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즈번에서 열린 한국영화제
- 2013 Korean Film Festival in Australia (KOFFIA)-
한국문화원의 주관으로 2013 한국영화제가 지난 8월14일부터 18일까지 5일 동안 브리즈번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마이어센터의 이벤트 시네마에서 개최되었다. 개막식 영화로는 2012년에 화제를 모았던 "늑대소년"이 상영되었으며 종료 작품으로는 "도둑들"이 이번 영화제를 마무리했다. 영화제 기간 동안 상영된 영화는 모두 11편이었으며 "Modern Korean Cinema " 라는 주제로 포럼이 열려서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는데 한 몫을 담당했다.
그리고 각 영화가 상영될 때마다 자원 봉사자들의 수고로 진행되었던 이벤트 또한 영화제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이번에 상영되었던 영화는 로맨스 코미디, 역사물, 애니메이션, 액션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선정되었으며 호주사회 내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갈증을 조금은 해소한 듯싶다.
이벤트 시네마 복도에는 KOFFIA 부트가 설치되었고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한국영화 홍보에 큰 역할을 맡아주었다. 영화관 입구에는 포토 월이 세워졌으며 바닥에는 레드카펫을 깔아 놓아서 제법 영화제다운 분위기를 풍기게 꾸며 놓았다. 나는 영화보기가 취미라고 내세울 만큼 영화를 무척이나 즐기는 편이다. 이번 영화제 동안 상영되었던 영화들도 이미 유료인터넷을 통해서 보았던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영화관에 앉아서 대형스크린을 통해서 보는 영화의 맛과는 그 느낌을 비교 할 수가 없다. 상영했던 영화중에서 다시 보았던 5편의 작품들을 간추려서 소개하고 싶다.
첫 번째 만난 영화는 "늑대소년"으로 (조성희감독/주연: 송중기, 박보영) 관객 동원수 700만 명을 넘어선 첫 번째 멜로영화로서 2012년 대한민국 여성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작품이라고 한다. 수많은 20대 여성들이 송중기를 다시 보기 위해서 몇 번씩이나 보았다는 늑대소년은 신비적이고 환상적인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1960년 대 강원도 산골에서 만난 늑대소년 철수와 순희의 동화 같은 첫사랑 이야기는 보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산골동네가 품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은 어우러지는 밝은 햇살과 함께 마치 한 편의 수채화를 보는 듯 서정적으로 잘 연출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에 가장 와 닿았던 장면은 70대 할머니가 되어서 오십여 년 만에 옛 집에 돌아온 순희가 꿈속처럼 철수와 재회를 하며 눈물을 흘릴 때였다. 여자는 나이가 들어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항상 수줍은 소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철수와의 만남을 설레어하던 순희의 표정과 감정이 잔잔하게 전달되며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두 번째 만난 영화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성문제를 거리낌 없이 다룬 " 나의 P S 파트너"(변성현감독/ 주연; 지성, 김아중 )이다. 과감한 노출 신과 거리낌 없는 성에 대한 대사들이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현대 젊은이들의 연애에 대한 사고를 아주 실감나게 나타낸 영화라고 여겨진다. '19금 연애의 모든 것'이라는 카피라이터에 걸맞게 두 쌍의 연인들이 생각하는 결혼관과 성윤리를 화면에 잘 담아낸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노골적인 성 장면의 연출이나 대사가 상당히 부담스러웠던 점은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고루한 도덕성 윤리에 꿰맞추는 나의 고지식함도 이제는 바꿀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 영화라고 여겨진다.
세 번째 만난 영화는 사극물인 "광해, 임금이 된 남자" ( 추창민감독/
주연:이병헌, 류승룡, 한효주)이다. 영화 "광해"는 조선왕조실록에 사라진 광해군 15일간의 행적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실제 역사와는 다른 가공의 인물이 등장하는 픽션 영화일 뿐이다. 이병헌이 첫 사극 물에 출연하면서 1인 2역을 맡았으며 관객 1200만 이상을 동원한 대박이 난 작품이다.
