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근무제는 나라별로 다양한 삶의 변화를 가져왔다. 주5일제에도 불구하고 주말 동안 일해야 하는 2중 직업자가 있는가 하면 주말을 독서나 여행, 운동으로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주5일제가 미국·일본·중국인의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특파원 취재망을 통해 살펴본다.
- 미국 -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사는 밥 봄보이 가족의 재산목록 1호는 ‘모터 홈’이라 부르는 중고 레저자동차다. 40대 후반인 봄보이의 최대 즐거움은 4명이 함께 잠잘 수 있는 이 차를 몰고 가족이 모여 주말이나 연휴 때 캠핑가는 일이다.
봄보이 가족이 이 차를 마련한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여행’을 위해서다. 이들은 맞벌이 부부로 수입이 적은 편이 아니지만 대학에 다니는 두 자녀의 학비가 만만치 않아 돈이 많이 드는 여행을 할 여유가 없다. 그러나 이 차가 있으면 숙식이 해결되기 때문에 큰 부담없이 여행할 수 있다.
봄보이 가족이 주로 이용하는 여행지는 각종 공원. 산과 해변, 숲을 끼고 있는 국·공립 공원에는 대체로 야영지가 있다. 이들 야영지는 하루 이용료가 20~30달러 정도밖에 안되는 데다 전기와 수도, 화장실, 샤워실 등 기본적 편의시설을 갖춰놓고 있기 때문에 큰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봄보이 가족이 실제 캠핑을 떠날 수 있는 기회는 한달에 한번도 채 되지 않는다. 맞벌이 부부인 이들에게 주말은 기본적으로 밀린 집안일을 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봄보이의 아내 로즈는 “밀린 세탁과 집안 청소, 잔디깎기와 집안팎 손질 등 할 일이 많고 교회에도 가야 하기 때문에 캠핑은 큰 맘을 먹어야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캠핑을 떠나지 않는 주말에는 가까운 친척 혹은 친구 가족들과 돌아가면서 피자파티를 벌인다. 가끔 극장에 가지만 입장료며 외식비용이 만만치 않아 꺼리는 편이다.
미국은 1938년부터 ‘주5일 근무제’가 시행돼 한주에 이틀을 쉬는 제도가 이미 정착돼 있다. 하지만 봄보이 가족의 경우처럼 맞벌이 가정이 주류를 이루면서 주 이틀 휴무도 여가를 즐기기에 충분치 못하다고 생각하는 인구가 상당히 많다.
최근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약 40%는 “휴식을 취해야 할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으며, “필요한 만큼 휴식을 취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5명 중 1명꼴이었다. 특히 14%는 “휴식시간을 전혀 가져본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아이를 둔 맞벌이 부부의 경우 대체로 쉴 시간이 없다고 호소했다.
이는 맞벌이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주5일 근무제가 생각만큼 여가 시간을 많이 확보해 주지 못함을 보여준다. 경제적 여유가 없으면 늘어난 휴가를 제대로 즐기기 어렵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나마 미국은 국·공립 야영장 등 값싸고 쾌적한 레저시설이 많아 서민들이 손쉽게 여가 생활에 활용할 수 있지만, 한국처럼 공공 레저 기반시설이 열악한 경우 주말 가족 나들이에 지출되는 비용이 새로운 갈등요소가 될 수도 있다.
한국 사회가 주5일 근무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늘어난 여가를 골고루 즐길 수 있게끔 공공 레저시설을 충분히 확보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미국의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워싱턴/정동식특파원〉
- 일본 -
‘주어진 여가 시간은 늘었다. 그러나 활용하는 시간은 줄었다.’
중소기업 과장인 시게무라 노부히코(46)는 두가지 일을 가진 ‘투잡스’(Two Jobs)다. 월~금요일은 회사에 나가지만 2주에 한번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부인(43)도 슈퍼마켓에서 시간제로 일하고 있다. 4인 가족의 생활과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가장의 고정 수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이유다.
1970년대 초반 대기업을 중심으로 확산된 일본의 주5일제는 94년 근로기준법에 ‘주 40시간 근로제’가 명기되면서 기업은 물론 정부·지방자치체 등 공공 부문으로 확산됐다. 후생노동성 통계에 따르면 2003년말 현재 기업의 95%가 주5일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근로자의 97%가 5일제 근무를 하고 있다. 2002년 4월에는 초·중·고 공립학교에도 주5일제가 도입돼 사회 전반이 주5일제로 들어간 상태다. 여기에 일본 정부는 성인의 날, 바다의 날, 경로의 날, 체육의 날 등 일부 법정 공휴일을 월요일로 개정해 사흘 연휴도 가능하도록 했다.
일본은 주5일제 도입 초기 ‘일 벌레’란 평가를 벗어던지듯 부(富)를 바탕으로 골프, 해외여행 등 ‘넉넉한 주말’을 즐겼다. 실제 80년대 말과 90년대초까지만 해도 일본의 관광·레저·외식·스포츠·오락 산업은 최고의 성장산업으로 급팽창했다.
