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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 명인 洪雙理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 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친근한 가수 조영남이 불러 널리 알려진 화개장터라는 노래 말 중 일부분입니다. 이 노래 말은 소설 인간시장의 작가이자 국회의원을 지낸 김홍신 선생이 지은거라지요. 노래 말처럼 섬진강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질러 남해안으로 흘러들어갑니다. 고려 말에 이곳은 왜구들의 노략질이 극심하였다지요. 그러던 어느 날 왜구들이 강 하구로부터 침입해오자 두꺼비 수십 만 마리가 나루터에 몰려와 울부짖었고 이에 놀란 왜구들이 황급히 줄행랑을 쳤다고 합니다. 또 한 번은 왜구들에 쫓기어 우리 병사들이 나루 건너편에서 꼼짝없이 붙들리게 되었는데 역시 수많은 두꺼비들이 떠오르며 다리를 놓아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하지요. 그런데 뒤따르던 왜구들이 두꺼비 등을 타고 강 한가운데 이르렀을 때 두꺼비들이 일시에 물속으로 들어가 왜구들이 모두 빠져 죽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난 후 사람들은 모래 내나 다사 강으로 불리던 것을 두꺼비 “蟾” 자를 넣어 섬진강으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지요.
섬진강자락엔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면으로 이름난 다압면(多鴨面)에 매화마을로 불리는 마을이 있습니다. 하동을 마주보고 있는 이곳마을은 섬진강 자락의 하얀 모래밭과 파란 물이 어우러진 빼어난 절경으로도 명성이 높은 곳이지요. 더구나 겨우내 고뿔 앓던 강 자락이 기지개를 켤 때면 가장먼저 매화가 꽃 소식을 전하는 마을로도 명성이 자자합니다. 모두 8백여 농가에서 70%이상이 매실나무를 가꾸고 있다니 당연한 일이지요. 이곳을 중심으로 광양에서 생산되는 매실은 전국의 3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해마다 봄바람이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할 무렵 이곳에서 열리는 매화축제는 명성이 자자하지요. 섬진강 자락에 꽃잎이 터지고 물빛이 더없이 푸른 햇살 고운 날 매화마을을 찾았습니다. 푸른 청 매실 농원 일대에서 펼쳐지는 한마당 큰 잔치를 즐기러 달려간 것입니다. 올해로 14년 되었다는 매화축제는 말 그대로 꽃향기 가득한 신명난 잔치판이더군요. 매년 백만 명이상 다녀간다는 축제는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광양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주는 효자인 셈입니다. 운 좋게 매화축제의 산 증인이고 농장주인 홍 쌍리 명인과 조우할 수 있었습니다. 姓이 같다고 반기면서 매실차까지 내온 명인과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눈 것은 분명 행운이었지요. 광양매화축제는 곧 홍쌍리 매실 명인과 직결됩니다.
원래 광양은 원래 밤으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그는 경상도에서 이곳으로 시집와 밤농사를 하는 시아버지를 수발하며 살았다지요. 시아버지는 이곳 10만평의 산을 일구고 밤나무를 심은 분으로 일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 인사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40여년前 부터 밤나무를 베어내고 매실을 심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그때부터 생고생이 시작되었다고 하더군요. 날이면 날마다 산자락에 매달려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 너무도 힘겨웠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산등성이에 있는 바위를 얼싸안고 하염없이 울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지금도 그 바위 앞에 눈물바위라는 표지가 세워져있을까 미루어 짐작이 가더군요. 구부러진 그의 등판이 지난날의 고생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두 차례 암수술을 받았고 교통사고로 3년 가까이 목발 신세를 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런 고통 속에 시아버지와 남편을 여의고도 매화나무 가꾸는 일을 멈추지 못한 것을 보면 팔자소관이라며 웃어넘기더군요. 아들과도 같은 애정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척박한 산을 일구고 매화나무는 물론 수 천 개의 항아리와 대나무 숲과 수수한 초가집과 단아한 기와 집 등이 잘 어우러진 환상적인 농원으로 탈바꿈시켜 놓은 것이지요. 이러한 일을 45년이나 했으니 매실에 관한한 내로라하는 박사로 손꼽히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정부는 그를 식품명인 1호와 21세기를 이끌어 갈 신지식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새 농민상과 대통령상, 석탑산업훈장도 받았다지요. “밥상이 약상이라 했제!” 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그는 한해 100일 가까이 강연도 나가고 외국을 돌며 우리 매실을 알리고 그들의 농사법을 배워 온다고 합니다. 그는 지금도 농사일이 좋고 시아버지를 가장 존경한다고 하더군요. 흙이 삶의 원천이라는 것입니다. 매화는 추운 겨울 혹한을 이겨내고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강인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며 사람들이 매화를 배워야한다고 하더군요. 그는 앞으로도 흙을 일구고 자연과 벗 삼아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보듬으며 살아갈 것이라고 합니다. 청 매실 농원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광양시와 공동명의로 남겨 오래도록 매화 향기가 세상에 가득하게 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욕심이 없어서인지 오랜 역경을 딛고 일어선 때문인지 얼굴 표정이나 몸짓이 열일곱 소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광양 땅 매화마을에 가면 봄이 무엇인지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매화마을 산자락엔 강 자락을 들뜨게 하는 매화향기가 봄을 말해주고 꽃향기보다 더 진한 홍 쌍리 명인의 향기와 넉넉한 미소가 삶이 무엇인지 일깨워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 2010.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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