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공양
시자 법정이 효봉스님에게 야단을 맞고 당황하여 쩔쩔 맬 때도 있었다.
효봉스님은 야단을 칠 때 길게 끌지 않았다. 시자가 저지른 실수를 몇 마디 하고는 돌아서버렸다. 변명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시자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지적하고는 그 자리에서 끝맺었다. 그러니 야단을 맞는 시자는 더 깊이 후회하고 새롭게 거듭나지 않을 수 없었다.
탑전에서 보낸 시자생활 중 첫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효봉스님에게 <초발심자경문>을 막 배우기 시작할 때였다. 조심스러운 나날이었기 때문에 시간은 흐르는 계곡물처럼 빨랐다.
오랜만에 시자 법정은 효봉스님에게 보고하고 화개장터로 반찬거리를 사러 내려갔다.
장터로 나가니 오만가지 구경거리가 풍성했다.
장터에는 승복을 입은 사람이 시자 법정만 기웃거리는 것이 아니었다.
칠불암 스님들도 내려와 어정대고, 연곡사 스님들도 장을 보러 서성거리고 있었다.
시자 법정은 효봉스님에게 적잖은 돈을 타왔으므로 물건을 사는데는 여유가 있었다.
원래 계획에는 없었지만 대장간으로 가 호미와 괭이 등 연장도 샀다. 충동구매였다.
탑전 옆 산자락에 있는 묵은 채마밭을 일구려면 농기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반찬거리로는 효봉스님의 입맛을 돋우려고 쑥갓과 상추, 국거리로 아욱잎과 미역을 보따리에 쌌다.
아침 일찍 탑전을 나섰으니 미적미적 장구경을 하는 바람에 점심공양시간이 밭았다.
시자 법정은 뛰듯이 걸었다. 그런데 엎친데덮친 격으로 가다가 소나기를 만났다.
시자 법정은 소나기를 피해 외딴집 추녀 밑에 있다가 다시 보따리를 들고 뛰었다.
그러나 시자 법정이 탑전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공양시간을 넘긴 뒤였다. 시자 법정은 바로 탑전 부엌으로 들어가 허둥지둥 점심공양 주비를 했다.
그때 효봉스님이 부엌으로 들어오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탑전 생활 중 첫 야단이었다. 96쪽
“오늘 점심공양은 짓지 마라. 오늘은 단식이다. 나도 굶고 니도 굶자. 공부하는 풋중이 시간관념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정신을 어디다 팔고 다니는 것이냐?”
“죄송합니다. 스님께 지금 지어 올리겠습니다.”
“됐다. 서로 굶기로 하지 않았느냐”
“오다가 소나기를 만났습니다.”
효봉스님은 더 이상 변명을 듣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시자 법정은 어쩔줄 모르고 뒤따라 방문까지 갔으니 방에서는 벌써 화두소리가 나고 있었다.
“무라. 무라.”
시자 법정은 부엌으로 돌아와 자신을 나무랐다.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괭이를 들고 채마밭으로 갔다.
숨이 턱에 차도록 괭이질을 했다. 밭두둑을 두어 개 만들 때까지도 허리 한번 펴지 않고 괭이로 흙을 파 올렸다.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날이 어둑어둑해져서야 시자 법정은 힘이 빠지고 허기가 져 괭이를 놓았다.
괭이를 놓고 풀밭에 큰 대자로 드러누워버렸다.
그때 효봉스님이 다가와 시자 법정을 불렀다.
“니 칼국수 좋아한다고 했제.”
“스님, 지금 칼국수 공양 지어 올리겠습니다.”
시자 법정은 용수철처럼 바로 일어나 말했다.
“아니다. 내가 만들었다.”
“큰스님께서 만들었단 말씀입니까?”
“칼국수 나도 많이 만들어봤다. 자, 가서 먹자꾸나.”
효봉스님의 목소리는 더없이 따뜻했다.
시자 법정은 합장한 채 약속했다.
“큰스님! 다시는 시간을 어기지 않겠습니다.”
“나는 니가 참회하는 것을 다 보았느니라.”
