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실은 “에!?”
(김종성 신부님 성모영보 묵상)
어머니( 4처)
4처에 대한 고민도 다른 처 못지 않게 길어졌다. 글자만 봐도, 말만 꺼내도, 눈물이 나게 하는 신기한 단어 ‘어머니!’ 그 어머니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복음서 안에 어머니 마리아는 처녀인데,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이해되지 않는 일에 대하여,” 예”라고 말해 버린 분이다.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라는 말씀만큼이나 마리아의 “예” 역시 아무리 곱씹어 봐도 어렵기만 하다. ‘평범한 가정에 둘째 아들이었으면 안 되었겠나?’ 이런 극한 설정 속에서 어떻게”예”라는 대답이 나오나? 게다가이 마리아를 신앙의 모범으로 따르라니 이를 어찌 한단 말인가? 아들 이사악을 죽이라고 한 하느님 명령을 따르는 아브라함의 경우보다는 조금 수월해 보이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까?
그래서 잔머리 잘 돌리는 내가 내린 궁여지책은, 어머니 마리아의 “예!”가 사실은 “에!?” 였다는 것이다. 가브리엘 천사가 말하는 내용이 뭔지도 모른 채, “예!”도 “예?”도 아닌 대답이 나와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걸 천사는 “예!”로 알아듣고 떠나간 게다.
이렇게 설정해야만, 이해되지 않는 일에 순명 못 하는 내가 빠져나갈 수 있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 내용을 확실하게 확실히 소상하게 잘 알면 피해 가거나 가지 않게 되기 마련이다.
‘지금처럼 이렇게 살 줄 알았으면 결혼했겠는가?’ 하고 물으면 많은 분들이 고개를 가로지으시더라. 우리는 어머니들처럼 몰랐으니까 시집간 게지. 세상은 명료하게 알고 이해한 뒤, 투철한 사명감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얼떨결에 받아들인 힘에 의해 돌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 중 후자의 경우가 훨씬 더 많다고 믿는다.
믿음이란 무엇을 믿는게 아니다. 사도신경 등의 믿을 교리는 믿는게 아니라, 사실 ‘안 믿지 안 않는 것’이다. 믿음은 ‘받아들임’이기 때문이다. 마리아가 자신에게 떨어진 명령의 내용을 확실히 알고 믿은 게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 역시 하느님의 시험 내용을 환히 꿰뚫고 믿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종성 신부님, 손으로 십자처를 새기며, p30-32
김종성 신부님, 일만위순교자현양동산에서 사목중이시다. 젊은 날 뵐 때는 잘 몰랐는데 오후의 햇볕과 세월의 무서리에 국화처럼 겸손하고 평안해 보이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특히 살아 있는 미사와 강론 말씀이..미사 후 수녀들에게 싸인까지 넣어 선물로 주신 책, “손으로 십사처를 새기며” 를 받았다. 책에는 나무 십사처 그림과 깊이 있는 묵상 글이 눈과 마음을 끌었다.
저 위의 글은 인천교구 백만위현양동산에서 사목중인 김종성 신부님의 4처 십가가의 길 묵상글이다.
신부님의 깊은 묵상과 깜놀한 발상에 웃음이. ...............
그렇지만 발칙한 이의제기 한마디. 개인적 생각에 성모님 경우, 조상들을 가르침과 스스로 공부를 통해, 하느님 구원의 역사와, 불가사이한 예수의 성령잉태 전달을 잘 아셨다는 판단이다. 이런 나의 판단에 힘을 실어주는 분이 조선왕조 신유대박해(1801년)에 장렬하게 순교하신 강완숙 골롬바이시다. 그분은 충청도 덕산 시골 마을 아낙이었는데, ‘천주’라는 단어만 듣고도 천주교가 ‘정교正敎*정도正道’라고 이해했다고 한다. 아무렴 성모님이 강완숙 골롬바만 못하실까? 성모님은 강완숙 골롬바를 능가하는 ‘세상의 모든 여인중에 가장 복되신 분’으로, 만세萬歲가 그를 일컬어 ‘복되다’ 찬양하는 분이시다.(루카 1,4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