있었던 것을 보더라도 그러하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서북청년단이 주축이 된 88부대가 길을 새로 닦았다고 하며, 이후 2차선 아스팔트 포장이 되면서 우리나라 남북을 연결하는 국도 3호선으로 큰 역할을 해왔다.
3.이화령의 생태축을 연결하기 위하여 높이 10m의 터널이 만들어지다 : 단절된 이화령의 완벽한 복원을 위하여 행정안전부와 산림청, 충청북도와 경상북도, 괴산군과 문경시 등이 함께 모여 복원 방안을 논의하였고 산림, 토목, 환경, 조경 분야의 관련 전문가 회의를 개최하여 복원의 기본 틀을 마련하고 시행착오가 없도록 복원 사업을 준비하였다. 전반적인 사업은 백두대간 이화령의 생태축을 연결하기 위하여 길이 46m, 폭 14m, 높이 10m의 터널이 만들어졌고, 터널상부를 단절되기 이전 높이인 해발 548m 높이로 복원한 후 자생수목인 소나무와 굴참나무, 진달래 등 고유 수종을 식재하여 복원을 완료하게 되었다. 괴산군 이화령 광장에서 단절된 백두대간 이화령 복원 준공식이 지역 주민들과 백두대간 보존 단체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준공 행사에는 백두대간 이화령의 이어짐을 축하하기 위한 축하공연과 홍보영상상영, 시비제막식 등이 거행되어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
4.단절된 백두대간을 원형대로 복원 : 전국의 백두대간 복원대상지 13개소 중 최초로 복원하고 준공되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한반도 생태계의 연속성이 확보되어 생물 다양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며, 온갖 동식물이 어우러지고 자연과 사람이 함께하는 생명의 공간으로 탈바꿈하였고, 영남과 충청이 하나되고 전국민의 소통하는 국토 사랑의 장소가 되었다. 단절된 민족의 허리를 이음으로 인하여 민족정기가 회복되고 생태축이 연결되어 야생 동물과 식물의 이동이 가능하게 되었다. 일제에 의해서 잘려나간 국토의 허리가 이어졌기 때문에 역사교육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일제에 의해 단절된 백두대간을 원형대로 복원을 한 것으로 우리 민족의 정기와 얼을 바로 세운다는 측면에서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
조령산 전위봉(헬기장이 있는 1050봉)이 앞에 솟아 있다.
이화령 2.08km, 조령산 0.8km 지점으로 바로 위에 조령샘이 있다.
조령샘물에서 목을 추기는 길손이시여! 사랑 하나 풀어 던진 샘물에는 바람으로 일렁이는 그대 넋두리가 한가닥 그리움으로 솟아나고... 우리는 한 모금의 샘물에서 우리를 구원함이 산임을 인식합시다. 우리는 한 모금의 샘물에서 여유로운 벗이 산임을 인식합시다. - 조령산 조령샘을 사랑하는 사람들
왼쪽은 괴산군 연풍 절골 2.7km 가는 길, 오른쪽 조령산 0.46km 방향으로 올라간다.
이화령 2.88km, 신선암봉 1.68km, 조령 제3관문 4.98km 지점에 조령산이 솟아 있다.
왼쪽은 주흘산 영봉, 오른쪽은 주흘산 주봉, 주흘산 산줄기가 길게 벋어 있다. 지현옥 산우님의 추모돌탑이 세워져 있다.
뒤쪽에 세워져 있는 조령산 설명안내판에는 조령산 높이가 1,026m라고 기록되어 있다. 어느 것이 올바른 높이인가?