그러나 거품이 붕괴되고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로 고용 불안이 일상화되고 소득이 줄어들면서 일본인의 주말도 크게 바뀌었다. 재단법인 자유시간디자인협회가 최근 15세 이상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동시간 단축에도 불구하고 여가시간과 여가비용은 줄었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은 매년 점증하고 있다.
물론 세대별 편차는 있다. ‘파워 실버’로 불리는 부유층 고령자들이나 딩크족(아이없는 맞벌이 부부)들은 비교적 넉넉한 호주머니 사정으로 일보다는 휴가를 우선하며 주말을 즐긴다. 이들 중에는 전원지에 주택을 지어놓고 평일에는 도쿄 도심에서 자취생활을 하며 주말에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샐러리맨들은 여전히 여가보다는 일이 우선이다. 4백만명으로 추정되는 프리터(고정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계층)의 경우 여가 중시파가 많지만 넉넉지 못해 주로 친구들과 지내거나 인터넷을 하면서 주말을 보낸다.
샐러리맨의 주말 즐기기 패턴도 변했다. 일본 레저백서에 따르면 지난 10여년간의 ‘주말생활 톱 3’는 외식, 드라이브, 국내 관광이었다. 그러나 최근 조깅, 마라톤, 스포츠센터 등 건강지향형과 원예·정원 가꾸기 등 일상·가족형이 크게 늘었다.
아울러 ‘여유있는 교육’을 표방한 공립학교의 주5일제 수업은 사립학교와 격차를 키우고 학력 저하만 초래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주말 활동을 지원할 프로그램이 부족해 학생들에게 정신적인 풍요를 안겨주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도쿄/박용채특파원〉
- 중국 -
중국 베이징(北京)의한 다국적 기업에서 비서로 근무하는 왕징(王靜·여·30)은 토요일과 일요일을 주로 신체단련에 보내고 있다.
토요일은 예외없이 같은 회사에 다니는 남편과 함께 아파트 단지내 운동장에서 배드민턴을 즐긴다. 일요일에는 샹산(香山) 등 베이징 근교에서 등산을 한다. 그동안은 버스를 이용해 산을 찾았지만 최근 자가용을 구입해 움직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지난 4일에는 베이징에서 자동차로 1시간40분 거리에 있는 해발 1,500m의 펑황타이(鳳凰臺)에 올랐다.
그녀는 또 한달에 한번 정도 2박3일이나 1박2일의 여행을 떠난다. 다음주 토요일에는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의 초원을 찾을 계획이다. 1박2일 일정에 1인당 360위안(약 5만4천원)을 예상하고 있다.
그녀는 이밖에 주말에는 ▲친정 부모 또는 시부모를 찾거나 ▲친구들을 만나고 ▲시내로 나가 보고싶은 책을 둘러보거나 ▲쇼핑을 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지난 4일 오후 7시. 산둥성 칭다오(靑島)의 해변에는 중국 전역에서 때이른 피서를 즐기려 온 관광객들이 일몰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가족이나 연인들이 특히 많이 눈에 띄었다.
친구와 함께 베이징에서 놀러왔다는 장젠궈(張建國·35·회사원)는 “밤 열차로 다시 베이징에 돌아가면 출근에 별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쉬는 토요일을 활용한 전형적인 2박3일 여행객이다.
중국이 주5일제를 시행한 것은 1995년 5월. 내수진작과 소비증가를 통해 고용창출 효과를 노린 것이다. 여가 시간을 늘려 삶의 질을 높이려는 의도도 있었다.
주5일제는 당초 예상대로 관광·레저·서비스 산업 등 이른바 야외활동 산업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국내 관광의 경우 주5일제 시행 첫해인 95년 한해동안 전년 대비 20% 늘었다(1억명 증가). 2002년에는 국내 관광객이 7억5천만명(연인원 기준)을 기록했다.
주5일제에다 99년부터 노동절 연휴(5월1~7일)와 국경절 연휴(10월1~7일)를 쉬는 ‘황금 연휴’제를 도입한 뒤 이른바 휴일 경제 특수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인민일보는 급성장하는 야외활동 산업이 몇년 안에 자동차 산업 규모를 능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주5일제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토·일요일 문을 닫는 한국과는 달리 중국의 은행이나 우체국 등 공공기관은 근무시간을 평일보다 1시간 정도 줄이지만 문을 닫는 일이 없다.
생산라인을 세울 수 없는 대형 공장이나 외국인 투자자를 상대로 하는 공무원들도 쉬는 주말을 갖기 힘들다. 하지만 시행 10년째에 들어간 중국의 주5일제는 “시기상조”라는 일부의 초기 우려를 불식시키고 경기활성화 및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