시자 법정은 부엌으로 갔다. 솥뚜껑을 열자, 과연 효봉스님이 요리한 칼국수가 있었다. 간장만 넣고 간을 맞춘 담백한 칼국수였다. 시자 법정은 서둘러 상을 봤다. 장 봐온 쑥갓과 상추도 고추장과 함께 올렸다
“이상하제, 스님들은 다 국수를 좋아한단 말이야. 누군가가 질 지었어. 국수를 승소(僧笑)라고 했거든. 스님들을 웃게 한다는 것이지.”
시자 법정은 그날 금당으로 들어가 육조장상탑 앞에서 새벽 도량석때까지 절을 했다.
3천배를 넘어 섰을 때 먼 산속에서 울던 소쩍새 울음소리가 금당 뒤 가까운 숲속에서 들여왔던 것이다. 시게를 보지 않고서도 그때쯤이면 늘 새벽 도량석을 했는데, 그날은 밤을 새우고 말았던 것이다.
시자 법정은 며칠이 지나서 점심공양 뒤 또다시 곤욕을 치렀다.
이번에는 설거지 뒤끝이 깨끗하지 못하여 따끔하게 지적을 받았다.
효봉스님이 우물가에서 시자 법정을 불렀다.
우물가에서 설거지를 막 끝내고 오후 일과를 생각하면서 한숨 돌리고 있던 참이었다.
“법정이 우물가로 오너라.”
“네, 큰스님”
우물가로 달려간 법정은 긴장했다. 혼쭐난 지 며칠이 되지 않았는데 또 야단을 맞는가 싶어서였다. 효봉스님은 뒷짐을 지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않고 무엇이 문제인지 찾아보라는 식으로 말했다.
“여길 보아라.”
“큰스님, 무엇을 말입니까?”
시자 법정은 당황하여 어디를 보라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니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구나.”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큰스님”
시자 법정은 우물거리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
효봉스님은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지 아는 체 둘러대는 태도를 아주 싫어했다.
효봉스님에게 지적이라도 받으려면 태도가 분명해야 한다.
“그렇다면 직접 가르쳐줘야겠구나.”
“네, 큰 스님”
효봉스님이 뒷짐을 풀었다.
“빈 그릇하고 젓가락을 가져오너라.”
“어디다 쓰시게요.”
“가져오면 알 것이다. 내가 보여주겠다.”
시자 법정은 효봉스님이 시키는 대로 지체하지 않고 부엌에서 빈그릇과 젓가락을 가져와 내밀었다.
“큰스님, 여기 있습니다.”
그제야 효봉스님이 우물가에 앉아서 젓가락으로 밥알과 시래기 줄기를 건올려 빈그릇에 담았다. 시자 법정이 설거지하면서 흘린 것들이었다. 시자 법정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설거지하면서는 흘린 밥알을 보고도 나중에 우물 청소할 때 치워야지 하고 미뤘다가 잊어버렸던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까.”
“헌식대에 놓고 오겠습니다.”
반반한 바위에 새나 다람쥐의 먹이를 점심공양한 뒤에 조금식 덜어놓곤 했던 것이다.
탑전 뒤뜰에도 헌식대가 하나 있었다.
“그럴 것 없다. 시주한 것을 함부로 버리면 삼세제불이 합장하고 서서 벌선다고 했다.
부처님이 벌선다고 했으니 오늘은 내가 먼저 벌서겠다.”
효봉스님은 빈 그릇에 담은 밥알과 시래기 줄기를 우물물에 한번 헹구더니 망설이지 않고 삼켜버렸다. 그런 뒤, 눈을 껌벅거리며 말했다.
“다음번에는 서로 나눠 먹을까?”
“큰스님, 참회하겠습니다.”
시자 법정은 그날 이후 우물가 청소를 철저하게 했다.
우물가에 떨어진 국수 한 가닥이라도 흘리지 않고 집어 삼켰다.
훗날 어디를 가나 법정스님이 사는 암자의 우물가는 맑은 물만 흘렀다.
<소설 무소유> 중에서 -며칠전부터 읽고 있는 책입니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저도 이 일화를 읽은 뒤로는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비웁니다. 헌데 가끔은 역시 남기는 때가 있는데 늘 효봉스님과 법정스님 생각이 나서 죄스럽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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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지장보살님이 밥한알이라도 낭비되면 합장하고 대신 사죄한다는 말씀에...나무아미타불...()()()...
그대부터 저도 밥알을 남기지 않는 걸로....