"조령산(鳥嶺山)은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 1,026m의 한강과 낙동강을 가르는 분수령이 되고 있는 산이다. 조령산에서 남쪽의 백화산 사이의 고개가 이화령, 북쪽의 마패봉 사이의 고개가 조령이고, 그곳에 문경새재라 불리는 조령 제3관문(조령관)이 위치한다. 이를 통해 영남지방과 중부지방이 연결되어 교통의 요지였을 뿐 아니라 험난한 자세를 이용할수 있어 군사상의 요충지이기도 하였다. 현재 이 일대는 문경새재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조령산의 주능선 상에는 정상 북쪽으로 신선봉과 치마바위봉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암봉과 암벽 지대가 많다. 능선 서편으로는 수옥폭포와 용송골, 절골, 심기골 등 아름다운 계곡이 발달되어 있다." - 조령산 설명안내판
왼쪽 두 번째에 신선암봉, 중앙에 928m봉, 맨 오른쪽에 부봉, 그 뒤쪽으로는 탄항산과 포함산이 가늠된다. 신선암봉과 928m봉 사이 뒤에 깃대봉, 그 뒤 오른쪽에 마패봉, 맨 뒤 왼쪽에 신선봉이 가늠된다.
왼쪽에 부봉, 주흘산 능선-중앙에 주흘산 영봉과 맨 오른쪽에 주흘산 주봉-이다. 왼쪽 뒤는 탄항산과 포함산일 것이다.
가파른 뎈 계단을 내려가며 앞쪽을 조망한다. 중앙에 신선암봉, 그 오른쪽에 928봉이 있다.
뎈 계단을 내려가면 괴산 상암사터·문경 마당바위 갈림목이며 그곳에서 바로 앞 암봉을 올라간다.
왼쪽은 괴산군 연풍면 신풍리 상암사터 가는 길, 오른쪽은 문경시 문경읍 마당바위 가는 길, 신선암봉은 직진한다.
뎈 계단을 따라 바로 아래 상암사터·마당바위 갈림목으로 내려와서 암봉을 오르며 뒤돌아보았다.
암봉 정상 아래로 암봉을 우회하는 뎈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앞쪽에 신선암봉과 오른쪽에 928봉이 보인다.
중부내륙고속도로가 터널을 통과하여 들판을 가르고 있다.
뎈 계단을 내려가며 앞쪽을 조망하면 왼쪽에 신선암봉, 그 오른쪽에 928m봉, 그 사이 뒤로 깃대봉, 깃대봉 왼쪽 뒤는 신선봉, 깃대봉 오른쪽 뒤는 마패봉이다.
걸어온 암봉을 우회하는 뎈 계단을 뒤돌아 보았다.
백두대간 진행은 절골·마당바위 갈림목으로 내려가 왼쪽 산봉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암봉을 통과한다.
절골·마당바위 갈림목에서 오른쪽 암봉을 오른쪽으로 따라오른다.
왼쪽 괴산군 연풍면 절골 2.3km, 오른쪽 문경시 문경읍 마당바위 2.2km, 신선암봉 0.92km 지점, 나무계단을 따라 오른다.
뎈 계단을 따라 절골·마당바위 갈림목으로 내려와 다시 나무계단을 따라오르다가 뒤돌아보았다.
뎈 계단을 올라와서 다시 뎈 계단을 내려갔다가 또 올라간다.
뎈 계단을 올라간다.
뎈 계단을 오르다 걸어온 산봉들을 뒤돌아보았다.
백두대간 산행은 왼쪽 신선암봉을 왼쪽으로 올라서 오른쪽 928봉을 통과하여 이어간다.
다시 뎈 계단을 오르며 걸어온 산봉들을 뒤돌아보았다.
바위 사이를 통과하여 암봉에 설치된 뎈 계단을 오른다.
뎈 계단을 통과하여 암봉으로 올라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이 암반 지대를 통과하여 왼쪽으로 돌아가서 뎈 계단으로 올라간다.
이 뎈 계단이 신선암봉 오르는 마지막 뎈이다.
왼쪽에 928봉, 그 오른쪽 뒤에 부봉, 오른쪽 소나무 가지 뒤에 주흘산 영봉이 가늠된다.
해발 937m 신선암봉(神仙巖峰) 정상 모습, 정상 표석이 세워져 있고 소나무가 자란다. 뒤쪽에 조령산이 솟아 있다.