무거운 분위기가 될 수도 있는 역사물에 코믹한 설정을 넣기도 해서 적절한 균형을 맞추었으며 웃음과 눈물을 함께 이끌어 내었다. 2012년 대종상 15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던 영화답게 관객의 입맛을 잘 맞추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통해서 허균 역의 류승룡이 스타 배우가 되었으며 도부장 역의 김인권, 그의 연기 또한 칭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극이었지만 관객을 웃기고 울리며 깊은 감동까지 안겨준 "광해" 는 분명 재미있는 영화이다. 그 재미 속에서 울림을 받는 것은 역사란 시간의 흐름을 통해서 반복되는 것이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어떤 숙제를 던져주지 않았나 하는 사실이다.
네 번째 만난 영화는 국민 첫사랑이라는 말을 대한민국에 유행시켰던 "건축학 개론"(이용주감독/ 주연:엄태웅, 한가인, 이제훈, 수지)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드는 첫 느낌은 "아~, 참 깨끗하다.상큼하다" 였다. 십여 년 만에 첫 사랑의 남자 승민을 찾아와서 제주도에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는 좀은 엉뚱한 여자 서연. 첫사랑이었던 여자의 집을 지어나가는 과정에서 청춘이라고 불렀던 시절의 과거와 현재의 시차를 어색하지 않게 이어나가는 감정이입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교 1학년, 건축학개론 강의 시간을 통해서 알게 된 승민과 서연의 첫눈 같은 풋풋한 첫 사랑이 하얀 도화지 같다는 느낌이 드는 연출력이 뛰어나다. 첫사랑이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지만 늦게라도 그들의 놓쳐버린 사랑이 다시 이어지길 바랐는데 각자의 길로 돌아가는 마지막 장면이 아프게 다가왔다. 영화의 전반에 잔잔히 흐르는 OST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들으면서 내가 대학교 일학년이었던 시절을 기억하려 애쓴다. 한편으론 딸이 건축사인 탓에 애정이 담긴 시선으로 영화를 감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제주도의 파란 바다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도록 거실 벽면을 유리로 만든 집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나에게도 유리로 만든 벽이 있는 집에서 바다를 한껏 가슴 안에 담을 수 있는 집을 딸이 지어주기를 기대해본다.
다섯 번째 만난 영화는 영화제 종료 작품으로 선정된 "도둑들(최동훈감독/ 주연: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전지현,김수현)이다. 도둑들을 보면서 첫 번째 놀랐던 점은 스타급 배우들을 한 영화에 동시에 출연시킬 수 있었던 최동훈 감독의 능력과 두 번째는 헐리웃 영화에 못지않은 촬영기법과 배우들의 스턴트 연기였다. 스토리자체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훔치는 10명의 도둑들이 갈등하고 서로 속이며 욕심을 부리다 망가지는 단순한 내용일 뿐이다. 고층 빌딩의 창문을 뚫고 오르내리는 전지현의 대역 스턴트연기에는 어색함이 엿보이지 않고 스릴과 재미가 있었다. 주인공이 열 명이나 되다보니 편집이나 전개에서 조금 산만한 느낌은 들었다. 하지만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자랑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으며 클로징 영화로 선정될 만큼 매력이 있었던 영화라고 여겨진다.
5일 간의 영화제로 인해서 한주일 동안 정말 바쁜 저녁시간을 보냈지만 보람 있는 시간을 가졌다. 초대했던 호주친구들로부터 한국영화에 대한 칭찬을 듣고 나니 한국인의 이미지가 상승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또한 관객들이 제출한 자료를 통해서 조사된 결과로 가장 인기가 많았던 영화로는 "7번방의 선물"이 뽑혔다. 한국문화원에서 개막영화 입장객들에게 제공했던 선물가방도 좋은 이벤트였다고 생각한다. 영화제를 열심히 준비해서 호주 속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데 한 몫을 해준 한국문화원에 감사하며 2014년에는 어떤 영화들과 다시 만나질지 벌써부터 기대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