왼쪽 괴산군 연풍면 신풍리 한섬지기 3.6km, 직진 깃대봉 3.6km 방향으로 이어간다.
뎈 계단을 내려가 왼쪽 928봉으로 올라간다. 928봉 오른쪽 뒤에 부봉이 보인다.
928봉 오른쪽 뒤에 부봉, 맨 오른쪽에 주흘산 영봉이 보인다.
오른쪽 928봉을 넘어 위태로운 암릉지대를 통과하여 중앙 왼쪽에 보이는 깃대봉 아래로 진행한다. 깃대봉 오른쪽 뒤에 마패봉, 맨 왼쪽에 신선봉이 보인다.
오른쪽은 문경새재 꾸구리바위 2km, 직진하면 조령 제3관문 3.4km, 이곳에서 1.2km의 암릉 구간이 위험하다.
가파른 뎈계단을 오른다. 오르는 도중 뒤돌아보면 신선암봉과 조령산이 멋지게 조망된다.
928m 산봉 가는 뎈 계단에서 신선암봉을 뒤돌아보았다. 신선암봉에서 내려오는 가파른 뎈 계단이 보인다.
928m 산봉 가는 길에서 뒤돌아본 조령산-신선암봉 능선이다.
뎈 계단을 내려갔다가 다시 뎈 계단을 따라 오른 뒤 위태한 암릉을 통과하여 올라가야 한다.
928봉을 오르면서 걸어온 능선을 뒤돌아보았다. 왼쪽 뒤에 조령산, 오른쪽에 신선암봉, 걸어온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이곳이 928봉 정상인 것 같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한다.(11:27)
중앙 앞의 부봉 뒤에 탄항산과 그 오른쪽 뒤로 포암산이 가늠되며, 오른쪽은 주흘산 영봉이다.
건너편은 주흘산 산줄기, 아래 계곡은 새재계곡이다.
왼쪽에 주흘산 주봉, 아래는 새재계곡, 새재계곡 끝 문경새재도립공원 조곡주차장이 하산지점이다.
위태한 암릉 지대 통과하기가 어렵다. 앞쪽의 암봉을 넘어간다. 오른쪽에 부봉과 그 뒤에 탄항산이 가늠된다.
928봉에서 바라본 첫 번째 암릉 지대를 통과하여 지나온 암봉을 뒤돌아보았다.
암릉을 내려갔다가 바로 앞 암봉을 올라야 한다. 왼쪽 뒤에 신선봉이 보인다.
두 번째 암릉 지대를 통과하여 통과한 암봉을 뒤돌아보았다. 중앙 뒤에 신선암봉이 보인다.
앞쪽에 깃대봉, 왼쪽 뒤에 신선봉, 오른쪽 뒤에 마패봉이 보인다. 어려운 암릉 지대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간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작은 틈이 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암릉을 오른다.
어려운 암릉 지대를 통과하여 뎈 계단 앞에서 북쪽을 조망한다. 왼쪽에 깃대봉, 그 뒤에 신선봉, 중앙 뒤에 마패봉이 가늠된다.
앞에 부봉, 그 왼쪽 뒤에 탄항산이 가늠된다.
조령 제3관(조령관) 2.2km 방향으로 내려간다.
조령 제2관 갈림목에서 조령 제3관 방향의 뎈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가 올라서면 어려운 암릉 지대가 끝난다.
이 암봉에 올라오면 어려운 암릉 지대가 끝난다. 왼쪽 중앙의 바위봉이 깃대봉, 그 뒤가 신선봉, 중앙 오른쪽 뒤가 마패봉이다.
뎈 계단을 내려갔다가 바로 앞 산봉으로 올라간다.
뎈 계단을 내려왔다가 산봉에 올라서 방금 걸어온 암릉 지대와 암봉을 뒤돌아보았다.
이곳까지 오면 어려운 곳은 거의 끝난 셈이다. 깃대봉 전의 삼각점봉에 오르는 마지막 힘든 곳이 남아 있다.
맨 오른쪽에 부봉, 왼쪽 뒤에 탄항산이 가늠된다.
이 뎈 계단을 올라 오른쪽 전망바위로 가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뎈 계단을 올라와서 전망바위에서 신선암봉과 위태한 암릉의 암봉들을 조망하였다.
이곳 삼각점봉에 오르는 것이 이번 산행의 마지막 어려움이다. 삼각점이 있는 산봉 바로 앞에 깃대봉이 있다.
깃대봉에 오르지 않고 곧바로 조령 제3관문 방향으로 내려간다.
조령 제3관문을 향하여 내려가면서 앞을 바라보면 정면에 마패봉이 솟아 있다.
조령산성 안쪽 길을 따라 조령 제3관(조령관)으로 향한다.
깃대봉 0.42km, 조령 제3관문 0.8km 지점, 성곽길을 따라 올라간다.
성곽의 산봉을 올라와서 성곽길을 따라 내려간다. 오른쪽 뒤에 마패봉이 보인다.
조령 제3관문으로 내려가면서 왼쪽으로 깃대봉을 올려보았다.
성황당을 거쳐 조령약수 앞으로 내려가 조령 제3관문 앞으로 간다.
조령산성길을 따라오다가 성황당을 거쳐 조령약수 앞으로 내려왔다. 조령약수는 물이 말라 있다.
조령 제3관문 앞으로 가서 제2관문과 제1관문을 거쳐 문경새재도립공원 주자창으로 내려간다.
문경새재 마루에 조령 제3관이 세워져 있다.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에서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로 이어진다. 여기까지가 백두대간 이화령-조령산-신선암봉-조령 제3관 구간이다. 다음에는 조령 제3관-마패봉으로 이어진다.
백두대간 산줄기 산행을 마치고 새재길을 따라 조령 제1관(주흘관)으로 내려간다.
문경(聞慶)새재 마루에 조령 제3관(조령관)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제2관, 제1관을 거쳐 조곡주차장까지 내려간다.
"문경새재는 조선의 옛길을 대표하는 관도(官途)로,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며,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들이 주로 이용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라는 뜻의 '초점(草岾)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새들도 쉬어 넘는 힘든 고개' 라는 뜻의 '조령(鳥嶺)'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태종 14년(1414)에 문경새재 계곡을 따라 제3관문(조령관)까지 650m에 이르는 고갯마루를 닦았다. 이로써 문경에서 괴산, 연풍을 잇는 대로가 개통되었다. 조선시대 영남대로에서 충청도(한강유역권)와 경상도(낙동강유역권)를 가르는 백두대간을 넘는 주도로 기능을 했다.
문경새재는 산성을 쌓는 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 제1관문 주흘관, 제2관문 조곡관, 제3관문 조령관 등 3개의 관문(사적 제87호)과 국립 여관에 해당하는 원(院)터 등 주요 관방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이 밖에도 정자, 주막터, 성황당 그리고 각종 비석 등이 옛길을 따라 남아 있다. 경상도 선비들의 과거길로서 수많은 설화가 내려오고 있는 등 역사적, 민속적 가치가 높은 조선 최고의 옛길이다. 문경새재 일대는 주흘산, 조령산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식생 경관과 옛길 주변의 계곡과 폭포, 숲길 등 경관 가치가 뛰어나다. 현재 '옛길 걷기체험' 등 옛길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다양한 체험 행사가 해마다 열리고 있어 현대인들의 조선시대 옛길과 선비 문화를 누릴 수 있다." - 문경새재 설명안내판
조령 제3관(조령관)에서 새재계곡을 따라 동화원터 입구, 제2관문(조곡관), 조곡폭포, 교귀정, 조령원터, 문경새재오픈세트장 입구, 제1관(주흘관)을 거쳐 오른쪽 맨 아래 조곡주차장으로 내려간다.
문경새재오픈세트장에서 신선암봉에서 위태한 암릉 지대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조망하였다.
왼쪽 뒤로 백두대간 신선암봉 산줄기가 가늠된다.
문경새재도립공원 조곡주차장에서 이번 산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